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은 연우의 웃음에 당황한듯 눈을 끔뻑이다가... 헤헤 웃었다. 본래의 의도가 전혀 통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민은 원래 단순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다시 선배라는 말을 듣고나서야 다시 눈치를 볼터였다.
"앗,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사민은 눈을 부산스럽게 움직이다가 뒤늦게 변명하듯 덧붙였다. "다들 엄청난 베테랑 같더라고요. 그, 연우 선배님도 그렇고요. 엄청 멋지다고 해야할까요." 그냥 본인이 만만한건데 그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였다. 애초에 선배가 멋진 것과 별개로 자신은 계속 이렇게 월급이나 타면서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 생각이니 마음가짐 자체가 글러먹었다. 천하 제일까지는 아니지만 손에 꼽을 만한 후레 마인드를 기본으로 탑재했다고 할 수 있달까.
"넵, 그럼 여기 부대찌개 2인분 주세요~!"
이렇게 막힘없이 주문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소한 것에도 이렇게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민이다. 사민의 입꼬리가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이걸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터무니 없는 생각도 해봤다.
"맞다. 궁금한 거 있는데..."
문득 떠올랐다는듯 사민이 눈을 크게 떴다. 몸을 앞으로 숙여 얼굴을 가까이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어 묻는다.
"그.. 누가 그랬는데, 일단 선후배 관계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른분들한테도 선배라고 했는데 그때도 다들 선배라고 부를 필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녀는 기억을 곰곰히 더듬어가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선 당당하게 "그래서 그냥 선배라고 부르기로 했어요."하고 당당하고 뻔뻔한 결론을 말한 그녀는 미소지었습니다. 애초에 남이 뭐라고 하든 선배라고 부를 생각인거 같네요. 그녀는 노트북을 켜서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한손으로 천천히 정리작업을 하려는듯 손을 움직였습니다.
"큐브웨폰인가요."
그녀는 한손으론 일하면서도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자신의 큐브 웨폰. 흑색의 나이프를 꺼내 보였습니다. 뭐 남이 보기에 특별한 모양새는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식당에서 꺼내놓고 다니긴 그러므로 곧 집어넣었지만요.
리넨 커튼이 바람을 타고 산들거렸다. 막 떠오른 아침 햇살은 불투명하게 침대 밑바닥을 덮었고, 푹신한 침대 위의 오리털 베개에 머리를 뉘고 잠든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워 아침의 여신 같다. 잠옷 사이로 비치는 살결은 새하얗고 감은 속눈썹은 길다. 콧날은 조금 틀어진 각도에서 봐도 날렵하고 반듯하며 가슴팍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며 따스하게 내뱉는 숨결마저 사랑스럽다. 부채꼴로 퍼진 머리카락은 햇빛이 넘어오자 호수처럼 우아하고 차분한 색조로 빛난다. 당신의 옆에 누워있던 나는 잠에서 먼저 깼다. 옆에 누워있는 당신은 일 때문에 나흘 동안 밤을 새우다 드디어 잠들었다. 뒤척임 하나 없이 누웠던 모습 그대로 잠든 당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꼬아보기도 하고, 속눈썹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당신은 깨거나 뒤척이는 일 없이 잘도 잤다. 나는 당신을 품에 안았다. 당신은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내 품에 기댔다. 머리를 쓸어 넘기고, 볼 위에 손을 얹어 뺨을 쓸고, 바람 닿아 싸늘한 목덜미를 손으로 덮어 온기를 준다. 당신은 온기가 닿자 웅크렸던 어깨를 편히 내린다. 결혼하기 이전에도 이런 상황은 간혹 있었지만 깊은 사랑의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지 일상까지 이 작은 행복이 침범하는 일은 드물었다. 둘 다 직장인이기 때문에 행복을 즐길 여운은 없었고, 주말에도 출동해야 하는 당신과 나의 직업상 매일 아침같이 일을 여유가 생기면 이렇게 잠든 당신을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멋없이 청혼했던 날 당신은 황금빛 눈에서 보석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한참이고 망설이다 나를 끌어안던 당신의 뜻이 나와 같다는 걸 알았다. 결혼 이후 실현되는 모든 일이 꿈과 같았다. 당신과 함께하는 숨, 삶, 그 모든 것이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았다.
"..자기?"
당신은 잠결에 꽉 눌린 목소리로 꿈결을 헤매다 나를 찾는다. 달콤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당신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이마에 입을 맞췄다. "깼어? 더 자도 되는데." "안 돼…. 일 해야 해…. 사건 해결…. 지금 몇 시야..?" 당신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옹알거린다. "10시 4분. 사건은 끝났고 오늘은 휴무야. 더 자도 돼, 일벌레." "누구보고 일벌레래. 당신도 참." "그래도 나 부검 가야 하는데.." "몇 시?" "오후 2시 반.." "오늘은 사람 모드로 갈 거지? 경찰 모드로 가서 철분이 부족하다면서 요르단 박사님을 산 채로 잡아먹진 말라고." "음…. 당신 때문에 경찰 모드로 가야겠네. 요르단 박사님의 왼팔부터 먹어버려야지." "맙소사! 내가 괴물이랑 결혼한 거야?" "당연히 괴물이지! 괴물은 에너지 충전이 필요해. 알지?" "지금 유혹하는 거야?" "응큼하긴! 당신이 유혹하는 건 아니고?"
당신은 부스스 웃으며 품속으로 파고든다. 둘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결혼 생활은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간 우리 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아무도 아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복하다. 나는 당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라도, 성별이 달랐더라도, 하물며 거리를 떠도는 들개일지라도 변함없이 사랑했을 것이다. 당신 그 자체를 사랑했다. 세상의 한 측이 당신을 세간에 없던 역풍을 불어온 악마라며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사는 청해 시의 오피스텔은 오션뷰가 곁들여지고 여러 편의시설이 있어 집값이 제법 비싸다. 그렇지만 잔고는 아직 여유가 있다. 그는 오늘 일을 끝마치고 도망치듯 새로운 집으로 돌아왔다. 싸늘한 오피스텔은 사람의 흔적이 없고 그와 가구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말끔한 디자인의 냉장고를 지나 차마 침대에 갈 기력도 없는지 소파 위로 냉큼 엎어진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댄 그는 장갑을 벗고 반지를 매만졌다. 개인적인 버릇이었다.
대체 왜 이번 범인은 왜 사람을 죽여놓고 자신이 죽는 것으로 쉽게 상황을 넘어가려 하는 걸까로 생각을 시작했다. 자신이 죽였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자멸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은 자기의 이기심 때문에 벌어진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교화받을 수 있다는 보상심리가 적용된다. 그는 그런 범죄자를 숱하게 봤고, 철옹성 같은 마음가짐으로 체포하거나 사살했다. 그딴 심리를 들이밀어도 절대 구원받을 수 없고, 나락 같은 삶이 있다는 걸 확실히 알려줬다. 그런데 오늘 본 광경은 달랐다. 경찰의 존재 이의를 떠올렸고, 범죄자의 인권이 중요하다 외치던 한 단체를 떠올렸다. 당연히 범죄자의 인권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경찰은 결국 시민을 수호해야 하며, 범죄자가 비록 시민일지라도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정으로 판단하면 큰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하며 지금껏 경찰의 감정과 인간의 감정을 분리하려 노력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런데 여기서 무용지물이 되게 생겼다. 그는 반지를 만지다 중얼거렸다.
"내가 틀린 걸까요. 아냐. 난 틀리지 않았어요. 범죄자는 모두 죽어야 마땅하죠. 그렇죠."
머리가 복잡했다. 지금까지 두 번의 사건이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이고, 그 불만을 익스파로 표출할 수 있으나 미미한 사람들이다. 사회의 을이기 때문에 쉽게 동정심을 얻어 이번과도 같은 일이 생겨날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의 일에서도 설득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가칭 익스퍼를 창조한 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체 그 신은 무슨 목적이 있길래 사람들을 현혹하고 테러 행위를 조장시킨단 말인가! 종교적 사상으로 비롯한 범죄는 가장 손대기 어려운 것인데 첫 사건부터 단단히 꼬였다. 마치 그날의 일처럼 잔인한 결말을 맞을까 두렵다. 그는 두려운지 반지 낀 손을 가슴팍으로 끌어당기고 몸을 새우처럼 웅크렸다. 결국 모든 생각의 끝이 그날의 일로 연결된다. 잊을 수도 없는 날은 악몽이 되어 그를 찔러왔다.
"그런데 이 증오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가끔은 이 모든 일이 내 사적인 감정으로 비롯된 게 아닌지 두려워요. 아!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결국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울었다. 끔찍하다. 이젠 종교도, 범죄자에게 동정심을 품는 일도 지긋지긋한데 종교의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아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을 반복해야 한다. 마침내 어느 한쪽이 굴복할 때까지! 벌써 신물이 나지만 이 불만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의 편 하나 없는 외톨이고,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다. 세상은 잔인하고, 그는 세상의 피해자 중 하나니까. 그만큼 철판을 깔고 독해져야만 했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다. 오늘따라 온기가 그리워 서러운 밤이었다.
"진짜요?! 선후배... 관계가 없다고요? 큰일이네요. 지금까지 후배 타이틀로 어려운 일, 힘든 일 슬쩍 빠져, 헙."
늘어내리는 액체괴물처럼 입을 내리고는 주절주절 하소연하던 사민이 입을 다문다. 이놈의 입이 문제다. 슬픈 사실에 슬픈 실수가 합쳐지니 두 배로 슬프다. 사민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늙어빠진 얼굴을 하며 중얼거렸다.
"싫어요. 저도 그냥 선배라 부를래요. 저는 경험도 적고 겁도 많고 원래 더 잘난 사람이 선배하는거예요. 옛날 똑똑한 사람이 장유유서래잖아요. 저도 그런걸로."
이쪽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와! 선배의 선배가 선배고 그 선배의 선배가 선배... 그만하자. 아무튼 서로 선배라 부르는 아주 우스운 관계가 뿅 나와버렸다. 아무튼 귀여운 후배가 뿅 나타나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는 낭만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사민은 조금 우울해보였다. 그도 잠시, 쑥 튀어나온 나이프에 언제 그랬냐는 듯 감탄했다.
"헐, 그거 완전 비밀 요원 같네요. 슉, 슈슈슉, 이렇게 던져서 쓰면 멋지겠다. 액션 영화 같고 그래요."
하여간 다들 멋진 큐브 웨폰을 해서는 따라가기가 힘들다. 사민과 연우가 앉은 테이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연우는 일을 하느라 말이 없었고 사민은 큐브 웨폰을 뭘로 할지 고민하느라 말이 없었다. 각자 자신 맡은 바에 충실한게 아주 보기 좋다. 그도 잠시 회전률 높은 맛집답게 금방 부대찌개가 나왔다. 넓적한 냄비에 부대찌개가 반쯤 익혀 나온 채였다.
>>789 잼민이는 신이 있다 그러면 "오, 그래? 그럼 걔들도 찌르면 피 나와? 무슨 색이야? 절대신은 누구고 따까리신은 누구야? 이름없는 신도 있고 잡신도 있어?" 같이 엄청 물어볼거 같아여! 존재 자체는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절대적 힘은 납득하겠지만 신앙심은 딱히 없겠네여!
사실 정말로 가끔 보다보면... 이런 스레에서는 뭔가 내 캐릭터에게 불행한 과거를 만들어야 해. 내 캐릭터에게는 상처가 있어야 해. 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뭔가를 막 만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물론 불행한 과거나 상처가 나쁜 것은 아닌데.. 혹시 그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내 캐릭터의 서사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시련 같은 것이지만 그런데 아닌데 그냥 다른 이들이 불행한 이야기가 있으니 나도 어떻게든 만들어서 창조시켜야해! 이건...솔직히 불행포르노 같은 거니까요.
그러니까 혹시나 나도 만들어야하나?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굳이 안하셔도 괜찮아요! 소라와 예성이도 그런거 없어요. (절레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