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분들 중에서도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이 팀의 총책임자인 그 대머리도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면 얼마나 좋아. 진짜."
대체 무슨 말을 듣는 것인지 소라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작게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중얼거리다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허나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유우카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고, 아마 다른 이들도 휴가가 싫으니 휴가를 반납하고 일만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이는... 거의... 없을 거라고 그녀는 애써 생각했다. 아예 없다고 하기에는 일을 정말 너무 열심히 해서 걱정이 이도 있었으니까.
"그럼 한번 제대로 추진해볼게요. 사실 벌써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전 포상휴가를 줄거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해요. 싱크홀을 막아내서 더 커질 수 있는 재산피해 및 인명 피해를 막았고, 비록 한 명은 구할 수 없었지만... 인질 699여명의 목숨을 구했고, 어쩌면 정말로 대형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폭발마저 막은 거니까요. 여러분들이 한 일은 그 정도의 일이에요."
그게 어디 일반 경찰들이 할 수 있는 일일까. 일반 경찰들은 절대로 쉽게 대응할 수 없는 문제였고, 익스퍼들로만 모여있는 이 팀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하며 소라는 웃음소리를 내며 이야기했다.
"휴가 기간동안 정 할 게 없고 심심하면 연락해요. 하루 정도 시간 내서 같이 놀 수도 있으니까. 그 기간 동안에는 다른 익스퍼 경찰들이 조금 더 힘을 써주기로 했어요. 이번에 우리가 일을 해결하는 동안 다들 아무 것도 안하고 대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 동안에 무슨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소라는 정말로 밝은 목소리를 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사실 팀원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건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아직도 약간은 느껴지는 거리감을 이젠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할때가 온 것 같다.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정말 그렇게 느꼈으니까 하는 얘기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드릴께요. "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확실히 추파를 던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 그렇게 느꼈으면 오해라고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게 얘기했고, 상대방이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를 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 아직까지 경찰 얼굴에 먹칠할만한 일은 안했으니까요. "
아직까지는 말이다.
" 그래도 언젠간 벗을꺼에요. 저라고 이렇게 눈에 띄는 가면 쓰고 다니는게 좋을리는 없으니까요. "
사실 특징적인 머리색과 눈색 때문에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 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내 나름대로의 방어수단이라고 해야할까 혹시 모르잖아, 라는 약간의 도피성이라던지. 물론 가면을 벗기전에 그녀석이 날 알아봐도 상관은 없었다. 그냥 내 각오가 담긴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 그래도 혹시 차에 흘리는 것보단 여기서 빠르게 먹고 가는게 더 나을수도 있어요? "
땡땡이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저 자세. 예전부터 생각하지만 정말 워커홀릭이 아닐까 싶었다. 저번엔 본인이 부정했지만 지금 내가 봤을땐 ... 진짜 워커홀릭인데.
그랬다간 눈치 없다는 소리 듣기 딱 좋다. 지금까지 나는 눈치 없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이 없을 정도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눈치를 가지게 된 계기는 좀 좋지 않지만 결과만 좋으면 어쨌든 다행이다. 어제 잠을 잘 못들어서 그런가 약간 피곤해서 하품을 작게 한다.
" 그렇게 경찰이 안되었으면 나쁜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능력도 능력인지라. "
한번 손을 담구면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하더라. 리스크에 비해서 얻는게 너무 많다보니 그 유혹을 쉽게 떨치지 못하고 한번만 더, 한번만 더, 그러다가 꼬리가 잡히고 경찰에게 잡히는거지. 그들의 변명일수도 있겠지만 잡혀온 대부분이 그렇게 말하곤 했다.
" 지금은 딱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더 예쁜 가면이라 ... 일단 들어보고 나한테 보여주면 결정해볼께요. 딱히 가면 디자인에 신경 쓰는건 아니라서. "
사실 정말 평범한 가면을 쓸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건 가리는 면적이 너무 작아서 그나마 제일 무난한 여우가면을 선택했다. 이것도 주문제작으로 화려함을 최대한 뺀 것이다.
" 윽 ... 네에. "
스타카토로 세박자. 그 세글자에 나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고 꼬리를 내렸다. 말없이 픽업대에서 음료를 받아오는 그녀에게 다가가 내 몫의 음료수를 들고와 카페를 나섰다. 거리로 나가자 경찰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가면을 쓰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선이 한번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그대로 운전석에 탑승했다.
그녀는 팀의 총책임자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유우카도 눈으로 본 적은 없어서, 그의 이미지만 아리송하게 머릿속에 떠오를 뿐이었다. 대머리에 배가 나오고 항상 양복차림에 돈이 많아보이는 기름진 피부. 팀원의 스태미나보다 근무성과를 더 부르짖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고. 악역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높으신 분이란 그런 분들이었다.
"한 명..."
실은, 맞다. 위그드라실은 전부를 구한 것이 아니다. 희생자는 단 한 명. 그리고 그의 사망이 용의자의 트리거가 되어 폭주상태로 이끌어냈다. 위험에 처한 모든 이를 구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 하지만 언제나 그것을 염원하며 현장에서 다투고 있다. 그 이상의 사상자를 내지는 않았지만, 경찰이라곤 해도 위그드라실의 대부분의 팀원은 익스파를 사람을 제압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해본 경험은 거의 없을테니 필사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산 사람은 산 대로, 죽은 사람은 죽은 대로, 그것이 맞는 일이라고... 유우카는 생각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휴가 추진..."
모처럼 휴가 얘기가 의욕스럽게 다가왔는지 유우카가 한발짝 다가서며 말했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이렇게 말 해놓고 후일 휴가가 취소된다면 정말 실망할 것 같았기에.
시민들의 존경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당신의 말에 어느정도 이해를 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였지만 이내 눈을 굴리며 다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물론 구조나 도움을 받은 시민분들이 감사를 표하는건 좋은 일이죠~ 그런 소소한 고마움만으로도 이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보람참과 만족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은... 뭐라 했던가, 한국쪽의 속담으로 그런 말이 있었나?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봇짐 내놓으라 한다. 라던가? 아무튼 그런 사람들 천지였다. 가령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으니 나랏돈 먹는 공무원들은 당연히 자신을 지켜주어야 마땅하다는것,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소 어긋난 견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 그저 한 지역의 경찰로서의 본분을 다할 뿐이니까요. 감사도, 비난도 솔직히 전 신경쓰지 않아요~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것 뿐이니까요."
때로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었다. 그저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를뿐, 그에 따르는 응당한 보상엔 딱히 관심이 없는 이들...
"생각해보면... '일반적'이라는 것의 정의가 대체 뭔지 전 솔직히 잘 모르겠단 말이죠~"
분명 유동성이 심한 성질의 단어었다. 마치 모두가 이상한 와중에 한사람만 멀쩡하다면 그 한사람이 일반적이지 않다 명명하는 것처럼 지극히 상대적인 속성이었다.
"싫어하진 않죠?"
그렇게 말하는 그녀였지만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아보였다. 그렇다고 대놓고 찡그린 것도 아닌 무표정에 가까운 눈빛과 아주 살짝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이까지. 그 모든 것이 중립적인 반응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그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래도... 동생분들은 좀 만나보고 싶긴 하네요~ 분명 착한 아이들일테니까요."
설마 일일히 번호까지 매겨야 할 정도로 많은 수일까 싶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기에 그녀는 길게 첨언하진 않았다.
"그런가요? 흐음... 여긴 그정도로 먹성좋은 분들이 별로 없나보네요. 뭐어~ 전 딱히 신경쓰지 않지만요!"
기분 탓일까? 응원한다는 그 말에서 소라는 묘한 압력을 느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눈빛이 묘하게 흐릿한 것이 원인일지도 모르고, 휴가라는 중대사항이 걸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유우카가 휴가를 상당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소라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열심히 협상해볼게요. 추진도 하고."
만약 여기서 다음에 협상에 실패해서 휴가가 없다는 말을 해버리면 엄청나게 실망하는 것이 아닐까. 뒤에서 원망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중간관리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지휘자라고는 해도 소라보다 더 윗선도 있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단순히 이런 일들이 귀찮아서 윗선이 자신에게 지휘자를 떠맡긴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며 소라는 다음에 만나면 슬쩍 이야기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무튼 너무 붙잡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순찰 보고서도 써야할테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계란빵 마저 먹고, 좀 쉬었다가 해요. 커피도 있고 음료도 마시면서 조금 쉬엄쉬엄. 어차피 지금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들은 아니니까요.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경찰로서 출동한 것도 아니니까."
익스파 사건을 전담하게 되었기에 익스파와 관련된 사건이 없으면 위그드라실 팀은 상당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물론 사건이 벌어지면 반대로 그 어떤 팀보다 더 힘들어지기에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팀원들이 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쉬엄쉬엄해도 좋다는 지시를 내리며 소라는 슬슬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듯 하다 유우카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필요한 건 없어요? 순찰 때 있었으면 좋겠다라던가... 근무하면서 필요한 것이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