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감 없는 떫음이 느껴지는 표정에 실실 입꼬리가 오르려는 걸 머리에 힘 줘서 참는다. 일부러 계속 놀리기보다는 적당히 끊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힘을 주었다고는 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지금까지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그는 웃음 참기엔 이력이 나 있었다.(귓가에 속삭이는 고무닭 따위에 표정이 변했다간 바닥을 굴러야 했던 뼈아픈 경험 탓이었다…….)
"그럼 너보다 나이 많지만 귀여운 사람이라면 챙겨주고 싶어지나?"
흠, 어떻게 해야 귀여워 보이지? 그는 퍽 진지해보이는 얼굴이 되어선 턱을 짚고 잠시 고개 숙여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장난이고."라고 말하며 손 치웠지만. 주책 맞은 짓 잘 한다지만 이 나이 먹고 진심으로 귀여운 척 하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징그러웠던 것이다. 그는 테이블 위에 두 팔을 가볍게 올려두고 편한 자세를 했다.
"와, 아무리 그래도 따끈따끈한 신입인 날 두고 그런 소리를 하면 직장 이미지 어떡하려고. 최 경위한테 이른다?"
황당한 목소리와 함께 한쪽 눈썹이 슥 끌어올려진다. 껄렁거리는 표정으로 하는 말이란 게 선생님께 이른다는 애도 아니고 무슨 유치한 소리인지. '설렁설렁 하면 죽는다', '너는 일이 장난이냐' 같은 꼰대의 진심이 스멀스멀 올라서는 아니고, 사민이 말은 저렇게 했어도 지금까지 위그드라실에 있는 걸 보면 어련히 잘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잘 대화하던 사민이 돌연 기침을 해대자 그는 다른 것보다도 먼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슬쩍 입가를 가렸다. 웃을까 말까한 저 낯짝이 대놓고 웃는 것보다 더 얄미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냅킨을 건네줬으니 참작해준다면 좋겠다.
"그럼 뭘로 정했는지만 가르쳐줘. 참고 좀 하게."
평가를 들어보지 못한다니 조금 아쉽지만 쓸 일이 없었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애초에 무기를 써야 할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아직 못 정해서 물어봤지. 대충 편한 걸로 할까 싶기도 한데 정말로 막 하기엔…… 뭐냐, 일할 때 대충은 안 하는 주의라서."
말투로 보아하니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나도 맞춰서 장난조 같은 말투로 말했다. 그래도 이런 대화까지 스스럼할 수 있을 정도로 허들이 낮아진게 만족스럽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꽤 들이대는 편이기는 하지만 연우씨 정도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푸쉬한적은 없는데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조금의 오기였을지도.
" 번호 고마워요.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 괜찮죠? "
과하게 할 생각은 없고 그냥 심심할때 한번 연락해보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사실 내 핸드폰은 청해시로 내려오면서 꽤 조용해졌다. 친구들과 가끔 안부를 주고 받는것과 동생들이 언제 오냐고 칭얼대는 메세지가 오는 정도. 집에도 최소한의 가구 밖에 없어서 삭막한데 핸드폰까지 조용하니 집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누가 사람 죽어있다고 신고하는거 아닌가 몰라.
" 어릴땐 중2병을 한창 앓았었죠. 그때의 잔재가 아닐까요? "
한창 흑화(?)했을 때가 있었지. 나름의 흑역사인데 다행인건 그때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 정도. 사실 흑역사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창피하지는 않아서 농담식으로 사용할때도 있었다. 내가 말하면서도 좀 오글거린단 생각을 하기도 했고.
" 익스퍼라 차별을 받았고, 그것이 자기 혐오로 이어지고, 그 혐오를 자기와 같은 익스퍼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실 케이스가 큼직하긴 하지만 정작 잡힌건 두명이라 증거가 될만한 것도 없고. "
둘 다 하는 말이라곤 신을 부르짖는 것뿐이니. 들으면 들을수록 오리무중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게 순찰구역을 천천히 운전해나가고 있으니 입가에 빨대가 다가온다. 옆을 살짝 보니 내 컵을 들고서 마시라는듯이 건네주는 당신을 보고선 한번 크게 빨아먹은 뒤에 말했다.
가진 거라곤 고작 신으로 숭배한다는 점과 조직일 거란 추측, 그리고 목적이 위그드라실의 궤멸이 아니며 그건 계획에서 방해되는 존재를 대충 치워내려는 수작에 가깝다는 것이다. 킹메이커와 가장 밀접한 힌트는 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 점은 존경스럽네."
그는 모든 걸 걸어잠그고 숨겼다. 지금 이름도 본명이 아니고, 그가 평소 입던 옷 스타일, 심지어는 식습관마저 다 바꿨다. 그는 원래 니트나 터틀넥과 같은 옷을 즐겼다. 먹을 것은 무화과 잼을 바른 호밀 토스트를 좋아했고, 담배는 멘솔이 아닌 오리지널을 좋아했다. 머리도 땋고 다니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자신의 과거를 숨겼고, 신변을 숨겼다. 틀어박혀 숨고 싶었던 그에게 있어서 케이시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경외심이 드는 부류였다. 그는 죄인이다. "당연하지. 예성 씨 잔소리 생각보다 매섭다구."
베개까지 구비했으니 그런 잔소리를 들어도 딱히 변명할 건 없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한번 기억을 읽고 나면 얼마나 피곤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남의 기억을 읽어서 평생 소장해야 하니 뇌가 당연히 바삐 일하겠지! 그래서 그는 푹 잤다. 예성 경위가 그를 노려보더라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 습격은 아니라고 봐."
그는 쪽지 내용을 기억했다. 위그드라실 팀을 괴물이라고 칭하고, 이 세상을 같은 괴물인 자신이 되돌리겠다는 내용. 그는 녹아버린 얼음이 조금 차오른 잔을 들어올려 빨대 없이 쭉 들이키고는 딸려 들어온 작은 얼음 조각을 씹었다.
"킹메이커의 소행이 아닌 제 3자의 소행이야. 만약 습격이 킹메이커의 짓이었다면 자신을 괴물이 아니라 신이나 신의 사도라고 칭했을 거야. 막말로 컨셉질에 심취한 녀석이 하나 더 있다고 봐야지."
그는 시큰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 말을 던졌다. 컨셉질 하는 범죄자는 하나로 족한데 둘이나 있다. 요즘 말로 뭐라고 하더라? 중2병? 하여튼 이상한 말 많다.
"원래대로 돌린다는 걸 봐서 적어도 제 3자의 목표는 정확하지. 복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원래대로 돌린다는 말이 나오겠어? 뭔가 잘못 됐고, 그 뿌리를 캐거나..아, 한가지 더 있긴 해. 망상병자의 소행일수도 있지."
그는 다시금 자잘한 얼음 조각을 날름 삼켰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집요하게 쫓고 귀찮게 굴 적이 늘어난 건 확실하지."
두뇌 풀 가동. 그녀는 3만개의 대화패턴중 당신을 당황시킬 답을 심사숙고하여 고르고 있었습니다.
"저한테 반했네요-?"
심사숙고는 했지만 대답이 심사숙고와 거리가 먼것은 기분탓. 그녀는 이거 어쩔 수 없네~ 같은 느낌의 톤이었습니다만 본인도 이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여느때처럼 돌아와서 기지개를 켰습니다. 꽤 길었던 순찰길도 신호가 막히지 않으니 슬슬- 이라는 느낌이네요. 그러다가는 개인적으로 연락해도 되냐는 말에 그녀는 의아한듯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데이트부터 일단 공적이지 않잖아요."
어차피 그때 보려면 또 연락해야할텐데. 이제와서? 라는 생각에 그녀는 당연한걸 묻는다며 어깨를 으쓱였습니다. 그녀가 자의로 번호를 알려주고, 또 연락이 가능한 인물들이 4명 정도밖에 없기에. 그녀의 핸드폰은 사실 검색기계 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연락한다고 뭐가 바뀔린 없다 생각하고 있죠.
"그랬나요..."
측은. 한 표정이었는데 장난이었는지 곧 평소대로 미소를 짓고는 듣기로는 한창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런거니 이상한것도 아니라며. 딱히 당신의 과거를 아는건 아니었지만 아마 별거 아니었겠거니 하고 웃었습니다. 오히려 저렇게 말을 하는편이 실제론 별거 없었다는 반증이라고도 하니까요.
"차별과, 혐오인가요. 조금 비슷한 사례가 없나 보긴 해야겠지만.."
익스파에 대해 완벽한 보안력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려나. 그녀는 참고할 자료가 있을지 생각하며 입술을 물었습니다. 애초에 자기 혐오니, 그런걸 들어도 이해가 안되는 자신도 문제였지만요.
"별 말씀을-?"
당신이 한모금을 마시자 다시 홀더에 컵을 내려놓고 그녀는 주변을 살폈습니다. 여전히 평화로운 거리.
트롤리 딜레마에 대처하는 여명이의 자세: 결국 본인이 최종결정을 한다. 최소한의 피해라는 이유를 걸고. ...슈퍼파워 같은게 있었으면 열차를 멈추거나 사람을 바로 구하면 되었을 텐데 여명이는 불가능해 힝잉잉 *트롤리 딜레마란? 대충 찾아보자. 대충 도덕성에 관한 테스트 겸 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