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쪽에서 먼저 눈치채고 들어온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레오는 어깨를 으쓱하곤 던졌다 잡기를 반복하던 위석을 다시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한 번에 쑤셔박으면 목이 막혀서 죽을 수도있지 않으려나. 레오는 음.. 하고 고민하는듯 싶더니 적당한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 듀로 " 물체를 돌로 만드는 마법
꽤나 단단해진 나뭇가지를 들고 위석을 내려쳐 조각내곤 이 정도면 목구멍에 넣어도 막히진 않겠지 싶었는지 꽤나 만족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부서진 위석조각들을 작은 주머니에 담고는 곧 끝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크게 신경쓰진 않았다. 뭐가 되었던 자신과 크게 관련있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하면서.
설령 맞다 해도 어떤 것인지는 모르나 그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쥐어보고자 했다. 그 도술. 그러고보니 윤은 늘 무기 선생이 사감으로 있는 황궁으로 가기를 소망했고 입학식 선발 때마다 자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는 차가운 바닥의 감촉에도 가만히 있었다. 안다. 무릎엔 풀물이 들 것이다. 넘어졌다 변명할 수 있을 정도로 엉망이다.
"..."
잠시간의 침묵. 눈에 띄지 않게 방해한다는 약조와 오해란 말에 가만히 몸을 일으키며 붙어난 풀을 떼낸다. "압니다. 숨 돌릴 틈이라도 필요했습니다." 하고는 왜 선비탈이 잡혀가도 바로 돌아온다 생각하냔 질문에 기어이 표정을 구겼다. 추측이 맞았다.
그냥 방에서 오캐미 알이나 보고 있을 걸! 불만 그 자체의 말을 툭 내뱉은 그녀는 곧 끝이라는 말에 가슴 안쪽이 시큰거렸다. 호크룩스가 걸린 그 안쪽 말이다. 끝. 무엇에 대한 끝일까. 묻고 싶지만 물었다간 당장 현실이 될까봐 말할 수가 없다. 행여나 말이 튀어나올까봐 서둘러 몸을 돌려 학생들이 쓰러진 곳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애써 태연한 척 해온 것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 같다.
초조함은 행동이 되어 지나치는 가지에 쓸리던, 베이던 상관 않고 걸어 학생들이 잠든 곳으로 돌아온다. 어느새 차오른 숨을 몇번 가파르게 내쉬어 고르고, 쓰러져있는 학생들에게 위석을 하나하나 먹인다. 주저없이 입을 벌리고 목에 하나 쑤셔넣는 행동이 기계같다. 그 행동은 받은 위석을 다 먹인 후에야 멈추고, 다시 숨을 골랐겠지.
그냥,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생각하면서 학생들이 깨어나길 기다렸을거다.
입을 벌리고 조각낸 위석을 집어넣었다. 효과가 바로바로 오지 않는 것이 답답했는지 챡,챡, 하고 뺨을 몇 대 때려주곤 이래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주먹을 꽂아줄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만생각해보면 조금은 유감일지도 모른다. 영문도 모를 곳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이 눈에 흉터가 길게 나있는 여자아이가 뺨을 때리면서 일어나라고 욕을 하고있는 모습이었으니. 레오는 이히히, 하고 웃으며 허리를 폈다.
" 자자, 주목. 여기봐라 여기. 야! 집중하라고! 쳐죽여버린다 너? "
레오는 짝짝 하고 박수를 두 번 쳐서 이목을 끌었다. 정신이 없는건 저쪽도 마찬가지겠지. 레오는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연설이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키웠다.
" 왜 여기서 일어났느냐, 왜 젖어있느냐 왜 볼이 아프냐. 궁금한거 많겠지. 그래도 궁금해하지마. 하나하나 설명해주기 귀찮아. 이 길로 쭉 따라가면 학교가 나오니까 이상한데 새지말고 그 길로 곧장 걸어가라. 알아들었지? "
위석이 정답이긴 했는지 학생들은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레오가 앞으로 나서서 학생들에게 말하는 동안, 그녀는 뒤로 빠져 다 깨어나는지 이상은 없는지 보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오는 길에 트롤을 만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길에 마주칠 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주의도 레오가 했으니 그녀가 할 말은 없었다. 젖은거나 볼이 아픈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었지만.
"니들 깨우려고 물을 뿌렸는데, 그래도 안 깨서 좀 쳤어. 왜, 불만 있어?"
비스듬히 짝다리를 짚고 가디건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그녀가 학생들을 흘겨보며 툭 내뱉었다. 멍청하게 잡혀가서 잠든 니들 때문에 고생 오지게 했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주변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앞장섰다. 알아서 따라오든가 하는 식으로 걸어가며 또 한마디를 툭.
"빨리 안 오면 트롤한테 잡힐지도 몰라. 난 말 했어. 잡혀도 책임 안 져."
그러곤 성큼성큼 걸어 학교로 돌아간다. 뒤늦게 식은 몸에 한기가 올라오고, 찰과상 투성이가 된 다리가 저려오고 있었다.
나랏님 없으면 욕한다더니 딱 그 상황이지 않은가. 아니, 애당초 그가 봐온 것도 많다. 당장 어머니가 오러로 일하지 않은가. 그는 지친 표정에 할미를 가만히 쳐다본다. 비어버린 어깨, 고통을 참는 것도 한순간은 아닐 것이다. 그 장관이 주인을 섬겼다고? 추종자였단 소린가. 그는 이 사실을 고해야 할지 고민한다. ..애당초 고해야 할 존재가 누구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어디서 들었다 해야하지. 의심 받으면.
그는 백정이 돌아오자 흰 뱀을 가만히 바라본다. 익숙한 누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머리 위에 턱 얹어버리는 모습에 그는 이 순수함도 여전하겠거니 생각하며 할미를 돌아본다. 대답할 기운조차 없는 자를 향해 그는 소맷단 안쪽의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흰 알약이 든 통. 그리고 수통이다. 당신에게 던져주려는 듯 하며 그가 말했을 것이다. "진통제입니다. 머글 사회의 것인지라 마법약과는 달리 시간이 좀 지나야 하지만 안정성과 효과는 좋을 게지요." 하고는 이내 손가락을 튕겨 지팡이를 손에 날아오게끔 한 뒤, 비어있는 허리춤에 꽂았다.
"소개가 늦었군요. 발렌타인 언더테이커입니다. 언더테이커 가문의 47대 당주이자 죽은 자의 장례를 치르고."
그는 본인의 직함까지 막힘없이 불어버렸던가.
"때에 따라 죽음을 바라는 자를 평온하게 인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이젠 돌아가기 전 마지막 제안이었다.
"그쪽에게 부탁 했으니 이쪽도 한가지 부탁을 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내게 무얼 바랍니까?"
갑작스러운 박수소리와 협박이 곁들여진 레오의 서슬에 학생들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습니다. 허둥지둥 서둘러서 본교로 돌아가려는 것 같습니다.
' 아, 아니.... '
펠리체에게 놀란 학생이 슬그머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도망쳤습니다.
' 아무튼, 다 고마워!!! '
당신들에게 감사인사도 하는군요. 돌아갑시다.
[발렌타인]
' .. 고마워. '
통을 빋아든 할미탈은 발렌타인의 소개를 듣더니 웃었습니다.
' 어떻게 보면, 어울리는구나. '
어울린다 싶었던 모양입니다.
' ... 나중에 부탁하지. 학생에게 이러저러한 부탁을 하기도 그렇고.. 난 샤오첸 리 라고 한다. 점술 쪽으로 정평이 났었던 가문이야. 날 제외하곤 멸문했지만. ' 초랭이가 가르쳐줬다고 다 쓰지 말고 할미탈이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그리곤 백정에게 파셀텅으로 무어라 말했습니다.
' 졌다고 보고도 해야하니... 난 돌아가보지. 그리고 학생이 담배 피우는 건 아니야. '
백정이 왜 당신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입니다. 할미는 백정을 응시했습니다.
연이은 깐족거림에 그가 그녀를 사납게 흘겨보며 악마가 따로 없다고 했다. 눈빛만 봐선 딱밤 한대 먹이고도 남았을텐데, 그러지 않는 건 그녀의 위치상 때문이겠거니 싶다. 가벼운 딱밤 한대가 어디서 어떻게 굴러 무엇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니.
마차가 굴러가기 시작하며 그녀가 꺼낸 얘기에 발렌타인은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의문이 없다는 건 물을게 없다 판단해서겠지. 그도 본 것이 있고 겪은 것이 있다. 그것들을 조합해 갈 길을 이끌어내는 건 그의 몫이다. 그녀가 나름대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말을 전하는 것처럼. 다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굴러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연이어 이런 얘기들만 하니 가뜩이나 쌀쌀한 공기에 무게까지 더해졌다. 그런 상황에 튀어나온 그녀의 물음은 분위기 환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 어땠을지. 모르긴 몰라도 발렌타인으로 하여금 예상 외의 반응을 볼 수 있게 만들긴 했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해진 그를 보며, 대체 그 작은 1학년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 빈 의문이 들었다.
"가문을 알고 있다면 악명 역시 모르진 않을 거 같은데요. 그런 걸 묻는 아이가 과연 선배에 대해 조사를 안 했을까요?"
세라피나라는 1학년생이 발렌타인에게 무얼 바라고 접근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딱히 궁금하지도 않지만, 그 학생의 얘기를 꺼낸 것 만으로 안색이 바뀌는 걸 보니 이것도 조금 써먹을 만 할 거 같다. 조만간 우연인 척 수업에서 마주쳐볼까. 같은 무시무시한 속셈을 조용히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접어넣어두며 그의 혼잣말에 쿡쿡 웃었다.
"그야 마법사 집안 치고 흠 없고 티 없는 집안이 없어서인 걸 어쩌겠나요. 마법사라는 포장만 벗기고 보면 다 똑같은 인간인 걸. 제가 보기엔 남자나 여자나 다 어딘가 핀트가 나간 걸로 보여요. 아, 물론 저도 포함이구요."
그녀들이 태어난 바닥이 그러하니 그곳에서 자란 이들은 오죽하겠냐고, 나이에 맞지 않는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데 그게 또 묘하게 어울린다. 특히 자신도 포함이라 할 때.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체념한건지 어쩐건지 알 수는 없어도 뭔가 경험이 있긴 있나보다 싶은 모습이다. 그래놓고 홀랑, 아무렴 어떠냐며 말을 바꾸더니 무릎 위 가방을 열어 안에 손을 넣고 뒤적거리며 말한다.
"상대가 어떻건 자신은 자신이 하려는 대로 하면 되는거 아니겠나요. 우리는 분명 이 바닥 위에서 자랐지만, 그것을 부정할지 긍정할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니까요."
연애도, 사랑도, 반역도, 순응도, 모두 스스로의 선택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뒤 그녀의 손이 뭔가를 쥐고 가방에서 튀어나왔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나온 그건 얼핏 보기에 꽃다발 같아보였다. 그녀는 그걸 그대로 발렌타인에게 내밀었는데, 그 덕에 자세히 보이지 않았을까. 투명한 포장지로 한송이 한송이 정성스럽게 포장된 장미 초콜릿 아홉송이가 연한 분홍빛 포장지에 흰 레이스 리본으로 하나의 다발이 되어있는 것을. 가까이 하니 은은하게 마른 장미 향이 나는 그걸 그에게 받으라는 듯 들고서 참 가볍게도 떠들었다.
"앞으로 고생할 선배에게 기운 내라는 의미로 드릴게요. 진짜 꽃 같아 보이지만 백프로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조화에요. 먹어도 좋고 그냥 이대로 장식으로 둬도 꽤 오래 간답니다. 그, 개구리 초콜릿의 꽃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네요. 곧 시중에도 팔릴 예정이니."
곧, 이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직 팔리지도 않는 걸 입수한 걸까. 그런 의뭉스런 말을 한 그녀는 초콜릿 장미 다발을 내민 채 웃고 있었다. 싱긋 웃는 얼굴로 한다는 말이 그랬지만.
"보아하니 그 분도 적잖게 단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니까 말이에요. 선배와 그 분 둘이서 오붓하게 꽃잎 주고 받기라도 하시면 참 좋을 거 같은데."
한장 한장 뜯어 먹여주는 재미라던가 라며 하는 말은 보통의 연인들이 알콩달콩 하는 걸 말하는가 싶다가도 저 둥글게 휜 눈매를 보면 그이상의 무언가 의미를 부여한 것도 같다. 뭐, 그녀는 발렌타인이 '차마 학생의 신분으로는 말 할 수 없는' 걸 했다는 걸 아니까. 요컨데 또 깐족거림이자 놀려먹기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