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 알기는 아는구나, 슈란은 생각하며 머리를 기울였다. 머쓱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영락없는 어린애인데, 몸의 생김새를 보면 운동하는 사람인 게 딱 티가 난다. 그래도 이런 어린애일 줄이야. 슈란은 그 때 들리던 대화와 체전을 휩쓸었다는 소리를 듣고 상상하기로, 좀 더 좋은 체격의 인간일 줄 알았다. 그럼 이 애는 이런 앳된 얼굴으로 그런 말을 들었던 건가. 네베가 작은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듣고 슈란은 파랑을 보던 눈길을 올렸다. 아까까지 알이었던 것이 커다란 새로 변해 있다.
"진뢰! 나도 만나서 반가워!"
네베는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저렇게 보니까 발톱에 잡아채져 가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파랑은 학교에서 자신을 몇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졸업생을 중학교에서 불렀을 때의 얘기려나. 슈란이 파랑의 얘기를 듣는 동안, 네베는 고개를 갸웃거려가며 기어코 새를 만져보려고 용을 쓴다.
"깃털 정말정말 예뻐 보여, 쓰다듬어도 괜찮아?"
사람들은 남말 하기를 왜 그렇게 좋아할까? 슈란은 누구인지도 모르겠으나 자기 얘기를 떠벌린 교사에게 화가 났다. 내 말은 내가 하는데 왜 내 얘길 못해서 안달일까, 선생들이란 하여간에 곤란한 족속들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면 몰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애한테 집안사정까지 구구절절 떠들었다니. 슈란은 숨을 길게 내뱉더니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별 얘기를 다 들었구나. 누가 그렇게 열심히 소개해줬는지 몰라도 고마움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어디까지 말하는 게 좋을까? 슈란은 잠시 고민했다. 왜 네가 아직까지 운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야 하나? 분명 그 때 슈란이 듣기로 파랑은 절대 운동에 복귀하지 못할 거랬다. 그런데 어째서 향후에도 파랑의 소식이 중학교를 통해 간간이 들려오고 있으며, 오늘 병원에 오기도 운동선수가 정기적으로 받는 검진을 받기 위해서인 듯한지. 결국 슈란은 간단히 대답했다.
"너만 내 얘기를 들은 건 아냐. 나도 네 얘기를 많이 들었지. 웬 어린애 하나가 다른 것도 아니고, 격투기 대회란 대회는 다 우승하고 다녔다고. 너는 꽤나 학교의 자랑이었어..."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도통 어떻게 그런지를 모르겠네. 슈란은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네가 마법소녀인 건 몰랐지만."
아, 혹시? 슈란은 그렇게 말하고 나자 스스로도 눈치채는 바가 있어서, 입술을 앙 다물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돌리자구요 0.< >>821 ㅋㅋㅋㅋㅋㅋㅋㅋ 전뢰 쨩이 츳코미 역할 맡는 거 너무 좋아요 둘이 사이좋은 콤비네요 ㅎㅎㅎ
「오늘은 실시간 이벤트가 있어. 보통의 다른 스레에서 하는 방식과는 다르니까 잘 알아 둬.」 「이벤트 진행 레스는 8, 9, 10시, 11시 총 네 차례에 걸쳐서 올라가. 그리고 거기에 각자 반응을 하거나 말거나는 자유야.」 「반응은 각 시간 정각까지(너무 빡빡하게 안 잡으니까 걱정 마) 받은 다음에, 거기에 대한 진행레스가 정각을 좀 지나서 올라오는 구조야.」
「이벤트는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철저히 자율.」 「예를 들어 이벤트 레스가 거대한 엑시트가 나타났다! 라는 내용이라면 그걸 퇴치하러 가거나, 곤경에 처한 시민을 돕거나, 식사하다가 다른 마법소녀한테서 뒤늦게 이야기를 듣는다거나 할 수 있겠지?」 「그냥 일상을 돌리고 있어도 상관없고. 바라기시의 모든 마법소녀가 연루될 만한 사건이 항상 일어나진 않잖아.」
「중요한 건 어떤 내용으로 각자 이야기를 전개할지 서로 상의한 다음에 반응하는 것. 즉 따로따로 반응하지 않아도 돼.」 「예를 들어서 '같이 밥 먹다가 소리를 듣고 나가는 걸로 하죠!' '공격에 맞아서 다친 걸 그쪽 캐릭터가 도와주는 건 어떤가요?' '이러이러한 연계 필살기를 써요!' 이런 식으로. 물론 그 과정에서 동료를 구하는데도 대놓고 소외되는 사람은 없도록 부탁해.」 「아무튼 이벤트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마법소녀와 교류하는 기회로 여겨 주는 것도 좋겠다는 바람이야. 사건보다는 관계가 중심이 되는 스레가 목표니까.」
호수의 수면 밑에서, 책상 밑, 지하철의 빈자리, 호주머니 깊숙이, 보도블럭 사이, 호롱섬의 등대 아래서 검은 연기는 피어오르고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것은 언제나처럼 밤의 시작을 알리며 등장하는 '초저녁 엑시트'들이고, 조만간 마법소녀들이 들이닥쳐 비명소리가 울려퍼지기도 전에 해치워 버릴 약한 골칫거리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싫어⋯⋯!
"으랏-" 거대한 해머가 노란 빛의 궤적을 내며 지하철의 폐선로 바닥을 강타했다. "차아-!!!"
오늘도 활동 중인 해피니스☆해머는, 별 모양 해머 자국이 찍힌 크레이터에서 먼지와 함께 연기를 풍기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땀을 닦으며 접근하면서도 그녀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방금 짜부러뜨린 것은 단단한 갑피를 지닌 토끼와 곰이 미묘하게 합쳐진 모양의 엑시트였지만, 그 안에 뭉클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닿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크레이터 중심에는 토끼곰 인형이 찌그러져 있었다. 트럭이 들이받는 파워로 내리쳤기 때문에 그 형태는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터진 솜털과 실밥이 '인형'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이것도 스타라이트가 얘기한 '사물 엑시트'⋯⋯."
해머는 검은 기운이 뚝뚝 흘러나오는 인형을 주워 들어 가까이서 쳐다보고는, 선로에다 도로 휙 던져 버렸다.
버려지기 싫어⋯⋯!
뒤돌아서 플랫폼으로 올라오려던 해머가, 순간 뒤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막대하고 불길한 기운이 퍼져 오는 것을 느끼고 잽싸게 뒤돌았다. 그러나 도로 살아난 토끼곰 인형의 엑시트는 강하게 치고 선로 바깥으로 도망쳐 갔다. 뒤로 3미터 가까이를 밀려나 간신히 자세를 가다듬은 해머는 소리쳤다.
"큰일났다, 저쪽은 출구야!"
잠시 후 오후 8시 경.
바라기시 중부 교차로의 맨홀이 거칠게 떨리더니, 기괴한 모습으로 변화한 토끼곰 인형의 엑시트가 아스팔트 바닥을 찢고 지상으로 튀어올랐다. 공중에 떠오른 자동차들은 다시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고, 눈을 질끈 감은 운전자와 행인들은 그새 나타난 마법소녀의 보호를 받아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하자마자 도망쳐 갔다.
더 이상 인형 엑시트는 인형의 모습이 아니었다. 머리가 찢어져 비대칭이 된 모습에, 카드, 동전, 털장갑, 신분증, 지갑 등이 자석처럼 엉겨붙어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 기괴한 외형. 엑시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듯 아가리에서 끈적한 푸른빛 타액을 흘리며 크르르 소리를 냈다. 마법소녀가 둘러싸고 대치했다.
무언의 신호와 함께 마법소녀들이 마법의 포화를 퍼부었다. 대형 엑시트는 자욱한 연기에 모습을 감추더니, 이윽고 먼지를 헤치고 뛰쳐나와, 닥치는 대로 턱에 걸리는 신호등과 다리에 채이는 자동차를 걷어차고 물어뜯으며 대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오후 8시, 크리스에겐 아직 그리 늦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급한 상황이었다. 다름 아닌 시내에서 엑시트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그릴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는 빨리 다른 마법소녀들을 돕기 위해 초조한 얼굴로 지하철을 타고 있었다. 그때였다. '쿵' 지하철에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이건 엑시트...맞지?" "그래. 우리 위에 있어." 크리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지하철은 역에 멈추었고 크리스는 빠르게 나가 가장 가까운 입구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런 크리스 앞에는 피해를 입은 거리와 거대한 엑시트의 뒷모습, 그리고 추격하는 마법소녀들이었다. "변신!" 빠르게 변신한 레몬거너는 자신도 함께 급하게 엑시트를 쫓아갔다.
흉포한 발걸음을 내딛고 코너를 돌 때마다 점점 커져가는 괴물의 몸집. 그리고, 그 괴물에게 달라붙어 합쳐지는 것들은 모두⋯⋯ 누군가의 분실물이었다.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고 가게에 드나들며 떨어뜨리고 잃어버리는 모든 물건들. 그 주인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건들. 그 물건들이, 분노한 이성처럼 대로의 가운데에서 파도와 같이 살아나 거리를 휩쓸며 질주했다.
───키리리리리리리릭!
자판기 밑에서 동전들이 튀어나와, 건물들의 유리를 부수며 괴물의 몸에 달라붙었다. 마지막으로⋯⋯ 레몬 거너의 탄환에 맞아 깨진 장난감 기계가, 찌그러져 터진 눈에 들어가 박혔다. 성장을 끝마친 엑시트는 건물 3층 정도의 키가 되어 있었다. 도시 가운데 사이렌이 바쁘게 울렸다.
스테이지 원 보스 래빗 홀
이 엑시트를 만들어낸 거부의 감정은 '잃어버리기 싫다'는 사람의 감정이 아닌 '버림받기 싫다'는 물건의 감정. 이런 일은 가능할 리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건은 감정을 가질 수 없으니까. 하지만, 기적처럼⋯⋯ 또는 저주처럼, 잃어버린 것들은 살아나 왔다.
래빗 홀은 도시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끌어당겨 자기 쪽으로 '발사'하며 몸집을 불려 나간다. 이 인력은 몹시 강력한 것으로, 자동차 시트 밑에 깔린 명함이 자동차를 통째로 끌고 올 정도로 위력적이다. 이로 인한 시민의 피해를 수습하고, 거리를 파괴하는 엑시트를 처치하는 것은 마법소녀들의 몫이다.
"하아..하아.." 레몬 거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엑시트는 도대체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여기저기 날아오는 잔해를 회피하며 급히 싱글 블래스터 모드로 변형한 레몬 거너는 최대 화력의 마력탄을 6발 생성해 장전했다. 그때, 그릴이 급히 막았다. "잠깐, 크리스! 그래도 너무 무리하는건 좋지 않잖아!" 레몬 거너도 이 정도의 마력탄을 생성해 싸운 적은 없었기에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손의 떨림이 멈추었다. 각오한 것이었다. "지금 마땅히 방법이 없잖아! 죽지 않을 정도로는 할게." 레몬 거너는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엑시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폭발, 상당한 규모의 폭발이 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