땡큐. (어찌됐건 손을 내밀어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는 들었다. 랑이 이름을 묻자 운동부는 즉답했다.) 하랑이잖아. (맞추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외로 절반 정도는 맞췄다. 반에서 통용되는 이름을 생각해보면 정답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지 않을까? 랑의 이름의 비밀은 이 운동부보다 더 가까운 아이들도 여지껏 모르고 있는데, 지금껏 데면데면하게 거의 접점 없이 지내온 운동부가 그걸 알 리가 없을 테니까.) 너는 내 이름 아냐? (수업 들어온 선생님들이 이따금 '현민이한테 과제/유인물 있다고 전달 좀 해줘라-' 하고 언질을 해주는데, 이걸 들은 적이 있다면 그의 이름을 맞추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레이션으로는 이제서야 알려주지만, 이 가무잡잡한 곱슬머리의 운동부 소년의 이름은...) -아니, 이 김에 내 이름 말해줄게. 채현민. (기왕이면, 이렇게 인사 정도 나누는 관계가 된 것... 운동부는, 아니 현민은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그래서 미리 말해두는데, 랑이가 자기 이름을 제대로 공개하기 전에 현민이가 랑이를 랑이라고 불러버리면 100% 내가 실수한 것일 테니 하랑이라고 불렀다고 생각해줘
오, 정답! 알고 있었네- (알고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반에서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은 중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정말 접점이라고는 하나 없으니까. 그래서 당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이 울렸을 때 눈이 커졌다가 웃음 지었다.) 똑똑이 맞네! (피어싱으로 이야기 나눴던 그 때의 칭찬이다.) 응, 알아! 내 이름 모른다고 하면 '난 네 이름 알고 있는데...' 하려고 했는데. (채현민, 하고 이름 세 글자를 소리 내려고 하니 먼저 이름이 소개되었다. 선수를 뺏겼다고 조금 툴툴거리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덥썩 두 손이 당신의 손 하나를 잡았다. 찬 날씨에 조금 날아가기는 했어도 온기가 남아있는 손이다.) 앞으로 자-알 부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을 따라한 거다. 2~3초 정도의 침묵까지도.) 채현민씨. 저는 배하랑입니다! (당신이 하랑이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말갛던 웃음이 지금은 좀 짓궂어졌다.)
내가 반에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았던 게 다행이네. (네 이름 알고 있는데, 하는 원망스러운 톤의 말에, 현민은 짧은 한숨을 톡 쉰다. 이렇게 자주 한숨쉬는 인생이 아닌데 요 근래 미묘하게 한숨이 늘어난 기분이다. 현민은 손을 들어 깐쵸의 정수리께를 한번 부드럽게 긁어주고는 손을 내리려 한다.) 아무튼 너 꽤 일찍 나오- (랑이 손을 대뜸 거머쥐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브먼트에 현민의 손이 움찔 하고 놀라는 게 느껴진다. 놀려먹으려는 목적은 굳이 그 2-3초의 공백을 따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성공적인 것 같다. 랑이 대뜸 손을 덥석 쥐어버리는 그 순간에 이미 현민의 얼굴에 홧홧한 핏기가 옅게 올라오기 시작했기에.) ...어, 예, 잘 부탁합니다. (하고, 현민은 악수라도 하듯이 랑의 손을 가볍게 흔든다. 그냥 순순히 놓아줄 수도 있고, 이대로 손을 잡고 다시 등교를 시작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할까.)
뭐- 몰랐어도 괜찮지만! 내가 알려주면 되잖아. 공부도 알려줄건데 이름도 알려줄 수 있지. (깐쵸의 정수리를 긁어주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깐쵸보다는 손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손이 다시 내려오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두 손에 잡혀있는 손이 움찔 하고 움직였다. 뿌리치진 않을까 생각했는데 되려 악수까지 이루어졌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긴가민가했다. 저번에 먼저 손을 잡은 건 당신이었고, 똑같은 장난을 멘트만 응용했다. 그때는 민망할 법한 말을 해버렸지만 지금은 단순히 통성명 중일 뿐이다. 그래서 확인을 해보자 싶었다.) 응, 나 일찍 나와. 바른 생활 어린이. (끊겨버린 말에 대답을 해주면서 손을 움직였다. 자세히 말하자면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이 손을 잡고 있을 때, 손가락이 움직여서 할 수 있는 행동은 깍지를 끼는 것이었다. 지금도 부끄러워하고 있는게 맞다면, 이번에는 정말 손을 뿌리칠 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름 예쁘네. (공부도 알려줄 참이니 이름도 알려줄 수 있다는 말에 돌아오는 대답으로서는 적잖이 엉뚱한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솔직한 감상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현민은 랑이 어련히 손을 놓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에서 느껴지는 두 번째의 예기치 못한 무브먼트에 현민은 손을 휙 내려다보고 다시 랑에게 시선을 올린다 싶더니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학교로 향하는 등교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생각보다 이 운동부 놈, 이성과의 접촉에 내성이 상당히 없는 모양이다. 사실 현민에게는 꽤 그럴 기회가 있었다. 그래봬도 허우대는 꽤 괜찮았고 이목구비에도 심각한 하자는 없었으니 종종 그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다른 학생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인관계에 꽤 비관적인 현민은 최대한 정중하게 그런 상대들을 밀어내왔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현민은 여지껏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허락한 적이 없는 거리를 랑에게 내어줘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되었음에도, 현민은 랑의 손을 떨쳐내지 않았다. 그저 의외의 상황에 부끄러워하다 못해 놀라서 뻣뻣하게 굳었을 뿐.) ......이거 맞냐? (그러나... 확실히 떨쳐내지는 않는다. 랑에게 그 정도 거리를 내어줘도 괜찮다고 판단한 걸까, 아니면 여기까지 다가온 사람을 밀쳐낼 만큼 모질지 못한 걸까? 식빵을 굽고 있던 깐쵸가 기지개를 쭉 피더니 보도블록 위로 깡충 뛰어내려서는 두 사람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글쿠나 깐쵸가 따라온다길래 걸어가고 있나 했어~ 그렇지만 맞춰준다니 미치겠다...... 보폭부터도 엄청 차이날텐데 ㅠ.ㅠ 스윗하고 귀엽고 멋지고 다정하고 다해버리는구나 현민아........... 과분하다 이 아이 채 현 민 대 박 귀 엽 다 초 코 우 윳 빛 깔 채 현 민 사 랑 한 다 채 현 민
나도 알-아! 네 이름도 예뻐. (이번에는 짓궂은 웃음이 아니었다. 둥글둥글 순한 인상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기분이 말랑말랑해질 것만 같은 부드러운 미소였다. 유순히 아래로 향한 눈매는 눈웃음을 지으면 더욱 도드라졌다. 뺨에 연주홍빛으로 온기가 어렸다. 이름 칭찬이 퍽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당신의 시선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지만, 이쪽의 시선은 늘 그쪽을 향했다. 누군가와 말을 하고는 할때 시선을 거두는 일은 없고, 거두더라도 다시 돌아온다. 장난, 장난 비스무리한 것을 하고나서 반응을 확인해야할 때도 그렇다. 그래서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서 시선을 돌려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이제는 부끄러워하는게 맞다고 확신했다. 쿡쿡 조그만 웃음 소리가 들린다.) 너 부끄럼 진짜 많-이 타네! 놓을게, 놓을게. (구름같은 성격. 구름이 제자리에 머물기만 하지는 않는다. 서스럼없이 당신의 옆에 훌쩍 다가더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놓으려 했다. 부끄러워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려던 장난의 목적은 달성했다. 깍지를 끼고있던 손가락이 빠질테다.) 어. 칸쵸- (식빵을 계속 구울 줄 알았던 고양이가 다가와 있었다.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내리고는 말을 건넨다.) 왜, 칸쵸도 진짜 같이 학교 가게? (그리고 목소리 크기를 조금 줄이고서 다시 한 번 말을 건넨다.) 아니면 현민이 쫓아와? (칸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다시 흘끗 당신에게로 올렸다. 손을 뿌리치는 일은 없었지만 장난에 연달아 부끄러워하게 만들었으니, 나름의 배려로 당신을 언급할 때 목소리 크기를 줄인 것이었다.)
(곁눈질로도 알 수 있는 밝고 몽실몽실한 미소다. 문득 현민은, 어제와는 바람이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단순히 기후의 차이가 아니라...) ...어, 고마워. (보통이라면 이름 예쁘다는 말을 묵살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얼떨결에 대답해버렸다. 예상도 못한 채로 깍지를 끼인 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손에 한가득 낯선 냄새가 묻은 게 이상하기도 하다. 현민은 얼떨떨하다는 듯이 자신의 가무잡잡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얼굴이 홧홧한 느낌을 알아채서, 그는 하릴없이 손부채질을 했다.) 아무튼, 가자. (랑의 질문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깐쵸는 야옹 소리 한 번 없이 곁눈질로 랑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북실북실한 꼬리를 치켜든 채로 두 사람의 발께를 어슬렁거릴 뿐이다. 발걸음을 반쯤 내딛다 만 현민은, 깐쵸한테 말을 걸고 있는 랑을 바라보면서 한 마디 했다.) 안 가? (그는 랑과 같이 등교하려는 모양이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받아들인 걸까? 랑이 현민을 따라오기 시작하면, 현민은 현민대로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랑과 보조를 맞춰줄 것이다.)
그냥 하는 말 아니고 진짜다? 현은 예쁘고, 민은 귀여워. 채는- 예쁘고 귀여워.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는 듯 한 글자씩 이름을 뜯어 늘어놓았다.) (제 장난에 여전히 부끄러워 하고 있구나 생각한다. 추워진 날씨에 손부채질이라니 어지간히 얼굴에 열기가 오른게 아니라면 그렇지는 않을텐데. 톡 닿을 때마다 작든 크든 파장이 일어나는 당신의 반응에 웃음 소리를 참기 힘들 듯 하다. 밤새 온 비를 놓친 건 아쉬웠지만, 아침의 기분이 계속 아쉬운 채로 남지는 않았다.) 가야지! 근데 나 많이 느려서 너 답답할텐데. (외투 끝자락과 교복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려 보인다. 무릎에 있는 반창고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잘 보면 손바닥에 있는 반창고도 보일까. 비오는 걸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가 온 날은 걷는데 더 신경을 써야하는 까다롭고 피곤한 날이 되어 버린다. 당신과 처음 맞닥뜨리게 됐을 때도 넘어질 뻔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자.) 반창고 하나라도 더 늘어나면 잔소리 진-짜 장난 아냐. (이유는 그뿐. 같이 등교하기 싫지 않다. 누군가 속도를 맞춰 걸어주는 것도 싫지 않다. 발치에서 노니는 깐쵸를 보았다가 당신을 바라본다.) 깐쵸 이름, 네가 지어준 거야?
사람 이름을 그렇게 일일이 세심하게 짚어서 쓸데없는 소릴...... (얼굴에 올라온 핏기가 변명의 여지도 주지 않고 홧홧해지자, 현민은 공연히 아무 소용없는 역정을 냈다. 쌀쌀한 아침 바람이 차라리 시원하다. 그러다 현민이 무심코 랑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딱 그 타이밍에 랑이 치맛자락과 외투자락을 잡고 들어올리고 있었고, 온 몸이 흠칫 하고 쭈뼛 놀랐다. 랑의 눈에도 현민의 몸이 짧게 경련하는 것이 다 보이지 않았을까. 얼굴색은 진작에 글러먹어 잘 익은 감색이 되었을지언정 조금 화난 듯한 포커페이스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게 용하다고나 할까. 랑이 그냥 무릎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를 보여줄 뿐이었다는 것을 보고 나서야, 현민은 사태 파악을 했고, 랑이 처음 만났을 때도 거의 넘어지고 있었던 상황인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아 시원하게 망했다, 라는 것을 인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장탄식의 한숨을 푹 쉬었다.) 야, 치맛자락을 그렇게 함부로... (의도가 어찌되었건 외간 남자 앞에서 치맛자락을 잡고 올리다니 이 무슨 숭한...! 하고 현민은 생각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만큼 그는 보수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나저러나 아무래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기도 했고, 치맛자락 이야기를 더 하다가는 오히려 화제나 분위기가 더 망할 것 같아서 현민은 화제를 돌렸다.) ...그래, 느긋하게 가자. 이제부턴 나도 잔소리 할 거니까. 상처 안 덧나게 소독 잘하고. 맞다, 어제 피어싱 소독 스프레이 이야기했는데 그거 사다 뿌렸냐?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랑의 무릎이며 손에 붙은 반창고가 안쓰러운 건 안쓰러운 거다. 그래서 현민은 그리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마는, 랑이 깐쵸 쪽으로 화제를 돌리자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우리 빌라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걔 집이 깐쵸 상자거든. (깐쵸가 현민에게 우오옹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현민은 잠깐 발걸음을 늦추면서 깐쵸의 몸 아래로 손을 넣어 깐쵸를 들어다가 어깨에 얹었다. 깐쵸는 현민의 어깨 위에 축 늘어졌다.)
칭찬도 그렇게 부끄러워? 그때도 이랬잖아. (칭찬 리스트를 늘어놓았을 때의 당신을 기억했다. 누가 제 이름을 한 글자씩 뜯어 예쁘다고 해주면 고맙다고 활짝 웃기나 할 것 같다. 부끄럽기는 기분만 좋을 것이다. 칭찬 리스트를 만들어주면 괜히 으스대며 장난도 칠 것 같다. 역정을 낸들 표정 변함 하나 없이 당신을 바라보며, 부끄러워 하고 있다고 확신한 채 물어보기만 할 뿐이다.) ... (놀란데다, 빨갛고, 긴 한숨까지 쉬었다. 반창고를 보고 왜 저런 반응이 나오나 의문을 갖자마자 정답을 찾았다.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숨까지 참아버린다. 그래도 크게 소리내어 웃을 것만 같아서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저었다. 기억하지 말자, 떠올리지 말자. 제발 웃지 말자.) 흐하. (기어코 웃음을 참아낸데 성공하니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눈매와 입꼬리는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누가 보면 아예 걷어버린 줄 알겠다! (장난치려는 의도 하나 없이 거하게 장난을 쳐버렸고, 그 반응도 폭풍같다. 지금이라도 까르륵 웃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아 스스로를 잠시 칭찬했다. 아까 웃음을 참아낸게 대견하다고.) 으악, 잔소리이이. (싫어하는 투로 말꼬리까지 늘렸다만 표정은 여전히 웃음이 걸린 채다. 앞서 있던 일의 웃음을 몰아낼 수 없었고, 잔소리라고 한들 걱정에서 비롯된 다정함으로만 들리니까.) 집에서 새로 다 소독하고 약 바르고 밴드 붙인 거고, 귀는~ (오른쪽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보여주었다. 확실히 상태가 나아진게 한눈에 보일 정도다. 약이 효과가 좋았던 건지 소독약 스프레이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의 덕인 건 분명하다.) 생명의 은인 말인데 당연히 했지! (두 손가락을 펼쳤다. 브이를 그리고서 뿌듯하게 웃었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난 네가 귀여운 이름 지어줘서 깐쵸가 너 좋다고 쫓아오나 했는데. (당신과 익숙하게 인사하고, 당신의 빌라에 집을 두고 사는 고양이가 자신을 쫓아올 리는 없다 생각했다.) 그럼 그냥 네가 좋은가 봐. (깐쵸가 당신의 어깨 위에 늘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자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깐쵸의 옆으로 거리를 좁혔다. 다르게 말하자면 당신의 옆으로 붙었다.)
(난처한 질문이다. 그야 상대는 분명히 칭찬한다고 했는데 자신은 부끄러워하는 반응을 보이는 게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잘 아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한테 이렇게 호의를 받는 것 자체가 자신이 받지 않아도 될 것을 받는 것 같아서, 분에 넘쳐서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봤자 그 또한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그는 그런 스스로를 '내가 원래 좀 이상한 놈' 이라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그러니까, 랑에게 이상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현민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괜한 거 묻지 마... (하고, 현민은 그냥 등교길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보폭은 여전히 평소보다 좁고 평소보다 느려서 랑과 보조를 맞추기 좋은 보폭이다.) 아무튼 시간도 넉넉하니까 괜찮겠지- 그래, 꽤 나아졌네. (그렇지만 아직 랑이 현민의 시선을 잡아끌 화제거리는 많이 남아있다. 확실히 상태가 좋아진 랑의 귀를 보고 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손대지 말고, 매일마다 소염제 먹고, 소독도 매일 하고, 한 일주일 지켜봐. (이제 제법 얼굴의 열기가 가시는 느낌이고, 현민은 좀 여유로워졌다고 느꼈다.) 아니, 얜 그냥 사람을 별로 꺼리질 않으니까- (하다가, 현민의 바짝 옆으로 다가붙는 낯선 온도와 냄새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네가 좋은가 봐- 하는 말에 그만 자신에게 바짝 붙는 랑의 모습을 깐쵸와 대조해보고 만 현민의 얼굴에는 애써 가신다 했던 홍조가 다시 기세를 되찾고 말았다. 그는 쓰읍 하고 숨을 골랐다.) 넌 어떤데. (그리고 형편없는 반격이 나왔다.)
괜한 거 아닌데- 싫어하면 안 하려고 그러는건데-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당신을 따라 등교길로 시선을 돌렸다. 고개를 돌리면 시야에서 당신은 사라질지 언정 옆에 있는 당신의 기척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키가 훌쩍 큰 만큼, 보폭도 원래 자신의 것보다 훌쩍 클텐데 옆에서 속도를 나란히 맞춰 걸어주고 있는 사람의 기척. 이만큼 상냥한 사람한테 싫어하는 장난을 하지 않는 배려 정도는 할 수 있다.) (뒤로 넘겼던 머리카락을 다시 앞으로 가져와 늘어뜨린다.)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안 친절하겠다. 네에, 네에. 투명으로 바꿀 때까지 화이팅- (귓볼에 있는 피어싱 3개. 큰 이변이 없으면 다음주에는 투명으로 바꿀 것이고, 그러고 나면 선생님들도 그렇게 뭐라하지 않을 것이다. 또 무심코 귓가로 손을 올리다가 당신의 말을 상기한다. 어지간하면 손대지 말고. 그래서 괜히 머리카락만 배배 꼬았다가 손을 내린다.) 난 3개도 힘든데. 너 대단하다. (당신은 왼쪽귀 오른쪽 할 것 없이 피어싱이 꽤 뚫려 있었다. 이쪽은 염증에 시달리며 더 안 뚫고 싶다 선언까지 했으니까.) 나? (당신의 어깨 위에 있는 깐쵸는 올려다봐야 했다. 아까 전에 한 번 쓰다듬기는 했는데, 이번에도 깐쵸가 응해줄까 기대하며 손을 뻗었다. 깐쵸는 사람을 별로 꺼리지 않는데, 넌 어떻느냐- 라는 의미로 이해해서 고개를 갸웃였다. 자신이 사람을 꺼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텐데.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음을 곱씹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당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물은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부끄럼쟁이인 당신이 그런걸 물었을까 싶었다.) 깐쵸랑 똑같지. 그치, 깐쵸야- (깐쵸처럼 사람을 별로 꺼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답하였다.)
(현민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바람이 바뀌기 시작한 이 순간을, '싫으니 그만둬라' 라는 말 한 마디면 멈출 수 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하고, 한순간의 만남으로 순식간에 자신이 알던 것과 크게 동떨어져 버린 낯선 아침을 떠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자신이 바라는 걸까?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머릿속이 온통 무언가로 엉킨 것마냥 복잡하다. 그래서 현민은 이마를 찌푸린 채로 심통난 듯이 툭 쏘았다.) 몰라. (현민은 몰?루를 시전했다!) 의사선생님한테 들은 말 그대로 해주는 건데. (말인즉슨 이 녀석도 피어싱 자국이 잘못돼서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 모양이다. 대단하다- 하는 말에 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귀에 예쁜 거 좀 끼려고 연골에 구멍을 내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아... (아프긴 더럽게 아픈 모양이다. 깐쵸는 랑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고, 이내 눈을 꼭 감고는 나직이 골골골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냐. 그래 보인다. (자신이 참다 못해 불쑥 내던진 그 한 마디가 생각보다 별 영향 없이 얌전히 회수되었다. 현민은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했고, 납득을 표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깐쵸도 항상 사람 손이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알짱대며 자기 입장에서 제일 편한-혹은 재밌는 거리를 고수하곤 하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랑과 약간 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응? (찌푸려진 표정에 이쪽은 물음표를 띄웠다. 저런 표정이라면 싫다는 대답이 나오겠구나, 예상했기 때문이다. 딱히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을 기대는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미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심지어 나름 빚을 진 입장이고, 공부도 도와주겠다고 먼저 말해버렸다. 그래서 먼저 한 섣부른 예상에 시들해져가고 있었던 중이다.) 그럼 누가 알아~. 똑똑이 취소! (싫다는 아니니까 된 것 아닐까, 좋은게 좋은 거지. 그래도 산뜻 웃기만 할 뿐만 아니라 한마디 덧붙인다.) 나중에 알게 되면 알려줘! 여긴 병원 아닌데. (툴툴거리지만 당신의 말이 싫은 것은 아니다. 과장이라고는 해도 피어싱을 선생님에게서 숨겨준 걸 생명의 은인이라며 부를 정도였는데, 아프다는 걸 봐주는데 싫을 이유 없다.) 왜에, 그래도 난 너 피어싱한 거 보고 싶은데. 엄-청 예쁘겠지! (본인도 연골은 아니라지만 귀를 뚫기는 뚫었고, 아파하기도 하고 있어서 괜히 조금 투정을 부린다. 더 뚫을 자신은 없어도 후회는 하지 않으니까, 당신에게도 예쁘다 말하고 싶었다. 비록 피어싱을 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 가정형으로 밖에 못 말했지만.) 아. (깐쵸가 눈을 감을 때 고개를 기울이더니, 곧 조그맣게 탄식을 내뱉고 입을 다물었다. 깐쵸가 골골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거 기분 좋은 소리 맞지! (조그맣게 당신에게 속살였다. 아무리 소리를 죽여도 당신보다 깐쵸에게 먼저 닿겠다만 그래도 목소리 크기를 줄였다.)
현민이를 향한 주접을 다 털어냈다간 분명 랑이도 현민이도 현민주도 기겁할거란 확신이 그렇지만 저렇게나 귀여운데~~! 랑이가 현민이 볼 꼬집으면서 귀엽다는 듯 웃거나 현민이를 어린애 다루듯 귀여워해주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길 재촉해.......... 이미 텍스트 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히 귀엽지만 둘 사이에 실제로 일어나길 바라는 중이야
>>81 >>82 난 오히려 랑주가 그만큼 현민이를 아껴주는구나 싶어서 좋을 것 같아 응, 그렇게 됐네... 현민이는 빼빼로 가만히 바라보고 몇 초쯤 조용히 있다가(이 몇 초 동안 머릿속에는 어떤 종잡을 수 없는 실낱같은 설레임과 그걸 파묻어버리려는 무수한 회의적인 상념이 스쳐지나감) 랑이가 ? 하고 고개 갸웃할 때쯤 돼서야 손으로 받아들고 먹지 않을까. 그리고 가방 뒤적여서 기왕 가져온 거 간식 나눠먹자고 부시럭부시럭 젤리봉지를 꺼내는데 왜 젤리였냐 하면 빼빼로데이 전날에 같이 공부하자고 한 날이랑 빼빼로데이랑 겹친 걸 엄청 의식해서 고민고민하다가 그 대안이랍시고 자기 기준으로 빼빼로랑 제일 연관없을 것 같은 간식을 골라서 가져온 거라는 뒷사정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