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장에서 수련을 한다! 는 것은 루틴 같습니다. 아닌가.. 불규칙하니까 루틴까지는 아닌가..? 수련장을 다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적어서 넓게 쓸 수 있으니 꽤 괜찮습니다. 반응성 테스트도 해볼까 했지만. 이런 반응성 테스트는 누구랑 같이 하면서 내기같은 게 곁들여져야 참맛 아닌가요.
"참참참?" 허수아비에게 창대로 참참참 시전중이군요. 게이트에선 못할 일이죠(?) 창으로 꿰뚫고 하핫 내가 이겼다.. 란 말은 안하는 게 최선이군.(표정은 진지하다) 한차례 수련을 마치고는 잠깐 앉아서 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자판기에서 뭐 뽑아먹지. 라고 고민하던 지한에게 인기척이 덮친다..!
걸음은 가볍게 움직임은 날렵하게. 나는 완력보다 속도가 장점이고, 몸의 유연성이 뛰어나다. 사실 적을 잡아서 땅에 심어버리는 것도 해보고 싶지만 그건 나중이다. 지금은 더 잘 적을 후려패서 꽃의 양분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았다. 결론. 나는 오늘도 수련장으로 간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꼭 오는 수련장의 공기는 익숙했다. 팔다리를 쭉쭉 뻗어 스트레칭을 하며 들어가는데, 누구 한 명 선객이 있었다. 특별히 신경을 쓸 생각은 없었지만.
" 어제에 이어서 두번째란 말이지.. "
익숙한 얼굴이었다. 뭔가 떠오를까 말까 고민이 되어서 그 쪽으로 통통 튀듯 다가갔다. 가까워질 수록 보이는 검은 머리나 모습에서 뭔가 떠올랐다. 아 석곡. 다가가면서 보니 허수아비를 상대로 뭔가를 하고 있던 것 같다.
허수아비를 후드려팬 뒤에 간단하게 쉬고 나서 반응성 테스트나. 대련이나.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돌려야죠. 그렇게 생각하던 당신에게 인기척이 다가왔고. 공상에 있던 당신은..
"히엣." 하는 소리를 내버리고 만 것이다. 집중해서 허수아비를 후드려패던 중에 삐끗해서 낸 소리라기엔 너무...그런 거 아닌가..? 돌아보고는 아. 입학식 때 본 적 있던.. 이라 중얼거리다가
"크흠흠.. 안녕하세요." 뭐 하고 있냐는 질문에는 보시다시피 허수아비를 통해 공격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지금은 좀 쉬려고 거두던 참이었고요. 라고 덧붙이고는 음.. 이름이.. 라고 중얼거리다가 윤..이었나요? 라고 슬쩍 말하려 합니다. 성까지 외웠으면 더 좋았을 텐데.
생각보다 다섯 배 정도, 귀여운 목소리를 낸 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석곡보다는 안개꽃이 더 잘 어울릴 거 같았다. 아니다 델피니움도 괜찮은데. 고개와 몸을 양옆으로 까딱거리며 고민하던 건 인삿말에 끊겼다.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좋아. 델피니움으로 하자.
" 아 맞아. 윤이야. 서 윤. 너는, 너..는.. "
허수아비와 공격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던 그녀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근데 나는 몰랐다. 눈을 돌려 허수아비를 괜히 발끝으로 툭툭 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별로 좋은 버릇이 아니란 건 알고 있는데. 사람을 이름보다, 연상된 꽃으로 기억해두는 거. 외모덕분에 다가오는 사람이 많았어서인지 생긴 버릇 이었다.
" 미아안. 석곡으로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 꽃 말이지.. "
상대는 기억해주는데 나는 기억 못한다는 건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꽤 미안했다. 헌터인 만큼 영성이 높을테고, 그런 만큼 외모에 영향을 덜받으니까 말이다.
"안개꽃이요?" 히엣이라는 말은 부끄러운 게 맞습니다. 그리고는 윤이 맞았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 윤이라는 걸 기억합니다. 대단한 외모이긴 하네요. 석곡...? 뒷사람이 잠깐 석곡을 검색해본 것입니다. 하얀 꽃이군요. 지한이 꽃에 대해서 많은 정보가 있을 리 없기에 꽃이라는 것에 의문을 표합니다. 그것보다 델피니움이라 하면 안 좋아할걸요. 꽃말이 좀.. 지한이 선호하지 않는 타입이고?
"꽃..이요?" 석곡이라는 꽃을 모른다는 양 바라보면서 저는 신지한..입니다. 라고 가볍게 소개를 하는군요. 소개를 받았으니 소개를 하는 게 이상할 리는 없지요.
살살 손을 흔들었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남을 꽃으로 불러버리는 일 말이다. 다시금 보면 달맞이꽃도 괜찮을 거 같은데. 하지만 석곡도 잘 어울리겠다 싶고? 흰꽃이 어울리는 느낌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하며 잠시간 빤히 본 것을 깨닫고 몸을 슬쩍 뒤로 뺐다. 그러고보면 되게 소녀같은 모습인데 어째서 팬지가 아니라 석곡이었으려나.
" 지한이구나. 나보다 연상일까? 나는 열여섯이거든. 누나라고 불러야 해요? "
고민은 멈추고 재잘거렸다. 여기서 나보다 어린 쪽이 드물다는 건 알고 있어서 하는 질문이었다. 키는 작지만, 내가 올려다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지만. 연상일 가능성도 높았다.
" 응. 맞아요. "
잊고 있던 목적을 떠올리고 다리를 흔들었다. 허수아비를 가지러 갈까 고민했다. 내가 이름 붙이길, 꽃밟기라는 기술을 연습할 생각이었다. 허공에 꽃을 피워서 발판 삼는 거. 허공답보는 로망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면 상관은 없겠습니다만.." 흰꽃이 어울린다니. 영광인 걸까. 개인적으론 블랙 릴리같은 거나 블랙 로즈같은 걸 생각했던 지한주는 먼산만 봅니다.(대체?)
"연상일까요 아닐까요" 맞혀 보시겠습니까? 같은 짖궂은 말을 하네요. 은근히 그런 면도 있단 말이죠. 연상인지 동갑인지 모를 지한은 그렇게 말하다가도 연상..인 편이죠. 라고 사실대로 말했겠지만. 그래도 누나라고 부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편하신 대로? 라고 말을 재빠르게 잇네요.
"아. 그러면 이쪽에 있는 편입니다." 허수아비를 보면서 저쪽에서 가져오시면 된다고 하고는 자신은 잠깐 쉴 거라면서 자판기를 보다가. 한 잔 하시겠습니까? 라는 이유없는 호의군요.
흰 꽃잎 흩날리며 창을 휘두르는 모습은 좋지 않을까. 달도 없는 까만 밤에는 특히 말이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하게 짓궃은 모습을 보이는 지한이 누나에게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아서 곧 연상인 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호칭은 편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 누나라고 부르는 건 최소한의 예의에요. 존댓말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잘 못하거든.. "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말을 편하게 하는 편이었다. 저번에 어머니라고 불렀더니 소름끼친다고 질색하셨다. 보통 만나는 사람들도 또래인데다가 한두 살 연상이어서 그런지 존댓말이 입에 잘 안 붙었다. 선생님들에게는 어떻게 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 고마워! "
알고 있었지만, 감사인사는 상식이다. 자판기를 통한 권유에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사두면 나중에 식을 거 같고, 수련이 끝난 뒤 후끈하게 달아오른 몸으로 시원한 음료를 들이키는 게 좋았다.
"연상으로 보이다니. 놀랍네요" 농담에 가까운 말인 모양입니다. 지한은 누나라고 부르는 게 편하다는 것에.. 그래요.. 라고 작게 중얼거립니다. 누나라고 불리는 게 틀린 건 아니지만. 어색하잖아요. 왜 다들 나보다 큰 겁니까.. 누나라고 불리면 좀 어색하게. 라고 속으로 한탄해도 키는.. 솔직히 더 커봐야 1센치.. 2센치..가 한계 아니야?
"천만의 말씀입니다." 간단하게 받고는 그럼 구경은 쳐내지 않으실 건가요? 라고 물으며 이온음료를 뽑아와서는 주위에 자리를 잡습니다. 수련하는 거 구경할 생각 만만이군요. 아니 뭐 보이는 걸 안 보려 하는 것보다는 대놓고 구경이 더 낫지 않나요?
얼마나 연상인지는 몰라도 아마 한 살에서 두 살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이 다 큰 키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키가 작다는 게 얼마나 슬픈지 나도 알고 있었다. 작년까지 160을 찍지 못했던 사람으로써 제대로 알고 있었다.
" 응? 응. 그건 상관 없는데. 재밌진 않을 거얼. "
꺼내온 허수아비를 앞에 두고, 양팔을 교차로 하여 쭉쭉 뻗어 몸을 풀면서 대답했다. 일단 해둔 말이었다. 나도 남 수련하는 거 보면서 감탄하고 즐거워했다. 샌들도 벗어 던지고 씩 웃으면서 아주 가볍게 뛰어올랐다. 하늘로 쭉 뻗은 다리를 아래로 내려쳐 허수아비를 가격하고 그 반동으로 다시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떠오른 그대로 자세를 잡아 허공에 꽃을 피웠다. 아주 잠깐 고정되는 그걸 딛고 허수아비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 ...으음 잘 안되네.. "
방향이 어긋나는 것을 보고 인상이 써졌다. 아무래도 공중에서 움직임은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