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맞긴 한데요. 그렇지만 그냥 후배하고 싶으시면 하고 싶다고 하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애교를 부리기 위해 골몰하는 체슬리를 보는 사민이 급격히 성의를 잃었다. 무슨 소리냐, 눈에 깃든 총기가 사라지고 음료수를 잡던 손이 탁자위로 내려갔으며 비스듬히 고개가 떨구어졌다는 소리다. 흔히들 짜게 식는다고 표현한다. 아무리 그래도 귀여워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람한테 참으로 너무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저도 여기 온지 한 달 안됐는데요... 그리고 저희 직장은 생각보다 개성 강하신 분들이 많으셔서 이런 이미지야, 뭐,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애초에 상하관계 없다고 하셨고..."
사민은 풀이 죽은 얼굴로 꿍얼꿍얼 자신의 사정을 풀어나갔다. 체슬리의 생각과 달리... 사민은 상당히 후레로 일을 했고 진지한 상황이 목전에 들이밀어지지 않는 이상 편한 길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조만간 크게 혼이 날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이런 사소한 걸로 막 상사 불러서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면... 막 직장 관계에 차질이 생기고... 망신도 당하고... 상심이 되고... 눈물도 날 것 같고..."
힐끗힐끗 체슬리를 보며 못할말 할말 다하고 있다. 하면서도 입꼬리가 작게 꿈틀거린걸 보아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냅킨을 받아들고 입가를 닦다가도 툭 내뱉는 게 아닌가. "안 이른다고 약속해주시면 마음이 조금 덜 슬플 것 같기도... 겸사겸사 사과도 해주시고." 아주 그냥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한다. 보기와 다르게 기가 아주 세다.
"..."
사민은 큐브가 뭐인지 가르쳐달라는 말에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한창을 꾸물거렸다. 아무래도 큐브 활용이 영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턱, 사민의 주먹이 테이블 위로 올라간다.
"너클이요."
묘하게 뻘쭘해보이는 얼굴이다. 사실 그냥 말로 알려주면 되는 것을 굳이굳이 선보인 것이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너무 오버했나싶어 눈동자가 잠시 돌아간다. 돌아가던 시선이 체슬리에서 멈춘다. 어색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몇 덧붙였다.
"칼을 선택하신분들도 계시고, 삼단봉도 있고... 저는 그냥 능력 활용 쪽을 생각해봤어요."
천사민: 305 어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나요 흐음 상큼한 것보다는 달달한 걸 좋아할 것 같네요. 바닐라라든가 초코바나나라든가 아무튼 달달한 계열 아이스크림? 사실 주면 주는대로 잘 먹습니다. 바밤바나 누가바처럼 옛날 아이스크림도 넙쭉넙쭉 잘 먹는 편.
315 생모에 대한 생각 조금... 무서워합니다. 딱 엄한 학부모 느낌 강해서 잡혀서 산 느낌. 아빠보다 엄마가 더 엄한 편이기도 하고 ㅎㅎ 아무래도 군인이시다보니까 각잡혀 삽니다.
062 선호하는 분위기는? 무슨 분위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직장분위기로 생각하면 덜 경직되어있고 잡담도 가끔 오가는 분위기를 좋아하겠죠? 너무 사무적인 곳에서 일하면 오히려 힘들어할 듯... 삭막한.. 현대 사회.......... 말라가는... 사민... 정도의 이미지려나요
사민이 지은 표정은… 정말로 짜식어버린다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얼굴이었다. 이건 그게 잘못한 게 맞다. 29살 씩이나 먹고선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는지. 찬바람이 쌩쌩 불어올 것만 같은, 아니 차갑지만 예의상 직접적인 냉대만은 참아주는 사회인으로서의 따스함이 공존하는 그 배려에 그는 내다버린 양심을 조금 정도는 주워담기로 했다. 내내 약올리던 태도를 잠시 접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봤자 팔짱 끼고 툴툴거리는 말투라서 하나도 반성 안 한 것 같지만.
꿍얼꿍얼 이어지는 변론 시간을 그는 잠자코 경청했다. "아하, 그렇지."라고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도 해 주면서 말이다. 그러다 상사한테 찍혀서 망신살도 뻗치고 눈물도 난다는 부근에서는 기어이… 다시 양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은 끝날 것 같지가 않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엥? 사과는 안 할래. 적당히 일해도 봐주니까 후배가 좋다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저기요~~ 최 경위님~ 천사민씨가 일 대충대충 하겠다는데요~!!!!"
그는 급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나팔을 만들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위층 방향으로 외쳤다. 폭포 밑에서 도라도 닦았는지 목청이 장난이 아니었다. 현재까지는 그들 외의 다른 손님이 없기는 했지만 공공장소에서 이러면 민폐다. 지금 있는 장소가 카페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포털 만들어서 정말로 사무실에 다이렉트로 외쳤을 테니 카페 진상이 되는 쪽이 차라리 낫긴 했겠지만 말이다. 사민이 그를 뜯어말렸든, 본인이 즐거울만큼 하고 그만두었든, 어느 쪽이든 그는 그 짓을 마치고선 히죽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 멋있네. 그걸로 나 때릴 거 아니지?"
그는 아마 매를 알아서 버는 쪽인 듯싶다… 끝까지 깐족거리다가 뒤늦게 원래의 화제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