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정말로 엉망인 것이라면 재고해보겠으나 그 정도가 아니면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예성은 생각했다. 물론 이게 정말로 어울릴지는 또 별개의 이야기였지만. 나중에 가족에게 보여준 후에 잘 어울리는지를 확실하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카드를 꺼낸 후에, 옷을 결제했다. 커다란 종이가방에 확실하게 집어넣고 그 종이가방을 직원에게 카드와 함께 받으면서 예성은 지갑 속에 카드를 쏙 집어넣었다.
"...일정 말인가요? 아니요. 딱히."
자신의 일정을 묻는 그의 물음에 예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그냥 외투나 한 벌 사러 나와볼까 싶어서 여기로 온 것이지. 그 이후의 일정이 따로 잡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별 일이 없으면 그냥 적당히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자신에게 그렇게 물은 동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는 동환 씨는 어떻습니까? 바쁘신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물론 딱히 그런 것은 없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옷을 찾으러 간다고 했지만, 주문제작을 하겠다고 이야기가 바뀌었으니까. 그래도 기왕 질문이 왔으니 자신도 질문을 돌려주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그렇게 질문을 돌려주면서 답을 기다렸다.
딱히 뒤의 일정은 없었기에 같이 식사를 해도 상관은 없었으나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그의 몸이었다. 졸지에 과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반 쯤 걱정을 하면서 예성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동환을 빤히 바라봤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시의 고민이었다. 기왕 권했는데 나쁠 건 없겠거니 생각을 하며 이어 예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만, 맛있는 가게...라고 하셨는데 어떤 가게입니까?"
일단 그가 말하는 맛있는 가게가 어떤 것인지 정도는 궁금하다는 듯, 예성은 그렇게 질문을 하면서 이 근처에 식당이 무엇이 있었는지를 잠시 떠올렸다. 확실히 이것저것 많이 있었으니 어디로 가도 크게 손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예성은 이어 상관없다는 듯이 미소를 작게 지었다.
"그렇다면 식사 정도는 같이 하도록 하죠. 그렇게까지 말씀하셨으니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그가 말한 맛있는 식당. 거기다가 배가 출출하다고 하니, 적당히 이상한 곳으로 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예성은 안내를 받을 생각으로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그가 앞으로 걸어간다면 그 옆이나 뒤로 천천히 따라서 걸어갈 예정이었다.
"아. 고기집이라면 거절하겠습니다. 기왕 새 옷을 샀는데 냄새가 배겨버리면 곤란하니까요."
문뜩 한 가지 문제점을 떠올리며 그는 그것만은 피해달라는 듯 이야기를 했다. 기껏 새 옷을 샀는데 냄새가 벌써부터 남아버리면 아무래도 조금 속상할 것 같았기에.
설명을 듣자 아무리 생각해도 그 가게 같은데. 그렇게 생각을 하며 예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곳이라면 자신도 알고 있는만큼 어쩌면 서로 아는 공통된 가게일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며 예성은 일단 따라가보기로 했다. 허나 그렇게 걸어가는 와중 소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예성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례되는 행동이 아닌가. 적어도 자신은 상관없지만 키가 크고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서커스 사람이니 세력다툼이니 뭐니. 참으로 있는대로 지껄이는 이라고 생각하며 예성은 살짝 표정을 찌푸렸다.
경찰 수첩을 꺼내는게 좋을까 생각이 잠시. 허나 괜히 일이 더 커지고 복잡해질 거라고 생각하며 예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저 가볍게 무시하기로 하며, 도착한 가게를 바라보며 예성은 우선 먼저 들어섰다. 확실히 여기라면 냄새가 배길 일은 없을테니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가만히 메뉴를 바라봤다. 참으로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런 것은 정해진 메뉴를 먹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며 가장 무난하게 치즈와 양상추, 피클, 그리고 스테이크가 들어가있는 것을 주문하며 예성은 카드를 꺼내 결제했다.
이어 동환이 결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며 예성은 넌지시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나쁘지 않네요. 이런 곳이라면 다음에 가족과 먹어도 좋을 것 같고. 지나가면서 보긴 했는데, 직접 오기는 힘들기도 했고. 좋은 곳 추천 감사해요."
확실하게 감사 표시를 하며 예성은 이내 나오는 샌드위치를 받아든 후에 비어있는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물건을 받으면 여기로 오라는 듯, 가볍게 손짓을 하며 그가 오는 것을 기다리며 예성은 잠시 핸드폰을 체크했다.
>>895 ㅋㅋㅋㅋㅋㅋ 회식이라니! 노래방 회식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님) 확실히 지금 단계에서는 따로 둘이서 술을 먹거나 하는 것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자고로 상판에선 일상을 돌리고자 하면 어떻게든 돌아가는 법이니 사민주도 누군가와 그 일상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속닥)
>>896 시도하는 것은 자유지만 먹힐지는 또 별개인지라. 즈어는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합니다.
지금 자신이 뭘 잘못들었나 싶어 예성은 순간 멍하니 자리에서 동환을 바라봤다. 지금 저걸 다 넣는다고?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자 동환의 눈동자가 아주 약하게 흔들렸다. 지금 자신은 생각보다 엄청난 이와 뭘 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는 가만히 볼을 꼬집었다. 아팠기에 아무래도 생시인 모양이었다.
일단 그가 자리에 앉자 예성은 그제야 자신의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적당히 부드러운 느낌이 꽤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내용물을 먹는 도중, 눈앞에서 보이는 한입만 쇼에 예성은 또 다시 자신이 뭘 잘못봤나 싶어 두 눈을 깜빡였다.
"...그렇게 먹으면 안 힘듭니까? 재료 맛이 다 섞여서 맛을 느끼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만."
향과 맛이 무조건 많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닌만큼 오히려 애매한 맛이 되지 않을까 예성은 생각했다. 허나 상대의 취향이 그렇다면야 그것은 존중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일단 자신의 샌드위치를 먹으며 스테이크의 그 풍미를 조용히 느꼈다.
"턱 조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사람인 이상 그렇게 크게 입을 벌리면 정말로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는 조절하고 조심하라는 듯이 이야기를 하며 예성은 다시 샌드위치를 한 입 먹으며 동환이 먹는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정말 크게도 먹는구나. 그래서 저런 몸이 유지가 되는건가? 그런 의문을 푸기도 하나 특별히 그 말을 입에 담진 않았다.
일에 대한 감상평을 들으며 예성은 크게 무슨 말을 하거나 하진 않고 조용히 말에 귀를 기울였다. 힘을 쓴 만큼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라던가, 시기를 늦어버린 사람은 물론이며 불행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예성은 가만히 동환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물론 특별히 감정이 섞여있지 않은 평범한 톤이었다.
"우리들은 앞으로 나가는 이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제 자리에 멈춰서서 치안을 지키고 시민을 지키는 이입니다. 그것만큼은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말의 의미는 참으로 제각각이었다. 허나 예성은 그와는 생각이 달랐다. 경찰은 앞으로 나아가는 이가 아니라 뒤쳐지고 그 자리에서 멈춰서 있는 이들을 위해서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그런 이들을 지키고 치안을 보호하는 수호자였다. 물론 동환이 말한 앞으로 나아간다는 다른 의미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예성의 생각은 그러했다.
그 사실을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지만 딱히 동환의 말을 반대하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이내 샌드위치를 먹으며 예성은 곧 들려오는 말에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왼쪽 뺨의 흉터를 손으로 어루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힘듭니다."
예성의 목소리는 상당히 단호했다. 보람차다라던가 그런 말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 허나 굳이 정정할 생각은 없다는 듯 예성은 다시 말을 천천히 이어나갔다.
"세 번의 범죄자가 모두 위험한 이들이었고, 동정할 수도 없는 이기적인 마인드로 대형 참사를 일으켰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더 늘어날지도 모르지요. 솔직히 말해서 제 경찰 인생에 있어서 가장 힘든 시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보람이나 그런 것보다는 제가 경찰이 된 이유를 떠올리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는 굳이 입에 담지 않으며 예성은 다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그 크기를 상당히 줄였다. 이어 아무런 말 없이 꿀꺽 삼킨 후에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힘들어도 포기하거나 그만둘 수 없는 이유라는게 있는 법이고, 저는 보람보다는 그것에 포커스를 두고 있습니다. 물론 동환 씨처럼 보람을 느끼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게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저로서는 부럽군요."
대체 이 작은 애가 언제 이렇게 큰 건지! 그만큼의 세월이 지났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다. 그는 아직도 경찰이 되기 위해 공부하던 학생인 것 같은데 벌써 결혼까지 한 유부남이 됐다. 이제 마냥 애로 봐선 안 되는데 아직도 담배는 커녕 사탕을 더 좋아할 애같다. 그는 한숨 뱉고는 "내가 1년만 젊었어도 넌 갓 성인이었어." 하고 토라진듯한 말투에 작게 웃었다.
"알데는 아저씨 앞에선 아직 한참 아기지. 아마 결혼해도 아기 소리 들을걸?"
그리고는 담배 슥 밀어주니 말보로 레드다. 첫 담배부터 말보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알데바란이 슬쩍 하는 이야기에 눈을 내리깔아 담뱃갑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이제 다섯개 정도 남아있다. 이마저도 오늘 안에 사라질 확률이 컸다. 계속 한글 프로그램이 먹통이 된다는 가정 하에. 그럴 가능성을 아예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얘기마냥 "그러려고 피우는 거야. 일찍 가면 나야 좋지." 하고 흘렸다. 그 뒤에 바로 "실은 아저씨 학생 때부터 피웠던 거라 못 끊네요. 그래도 10년 넘게 피웠는데 아직 안 죽는거 보니까 괜찮지 않을까?" 라 덧붙이는 걸 보니 농담 같다.
"금연 시도 했던 건 아니지?"
그는 라이터의 불을 켠다. 명 다한 라이터는 몇번의 시도 끝에 기어이 마지막 불 피워내고 제 알아서 꺼져버렸다. 한쪽 팔로 연초 든 팔을 껴안듯 팔짱끼던 그가 잠시 눈 감았다 뜬다. 그 독한 담배 연기 깊게 들이마시는지 한참을. 이제 좀 살겠다는 듯 그가 나직하게 한숨 뱉으며 연기를 재주 좋게 아래로 향하게 뱉는다. 이윽고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정확하게 마주쳤다.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요즘 애들은 당당하기도 하다. 그는 장갑 낀 손을 까딱였다. 이쪽으로 오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