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날씨는 점점 싸늘해지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을지도 모르나 나중에 더 추워지면 지금 이대로는 근무를 서기 힘들어질 것 같다고 판단한 예성은 옷가게에 가서 외투를 하나 사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은 어떤 것이 잘 나가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주 잠시였다. 그냥 적당히 괜찮은 것이 있으면 하나 사면 되지 않을까라고 결론을 내리며 버스에서 내린 예성은 번화가에 도착했다.
역시 익숙한 곳이 좋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익숙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어느 한 옷가게 앞에 도착했다. 꽤 크기도 크고 종류도 많아 어릴 때부터 늘 이용했던 곳이었다. 보통은 가족들과 함께 오는 편이나 이렇게 혼자 오는 일도 있는만큼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서자 단골임을 아는 직원은 천천히 다가와 예성에게 인사했다.
"아. 오늘은 외투나 하나 살까 해서요."
"그렇다면 저쪽 편으로 가보시겠어요? 요즘 잘 나가서 감사겸 세일을 하고 있거든요."
직원의 말을 들으며 예성은 안내받은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꽤 여러 종류의 외투가 있었고 하나하나 디자인이 깔끔한 게 예성의 마음에 쏙 든 상태였다. 허나 그렇기에 뭘 고를지 바로 선택하지 못하며 예성은 여러 종류의 외투를 둘러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는 와중 낯익어보이는 뒷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키가 워낙 크니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또 만나나. 그런 생각을 하며 예성은 외투는 잠시 내버려두고 그에게 다가갔다.
자신은 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예성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저 옷, 잘못하면 찢어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예성은 잠시 망설였다. 아니. 쓸데없는 참견인가. 이거. 그렇게 생각을 하며 참으로 크긴 크다고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성장기를 지녀야 저렇게 될 수 있는건지. 호르몬제라도 잔뜩 투입한 건가. 집안 대대로 체질이 저런 것인가. 그렇게 생각을 할 뿐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아무리 봐도 옷이 작아보이는데. 조마조마한 눈빛과 목소리를 내면서 우선 예성은 동환이 괜찮은지의 여부를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옷가게에서는 맞는 옷을 살 수 없어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예성은 조심스럽게 다시 되물었다.
"옷 사러 오신 것 같은데 여기 옷은 안 맞는 것 같은데... 조금 큰 옷을 파는 곳이... 아니. 애초에 옷은 어디에서 구입하십니까?"
그로서도 조금 호기심이 들었는지 예성은 그렇게 물었다. 그야 자신이 아는 바, 그렇게 큰 옷을 취급하는 곳은 잘 없었으니까. 일단 상대의 키만 해도 어디였던가. 괜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성은 가만히 돌아올 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그렇게 큰 옷이 있는진 잘 모르겠네요. 저는 여기의 옷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아무리 봐도 지금 입힌 저 옷도 꽤 큰데. 역시 덩치가 크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며 예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또 사이즈가 맞는 제복을 마련한 소라에게 속으로 감탄사를 보내면서 예성은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위에서 아래로 눈을 움직여 그의 몸을 확인했다. 피지컬면으로만 보자면 확실히 뛰어나지만 옷을 구하긴 힘들겠다고 생각을 하며 예성은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면 그냥 인터넷으로 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아니면 휴가니까 그 큰 옷을 파는 가게로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당분간은 출근 안하잖습니까."
적어도 한동안은 휴가인만큼 멀리 가야 할 일이 있다면 어쩌면 지금이 기회라면 기회였다. 그렇기에 예성은 괜히 그렇게 권유를 하면서 핸드폰을 꺼낸 후에 잠시 근처에 큰 옷을 파는 곳이 없는지를 체크했다. 허나 역시 동환이 방금 말한대로 이 근처에는 없는 모양이었는지 딱히 눈에 띄는 정보는 없었다. 정말 진지하게 노트북 앞에 앉으면 더 많은 데이터를 찾을 수 있겠지만 핸드폰인 이상 결국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예성은 괜히 아쉬움을 느끼며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무튼. ...큰 옷 찾을 수 있길 바랄게요. 지금 저 옷도 제가 입기엔 훨씬 큰 것 같은데. 그것조차도 안 맞으시면..."
여러모로 고생길이 훤하다고 생각을 하며 예성은 작게 힘내라는 말을 살며시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청해시는 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된 곳이에요. (흐릿) 설정 잘 확인해주길 바랄게요.
뭐지? 하는 느낌으로 예성은 동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까지 있었던 헤프닝. 다른 건 몰라도 조폭으로 오해를 받아서 신고받을뻔 했다는 말에는 예성이 살며시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의 흉터를 만지면서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더더욱 시선을 한쪽으로 향해 그의 모습을 시선에서 치웠다. 너무나 공감되는 소재였으나 그것을 입에 담기엔 여러모로 자신의 상처가 너무 아팠기에 예성은 입술만 꿈틀거릴 뿐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서 있을 순 없었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합니다. 조폭이라던가. 조폭이라던가. 조폭이라던가."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목소리가 가만히 수그러드는 것이 정말로 크게 공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심 아파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다시 예성은 고개를 위로 들었고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역시 키가 크니 이렇게 올려다볼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예성도 조금 신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사이즈가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차라리 주문 제작을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조금 비쌀지도 모르지만 큰 사이즈로 해서 멋진 디자인의 옷을 입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쪽이 차라리 그에게는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예성은 나름대로 좋은 아이디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조금 비쌀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옷이라는 유니크함도 생기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중에 한 번 시도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없을 땐 주문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니까요."
인터넷에 치면 아마 여러 업체가 나올테니 잘 비교분석해서 골라보라고 이야기를 하며 예성은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물론 자신은 그런 사이트를 이용해본적은 없었으나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라고 그는 지리짐작했다. 설사 어렵다고 하더라도 관계자와 전화라도 하면서, 혹은 문의를 하면서 하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었으니까. 문뜩 자신도 한번 그런 주문제작을 해서 입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하면서 예성은 오른손으로 턱을 잡고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오른손을 턱에서 때어냈다.
"옷이라."
어떤 옷이 어울릴 것 같은지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을 하던 예성은 음- 소리를 내면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만히 바라봤다. 무슨 옷이 어울릴 것 같냐는 물음은 아주 간단할지도 모르나, 그 답을 내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진지하게 생각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예성은 동환을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좀 산뜻한 분위기의 옷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바바리 코트라던가 그런 것도 좋을 것 같고. 혹은 니트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좀 밝은 색으로 말이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예성은 머릿속으로 그런 옷을 입은 동환을 가만히 바라봤다. 비록 몸은 크고 덩치가 클지도 모르지만 그것에 배해서 그는 꽤 순한 느낌이었다. 물론 화가 나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평소의 모습은 상당히 순둥이라고 생각하기에 예성은 오히려 그런 쪽 이미지가 잘 어울리지 않나 판단하며 미소를 작게 지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생각한 이미지를 두고 이야기한 것이었기에 상대의 취향 여부에 따라선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는만큼 상대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에 예성은 작게 안도했다. 바바리 코트를 좋아한다는 그 말에 예성은 절로 동환이 바바리 코트를 입는 모습을 떠올렸다. 확실히 덩치가 크니 잘 어룰릴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 예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언제 새 바바리 코트를 사서 입으시면 사진이라도 한 장 볼 수 있을까요? ...그냥,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물론 거절하셔도 됩니다."
분명하게 거절해도 좋다는 말을 하면서 예성은 외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여러 색의 외투를 바라보며 예성은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다 이번엔 자신이 동환에게 물어보았다.
"저는 외투를 하나 사러 왔는데 어떤 색이 잘 어울릴 것 같습니까?"
물론 그것으로 꼭 산다는 법은 아니었으나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예성은 답을 기다리며 다시 고개를 올려 동환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인 알데바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실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쉬를 놀리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만...
"애쉬 안에서 나는 대체 얼마나 어린 거야."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어째 말투가 조금 토라진 듯 했다. 그야 자신은 이제 어른인데 아직까지 애 취급을 하고 있었으니까. 애쉬가 자신과 펜팔을 할 때 자신은 굉장히 어린 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상할 것도 없긴 했지만. 이제 애쉬랑 펜팔하던 과자 좋아하던 꼬마는 구름과자 좋아하는 으른으로 바뀌었습니다. 불만 있습니까 애쉬?
혼잣말에 속으로 이런저런 투덜거림을 하다보니 어느새 애쉬가 꺼낸 담배에 조금 놀란다. 말보로 레드.. 독한 거 피우는구나. 그는 조금 망설이는 손길로 담배 한개비를 집어들며 "이런 거 피우면 오래 못 살아 애쉬." 같은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를 슬쩍 했을까. 자신은 담배를 많이 피우는 이는 아니었기에 이런 독한 담배는 조금 꺼려지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얻어피는 입장에서. 비싼 담배 한개비 나눠준 것에 대해 감사하지는 못 할 망정 불평을 할 정도로 상식없는 인간은 아니었다.
"...불도 없는데."
문득 든 생각에 멈칫거리다가 애쉬를 빤히 바라보았다. 불도 빌려달라는 눈빛... 염치없다고 생각한다면 정답이다.
전혀 생각도 못한 색에 예성은 고개를 괜히 갸웃했다. 남색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청록색이 나올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탓이었다. 자신에게 그런 색이 어울리는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괜히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래도 추천을 해줬으니 입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예성은 청록색 외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저거란 말이죠?"
그다지 입어보지 못한 색이었기에 조금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추천을 해줬으니라는 느낌으로 예성은 직원에게 문의해서 그 색으로 사이즈가 맞는 옷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이내 사이즈가 있다는 말과 함께 안 쪽에서 옷걸이와 함께 외투가 나오자 예성은 그 외투를 조심스럽게 걸치면서 거울을 가만히 바라봤다.
확실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의구심을 가득 품으며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예성은 일단 외투를 벗은 후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다시 동환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저는 이 옷으로 해보겠습니다. 기껏 추천해주셨으니... 다른 사람 쪽에서 이상하다는 말이 나오면 한 벌 더 구입하면 되는 거니까요. 안 그래도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의 멤버가 되면서 월급도 높아졌으니."
생명수당이나 기타수당이 조금 더 합쳐져서 월급이 더 오른만큼 이 정도는 무난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예성은 일단 그것으로 해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