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우리 허니가 돌려놓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달링은 내가 돌아있는 걸 더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말야."
아니야? 하고 물으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보이는 꼴이 무구함을 가장하고 있어서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주양의 표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표정이었다. 자신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단태는 눈썹을 치켜올려서 짐짓 불만스러워보이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왜 웃는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웃고 있는 모습이 꽤 예뻐서. "예뻐서는." 치켜올렸던 눈썹을 도로 내리고 대신 눈살을 찡그려보이며 단태는 짧게 중얼거렸다. 예쁜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게 제것이면 말이 달라진다. 제것인데 타인에게까지 예뻐보이면 여러모로 곤란하기도 하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든든한걸. 허니버니. 애인을 잘 만난 것 같아."
발찌에 입맞추던 단태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느끼고 발목을 감싸쥐고 있던 손을 풀어내면서 주양의 무릎 위에 자신의 팔을 걸치며 능글능글한 어조로 나긋하고 상냥하게 중얼거렸다.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머리를 기대고 쓰다듬을 받다가 자기 얼굴을 손에 가져다대는 게 꼭 제 주인에게 치대는 잘 길들여진 짐승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실상은 잘 길들였지만 언제고 제 주인을 물어버릴 수 있는 아주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인간의 탈을 쓴 이리새끼지만.
"목걸이랑 귀걸이를 하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예뻐. 서주양."
그리고 누가 길들인 짐승새낀데 당연히 예쁘게 굴어야지. 안그래? 붉은색 눈을 가늘게 뜨고 주양의 쓰다듬을 받던 단태는 능청스레 낄낄거리는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하다가 무릎 위에 올렸던 자신의 팔에 얼굴을 기대려했다. 자세를 무너트려서 자신과 거리를 좁히는 모습 때문에 기대지는 못했으나 "뭘?" 하고 되묻는 얼굴에는 짓궂은 장난기가 번져있었다.
" 아- 그래? 매구가 살아있었고 머글과 혼혈이 많은 장소가 여기니까 여길 노릴거라고 알고있었고 그래서 우리를 지키기위해서 낙인을 찍었다. 그 말이지? "
레오는 하아아아아- 하고 깊은 한숨을 쉬곤 머리를 푹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않고 그렇게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또 다시 하아아아아- 하는 깊은 한숨.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모든 것들이 보인다. 처음 크루시오를 맞았던 것이 바로 어제인 것처럼 생생하다. 온 몸의 세포가 불타오르는 고통이 바로 어제인 것처럼 선하다. 모든 것을 베어내는 공격을 위한 저주에 맞아 팔이 베이고 몸이 베이고 다리가 베였다. 이름모를 짐승에 의해 온 몸이 갈가리 찢겼다. 바로 어제 '내일 봐!' 하고 말한 친구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그 날의 공기가 어땠는지를 선명히 기억한다. 조금 촉촉하고 가라앉은 느낌이 들던 기분나쁜 공기. 그 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한다. 비명소리와 노래 그리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그 입에서 나왔던 저주의 말을 기억한다. 크루시오, 라는 네 글자와 섹튬셈프라, 라는 다섯 글자. 그 짐승이 날아오던 모습과 소리 그리고 그 눈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날 어떤 꼴을 당했는지 기억한다. 그 날 그 자리에서 죽었더라도 이상할 게 전혀 없었던 그 고통을 기억한다. 추모비를 보고 있으면 이따금 그 자리에 '레오파르트 로아나' 라는 이름이 적혀있어 숨이 멈추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 ......그랬단 말이지.. "
레오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도 그 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학원의 기숙사에서 자는 매일 밤마다 허공에 마법을 쏘면서 깨어나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등을 보고있으면 혼자 있다는 불안감에 미쳐버릴것같았고 아직도 상처입은 자리가 심장이 뛸 때마다 아파오는데. 나는 아직도 그런데.
레오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압이 죽어버린듯한 눈으로 멍하니 혜향교수를 바라보던 레오는 '보여줄게 있어' 하고 말하며 거침없이 상의를 벗어 내려놓았다.
" 여기, 내 오른팔. 베인 자국 보여? 섹튬세프라 맞은 자리야. 아직도 흉터가 사라지지 않았어. 여기 가슴께에 난 흉터. 이것도 섹튬셈프라에 맞은 자리야. 그리고 여기. 아, 그래. 이젠 이름을 알지. '체'라고 하는 이름이었지? 그 짐승이 발톱으로 찢어놓은 상처야. 자 여기. 오른쪽 갈비뼈 있는 자리. 멍든거 보여? 아직도 멍이 안 빠졌어. 왜인지알아? 크루시오를 맞고 너무 아파서 내가 내 손으로 내 몸을 마구 때렸거든. 금이가고 부러졌대. 등에도 상처있는데 보여줄까? 너, 그 때 추모한거 기억나지? 그 왜, 있잖아. 탈 쓴 새끼 때문에 열 명이 죽은거. 거기 내 사진이랑 이름이 있었어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어. "
레오는 하아- 하고 한 번 더 깊게 숨을 쉬고는 머리를 쓸어넘기고 천천히 자리에 앉아 '괜찮아. 괜찮아.' 하고 말하며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고 느리고 깊게 숨을 쉬었다.
레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책상 위에 한 발을 올리고 올라가 숨이 닿을만큼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대고 노려보았다.
" 네 말대로 네가 그 탈의 일원이었다면.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일을 했다면. 왜 알려주지 않았어? 네가 한 마디만 했어도. 그 새끼들이 올거라고 한 마디만 했었더라면. 내가 이런 꼴을 당할리는 없었을거야. 알아? 여길 노릴거란것도 그 새끼들이 어떤 작자들인지 알면서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
레오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정말 약해지는 모습을 보일 것 같아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죽는다-라는 야생의 법칙은 왜인지 몰라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