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니 말도 나오지 않는다. 내게 끔찍했던 기억이 남에게도 끔찍한 것이라면 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싶은 회의감이 치고 들어왔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화를 참아내고 앞니로 입술을 꽉 짓눌렀다. 연우의 패널 위로 올라가서 간신히 살았긴 했지만, 이런 무력감은 어떻게 대처 해야할까. 손이 닿거나 눈이 마주쳐야만 능력을 쓸 수 있지만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가 작게 입속으로 말을 씹었고, 차마 뱉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패널은 기회였다. 한참을 고민했다. 언제 악을 썼는지 모를 정도로 감정을 벌써 추스르고 차분했다. 심호흡을 하고 큐브웨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신은 없다. 있었다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을 감히 참칭하고 다니는 것이라면 끝까지 쫓아 발 밑에 엎드리게 해야만 한다. 남을 기만하며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지금처럼 사람을 죽인 순간이라면 그때부터 신이 아닌 개인의 욕심와 허영, 자만으로 초래된 참극일 뿐이다.
그는 패널을 밟고 달렸다.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정수리 위에 손을 얹듯 해서 그대로 지하철 바닥에 메다 꽂아 기억을 읽어내는 걸로 강한 충격을 주려 했다. 동화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가 차분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묵비권을 행사해도 내 앞에서 소용이 없다는 걸 말을 안 했네. 당신의 감정은 내가 공유해보도록 할까요."
다리가 무거워진다. 자기장이 강하게 몸을 압박한다. 불길을 다리에 보내어 자기장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때, 유진의 공격으로 경미는 찔린 뒷목을 잡으면서 그녀는 뒤로 물러서면서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열차를 손으로 짚으며 스파크를 튀겼다. 이번엔 그녀의 전방을 따라 빠르게 스파크가 튀어올랐고 또 다시 자기장으로 모두를 열차에 달라붙게 하려는 듯 스파크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럼 보여드리죠! 저항하는 걸!"
"당신은 체포 될 것이고! 우리가 잡습니다! 반드시"
어깨의 불꽃은 다리의 자기장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엔 전신에서 불꽃을 발사해 다시 그녀에게 돌진했다. 불은 에너지다. 자기장의 영향따윈 받지 않는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진다. 하지만 알고있다, 실은 자신이 뒤집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몸이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두 다리는 땅에 붙어있어도 떨어지는 것 처럼 붕 뜨는 감각이 가슴 속에서부터 퍼져간다. 나, 죽겠구나. 이 감각을 숱히 경험해봤던 유우카는 자연스레 죽음을 직감한다. 이정도 속도라면 무리없이 자신이 죽기에는 충분한 속도. 다만 키라 패닝. 아마도 큰 부상을 입게 될 텐데. 잘 못 하면 머리를 다칠지도... 몸이 볼링 핀처럼 쓰러지는 와중에도 따라서 달려들던 그녀의 모습이 스치며 걱정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일 예정이었지만.
"알데, 바란..."
제어를 잃었던 몸이 강제로 바로 세워지면서 균형을 되찾게 되었다. 의문 대신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한 사람만이 생각났다. 고개를 돌려 뒤를보니 아니나 다를까였다.
어떠한 말 대신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용의자는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자신의 경우엔, 목숨이 다 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다.
'그럴 목숨이 아직 내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생긴 틈을 이용해 두 다리를 다시금 바쁘게 움직인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낸다. 팀원의 도움을 받아 전진하고, 일어나고, 허공에 만들어진 길을 밟으며 뛰어간다. 폭주 익스파의 영향인지 칼은 무거웠다. 없던 표정이 찡그려질정도로 움직임이 버겁다. 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간다. 그리고 이윽고, 용의자에게 접근한 지금. 패널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칼을 뽑는다. 그대로 수직으로 도신을 내려칠 예정이었다. 능력의 부하와 중력으로 무게가 실린 검격을 꽂을 생각이었다.
그것은 일순이었다. 어쩌면 서로의 마지막 공격이 교차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분명하게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의 마지막 공격은 신의 섬광을 시작으로 그대로 먹혀들어갔다. 다만 알데바란이 뒤에서 잡아줬기에 크게 부상을 입는 일은 없었으나 둘의 피로도는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큐브웨폰, 익스파. 그 모든 것이 경미에게 명중했고, 그녀는 정말 힘없이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허나 그 전에 애쉬는 분명하게 기억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그것은 불분명한 영상이었다. 무언가가 비치는듯 했으나, 영상은 곧 검은 화면처럼 꺼져버렸다. 뭔가가 깨지는 듯한 이미지가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그래도 경미의 목소리만은 분명하게 들려왔다.
-...정말로 축복이잖아? -신이 정말로 저를? -알겠어요. 반드시 해낼게요! 신의 축복을 받은 이 힘으로! -감사해요. 신 님.
'신'.
그것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것은 절대로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흔들림 없는 강한 믿음.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익스퍼를 창조한 존재' 라는 이미지로 애쉬에게 전해졌다. 허나 그것은 정말일까?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처럼 전해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경미의 소매를 걷어보였다면 팔찌가 보였을 것이고 뭔지 알 수 없는 붉은색 파편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지하철은 천천히 속도를 줄여갔고 조금 떨어진 역, 푸른물역 근처에서 멈춰섰다. 뒤이어 소라의 통신이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을 것이다.
"이제야 연락이 되네! 모두들 무사해요? 별 일 없어요? 혹시 거기 지금 쓰러져있거나 크게 부상을 입은 대원은 없어요?!"
소라의 목소리는 꽤 다급한 느낌이었다. 마치, 무언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제압전은 클리어! 다들 수고했어요!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으로 필요한 반응레스에요! 11시 15분까지!
"Target In Custody. 현재 푸른물역에 열차가 정차했고, 자세한 위치를 확인 후 호송차량을 지원 바란다."
소총을 거둬 큐브의 형태로 바꾸며 통신한다. 녀석에게 수갑을 채우는 건 다른 대원들에게 맡겨두도록 하고...
"이거 참. 스케일부터가 다르구만."
총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는 녀석이라던지, 칼을 들고 설치는 녀석들이 오히려 쉬운 상대라 생각할 때가 올 줄은 몰랐는데. 다음엔 무슨 곤란한걸 가지고 올지가 걱정이다. 이거, 단순히 경찰이 아니라 진짜 기동대 내지는 특수부대를 꾸려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과분한 일을 맡은건 아닐지 모르겠군.
그나마 다행인건 익숙한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능력으로 잡아준덕에 큰 위기는 모면했었다는 것이다. 그에 감사를 표하듯 엄지를 치켜올려보였을까? 마찬가지로 자신처럼 달려들다 바닥에 메꽂힐수 있던 한명이 더 있었지만 그쪽도 무사한것 같았고, 결과적으론 몸만 좀 많이 피로해졌을 뿐이지 다들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그 사이 각자가 서로의 능력을 십분 활용해 빈틈을 보이는 상대에게 확실한 효과를 주자 마침내 지하철도 속도를 줄여 조금 떨어진 역에 어찌저찌 닿았다.
"저는 괜찮은데 쓰러질뻔했다거나 크게 다칠뻔한 사람은 있는것 같네요!"
다급한 목소리에도 태연하게 농담을 꺼내는 그녀는 뒤이어 의문을 표했다.
"이쪽은 대충 어떻게 처리된거 같은데... 어디 뭐 다른 큰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아니면 이쪽이 큰일날 위기인가?"
깨진 이미지, 들리는 목소리, 강한 믿음. 그는 감각의 동화 때문인지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다 결국 무릎을 털썩 꿇었다. 해내야 했다. 이 여자는 신을 믿고 주어진 힘에 부응해야만 했다. 익스퍼를 창조한 존재가 있다. 그 존재는 신이다. 그는 들리지 않게끔 몸을 달달 떨며 중얼거렸다.
"여보, 나 어떡해요. 알아선 안 될 걸 알아버렸어."
억울해서 살질 못하겠어. 그는 기어이 눈물을 터뜨렸다. 능력으로 인한 감정과 기억의 동화와 더불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기억이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다. 그는 처음에 고개를 숙여 몸을 떨었고, 그 다음엔 숨을 참듯 입술을 꽉 깨물었으며, 이윽고 눈물이 한번 흐르자 걷잡을 수 없는 오열로 변했다.
아! 왜 신이 존재하는 거지? 왜 그딴 걸 창조해서 내게 줬지?
애쉬는 한참이고 머리를 짚은 손을 떼지 못하며 오열했다. 소라의 목소리에 바들바들 떨며 진정하려 애썼다.
"미안해요, 미안. 능력 부작용 때문에 그러니까, 아저씨는, 신경쓰지, 말고, ...얘기해요."
" 용의자 제압 완료. 상황 종료. 부상자는 ... 크게 없는 것 같네요. 다만 익스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두명이 있어서. "
아까 돌진하다가 주저앉은 두명을 흘끗 쳐다본다. 알데바란씨가 잡아줘서 큰 무리는 없어보였지만 혹여나 움직이지 못하면 내가 이동시켜줄 생각이었다. 지하철은 달리던 속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내 한 지하철역에 멈춰선다. 속도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탈선이라도 했으면 여기 있는 모두가 피떡이 되었겠지.
" 신의 축복이고 자시고, 귀하를 현 시간 이로 살인미수 및 납치, 특수강도 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범죄자의 양손에 수갑을 채운다. 익스퍼라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 탈진한 것 같으니 바깥으로 신병을 넘긴 이후에 조치해도 될테다. 이번에도 스케일이 좀 큰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이러다간 빨리 늙겠어 아주.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함만 같다. 유우카는 쓰러진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며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역시 대화를 해야했었을까 하는 작은 후회는 남는다. 그렇게 하면 좀 더 나은 고요함이 찾아왔었을까. 만약 폭풍이 날뛰게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는사이 열차에 붙어있는 속도는 죽어서 하나의 역에 멈추게 되었다.
"범인은 제압했습니다... 하지만 희생자가, 하나 나왔어요..."
소라는 다급한 목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유우카는 아랑곳하지 않듯 보고한다.
"여기 최경미씨가 살해한 걸로 추정돼요... 그게, 무척이나 후회스러운듯한 언동을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