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게 말했다. "인간은 독선적이야. 자기가 하고싶은데로 움직이고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화를 내곤 하지. 자신이 왜 실패했는지보다 일단 자신이 기분 나쁜 것에 분노를 해. 그리고 뒤에야 그것을 알고 움직이는 듯 하지." 그는 꽤 심각한 인간 부정에 빠진 듯 보였다. "그래? 그렇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다면 그런 이들이 나타날 수는 없었을거야. 모든 인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언덕을 오르며 죽을 길로 걸어간 인간도 있거든.", "그건 거짓말일거야. 분명 인간놈들은 그런 희생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을거야."그는 내 말에 투덜거리면서도 꽤 관심이 있는 듯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인간들도 천천히 달라지고 있는 거겠지. 난 인간을 싫어하는 너를 이해하면서도 인간의 좋은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그는 내 말을 끝가지 들어주었다. 그러곤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터무니없는 박애주의자 같으니라고." 별로 다른 것은 없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 웃어주었다. 마지막에는 인간성애자같은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 필립 헨딜, 수정구 속 세상
점심,중식,오찬, 절에서는 사시공양이라고 하는 시간. 중국요리의 딤섬은 본래 점심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점심이라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점심 식사겠지 뭐겠어."
그렇다. 연희는 점심 식사를 하러 편의점을 가고 있었다.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폐기한 제품을 얻으러 가는 것이랄까. 과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서 얻은 인연 덕분이다. 그녀의 입장에선, 드물게도 멀쩡한 인연이겠지. 편의점에 도착하며, 연희는 점장에게 언제나의 인사를 하곤 자신의 몫을 받는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생각했으나. 냉장고에 먹을 거라고는 모 광태자의 아이스크림 외에는 음료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한은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자고 생각했습니다.
"뭐가 좋을지.." 지한은 도시락코너에서 지이이거리는 눈으로 쳐다봅니다. 비싼 연어스테이크가 들어있는 도시락이나. 치킨이 들어있는 것도 괜찮지만. 오늘 지한이 먹어보고 싶었던 것은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바삭한.. 그런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들어온 물량 자체가 적었던 모양인지. 코너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갈비가 들어간 설 기념으로 나온 도시락을 들었다가.. 연희를 보고 인사하려고 했는데..
"!" 그리고 바로 연희가 건네받은 도시락을 보았습니다. 지한이 궁금해했던 그 도시락이었고요.. 지한이 인사를 하며 그 도시락을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막 받은 폐기 도시락을 어디서 먹을까 생각하던 참에 누군가가 다가와 그것을 끊었다.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도시락 교환이라...아마 그녀의 입장에선 꽤나 큰 용기를 낸 것이다. 보통, 편의점에서 자신이 먹고싶은 것을 위해서 남들과 도시락을 공유하는 행동은 보기 힘들지않나? 특히나 요즘같은 사회에선 더더욱.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나는 딱히 이 도시락을 꼭 먹어야된다!라는 욕망은 없었다. 그저, 유통기한이 조금 지난 폐기 제품이였기에 점장에게 얻어먹은 것일뿐. 그런 음식을 과연 생판 남..은 아니지만,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선 뜻 교환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한다.
연희는 잠시 기다리라며 도시락을 든 채로 점장에게 향하였다. 이유는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점장을 믿지못하는 건 아니였지만, 혹여나 이것으로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함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고 있던 지한에게 다가가 도시락을 건네었다.
"폐기 제품이니까 유통기한 지나서 문제 생기는건 난 책임 안진다?"
그래봤자 하루이틀정도 지난 것인데다 유통기한은 파는 기한을 말하는 것이지 음식의 부패가 시작되는 기간아 아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의념 각성자이지않은가? 잘 못 먹는다고 몸이 고생하는 일은 일반인보단 적지않을까.
저게 의외로 호불호가 갈린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서 못 먹는다거나.. 그렇다던데.. 폐기 도시락을 보는 지한의 눈이 호기심으로 넘실댑니다..! 흘러나오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확실하죠. 그리고는 확인이라는 말에 그런 게 필요한가 라고 생각하지만 얌전히 기다립니다. 수틀리면 못 머거여!
"와아아..." 묘하게 반짝반짝거리는 게 뿜어져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린 지한입니다. 그리고는 아 하면서 들고 있던 설 기념 도시락을 결제하고는 연희에게 건네려고 합니다. 교환이니까요. 교환. 이라고 말하면서 건네는 지한. 그리고는 증정! 이라는 것에 어.. 하면서 증정품도 건넵니다. 증정 표시따위는 보지 않았던 건가..?
"그건 괜찮습니다. 하루이틀 정도면.." 하긴. 일반인보다 쪼금 덜떨어진 지한주도 하루이틀 지난 편의점 도시락 먹고 탈난 적은 한번도 없었으니.. 자신있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대답하네요.
"궁금해서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물량이 잘 없어서.. 라고 중얼거리면서 받아든 그제서야 조금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살짝 숙입니다.
서로 윈윈하는 게 좋은 겁니다. 지한은 도시락을 받고 점장 쪽을 흘깃 보지만. 큰 관심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습니다.
"응..네? 혼잣말이었나요?" 혼잣말인 것 같지만 관련없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신경쓰지 않는 무딤도 간혹 필요합니다.
"앉아서 같이 드시겠습니까?" 슬쩍 물어보네요. 가벼운 음료수 하나를 더 결제한 다음 지한은 테이블에 도시락을 내려놓을 겁니다. 여기도 괜찮고요... 라고 하지만 아직은 겨울이니 야외 좌석은 좀 춥겠지..? 사실 그 추운 거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기껏 데워 나간 도시락이 10분도 아니고 5분만에 꽝꽝 얼어붙는 꼴을 보고 싶진 않을 터이니...
라임은 명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표적에 꽂힌 화살을 갈무리하고, 수돗가에 물을 마시러 가던 길이었어요. 그런데 저쪽에서 덩치가 아주 큰 친구가 표적에 공을 던지고 있네요. 그리 잘 맞추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웬 공놀이야?"
명진 친구는 키가 2m를 훌쩍 넘겨서, 라임이 그를 바라보려면 고개를 한참 들어 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슬쩍 말을 건네었어요.
"원거리 공격을 할 거라면, 그런 것보다는 커다란 바위를 집어던지는 게 낫지 않아?"
바위를 던지는 게 낫지 않냐는 말도 농담으로 한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저 큰 덩치로 커다란 쇠공 같은 무기에 의념을 실어 던진다면 파괴력이 엄청날 것 같지만, 맞추지 못하면 소용이 없겠지요. 명진은 든든한 전위이니까, 원거리 공격은 저 같은 공격수에게 맡기는 것이 속 편하겠지만, 유사시라는 것도 있으니까요. 결코 그의 노력을 무시하려고 첨언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혹시라도 내 말이 기분 나빴다면 미안. 차라리 바위를 던지는 게 낫지 않겠냔 말은 농담으로 한 게 아냐. 넌 든든한 전위니까 근접전은 걱정 없겠지만, 원거리가 신경 쓰인다면 작은 물건보다는 면적이 큰 걸 던져서, 정확히 맞추지 못하더라도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거나 빈틈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던 라임은, 고개가 뻐근했는지 그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납니다.
"응. 나는 라임이야. 학교에서 종종 봤었지? 너는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띄니까... 자주 보였어.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 부를게."
길드의 신입으로 왔다는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라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이유를 몰라서 묻는 말은 아니에요.
"이미 충분한 식량과 살 곳이 있는데도, 왜 남의 것을 빼앗으려 드는 걸까요."
정복자의 입장에선 자국을 침략할 수 있는 위험 세력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고, 단지 세계를 통일코자 하는 야망을 위해서였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무자비한 침략으로 이룩한 풍요는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요. 그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도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저들끼리 죽고 죽이는데.
라임은, 혹자들의 과도한 욕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었던 걸까요?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사이좋게 지내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텐데."
관조적인 태도로 그렇게 말하지만, 그녀는 결코 순진하고 결벽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에게 있어서 인간은 백해무익한 존재이겠지요. 그녀도 인간이지만, 때로는 같은 인간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기분이 언짢아지곤 합니다. 글쎄, 네 말도 맞고 쟤 말도 맞아서, 도저히 결론이 나질 않으니까요.
...
남자의 말에 따르면, 우선적인 목표는 이 산길을 지나 담비 가죽을 파는 마을에 도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산길에 도적과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호송 임무이니만큼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라임이, 문득 입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