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숨기지 않았다. 당연히 결혼 해본 적도 없고, 그에 관한 생각도 해본 기억이 없지만 남들의 행복에서 비유해보면 이정도쯤 되리라 생각했다. 당신을 완전히 매구에게서 자유롭게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행복하다. 그와 함께 하고 있으니.
그는 점수 차감이 없으니 이 사람이 무슨 이유인가 싶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이러다 차감이라도 당하면 변명할 여지가 없기 떄문이다. 그는 주변을 두어번 둘러보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검지로 한번, 중지로 한번. 그러자 철컥 하는 소리와 문이 잠기더니 주변이 조용해졌다. 콜로포터스 마법과 머플리아토다.
"모든 교수님께선 저보다 훨씬 유능하시니 금방 풀고 들어오시겠지만 임시 방편으로 두었습니다."
하고 운을 떼더니, 잠시 어떻게 해아할지 고민하다 도박수를 던진다. "아가, 편히 있어도 좋다. 적어도 자비롭고 학생을 위해 비밀을 지금까지 지켜주시는 교수님께서 고발치는 아니하겠지." 하고는, 이 순진하고 나이는 그보다 8살 많으나 정신연령이 8살 어린 당신이 혹시라도 변신이 풀리면 그의 품에 안겨있을까 고민하며 인근 푹신한 자리에 내려두려 했다. 그의 종잇장같은 몸으로는 안아 올릴 수도..없..나?
"묻고 싶은 것이야 많습니다. 가장 먼저 저는 적어도 아ㄱ, 아니, 이 자가 기숙사 방으로 들어오기 전까진 매임을 몰랐습니다. 교수님은 매구의 추종자임을 어찌 알고 계셨습니까."
그는 잠시 시선을 굴려 작은 매로 변한 당신을 내려다본다. 천문학의 힘인가 싶어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점도, 추종자임을 알고 있다는 것도, 모두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걱정하는 건 마법부나 그 외의 인간의 범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사실대로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혹시나, 그에게 닿아있다면.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를 어떻게 부추길지 모르니. 그녀의 생각이 틀린게 아니라면 그 재앙은 아직 윤에게서 이용 가치를 보고 있을 터였다.
영락한 신 따위에게 뺏길까보냐. 천천히 감고 뜨는 눈커풀 뒤로 진한 소유욕과 반항기가 스쳐지나간다.
고개를 내렸다 들어 다시 윤을 본 그녀는 시선을 굴려 그의 목에 둘러진 목줄을 보았다. 장식을 겸한 동그란 고리는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 줄을 걸어 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의 존재와 윤의 말에 안심이 된 듯 그제야 옅게 미소짓는다.
"응. 선배가 약속해준다 했으니, 그거면 되요."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건, 아직까지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천히 변해온 것처럼 이것도 차츰 나아지게 될 거다. 언젠가는 고민 없이 그저 순수하게 믿는다, 고 할 수 있게 되겠지.
설령 그 믿음으로 인해 그녀마저 나락으로 떨어진다 해도 그와 함께라면 나락조차 천상이나 다름없을테니.
발목을 적시던 불안이 줄어 그만큼 기분이 나아진 그녀는 손을 들어 재차 윤의 목줄을 쓸어내리려 했다. 손끝으로 슥 쓸어, 가운데 걸린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부드럽게 당기며 작게 속삭였을터다.
"자리, 옮기지 않을래요? 안심시켜준 상을 주고 싶은데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요."
풋풋한 유혹을 흘린 그녀의 얼굴은 시선을 마주한 눈매가 둥글게 휘고, 엷은 화장 덕분에 평소보다 붉게 반짝이는 입술이 고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 레오, 퀴디치 나가? " " 어. 주궁에서 아니, 우리 학원에서 나보다 잘하는 몰이꾼은 없으니까 내가 나가야지. " " 으응. 그렇긴하지. " " 딱 보고 있어. 싹다 쳐죽여버리고 올테니까. "
주궁대표 몰이꾼. 레오의 포지션은 그랬다. 보통은 크고 힘이 센 선수들이 맡는게 보통이기에 몸집이 작은 레오가 몰이꾼을 맡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딱 한 번 레오가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보면 그 의문은 전부 해결되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드는 경기방식은 자신이 빗자루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방식이었으며 누구보다 대담했다. 블러저를 날릴 때에도 멀리서 날리는 것이 아닌 코앞까지 파고들어 날리기에 피하지 못하는 공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 여어, 주궁의 투견이시라면서? 실력 좀 보자고. 그런데 이렇게 작아서는 블러저로 맞추기도 미안하겠는데. "
모든 퀴디치 선수가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퀴디치 선수들은 혈기왕성하다. 신경전이 잦았고 그게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많았다. 자기가 속한 팀에 프라이드를 가지고있다는 좋은 증거인 셈이다.
" 어이. "
레오는 대놓고 자신을 무시한 상대 팀의 선수를 바라보았다. 키차이가 나서 올려다볼 수 밖에 없는 조합. 레오는 미소를 지었다.
" 퉤 - "
그리곤 얼굴에 침을 뱉었고 순식간에 몸싸움으로 번질..뻔했다. 당장 놓으라고 쳐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며 발버둥치는 레오를 친구들이 끌어내 뜯어말리고 상대팀에서도 상황을 무마시키려 뜯어 말리는 것으로 당장의 신경전은 끝이나는 분위기였다.
" 야, 다 들어봐. 방금 봤지? 저 새끼들이 우리 무시한거. 봐주는거 그런거 없다. 그냥 다 쳐죽여버려. "
정전에 모이기 전 일이다. 달링에게 같이 축제에 가지 않겠냐 물었더니 달링이 휙 고개를 돌리고 창가로 가버렸다. 그의 시선도 창가를 향한다. 기다리고 있던 늠름한 독수리를 노려보자 달링은 한마디를 뱉곤 휙 날아가버렸다. "복수."
"맙소사, 나의 여신아. 날 두고 바람을 피워? 오늘 지렁이 젤리는 없을 줄 알아. 아가에게 두 봉지 줘야지. 가자꾸나! 저 배신자는 놔두고 우리끼리 즐기면 될 게야." 축제의 첫날이라. 그의 인간 혐오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해도 여전히 사람 많은 곳은 꺼려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숙사 방에서 쉴 수는 없는 걸까 싶었지만 될 리가.
그는 1학년 때 무얼 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사람 많은 것이 싫어 꼼수를 썼던 것이다. 그래, 퀴디치는 빗자루와 대판 싸우기 때문에 하지 않았고, 수영은 할 줄 알지만 싫어했다. 알 훔치기는 해본 기억이 없지만 그닥 끌리지 않았다. 보물 찾기. 그 보물에 무엇이 있을 줄 알고! 저 멀리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독수리와 까마귀를 양 어깨에 얹고있는 후임을..저거 달링 아닌가?
"저 배신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떠올랐다. 그는 미로찾기를 했다. 그리고 축제 첫날 행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 짱박혀서 책이나 읽다 적당히 길 찾아 나왔다. 이번에도 그럴까 싶어 그는 느릿느릿 미로찾기 잔을 향해 종이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