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금요일도 굳이 6시 시작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일단은 평일이고 6시면 퇴근 준비나 저녁시간 겹쳐서 바쁠 수도 있으니. 그리고 모이기 힘든 시간 같아. 저번주도 6시인가 그랬는데 정작 시작한건 7시 넘어서인가 그랬어서 솔직히 불편했거든. 기다리는 시간이 이랬다 저랬다 해서 뭔가 하기도 애매했고...
당신의 간질간질한 호칭들을 들으며 주양은 다시 미소지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당신에게 두지 못한 상태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이 어찌 그 호칭들에 대해 익숙해질 수 있겠는가. 말로는 언젠가 적응하겠다며 호언장담하기는 했으나 사실상 가능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관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될 줄 놀랐을 때의 이야기가 함께하니 더더욱 그랬다.
"그때는~ 뭐랄까. 음. 우리 여보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그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니까~ 나한테도 다. 당연히 그러는 줄 알았던거지! 그게 진심이었다면 오히려 만족일지도 모르지만?"
이윽고 주양의 미소가 다시 요망함을 머금고 지어졌다. 졸업할 때까지 당신의 인내심을 어떻게 갉아먹으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이 관계를 이어나가는데 있어서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 좋은 떡밥을 하나 주워먹은 기분이었다. 애초에 당신이 지금까지 잘 참아내고 있고, 자신을 생각하기만 한다면~ 하는 이야기였으니 주양이 뭔가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내용이기는 했으나 그런건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당신의 짧은 입맞춤에 호응하며, 당신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만족스러울 만큼 길지 못한 입맞춤이 끝나고, 역으로 자신을 애타게 만드는 말이 들려오자 주양은 묘하게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로가 이해하고 있는걸 말할 필요는 없다면서! 완전 힝이야 힝. 또 이렇게 나만 애타게 만드시겠다는 거지, 그치?"
밉지 않을 만큼만. 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진심을 조금 담아서 퉁퉁거리고는 당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러는 모습 하나하나가 좋았다. 그리고 이런 대화 하나하나가 좋았다. 항상 자신이 당신을 애타게 만드는것보단, 이렇게 자신이 애타는 순간이 있어주는 것이 좋다. 턱을 감싸쥔 상태라서 고개를 파묻고 어리광을 부리지는 못했지만, 대신 평소 하던대로 고압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여유롭게 미소지었다.
여전히 낯간지러운 호칭을 뻔뻔하리만치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목소리로 재잘재잘거리고 헤죽-하는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건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하는 말이기도 했고. 이어지는 말과 미소에 단태가 낄낄거리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한번 더 터트린다. "그때는 아니었어도 지금은 진심이야." 말하는 걸 잊고 있었다는 것처럼 단태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덧붙혔다.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말투가 오해를 불러일으킬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깨달은 경우도 있었다. 단태의 생각은 딱 애가 탈 만큼 짧은 입맞춤을 할때까지 이어졌지만 입맞춤을 하고 떨어지는 타이밍에 해온 주양의 행동에 더 이어지지 못했다. 능청스럽고 능글맞은 웃음이 슬몃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한쪽 입꼬리만 치켜올린 짧은 웃음만이 머물러있었다. 나는 네가 이렇게 구는 게 좋아. 그래서 더 일부러 애태우는 말을 일부러 골라서 하는 거지. 그런 모습에서 애정을 느끼는 내가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말야. "가끔, 대화를 하는 것도 좋잖아." 연인 사이에도 이정도의 밀당은 필요한 법인걸~ 하고 단태는 묘하게 웃음기가 없는 무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주양의 머리에 얼굴을 기대고 느긋하게 문질렀다. 잘 길들여진 맹수가 주인에게 체취를 묻히는 제스처와 똑같다.
"키스해달라고 해봐. 자기야."
턱을 감싸쥐고 있던 손으로 주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주양에게 나긋하고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럼요. 선배가 가진 비밀을 양손만큼 풀어도 제 비밀 하나 들을까 말까 할 걸요? 저도 언젠가는 하나 하나 다 얘기 해줄테니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생긋 웃음 지은 그녀는 윤의 얼굴에 스쳐간 아쉬움을 보며 말했다. 언젠가 이 모든 소란에서 물러나 오롯히 둘만 지낼 수 있게 되었을 때나 되어야 할 수 있겠지만. 바라면 언젠가 때가 오게 될 테니 지금은 비밀로 해두자고, 그의 손길을 받으며 생각한다.
불안 어린 그녀의 말에 윤은 그 행동들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해야 하는 것, 필요한 일이라고. 그가 그렇게 하는 건 그녀가 했던 말을 지켜주기 위함일까. 아니면 또다른 일을 위해서일까. 그녀의 불안을 눈치챈 윤이 두고 갈 리 없다며 안심시키려는 듯 했다. 그녀는 윤에게 고분고분 손등을 내어주고, 입맞춤을 받은 후엔 그 손을 들어 윤의 얼굴 한켠을 살며시 감싸려 한다. 레이스 장갑 때문에 감촉이 온전히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능한만큼 감싸려 하며 중얼거렸다.
"선배의 의지로 가버리는 일은 없어도, 누군가의 개입으로 선배를 잃게 되는 일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게 불안한거에요."
그녀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분교에서 두권의 책을 잃은 후부터였다. 이제는 윤이 자기 발로 그녀의 곁을 떠나는 것보다 망할 누군가, 예를 들면 그 재앙의 개입 혹은 또다른 신이라는 존재의 개입으로 인해 그를 잃게 되는 것이 불안했다. 이매의 죽음처럼, 어쩔 도리도 손 쓸 틈도 없이 윤을 잃게 되면 그녀는 견딜 수 없게 될 거다. 이번에야말로 망가지겠지.
"그렇게 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어요?"
선배가 정말로 절 사랑한다면.
뒷말은 할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그의 마음을 저당 잡아 그녀가 원하는대로 휘두르려는 것만 같아서. 그렇지만 그게 단순한 저당이 아니게 될 지도 모르니까. 조금은 망설이며, 작게 덧붙이고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