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래 사전식 순서가 맞지만 간섭력 순서로 정렬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얄랜즈의 반지는 전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두 개는 가지고 있으니 그쪽에 희망을 걸어봅시다. ▶ 여담으로, 원래 얄랜즈의 기록에는 그의 별호를 '반지작'으로 하고 싶었던 한 영웅의 노력이 담길 예정이었습니다만… 분량과 설정상의 문제로 폐기되었습니다.
성직자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저쪽 세상의 성직자도 비슷한가 싶었다. 금욕과 절제, 선행을 미덕으로 삼으며 눈물을 거두는 자들. 바라는 것은 만인의 행복이며 원하는 것은 슬픔에 눈물 흘리지 않는 세상. 대륙 정교회에는 썩은 윗대가리들도 많아서 깽판을 쳤던 적도 있다. 그래도 저 세계의 종교는 훨씬 청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일반 시민이라 위쪽 이야기는 모르거나. 사람이 모이는 곳은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잘 알았다. 사령집회나 과학신앙도 의도는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어중간하게 답했다. 배려를 한다는 게 눈에 보여서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흐응..하고 소리를 내며 그녀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고서 엘레이스를 옆으로 불렀다.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 쪽도 아니지.”
산 자는 아니다. 심장을 포함한 장기는 대부분 작동하지 않으며 목이 잘려도 죽지 않으며 인간의 욕구 중 대부분을 상실했다. 수면도 식사도 필요 없다.
죽은 자도 아니다. 사고는 멀쩡히 돌아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감각은 둔하지만 없는 게 아니다. 기력도 존재하고 신의 은총도 받고 있다.
어느 쪽도 아니다. 어느 쪽도 될 수 없다.
“그래도 뭐, 나는 괜찮아. 이제 몇 년만 더 지나면 이런 몸으로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지고, 이런 몸인 덕에 위험에서 벗어난 적도 많아. 신의 뜻을 행할 수 있고, 사람을 구할 수 있어. 그야 뭐, 처음 몇 년 동안은 울기도 했고 좌절도 했지. 하지만,”
여행길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12년의 여행은 시체마저 성장시켰다.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까 나쁘게 보진 마. 연민도 동정도, 하는 건 자유지만 나는 괜찮아. 게다가- 개성적이라서 썩 괜찮지 않아? 그치 엘레이스?”
모두 안녕하세요!'ㄱ' 갱신하러 잠시 들렸더니, 어느새 일상도 돌아가고 캡의 노력의 결실(서류)도 올라왔었네요! 일상 즐겁게 잘 보고 있어요 카리아주, 티스주! 그리고 서류 정리 올려줘서 감사해요 캡! 화이팅 하세요!!;ㅡ; 조금 뒷북이지만 어장에 올라온 진단 내용이나 Q&A 구경하는 것도 너무 즐겁네요! ㅎㅋㅎㅋ
죽음이라는 것을 아직 겪지 않은 티스아흐에게, 카리아의 말은 그렇게까지 와닿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티스아흐가 예상했던 대로 그 나름의 고통들을 겪어왔단 사실쯤은 느꼈으리라. 동시에 약간의 부아가 치밀었다. 아마도 그건, 자신이 걱정하였단 사실을 상대방에게 들켜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 멋쩍은 마음을 다스리는 길은 일단 시선을 피하고, 뒷목을 벅벅 긁는 것 정도 뿐이다.
"멍청이! 걱정 같은 거 안했거든? 단순히 그거야.... 내가 상처받는 말을 했다가, 혹시 울어버리면 곤란하니까-하고 생각했던 것 뿐이라고."
그 말을 하곤 재미없다는 듯이 몸을 뺐다. 그리고,
"그리고..., 그, 뭐야. 변태 꼬마라 부른 건 내가 미안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니까, 맘에 두지 마."
솔직하지 않은 기분을 감추려는 듯, 복실복실한 꼬리의 끝이 마치 파리채처럼 붕붕 움직였다. 그러고 나선 채 카리아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제멋대로 홱 돌아서는 것이었다.
"대답 안해줄 거면, 나 간다."
딱히 대답을 듣고 싶다기 보단, 그저 어색한 상황을 뜨고 싶은 모양이다. 허나 그 전에,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옆의 엘리아스를 슬쩍 곁눈질로 바라보곤 지나친다.
어깨를 으쓱하며 나는, 뻗어 나온 엘레이스의 커다란 팔 위에 털썩 앉았다. 그대로 부드럽게 팔을 들어올린 엘레이스에 자연스럽게 높아진 시선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내 푸른 눈과는 비교되는 주홍빛이 맑았다. 언제까지고 저 순수한 빛을 유지하면 좋으련만. 그게 썩 쉬워보이지는 않았다. 오랜 여행에, 종교에 있던 몸이고. 나름 경험이 있어선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쉬운 삶은 아닐 것이다.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는 폭언, 폭언이라고할지 뭘지 아무튼 그것에 대해 사과를 하는 것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지나치는 그녀의 뒷모습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가기 직전, 카리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리아가 그렇게 큰 소리로 자기를 부를 거라곤 생각을 못했는지, 동요한 기색이 귀와 꼬리에 역력하다. 방금 그 사과로는 화가 덜 풀린 거려나.... 그래서 마지막에 한마디라도 해주지 않곤 배길 수 없어, 구태여 가는 자신을 불러 세운 건가. 대충 그렇게 티스아흐는 지레짐작했다. 거 참 생긴 것처럼, 속이 좁은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이미 사과했잖아?'
분명 돌아보자마자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말발굽에 가로채이듯이, 그 말은 재회를 기약하는 카리아의 말에 완전히 묻혀버리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꿈벅꿈벅 카리아를 응시했다. 곧 그것은 터질듯한 부끄러움을 참는 표정으로 변하여, 돌린 고개를 다시 앞으로 향했다.
"...뭐, 그러던가."
티스아흐는 들릴 듯 말 듯한 그것을, 겨우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곧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투다다닥- 소리가 나게 입구를 열고 꽁무늬를 내빼버린 것이다. 얼마나 빨리 도망쳤는지, 달려가며 일어난 먼지가 한참 동안 내려앉지 않았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