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을 울리는 아픔에 절로 눈물이 핑 돈다. 거기에다 잔향처럼 충격이 남아, 마치 꼬리가 등대처럼 빳빳히 서버리고 만다. 화가 귀 끝까지 치밀어, 티스아흐는 뒤를 팩하고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녀를 습격한 괴한의 정체는 각다귀 같은 아이들패였다.
"엥?"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티스아흐는 생각했다. 나, 왜 맞은 거야? 전혀 상황 파악 안 되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녀석들은 지들끼리 뭔가를 수군대더니, 곧 일제히 큰 목소리로 이 마을이 떠나가라 외치는 것이었다.
"구세의 '치녀'가 나타났다~~~!"
"하, 하아-?"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당했다. 티스아흐가 벙 쩌있는 동안, 녀석들은 이미 외친 직후부터 일찌감치 튀어 저 멀리까지 도망쳐 있었다.
"치녀다! 치녀가 나타났다!"
쫄래쫄래 도망을 치면서도 역시 한번 문 표적을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 아이들. 역시 프로다.
"...이이..., 이 녀석들아! 잡히면 죽을 줄 알아아아-!"
티스아흐는 분기탱천하며 전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일단 영웅 딱지를 달고 있는 게 허투는 아닌지, 곧 금방 녀석들을 따라잡기 시작한다. 아이들도 이 가공할 스피드만큼은 예상치 못했던 것인지, 당황하며 빽빽 소리쳤다.
"악, 도와주세요! 치녀가 잡아먹으려 해요!"
"누가 치녀야-!"
이제 한 손에 잡힐 듯이 따라잡았다. 이제 손만 뻗으면 저 건방진 녀석들을 죄 잡아다, 정수리에 꿀밤 한 대씩 때려멕이고난 다음,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게 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녀석과 티스아흐 사이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 누군간 다름 아닌 봉사활동에 여념이 없는 유진이었다.
"어, 어이, 비켜...! 그 녀석들은 내 꺼야."
"히익...."
분노에 젖은 두 뺨이 잔뜩 붉게 상기되어 있다. 잔뜩 흥분한 맹수과의 두 눈도, 역시 아이들을 곧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그 말조차 티스아흐는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런 떨떠름한 표정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왠지, 저쪽에서 저렇기 달래고 나오니 선뜻 아까처럼 화만 내기도 뭐한 것이다. 차라리 유진이 아이들의 편을 들어줬다면, 그야 이 분노를 마음껏 표출할 계기라도 되었을텐데. 유진이 이래 버리면, 티스아흐로선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윽-! ...헛소리 말라고! 내가 이런다고..."
칭찬하는 말에 귀가 쫑긋 세워진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이 끼어들었다.
"오오. 좋아한다, 좋아한다!"
"다, 닥쳐! 이 빌어먹을 꼬멩이들이...!"
으르렁. 다시 한번 달려들 듯 포효하자, 아이들은 다시금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곤 한번 배신한 유진의 뒤로 찰싹 또 붙는다.
꽤 사이가 좋은 듯 보였다. 티스아흐가 끼어들 틈도 없이, 유진의 압력이 못 이겨 사과를 해오는 아이들을 보곤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야, 이제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사과하는 아이들에게 복수해 봐야, 자신의 속 좁음을 증명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뭔가 열받는다. 아니, 상당히 열받는다.
"...그쪽이 이렇게 안 해도, 나도 나름의 방법이란 게 있다고."
이미 다 끝나버린 마당이라 텁텁한 쓴 맛을 뒤로 넘기며, 유진에게 불만스런 말을 툭 던진다. 뭐 이렇게 된 이상, 결국 사과를 받아줘야 하겠지만.
유진의 말에 잠깐 눈을 크기 뜨고 무슨 의도인가 살피는 눈치였다. 그러다 곧 그 말의 의도를 깨닫곤, 약간의 부아가 치민 표정을 짓는다.
"어이, 잠만. 지금 날 애 취급 하셨겠다...? 그런 먹는 거 가지고 내 기분이..."
그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데, 정작 유진은 아이들의 헛소리를 받아주느라 약간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 이거, 짜증나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하던 말을 멈추고, 주고 받는 말들을 잠깐 듣는다. 그러다 곧 화들짝 놀라 버린다.
"너 이 자식. 그, 그런 속셈이었냐...!"
뒤늦게 적의 숨은 의도를 깨닫기라도 한 듯, 곤혹과 혼란이 적절히 버무려진 얼굴이었다. 티스아흐는 약간 몸을 뒤로 물리곤, 두 팔로 자신의 흉부를 감쌌다. 그와 동시에 귀가 아래로 살짝 접히고, 꼬리는 경계하듯이 딱딱하게 구부러진다. 뺨이 아까보다도 더 붉게 물들어 버린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렇게 상냥한 얼굴로 접근해선.... 이, 이 파렴치한!"
꽤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는지, 목에 핏대를 세우기까지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 상황이 그저 즐거운 모양이다.
티스아흐는 직감했다. 이 반응, 이건 두 가지 상황 중에 하나라는 것을. 무구한 얼굴로 또 한 번 잡아떼고 있다거나, 아니면, 그냥 티스아흐 본인이 아이들의 헛소리에 현혹돼 헛다리를 짚었다거나. 그리고 아이들이 저렇게 낄낄 웃어대는 시점에서, 이미 후자의 경우가 더 압도적이라는 걸 조용히 깨닫는다. 그런 와중에 고맙다고 말하니, 역시 심장이 질깃하고 뛰어오른다.
"윽...! 아니, 뭐, 그건 아마도 칭찬이 아니라 사실이려나-. 아하하하...."
뭐라 해야 할지 난감한 와중에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비친다. 아무래도 저 놈들을 가만히 두는 것은 속이 편치 않아, '너희들은 곧 죽었어'라는 눈빛을 강하게 쏘아붙여 둔다. 그리곤 다시 어색히, 유진에게서 티스아흐의 시선이 옮겨간다.
"아아-, 그나저나 달콤한 간식이라니. 정말 기대되네-. 먹고 싶은 걸? 응."
티스아흐는 맹렬히, 이 상황을 도피하고 싶었다. 허나 방금 건, 분명 국어 책 읽기도 아마 저거 보단 더 생동감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처참했지만.
▶ https://alcyon-chronicle.notion.site/9e4847e5d78d497f9a800f3ac19d6f00 소유진의 서류가 완성되었습니다. 열역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작업이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상당히 약화되었습니다만, 아무래도 타 캐릭터와 균형을 맞추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듯 싶습니다. ▶ 내일 티스아흐와 벨의 작업을 끝내고 진행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만 확정된 사안은 아닙니다. ▶ 여담이지만 알시온에는 원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성별 상관 없이 미혼으로 불렸습니다. 처녀나 총각은 영웅 소환 이후 생겨난 최신 유행어로,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구세의 어쩔티비를 구세의 저쩔티비라고 놀리고 있는 셈이겠습니다. ▶ 그러면 모두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