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서 나오는 잔소리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걱정 자체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참 애매하고 복잡한 태도. 남들보다 Yes와 No가 분명한 사야와는 정반대로, 미요루는 Yes와 No가 애매하거나 복잡하게 섞여있는 회색 구간이 남들보다 넓었다. 그래서 미요루가 오히려 사야의 직설적인 성격을 무던하게 받아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헬멧은 두 개여야 한다는 말에 헬멧을 가져오겠다고 말하고, 사야가 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미요루는 다시 외투와 헬멧을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할 고양이가 헬멧으로 변신할 줄도 알면 참 좋을 텐데- 그건 무리려나?"
깊이 없는 농담을 던지고, 미요루는 외투를 걸치고 헬멧을 손에 쥔 채로 금방 갔다올게. 하고 자리를 떠났다. 어차피 곧 돌아올 거 일부러 거기 놔둔 건지, 미요루의 가방이 자리에 놓여있다.
부르릉 하고 오토바이가 떠나고, 정말로 짐 잠깐 정리할 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서 다시 오토바이가 카페 앞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미요루는 헬멧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쥔 채로 카페로 돌아왔다. 찬바람이 헝클어놓은 긴 머리카락에 가을이 한가득 배인 느낌이다.
"자." 하고, 미요루는 풀페이스 헬멧을 내밀었다. ...가격표가 붙어있다. "일단 맞는지 한 번 써봐. 좀 조인다 싶으면 잘 맞는 거야."
사야는 가방에 달려있는 키링처럼 보이는 작은 대나무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가방을 챙기고 짐을 챙긴다. 사야는 마셨던 컵을 쟁반에 고이 담아 카운터로 가져가고 밖으로 나오면서 또 다시 작은 대나무 키링에 속삭였다.
" 지켜줘 이나리.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 『 서로가 없으면 곤란한건 비즈야뿐만이 아니야. 걱정하지마. 엑시트도 아니고 이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어. 』 " 응. 고마워 "
사야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람이 불고 치마자락이 한 차례 휘날렸다. 사야는 바람에 눈을 살짝 감았다 뜨곤 오토바이를 보며 숨을 다잡았다. 인생 첫 오토바이 경험인데 그 동안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도 많아서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사야는 손을 내밀어 헬멧을 받았다.
" 응. 맞겠지. "
이리저리 돌려보고 손으로 통통 쳐보고 하면서 튼튼한지와 제대로 만들어져있는지를 보던 사야는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머리에 대고 꾹 하고 헬멧을 눌러썼다. 머리카락이 앞을 전부 가려 불편한지 다시 벗어 머리를 정리하곤 다시 눌러썼다. 미요루를 보며 '어때?' 하고 물어본 사야는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제법 무게감이 느껴지는게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사야는 바이저를 내리려 했으나 뭐에 걸렸는지 툭, 툭, 하는 소리만 나고 내려오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내려오고 어떻게 해야 고정되는지 알겠지만 한 번도 만져보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일 아닌가.
" 미요루. 이거 안내려와.. "
할 줄 아는걸 붙잡고 있는것보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는것이 훨씬 이상적인 일이겠지. 사야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이거 내려줘' 하고 말하며 바이저를 톡톡 건드렸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 오토바이는 사야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멀게 생긴 물건이었다. 제대로 발 올려놓을 공간이 있고 동글동글하니 아기자기하게 생긴 그 스쿠터는 쇼바를 하늘 끝까지 올려놓고 특공복을 입은 채로 굉음을 울려대는 폭주족들과는 거리가 면, 평범한 도시인의 한가로운 나들이 수단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다만 그 스쿠터의 뒷자리에는 평범한 일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괴생명체가 몸을 말고 드러누워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팔다리와 허리가 홀쭉하게 길고, 갈빗대가 다 보일 정도로 앙상한 검은 고양이.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것은, 상당히 나태한 태도로 누워 있다가 나른하게 고개를 들고는 쓸데없이 멋진 중후한 목소리로 사야에게 인사를 건네어왔다.
"갓 사러 갔다가 망건 산다더니, 왜 갑자기 뜬금없이 샵에 들러서 새 헬멧을 사나 했네. 좋은 오후지, 히로세 양." "조용히 해, 망할 고양이."
확실히 집에 갔다온다고 하기엔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이긴 했다. 그녀는 자신의 마스코트에게 핀둥이를 쏘아주고는 헬멧의 바이저를 쥐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야에게로 돌아섰다. 바이저를 톡톡 건드리고 있는 사야에게 별생각 없이 바짝 다가선 미요루는, 사야의 손을 꼭 쥐고는 들어올려 바이저 연결부 아래에 있는 레버 위에 얹어주었다.
"뒤로 젖혀봐."
미요루의 말대로 레버를 뒤로 젖히면 바이저가 사야의 눈앞으로 철컥 떨어져내려올 것이다. 그게 바이저를 연 채로 고정시키는 레버인 듯하다. 벤지풀은 뒷자리에서 내려 발 놓는 곳으로 내려갔고, 미요루는 자신의 헬멧을 집어들어 쓰고는 스쿠터에 발을 올려놓다 말고 사야를 돌아보았다.
척, 하는 소리와 함께 바이저가 내려왔고 사야는 됐다! 조금 기쁜듯이 말했다. 사야의 시선은 그제서야 뒷자리로 옮겨졌고 거기서 '벤지풀'이라는 이름의 마스코트를 찾을 수 있었다. 조금 미안한 이야기지만 거짓말로라도 정감이 가는 외모는 아니었다. 낑낑대며 다시 바이저를 올리려다 마음대로 안되자 그냥 그대로 헬멧을 벗어버렸다. 벗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것이 제법 기분이 좋았다.
" 좋은 오후. "
사야는 가만히 벤지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든 생각이라면 자신의 마스코트가 이나리인게 다행이라는 점이었다. 까내리거나 비교하려는 의미는 없지만 누구 앞에 꺼내놔도 마법소녀의 동행자같은 마스코트가 자신의 마스코트라서 조금은 다행이다. 사야는 그럼에도 같은 일을 하고있는 동업자기에 나쁜 녀석은 아니겠지란 생각에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응. 좋은 오후야. 벤지풀씨. 미요루를 잘 부탁해. 소중한 친구야. "
쓰다듬어볼까 하는 생각에 손을 슬쩍 뻗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은 사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나리는, 별로 나오고 싶어하지않으니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뒷자리에 탈 수 있겠냐는 말에 사야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헬멧을 썼다. 시야가 좁아졌지만 그만큼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야는 뒷자리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약간 경직된채 등을 꼿꼿이 펴고 있었다.
하고 바이저를 올려주고 다시 레버를 걸어준 미요루는, 사야가 아예 헬멧을 잠시 벗고 싶어하는 눈치이자 턱끈 버클을 풀고는 헬멧을 벗겨주었다.
"더 퍼지를 성심성의껏 보좌하는 게 내 일이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사야에게 쓰다듬을 받고 있는 벤지풀을 왠지 모르게 심통난 것 같은 무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미요루였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생긴 게 아무리 괴상해도 고양이는 고양이인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고르릉고르릉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어 뒷자리에 올라타자, 그 고르릉거리는 소리가 조금 더 커진 드르릉드르릉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였다.
"내 허리, 양팔로 꼭 붙들어."
미요루는 사야를 돌아보며 허리께를 툭툭 쳐보였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사야가 허리를 꾹 잡으면 악셀을 당길 것이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스쿠터는 여고생 둘을 태우고 한가한 시내 외곽의 도로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가을 바람이 잔잔하게 휘돌며, 스쿠터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경쾌한 속도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높은 푸른 하늘과 가을빛이 든 가로수들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풍경들. 익숙한 풍경들이 익숙하지 않은 해방감으로 펼쳐진다. 익숙한 서점이며, 마트며, 학교로 가는 등교길- 가만, 이대로 가면 나리메 학원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사야는 그렇게 답했다. 지금은 사야 자신도 있으니 저번처럼 너무 늦는 일만 없다면 다 괜찮겠지. 비즈야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자기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돕는 마법소녀다. 그리고 이나리가 있다면 못할 일은 없겠지.
일러준대로 바이저를 올려 고정시킨 사야는 허리를 잡으란 말에 별다른 대꾸없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손을 뻗어 미요루의 허리를 꼭 둘러안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에 들어와있는 기분. 사야는 엔진소리가 들리고 스쿠터가 앞을 향해 나아가자 아무래도 조금 겁을 먹었는지 미요루에게 몸을 꼭 붙였다. 등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있던 사야는 어느정도 속도에 익숙해지자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 생각보다 괜찮네. 응.. 이 정도면 안전할 것 같아. 항상 이 정도 속도로만 다녀 아님 위험하니까. "
사야는 뒷 자리에 타서 계속 말을 걸었다. 서점이 보인다느니 강이 보인다느니 하는 것들. 나무가 더 자란것 같다거나 이 길로 항상 학교로 간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조금 걱정되는 점이라면 누군가 자신을 볼까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라면, 특히 선생님들. 좋은 모습은 아닐테니 왠만하면 보이고싶지 않은게 사실이다.
비라, 세온주 둘 다 안녕~ 좋은 점심이야~ :3 그러고보니 캡틴에게 질문 하나! 카페에 방문하는 독백이나 일상을 작성하면 조사가 가능해 진다고 했었는데 그러면 독백의 맨 끝부분에 ~~~카페로 향했다~~ 뭐 이런 식으로만 써도 괜찮은걸까? :3 하급 엑시트를 잡는 스타팅 이벤트 독백에 잠시 카페에 들렀다는 식으로 조사를 끼워넣어 보고 싶은데.
꼭 끌어안고 있자면 어느덧 꽤 두꺼워진 옷가지 너머로도 미요루의 등이 단단하게 사야를 받쳐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속도에 익숙해진 사야가 가볍게 건네는 말들에, 미요루는 조만간 구청에서 또 가지치기를 하겠다느니 헬멧만 쓰고 있으면 누구도 너라고 확언하지 못할 거라느니 가볍게 대답해온다. 이대로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서 한바퀴 돌아보자는 농담은 그 끄트머리에 나왔다.
"당연히 농담이야."
킥킥 웃는 소리가 들리며 스쿠터는 잠깐 신호에 맞춰 멈춰섰다. 그렇지만 때맞춰 온 것인지 신호는 스쿠터를 그렇게 오래 잡아두지 않았다.
"학교 말고, 다른 데로 가보자-"
이대로 앞으로 가면 학교였지만, 미요루는 좌회전 신호에 맞춰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블록 하나를 지나오는 것만으로 주변의 교통량이 꽤 줄어든 한적한 오르막길이 나왔다. 스쿠터는 잠깐 언덕을 오르다가, 오르막길이 끝나고 우회전해 조그마한 터널을 지나 산중턱의 어느 야트막한 편의점 옆에 멈춰섰다.
"딱히 뭐 별 게 있는 곳은 아니지만 말야,"
하면서 미요루는 스탠드를 덜컥 차서 스쿠터를 세우고는, 헬멧을 벗어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어 머리를 털었다. 그리곤 스쿠터에서 내려서는 사야에게 손을 내민다. 사야가 스쿠터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려는 듯이.
"이 풍경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
바람에 날리는 미요루의 연갈색 머리카락 너머, 붉게 물든 이파리를 한아름 안고 있는 가로수를 지나, 가드레일이 쳐져 있는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가을에 잠긴 바라기 시가 한가득 내려다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