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에서 오셨나보죠? 그 관련은 소라 선배에게 딱히 들은 게 없어서.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요 근래 모두들 예외없이 계속 바빴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매일 바쁜 것은 아니었으나 커다란 사건을 세 개나 해결한 후였다. 이런저런 보고서나 뒷처리 등등 해야 할 일이 적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거기다가 일이 없다고 해서 마냥 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던만큼 이번 휴가는 어떻게 보면 모두에게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에 온 휴식타임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적어도 예성에게는 그랬다.
강아지들이 너무 귀엽지 않냐는 그 물음에 예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직장에서는 그다지 짓지 않는 미소를 아낌없이 비추면서 그는 바로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오는 하얀색 강아지의 몸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반대편 손에 간식을 올려 그 강아지의 입가로 가져갔다. 꼬리를 정말로 빠르게 흔들면서 먹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게 비쳤기에 예성은 좀처럼 강아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 귀엽지요. 그래서 지금처럼 길게 쉬는 날이 있거나, 혹은 그냥 정신적으로 좀 피곤하면 오는 편이에요.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고양이 카페를 갈 때도 있고, 또 어쩔땐 조금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이긴 한데 이런 곳이 아니라 아예 농장처럼 바깥의 공간을 개장해서 강아지와 뛰어놀 수 있는 느낌의 카페도 있는데 그곳으로 가기도 하고요. ...강아지 좋아하면 언제 한 번 가보세요. 운동하기도 좋고, 같이 뛰어놀기도 좋으니까요."
물론 앉아있는 것을 좋아한다면 여기가 제일 나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며 예성은 그녀가 간식을 나눠주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테이블에 내려놓은 자신의 음료를 집어든 후에 빨대로 한 모금 흡입했다. 호기심을 가진 강아지 몇 마리가 자신도 달라는 듯이 눈빛 공격을 보냈으나 예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안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그건 그렇고 수고하셨습니다. 저번 사건도. ...다들 너무나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소라 선배가 정말로 만족스러워했습니다. 물론, 현 상황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의 공은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으시거든요."
이런저런 고생이 많기는 상대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단은 상사의 입장에 있는만큼 분명 처리해야 할 업무도 더 많을 것이고, 현장에서도 여기저기 자주 들여다봐야 할 테니. 뭔가 저번 현장에서는 노가다를 뛰느라 바빠 보였는데,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그러니 상대 또한 이참에 충분히 푹 쉬어 주는 편이 좋을 터였다.
"와, 강아지 진짜 좋아하시나 봐요."
그 미소를 보고 나서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야, 팀이 결성된지도 나름 시간이 지났지만 저렇게 미소짓는 얼굴은 처음 보는걸. 누가 봐도 진심으로 애정하는 대상을 내려다보는 눈빛이었다. 하긴, 저 강아지가 여기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귀엽게 생기긴 했다. 나중에 내 무릎으로는 안 와주려나? 나도 간식 있는데. 힝...
"뛰어놀 수 있는 데도 너무 좋죠. 나중에 꼭 한 번 가 봐야겠는데요?"
애견 카페가 아닌 이른바 애견 농장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쯤 되면 카페는 이미 이용당했달 수준이다. 강아지들과 잔디밭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분명 천국이나 다름없겠지. 만약 강아지를 키운다면 그런 데 데리고 가도 좋을 텐데요, 라며 덧붙였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경찰인 이상 강아지는커녕 반려동물은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에이, 뭘요. 전 딱히 한 것도 없는데요."
무릎에 앞발을 걸쳐놓고 헥헥거리는 갈색 푸들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겸손함 따위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다. 사건의 수사에 있어서 뭔가 특별한 공로를 세운 기억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막간에 발생한 작은 전투에 크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었으니. 나, 설마 잉여 인력인 건 아니겠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좋아합니다.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순수한 느낌이 있거든요."
자신의 인상을 생각해보면 정말 안 어울린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나 예성은 분명하게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밝혔다. 다른 이가 뭐라고 하던지 자신이 좋다는데 뭐라고 할까. 괜히 말 없이 자신의 무릎위에 올라온 강아지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까지 일직선으로 쭈욱 쓰다듬으면서 그는 미소를 그대로 유지하며 반대편 손에 든 음료를 입에 담은 후,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렸다.
"실제로 개를 키우는 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에요. 넓은 공간에서 같이 뛰어놀면서 힐링하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며 추억을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저도 괜히 키워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물론 셀린도 있고, 개를 키우기엔 아무래도 환경상 힘들기에 키우진 못하지만요."
말을 마치며 예성은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이야 아무 것도 없었으나 서에선 셀린이 횃대 다음으로 가장 많이 쉬는 곳이 바로 그의 오른쪽 어깨였다. 그래서일까. 텅 비어있는 어깨가 괜히 아쉽다는 듯이 조금 더 길게 오른쪽 어깨를 바라보며 예성은 다시 음료를 천천히 빨아들였다. 그러다 딱히 한 것이 없다는 그 말에 예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하게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으나 케이시 씨도 이런저런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필시 어떤 곳이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기에 이 이상의 코맨트는 힘들긴 합니다만."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직접 조사를 하는 모습을 눈에 담은 것은 아닌만큼 예성으로서는 조금 진부할지도 모르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허나 그것으로 끝내긴 애매햇는지 말을 조금 더 고민하던 그는 조용히 덧붙이듯 말을 조금 더 이었다.
"애초에 다 한 팀이잖습니까. 어딘가에서 월급 루팡을 한게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몫은 다 한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쉬우면 다음에 조금 더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모니터 앞에서 한참 머리를 싸맸다. 케이시의 조언대로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서다. 호기롭게 책상에 앉긴 했지만 막상 모을 자료가 너무 많았다. 고작 추측성 보고에 불과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당연히 필요한 법이다. 헛소리만 줄줄 늘어두면 누가 관심을 가질까! 그래서 저번 사건의 녹취 기록도 빌려 들었고, 사건 당시 읽었던 기억도 모두 시간별로 빼곡하게 서류에 적어뒀다. 그렇게 70% 정도 완성했을 때가 바로 며칠 전이다. 이제 결론만 쓰면 되는데, 그러면 끝인데. 어제 또 새로운 사건이 들어왔다. 그는 새로 싹 정리해야 할 서류를 보고 참을 인을 새겼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인내심에 지고 말았다. 며칠간 함께 한 한글 프로그램은 야근을 감당할 수가 없었고, 자동저장이 켜져있어도 결국 새하얀 창을 띄우고 응답 없음 표시가 떠버렸다.
"Ah-! 미쳤어?!"
자동저장마저 없었더라면 피눈물을 흘렸겠지만 어찌됐든 이게 뜬다는 사실 자체에서 화가 났다. 그는 비록 욕설을 내뱉긴 했지만 책상을 내려치지는 않았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 백업본을 클릭했다. 아..써뒀던 이번 사건과 신의 관계성이 싹 사라졌다. 그는 터덜터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젠 다시 쓸 의욕도 없으니 니코틴이 필요하다. 가급적이면 진한 걸로. 오래.
그렇게 멍하니 카페 뒤 골목으로 향했다. 머리는 정갈하게 땋았지만 조금 헝클어졌고, 옷차림은 편했다. 날이 슬슬 쌀쌀해져 하얀 터틀넥과 슬랙스 위로 코트를 걸쳤다. 골목으로 들어가며 그가 탄식하듯 "Verdammt." 하고 뱉었다. 절대 그럴 것 같지 않던 그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한번 튀어나오고, 두번째로는 골목에 깊숙하게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담배를 꺼내며 입에 물더니 라이터에 불을 몇번 당기다 불이 몇번 일렁이고 담배 가까이 대기도 전에 픽 꺼져버리자 한번 더 욕을 뱉었다. 이번엔 F로 시작하는 욕이라 그런지 조금 더 강도가 세고 예민했다.
"맙소사."
그리고 이미 골목에 들어온 선객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독일에 있을 적부터 편지를 주고받던 작은 꼬마.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지만 어릴 적부터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인지 그의 머리에서는 이미 정서적으로 나쁜 말을 하면 어떡해! 하고 자신을 혼내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자고로 옛말에 강아지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고 했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지금까지 봐온 그의 모습은 말수가 적을지언정 나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게다가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확실히, 셀린이 있으니까 개는 키우기 힘들겠네요. 그러고 보니 셀린은 집에 있어요?"
이런 데 오면 셀린이 질투하는 거 아니에요? 가볍게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자신을 두고 애견 카페에 다녀온 차 경위를 부리로 콕콕 쪼아대는 셀린이라. ...음, 이건 이거대로 귀여운걸? 물론 쪼이는 입장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휴가가 끝나고 출근할 때 셀린을 위한 비스킷을 잊지 말고 잔뜩 챙겨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주니 앞으로도 더 힘써야겠단 생각이 드는걸요?"
뭐, 상대의 말마따나 확실히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조사에 임했다면 그걸로도 이미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한 것이겠지. 다급한 사안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괜히 농땡이를 피우는 사람이 세상에 수두룩하다는 것은 이미 순경 시절에 깨우친 진리 중 하나였다. 강아지를 아예 무릎 위로 올려 쓰다듬던 그녀는 곧 마침 떠올랐다는 듯이 질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