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인 건 맞습니다." 할 일이 많긴 하지만.. 이런 것도 즐기지 못하면 것도 애매하지. 라는 생각이 드나요? 의외의 호전성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지한은 달려드는 고블린 한 마리를 창대를 이용해 저 멀리 날려버립니다. 그 자리가 불타는 곳이었기에 떨어지자마자 끼익거리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군요.
"그러나 그렇지 못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얕은 경제학적 논리로는 수요공급이던가. 라고 생각합니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확실히 많은 걸 생각하게 합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말을 하며 공터로 몰린 것들을 봅니다. 거대한 파이어볼과 함께 벌어질 광경에 좀 비위가 상할 시기는 있지도 않았으니 그냥 구경하겠지만. 터져나갈까. 아니면 태양이 떨어지는 그런 거려나?
"불타는 건 이중적이죠. 짧으면 아름답지만, 영원할 수 없고. 정말로 아름답지만 동시에 슬픕니다. 영원은커녕, 찰나조차 허용받지 않는 것이라."
빈센트는 공터에 모인 고블린들을 바라본다. 고블린들은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해서, 어떻게든 하늘로 가려고 서로를 짓밟고, 어떻게든 고블린들 자신으로 기둥을 만들어 하늘로 올라가려고 했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한다. 어두운 하늘에, 불덩이가 빛나고, 불덩이는 점점 커지며 가까워지는 광경을 감상한다. 그리고...
쾅! 고블린들이 덩어리로 뭉쳐있던 곳에, 파이어볼이 떨어졌다. 눈이 멀 정도의 밝은 빛에, 빈센트는 선글라스를 끼면서 지한에게 미리 경고한다.
"눈 감으시죠."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었다. 빈센트의 파이어볼은, 저 불쌍한 고블린들의 삶을 영원히 끝내고, 저 추한 초록의 집단에게 아름다운 불꽃을 안겨주었다. 불타는 사지들이 하늘 위로 솟아오르고, 비처럼 내리는 광경은... 빈센트가 보기에는 아름다웠다. 지한에게는 아니겠지만.
"시체 덩어리를 맞는 건 유쾌한 일이 아니죠."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과 지한 위에 매우 뜨거운 불의 장벽을 만든다. 불의 장벽으로 떨어지던 시체조각은, 닿자마자 불타서 연기로 화했다.
"영원해서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순간이기에 아름다운 것도 많지요." "사실 영원한 것보다는 보통 순간적인 것이 좀 더 인상깊은 편이기도 할까요" 고블린들의 발버둥이나. 그들 위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는 파이어볼을 따분해 보이는 표정으로 봅니다. 표정은 그래도 나름 흥미로워하고 있다고요? 나른해보이는 기본 표정 때문인 걸까..
"앗.." 눈을 감으라는 말에 눈을 감고 동시에 귀도 막습니다. 비명소리 때문이라고 하기엔 꽤 익숙해보이는 걸 보면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의념이나 몬스터와는 관계 없는 것이지요. 묵직한 소리와 폭발이 이는 것이 지나간 다음 눈을 뜨면 꽤 장관인 광경입니다.
"유쾌한 일은 아니긴 합니다." 그러고보니 스톤으로 만드는 것도 장례법(*불교에서 말하는 사리의 원리로 유골을 녹이고 굳혀 원석같이 만드는 것. 유사품=메모리얼 다이아몬드)으로 있다고 들었는데. 저것들은 어떤 스톤이 나올까요. 라는 가벼운 농담..(같아보이진 않지만)을 건넵니다.
"동의합니다. 영원한 것,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남는 것들이 아름다운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버 댐이나 피라미드는 십만 년도 넘게 그 자리에 있을 거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순간이기에 아름다운 것도 있습니다. 불, 번개... 오래 못 봐서 아쉽지만, 그 아쉬움마저도 조미지요."
철학같지도 않은 철학을 읊는 동안, 건물들은 불에 잡아먹혀 끝내 쓰러졌다. 너무 완벽하게 태운 나머지, 잿가루들을 빼고 나무 판자도 나무 말뚝도 하나 없었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그 광경을 보았다. 이곳은 끝장났다. 게이트가 닫히고, 이 세상과 현실 세상과의 연결이 영원히 단절되더라도, 이곳에서 다시 문명이 나타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무너진 마을 너머, 불타는 숲을, 불타는 대지를,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불을, 타오르는 노란색으로 물든 하늘을 가리키면서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미리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이곳은 매우 건조한 곳이라더군요. 알 수는 없지만 비가 끊겼고, 대신에 불이라는 것도 사라졌고, 고블린들은 영양 섭취가 아니라, 의념의 일종으로 유지되고 있었다고요. 그래서..."
빛이 있으라, 그리고 불이 있으라, 빈센트는 프로메테우스를 자처해, 그들에게 불을 알려주었다. 인간들의 프로메테우스는, 불의 기적을 보였고, 고블린들의 프로메테우스는 그들에게 불의 지옥을 보여주었다. 빈센트는 성경 구절을 언급하며, 저 숲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불에 잡아먹혀 타죽을 고블린들을 비웃었다.
"창세기에 보면, 그런 게 나옵니다. 중동의 노인네랑 가족 몇 명, 그리고 동물 몇백 마리를 제외한 전 지구를 물로 심판한 다음에, 자비하신 주께서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요. 이곳도 그렇게 될 겁니다. 다시는 불로 심판받지 못하겠죠."
빈센트는 알아서 불타고, 알아서 죽을 그들의 운명을 보지 못하는 걸 한스럽게 여기며 제안했다.
공부가 재밌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 지금의 나처럼 게이트학 관련 세미나를 재미가 아닌 학업을 목적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않을까..? 장소는 롯데월드 타워. 중간중간 익숙한 차림의 학생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 저기 구석에 있는 사람...사람? 아니, 익숙한 차림정도가 아니라 자세히보니 같은 특별반의 김태식이잖아. 아무래도 같은 목적으로 온 것 같긴한데...
3명정도 되보이는 무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하아 타이밍 한번 그지같네...음, 그러니까 이게 그건가? 특별반이라는 존재자체를 마음에 들어하지않는 집단? 찡그려지는 표정을 감추고, 적당히 상대해주도록 한다.
"지금은 다른 거에 집중하고 싶어서-" "아 그래? 헤에 특별반은 공부같은 건 안하는 재능충들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였구나-"
뒤에 있던 잘나보이는 여고생이 일부러 들리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와중에 교묘하게 목소리를 줄여서, 주변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였다.
"야야, 특별반도 사람인데 공부를 하겠지-뭔 괴물새끼들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네!"
아직을 입을 열지않았던 누가봐도 불량해보이는 타입에 남자가 말한다. 현실에도 이런 누가봐도 삼총사같은 무리가 있구나.. ...하아, 더럽게 성가시네. 학교가 아니라고 이런식으로 나가는걸까. 문득 태식쪽을 바라본다. 아마 그들이 김태식을 발견하지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부러 더 만만해 보이는 쪽을 고른거겠지.
"...아-마침 저기에 같은 특별반 클래스 메이트가-"
누가봐도 연기같은 톤으로, 김태식을 부른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그들이 태식을 조금 두려워하고 있다면, 여기선 일부러 이쪽에 끌어드리는 것이 나도 편해진다. 미안 김태식...다음에 음료수라도 쏠테니까!
떡볶이를 받아 든 웨이가 이쑤시개를 떡 하나에 박아넣었다. 미끄러운 양념과 중력 탓에 손 쪽으로 미끄러지려는 것을 얼른 입에 넣어 막는다. 조금 매운 듯한 향을 풍기고 있었지만 막상 먹으면 매운맛보다는 달착지근한 맛이 우선하는 기분이었다. 케찹 같은 게 들어갔나? 아니면 물엿?
"이런 걸 뭐라고 하지, 얼큰하다?"
웨이는 맛을 표현할 단어를 찾기 위해 고민했다. 이런 데 쓰는 말이 맞는지 헷갈렸다.
"아, 여기도 아까 먹었던 게 들어간다."
떡볶이 안에 든 어묵을 발견한 웨이가 말했다. 이건 이거대로 맛있다며, 컵의 내용물을 조금씩 비워 가는 웨이였다.
어쩐지 태식을 불렀더니, 또 다른 일행이 그를 건드렸나보다. 겁도 없지...나한테 시비건 것도 겁없는 거지만, 게다가 저쪽에서 말을 맞춰준다면 나야 편하다.
"에이-보통 친구끼린 조금씩 늦는 편이잖아?"
뭐...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좋은게 아니지만, 특히나 파티를 짜고 정해진 시간에 오지않았을 때는...사실 친구라는게 어떤 느낌이지만 모르겠다만. 어느정도 효과는 있었나보다, 자신과 태식이 한 자리에 모이자, 시비를 걸던 세명의 일행은 주춤하는 듯 아까의 기세등등한 모습이 보이지않는다.
"...칫, 그래. 역시 몇 안되는 '특별반'답게 우애가 돈독하구만?" "텄네 텄어. 가자. 끼리끼리 놀라 그래-" "엉? 뭐여? 가는거여?...세,세미나는 어쩌고?!"
혀를 차며 그대로 제일 먼저 자리를 떠나는 남자와, 그 뒤를 따르는 여성과 불량해보이는 남성. ...세번째는 의외로 외모에 착실하게 세미나에 온거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