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빙빙 돈다. 당신이 불만을 토로하듯 볼을 살짝 부풀리자 그는 손가락을 들어 당신의 볼을 찔러보려다 이내 그만뒀다. 더 삐졌다간 오지도 않겠다. 달링은 횃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으니 지금 나가면 딱일 것 같다. 그는 날갯짓 하여 다가오는 당신을 아예 안고 가기로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광경에 아무것도 못 봤다는듯 능숙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시선을 휙 돌렸다. 머리에서 학사비리라는 생각이 계속 빙빙 맴돌았지만 이걸 입밖으로 꺼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전에 가차없이 점수를 깎던 칼 교수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단태 그 능글맞은 녀석.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개처럼 발로 뛰어 다시 점수를 얻었으니 됐다.
"……."
그는 칼 교수를 보며 저 사람이 미소를 지을 일이 없을 거란 선입견을 가졌다. 대충 동류인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칼 교수는 웃으면 두가지 상황이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아마 그는 화가 났거나, 자신을 떠보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예, 천문학 과제 때문에 여쭐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만……."
그는 보기에 돌려 말하는 것에 재간이 없어 보였지만 그건 또 아니다. 비록 직설적으로 형편 없느니 그렇게 사는 꼴을 보아하니 같은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롭다느니 하면서 얘기하는 타입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이 집안에서 배워먹은 것이 테이블 뒤엎기였고 불효자가 최고의 칭찬인 장의사는 그 또한 명백히 순혈 가문의 자제였고, 그냥 귀찮아서 안 할 뿐이었다.
"교수님께서 저번에 구름의 움직임에서 맹수는 길들이는 과정이 여간 힘들고 숨기어서는 아니된다 해석하셨는데, 그 뜻이 궁금해 찾아왔습니다. 제 명석하지 못하고 아둔해 빠진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지라."
그러면서 품에 안은 백정의 부리 슥 손가락으로 간지럽힌다. 발언과 몸짓으로 미루어보아 쉽게 해석하면 그 뜻이었다. 다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왜 고발하지 않습니까? 말이 쉽게 해석하는 것이지, 그가 알고 있는 사교계의 화법으로 속내를 모조리 뒤집어 까보면 너 뭐하는 새끼냐? 정도 되겠다. 그 또한 마찬가지로 미소지었다. 부드럽고 순진한 미소로 '자신은 지금 순수하게 교수님께 질문하는 모범생'인 척 질문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녀는 윤이 얘기하는 내내 오롯히 그에게만 온 신경을 기울였다. 둘의 대화가 누군가에게 들리진 않아도, 주변에 적잖은 잡음이 있었기에 제대로 들으려면 그래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리를 옮기고 얘기하자고 할 걸. 문득 든 생각을 얼른 밀어내고 다시 귓가로 들려오는 윤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그렇게 들은 얘기에 의하면, 현재 마법부 장관은 과거 전쟁 시절의 그를 이용해 현재 자리에 앉은거고, 그는 그런 배신자를 그냥 두지 않았고 뭔가 조치를 취했다는 듯 하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는 윤을 보고 그러지 말라는 듯 그가 내민 손에 제 볼을 스스로 부볐다.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면 고개를 돌려 그 손등에 입맞춤도 했을 것이다. 짧고 갖은 애교를 부리곤, 그의 물음에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잠깐을 그렇게 보낸 뒤 약간의 장난기 어린 말투로 재잘댄다.
"...흠.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모르는 척 답을 구하는게 좋을지, 영민하게 정답을 말하는게 좋을지. 그게 고민이네요."
킥킥. 작게 웃기까지 하는 걸 보면 답을 모르는 건 아닌가보다. 그야 그럴 수 밖에.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그의 얘기를 합쳐보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녀가 고민한 건 그걸 그냥 말해버리면 재미 없지 않을까 였던거다. 그래서 모르는 척을 해볼까 싶다가, 영민하다 해준 윤의 말에 부응하기로 했다. 그녀는 일부러 고개를 들어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해 소곤소곤하게 말이다.
"굳이 그 모습을 씌운 의도가, 배신의 대가만을 위해서는 아닌거 같은데, 제가 틀렸을까요?"
그녀의 대답은 그 가짜의 정체만이 아니라 굳이 그의 모습을 씌운 것에 다른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냐고, 한발 앞선 물음까지 더해져 있었다. 윤이 거기까지 알려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녀는 알려달라는 듯이 속삭이던 귓가에 입술이 스치게 했다. 깃털이 지나간 것처럼 가볍고도 간질하게. 그러곤 시선을 마주치고 싱긋 웃었다.
' 네가 내놓을 답이 너무나도 기대 되는구나, Mtwana wase kasi.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가 알 수 있으면 좋을텐데. '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온 답변에 만족한 듯 작게 웃었습니다.
' 역시, 영민한 내 사랑이야. 거의 비슷해. 마법부를 장악할 필요가 있었고 대외적으로 [매구가 죽었다]고 밝힐 필요가 있었어. 예전부터 이 마법사 사회의 마법사들은.... 쉽게 안심하는 기질이 있더군. '
윤이 말했습니다.
' 내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을 정도로 말이야. 상대방이 이겼다는 도취감에 취해있을 때, 그걸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꽤나 볼 만 하거든. 지금 마법부 장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처럼. 베리타세룸을 마셨다고 순순히 고백했을 때, 즉흥적으로 떠올리고 행동으로 옮겼다만... 그래도 꽤 잘 만들어졌잖니. '
과연 지난 과제일까? 그는 순수한 학생의 미소를 유지했다. 적어도 에반스 교수가 나가기 전 까지는 착하고, 모범을 보이며, 학구열이 높은 학생의 모습을 유지했다. 에반스 교수가 교실 밖으로 나가며 저 멀리서 러빗 교수의 단말마가 들렸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풀렸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평소의 표정이 아니다. 진통제 덕분이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담담했으나 예민함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지났기는, 구름은 유동적이라 무엇이든 이어지고 현재진행형이 되는 법 아닙니까."
그는 잠시 당신을 엄지로 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홍 가家의 피해자. 해답을 찾는 것은 본인의 몫이란 말이 꽤 묵직하다. 그는 당신을 향한 교수의 시선에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맹수는 첫 만남 당시 크루시오를 쓰던 당신을 뜻한다. 맹수가 과연 사람 해치는 것이 잘못 됐음을 알까? 그는 잠시 기다린다.
"어떤 답을 원하십니까? 방금처럼 돌려 말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제가 돌리지 않고 직접 말씀하길 원하십니까."
그리고 사납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픽 웃었다. 보란듯이 부리를 한번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고, 흰 레이스가 묶인 목을 엄지로 쓸었다.
"적어도 어느쪽 답이든 교수님께서 나이차이가 제법 날법한 에반스 교수님과 혼인하던 날의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답할 것 같습니다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녀는 키득 웃으면서도 안 된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있었고, 그것들 중 대다수는 아직 윤에게 들켜선 안 되는 것들이었으니. 하지만 그녀의 내면 속 누군가는 그렇게 속삭인다. 차라리 다 들켜버리는 편이 더 즐겁지 않을까, 라고. 그 속삭임은 무시한 채, 그녀는 다시금 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어진 얘기로 인해 그녀의 대답은 틀리지 않았음이 확정되었다. 예상대로 그 가짜 매구는 현직 장관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 때 거기 있던 장관은 아마 수족 중 하나일 것이다. 마법부를 장악한다는게 그런 방식이었던 걸까. 하지만 왜? 새롭게 떠오른 의문은 잠시 밀어두고 들은 것들부터 차근히 머릿속에 정리한다. 잘 정리해 한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며, 히죽 웃는 윤을 보고 재잘대기도 한다.
"흐응. 많고 많은 비밀 중에 하나 털어놓구서 제 비밀도 알아가려고 하는 건 아니죠? 그런 치사한 선배한텐 일주일간 입맞춤 못 하는 벌을 줘버릴지도 몰라요?"
엄포를 두듯 말하다가도 진심은 아니었는지 후훗, 웃는다. 뭐, 이걸 빌미로 알려달라고 해도 안 알려줄 건 사실이지만.
"꼭대기에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그렇고, 굳이 그 모습을 씌운 것도 그렇고, 선배, 은근 악취미적이네요. 자기 얼굴을 한 가짜가 그렇게 맞는 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감히 예상도 못하겠는걸요. 어머, 무서워라."
무섭다면서 되려 윤에게 몸을 기대는 건 무슨 행동인지. 포옥 기대고서 잠시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슬그머니 물음 하나를 꺼내었다. 조금 전 밀어두었던 그 의문이었다.
"가짜를 써서 그런 죽음을 연출한 거나 마법부를 장악하는 것도, 저번에 말했던... 꼭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인 거에요?"
조심스럽게 나온 물음엔 약간의 불안,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얕게 일렁였다. 운을 보는 그녀의 시선에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