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말했다. "인간은 독선적이야. 자기가 하고싶은데로 움직이고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화를 내곤 하지.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보다 일단 자신이 기분 나쁜 것에 분노를 해. 그리고 뒤에야 그것을 알고 움직이는 듯 하지." 그는 꽤 심각한 인간 부정에 빠진 듯 보였다. "그래?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다면 그런 이들이 나타날 수는 없었을거야.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언덕을 오르며 죽을 길로 걸어간 인간도 있거든.", "그건 거짓말일거야. 분명 인간놈들은 그런 희생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을거야."그는 내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꽤 관심이 있는 듯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인간들도 천천히 달라지고 있는 거겠지. 난 인간을 싫어하는 너를 이해하면서도 인간의 좋은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그는 내 말을 끝가지 들어주었다. 그러곤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터무니없는 박애주의자 같으니라고." 별로 다른 것은 없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웃어주었다. 마지막에는 인간성애자같은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 필립 헨딜, 수정구 속 세상
오늘은 도서관에 왔어요. 정규 수업으로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율 학습을 하기 위해 왔는데, 어느새 손에는 의념 발전으로 음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 쥐어져있네요. 이 책도 나름대로 재미있지만, 큰일이에요. 절반 정도 읽은 책을 닫고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요.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군요. 요즘은 카페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걸 다들 선호하기 때문이려나요? 꺼내온 책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기 위해 책장으로 걸어가요. 그러다 눈에 한 권의 책이 들어오네요. 게이트의 크기와 유형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책 같네요.
"이런 책도 도움이 될 것 같군요."
교관에게 직접 묻는 것 보단 말이죠... 어쨰 보기 싫은 사람이 떠오르네요. 잠시 시간을 들여 다음에 읽을 책을 잔뜩 뽑아 책상으로 돌아가 책무더기를 올려둬요. 이렇게 책을 대출도 안 하고 가져와 쌓아둬도 되는 걸까요?
도서관은 지식의 창고라고도 부른다.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다양한 것을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으니까. 현대에는 전자책으로 대신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책'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다. 지구의 역사가 담겨져있으니까, 나또한 미리내고를 입학하기위해서 독학으로 공부를 하느라 책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 지금도, 다음에도 영원히 책을 읽지않는 일은 아마도 없겠지.
응? 당연히 책을 읽고 있지. 뭐, 오늘은 지식 탐구가 목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최근 악기에 관해 호기심이 생겼으니까, 그에 관한 사전조사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해도 정말로 악기는 아는 바가 없으니...어디서부터 찾아봐야하나..
"초등학교때 리코더 부른게 다란 말이지.."
나름 리코더는 잘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래봤자 초등학생 범주내에서지만. 무엇을 읽어야할지 고민하던 중, 테이블에 책무더기를 쌓아둔 사람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뭐야, 아는 얼굴이였네. 이름은 분명히 '유리아 슈루즈버리'였지. 다만 아는 것은 그녀의 헌터로서의 간략한 정보뿐. 사생활에 대해선 전혀 아는바가 없다. 알 생각도 없지만...무슨 책을 읽는걸까? 호기심이 생겨 슬쩍 책을 바라보니, 게이트의 크기와 유형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였다. 기초부터 다시 배울 생각인걸까? 일반적인 헌터라면 기초적인 것만 알아도 상관은 없겠다만... 알다시피, 그녀는 미리내고 특별반의 학생이다. 나는 오지랖이 넓은 걸 싫어하지만, 저래선 조금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그것보단 이런 책을 읽는게 우리 수준에도 맞을껄."
좀 더 난도가 높은 게이트학 책을 꺼내와, 그녀에게 다가가며 자연스럽게 건넨다. 유리아가 어느정도로 게이트학을 숙지하고 있는진 나로선 알 수 없다. 그래도 이정도는 괜찮지않을까?라는 느낌으로 책을 꺼낸 것이다.
손이 떨어지자마자 몸을 일으켜서 어깨를 주물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긴 했지만 팔이 빠지거나 뼈가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었다면 당하고 있는 대신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누가 알아보는 게 싫어서 일부러 이런 거긴 한데, 효과가 너무 좋아도 문제라는 건 확실히 알았어."
그러니까 표정 좀 풀지? 괜히 아프다는 걸 티내서 웨이를 아침부터 시무룩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으므로, 토오루는 정말로 별 일 아니라는 것마냥 모자와 안경을 벗어놓고는 의자에 기대서 평소랑 똑같은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웨이는 정말로 길었다. 나이를 감안하면 더 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시간에 등교면 잠은 잘 자는 건가?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한 딴생각이 어느새 걱정으로 변해갔다.
강산이 종이컵에 국물을 담는 것을 지켜보던 웨이가 물었다. 하긴, 안 받으니까 주인 아주머니도 별 말씀 안 하시는 거겠지. 강산을 따라 국자로 종이컵에 따뜻한 국물을 담고 한 모금씩 홀짝인다. 무공의 영향으로 추위를 잘 못 느끼게 되어서 속이 풀린다, 같은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은 웨이에게 있어 조금 아쉬운 부분이겠지만.
"으응, 아니야! 마침 그냥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니까. 전부터 이런 데 한 번쯤 들러 보고 싶기도 했고!"
그러다가 앗, 싶어 웨이는 들고 있던 나무 꼬챙이를 내려놓고 두 번째 꼬치를 집어든다. 누가 뺏어가는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먹어야지, 그렇게 되새기기라도 하듯 웨이는 성심껏 어묵을 후후 불기까지 한다.
"그런 데에도 건강 스탯이 적용되는 거야? 그러고 보니까 각성하고 나서 배탈이나 감기에 걸린 기억이 없네!"
의념 각성과는 상관없이 웨이가 원체 건강 체질이었다는 것은 제쳐 두고, 강산의 미소에 따라 웨이도 활짝 웃는다.
미움받는 것 같다는 말에 몸이 약간 움찔했다. 토오루는 특별반에 오고 나서 사람 대하는 일이 영 서툴러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웨이를 따라 입꼬리를 올리곤 아예 건강 쪽으로 대화 주제를 돌려버렸다.
"그럼 다행이고."
아침 트레이닝이 등교 전에 하는 일이라면 굉장히 일찍 일어나는 편이겠지. 수면시간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그렇다면 저렇게 기운이 넘치지는 않을테니 적어도 자신이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생활습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토오루는 턱을 괸 채 웨이가 더 건강해지려면(물론 웨이는 지금도 충분히 건강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다가 자신을 향한 질문에 어? 하고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기초를 설명하는 책이라 그런지,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라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군요. 게임으로 비유하면 고렙은 저렙 사냥터에서 경험치를 받을 수 없다는 걸까요? 말이 좋아야 복습이지, 시간 낭비 같군요... 책을 덮을까 말까 고민하며 페이지를 넘겨요. 그러다,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오네요. 우리 수준에 맞다고요? 목소리의 주인이 한 권의 책을 건네줘요. 제가 읽고 있던 것보다 난도가 높긴 한데.. 이건 너무 높은 것 같군요.. 여기도 천재가 있는 건가요? 천재란...
"아, 추천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저에겐 난이도가 조금 있는 책 같네요."
애써 미소를 지어요. 그래도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책을 받아들여요. 동시에 읽고 있던 기초책을 닫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