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슬리가 크게 입을 벌리고 소리지르는 바로 그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카페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체슬리와 사민에게로 쏟아졌다. 사민의 얼굴은 시뻘개지다가 석탄처럼 까매지기도 했다. 종래에는 아주 하얗게 질려버려서 어버버, 어쩔 줄 몰라했다. 이건 사내 괴롭힘이다. 용서하지 않겠다, 체... 체... 체키라웃! 사민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민 인생 20년, 감당 불가 강적이 인생에 나타났다. 댕, 하고 종소리가 들렸다. 이성의 시대의 종막을 알리는 무자비한 선고였다.
호칭이 바뀌었다. 반말도 사라져버렸다. 사민은 힘차게 체슬리를 붙들고 마구 흔들었다. 급기야 입을 막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참고로 사민의 손은 방금의 충격으로 몹시 축축하고 차가웠다. 무슨 말이냐면, 이 손으로 입이 막힌 체슬리가 아주 불쾌해졌을 거란 소리다. 미끌미끌...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게 우리가 아는 정의로운 경찰들의 싸움이 맞나?
"보, 복수할거예요."
나름 정신을 차린 듯 고수하던 존댓말로 돌아와있다. 있는대로 인상을 구기고 곧 울 것 처럼 서럽게 굴고 있다만, 사실 사민의 잘못도 아주 없지는 않다... 푸스스 힘빠진 행사장 풍선처럼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사민. 초췌해진 낯짝으로 일어났다. 사민의 눈은 남들보다 새까만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같이 노려볼때 특히 음습해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코를 킁킁거리며 체슬리를 노려본다. 손에 들려있던 너클을 주섬주섬 집어넣었다. 집어넣는 과정에서 빤히 너클을 쳐다봤는데, 이걸 당장 체슬리를 향해 던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다.
"살아있는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과연 경찰이 할 말은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사민은 맞은편 자리에 앉지 않았다. 다만 사냥감을 낚아채는 매처럼 잽싸게 블루베리 스무디를 품에 안았다. 곧 떠날 자세였다. ...커피에 침 뱉어서 주마. 침이 뭐야 된다면 하이힐-사민은 하이힐을 신지 않지만- 굽으로 섞어서 주마... 부글부글 끓는 속을 꾹 삼키며 사민이 총총 걸음을 옮겼다.
>>776 일단 캐릭터들의 시간으로가 제일 중요하니까욥! 선관에 관해서 간단한 안내문구 정도 만들어놔도 괜찮을까용? 신주한테 말하려다가 역시 요즘 너무 바쁘신거 같은데 무리시키는거 같아서요. 아 그리고 날짜는 어떻게 될까요? 스레내 휴가 시간도 10월 후반~ 정도인가요?
대답하는게 나를 당황시키려고 한다는 의도가 훤히 보여서 나는 음,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뜸을 들였다가 대답했다.
" 대단하시네요. 그런것까지 읽어버리시다니 ... 저 반해버렸나봐요. "
연우씨가 조금 예뻐야죠, 안그래요? 라고 덧붙이면서 다시 빨간불에 정차시킨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경찰서까진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순찰 시간도 대충 잘 맞췄으니까 이대로 남은 코스를 돌고 들어가면 될듯하다.
"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그럼 자주 연락할께요? "
그렇다고 귀찮게 굴지는 않겠지만.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 오른눈으로 윙크를 하고선 다시 전방을 주시한다. 금방 파란불로 바뀌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한다. 나도 일단 집에 가면 핸드폰을 잘 안보고 누워있는걸 선호하는 사람이라서. 평소에 부족한 잠을 채우거나 하는 사람이긴하다.
" 그런 표정을 지어버리면 제 과거가 너무 불쌍해지는데요. "
다들 흑화하는 과거쯤 하나씩 있는거 아니야? 그런거 나만 갖고 있는거야?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동생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중2중2 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이불킥할만한 생각이지만 ... 그녀도 장난이었는지 평소의 표정으로 금방 돌아간다.
" 일반적인 프로파일링이랑은 케이스가 달라보여서 ... 연관점이 별로 없지 않을까 싶어요. "
거기서도 단서가 나온다면 좋겠지만 무언가 이상한 배후가 섞여있어서 일반인들의 행동 양식과는 거리가 좀 있어보였다. 저번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렇게 신을 얘기하는데도 세뇌 당한 흔적 자체가 없다고 했으니.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건드리지 않고서 그런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게 내 입장에선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 슬슬 거의 도착할때가 됐네요. 오늘 순찰도 별 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저번엔 소매치기를 만나서 잡느라 엄청 뛰었다니까요. "
순찰차로 퇴로를 막으니까 반대로 도망가는데 어찌나 빠르던지. 진짜 마음 같아서는 능력을 쓰고 싶었지만 주변에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전속력으로 뛰어서 겨우 잡았다.
"사실 그 점에선 무척무척무척-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어. 아무튼 그놈의 조절이란 게 가능한 팀원으로 구성되었으니까 설령 두 글자 성씨 한 글자 이름을 지닌 누군가가 농땡이를 치는 일이 있어도 팀은 어찌저찌 굴러가겠지."
유진의 요지는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신은 그런 것은 티끌만치도 신경쓰지 않는단 양 맥락에서 얼마간 비낀 헛소리를 하며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든 궐련 끝 작은 불은 꺼졌고 마지막까지 짙은 증기를 흩뿌리던 전자담배도 제 역할을 완수하고 돌아간다. 신은 농담이라며 짓는 밝은 미소를 보며 건들건들 엉터리 경례를 해보였다. "예엡, 설레거든 내일 공개 고백이나 해주시고."
"어라, 그러게. 한 25시간 32분 정도가 지났나?"
어깨동무 한 채 슬쩍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턱을 짚었다. 새까만 눈이 시답잖은 고민에 가늘어진다. "아쉽구만... 어깨 탑승감도 딱 좋았는데." 시답잖은 고민만큼 시답잖은 소리를 하지만 독고신이 아무리 해도 사회적인 눈치마저 기르지 못한 치는 아니었으므로. 읏차- 하며 뒤로 돌자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어깨동무는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래도 우리 하늘 같으신 대장이 이까짓 일로 불티 날리게 화낼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안심하고 돌아가고, 기왕 돌아가는 거 우리의 눈물 나는 우정이나 사방팔방 과시하면서 돌아가자는 걸로 하자고. 불만 없지?"
애초에 상대의 말대로라면 범인들의 기억부터가 온전하지 않을뿐더러, 그 정도의 신앙이라면 아마 절대로 입을 열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일단 한번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믿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도로 제자리걸음이다. 막막하기 그지없는 기분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칭찬 맞지? 기분 좋네. 고마워, 자기!"
그녀라고 처음부터 당당했던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뭔가 극적인 단계를 거쳐 극복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었다. 다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분노가 두려움을 넘어섰을 뿐이다. 만약 그 사실을 기를 쓰고 숨기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어야만 했다. 그녀가 아니라. 재수가 없어서 웬 미친놈들한테 엮였을 뿐인데 그게 왜 내 잘못이람?
"세상에! 우리 이따 큰일나는 거 아닌가 몰라!"
물론 이미 엎질러진 물, 나와버린 순찰이었으니 이제 와서 걱정한다 하더라도 바뀌는 건 없겠지만. ...이따 크게 혼나지 않으려면 슬슬 돌아갈 타이밍을 잡아 봐야 하려나? 어쩌면 셀린의 날카로운 부리에 마구 쪼일지도 모른다. 으악!
"그러니까 킹메이커로도 모자란데 또 다른 적이 있다는 거야? 뭐 이리 적이 많아, 우리?"
창설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팀에 벌써부터 컨셉질 범죄 세력이 둘씩이나 꼬이다니, 익스퍼 범죄자를 상대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신의 사도와 괴물을 동시에 상대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어디서 원한을 사도 단단히 사 익스퍼 범죄자들 사이에 단체로 좌표가 찍혔다고 봐도 될 듯했다. 아니,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중2병 범죄자가 이렇게나 많았던 거야? 이런 건 경찰 되기 전에 미리 알려줬어야지!
"가뜩이나 킹메이커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데 다른 쪽에 대한 정보는 현재로선 거의 없다고 봐야겠네. 현장에 남은 건 웬 이상한 쪽지밖에 없으니..."
거기다 플러스로 차예성 경위의 두통 정도가 되려나. 그쪽에게는 참 안된 일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 찾아가서 몰래 치료해줄 걸 그랬나? 그랬으면 이따가 땡땡이친 게 걸려도 어느 정도는 참작의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여러모로 글러먹은 생각이었다.
"상부에는 보고한 거야?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팀 전체의 초점을 그쪽으로 맞춰야 할 텐데."
이제 기껏해야 한두 입 정도밖에 남지 않은 케이크를 괜히 포크로 쿡 찔렀다. 분명 진지한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줄어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의도를 읽혔다. 비록 다른 사람의 생각은 못 읽더라도 대화의 흐름상 바보라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녀의 의도는 통하지 않은듯 당황의 당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
장난치는걸 알고 있을텐데 그녀는 화끈거리는 볼을 진정시키며 뭐라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차가 멈추지도 않았는데 라떼를 스틱으로 쪽 빨아먹고 나서야 그녀는 뺨을 가리며 시선을 반쯤 돌릴 수 있었습니다.
"바쁠때 아니면 답장 정도는 하니까요."
그 사이에 차가 멈추고, 다시 움직이고. 그녀는 당신이 윙크하는 모습에 화풀이 하듯 당신의 빨대를 밀어 푹하고 볼을 찔렀습니다. 당연히 차가 멈춰있는 사이에 찌르곤 화풀이 종료. 어쨌든 그녀와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는게 힘든거고. 되기만 하면 그녀는 답장은 꼬박꼬박 해주는편입니다. 다만 먼저 연락은 안하지만..
"과거는 사람이 아니라 불쌍하지 않아요."
어느정도 회복된 그녀는 다시 가벼운 농담을 하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오늘도 평화롭게 순찰이 끝나가는 분위기. 익스퍼라던가, 그런게 없다면 정말 평화로운 일이지 않을까...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가는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솔직히 당연히 세뇌쪽일줄 알았는데. 사람의 마음 자체는 정말로 순수하게 유혹했다는 걸까요. 그녀는 원래 사람의 마음이란 힘들지만 저런 사람들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된다며 혀를 찼습니다. 범죄 자체도 이해가 안되는데 신을 믿어서 범죄를 저지르다니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소매치기인가요? 저는 요 근래는 순찰하면서 한번도 범죄를 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물론 다른 이들의 보고는 간간히 받았지만. 그녀 본인으로선 요 근래 정말 편하게 순찰을 돌았던거 같습니다. 그녀는 간단히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말하면서 당신을 바라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