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야, 무슨 구원의 손길이 이렇게나 때맞을 수 있나... 주는 건 거저먹어야지. 그러니까... 패널 누님? 죄송해요, 이름이 뭐였더라."
안전빵으로 패널에 올라서고 이름을 떠올려내지 못하며 뒷통수를 슥슥 매만진다. 그나저나 떨리는 입술 하고, 컨디션은 뭐 저리 좋지 않아 보인담. 신은 별 생각 없이 주의를 거뒀다. 뭐 설마 죽을 위험은 아닐 테니까.
"네가 사랑해 마지않는 신 여기 있다, 이 폭주자야!!"
어쩐지 모르게 이 드립 많이 애용하게 될 것 같다...... <- 차원의 벽을 넘어선 직감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잘 해주고들 있으니까...? 신은 떨떠름하게 눈을 굴렸다. 한번. 아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면 양심에 찔리겠지...? 아무래도...?
"신의 성스러운 광채나 받아라!"
유치뽕짝한 소리와 함께 경미의 바로 눈앞, 경미에만 영향이 가도록 순간적으로 강한 빛을 터트렸다. 점멸. 시야 방해 한번만 하고 간다......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니 말도 나오지 않는다. 내게 끔찍했던 기억이 남에게도 끔찍한 것이라면 대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싶은 회의감이 치고 들어왔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화를 참아내고 앞니로 입술을 꽉 짓눌렀다. 연우의 패널 위로 올라가서 간신히 살았긴 했지만, 이런 무력감은 어떻게 대처 해야할까. 손이 닿거나 눈이 마주쳐야만 능력을 쓸 수 있지만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가 작게 입속으로 말을 씹었고, 차마 뱉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패널은 기회였다. 한참을 고민했다. 언제 악을 썼는지 모를 정도로 감정을 벌써 추스르고 차분했다. 심호흡을 하고 큐브웨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신은 없다. 있었다면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을 감히 참칭하고 다니는 것이라면 끝까지 쫓아 발 밑에 엎드리게 해야만 한다. 남을 기만하며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지금처럼 사람을 죽인 순간이라면 그때부터 신이 아닌 개인의 욕심와 허영, 자만으로 초래된 참극일 뿐이다.
그는 패널을 밟고 달렸다.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정수리 위에 손을 얹듯 해서 그대로 지하철 바닥에 메다 꽂아 기억을 읽어내는 걸로 강한 충격을 주려 했다. 동화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그가 차분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묵비권을 행사해도 내 앞에서 소용이 없다는 걸 말을 안 했네. 당신의 감정은 내가 공유해보도록 할까요."
다리가 무거워진다. 자기장이 강하게 몸을 압박한다. 불길을 다리에 보내어 자기장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때, 유진의 공격으로 경미는 찔린 뒷목을 잡으면서 그녀는 뒤로 물러서면서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열차를 손으로 짚으며 스파크를 튀겼다. 이번엔 그녀의 전방을 따라 빠르게 스파크가 튀어올랐고 또 다시 자기장으로 모두를 열차에 달라붙게 하려는 듯 스파크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럼 보여드리죠! 저항하는 걸!"
"당신은 체포 될 것이고! 우리가 잡습니다! 반드시"
어깨의 불꽃은 다리의 자기장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엔 전신에서 불꽃을 발사해 다시 그녀에게 돌진했다. 불은 에너지다. 자기장의 영향따윈 받지 않는다.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진다. 하지만 알고있다, 실은 자신이 뒤집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몸이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두 다리는 땅에 붙어있어도 떨어지는 것 처럼 붕 뜨는 감각이 가슴 속에서부터 퍼져간다. 나, 죽겠구나. 이 감각을 숱히 경험해봤던 유우카는 자연스레 죽음을 직감한다. 이정도 속도라면 무리없이 자신이 죽기에는 충분한 속도. 다만 키라 패닝. 아마도 큰 부상을 입게 될 텐데. 잘 못 하면 머리를 다칠지도... 몸이 볼링 핀처럼 쓰러지는 와중에도 따라서 달려들던 그녀의 모습이 스치며 걱정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곧...일 예정이었지만.
"알데, 바란..."
제어를 잃었던 몸이 강제로 바로 세워지면서 균형을 되찾게 되었다. 의문 대신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한 사람만이 생각났다. 고개를 돌려 뒤를보니 아니나 다를까였다.
어떠한 말 대신 다시 정면을 바라본다. 용의자는 아직도 저항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자신의 경우엔, 목숨이 다 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멈출 수는 없다.
'그럴 목숨이 아직 내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생긴 틈을 이용해 두 다리를 다시금 바쁘게 움직인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해낸다. 팀원의 도움을 받아 전진하고, 일어나고, 허공에 만들어진 길을 밟으며 뛰어간다. 폭주 익스파의 영향인지 칼은 무거웠다. 없던 표정이 찡그려질정도로 움직임이 버겁다. 하지만 꾸준하게 나아간다. 그리고 이윽고, 용의자에게 접근한 지금. 패널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칼을 뽑는다. 그대로 수직으로 도신을 내려칠 예정이었다. 능력의 부하와 중력으로 무게가 실린 검격을 꽂을 생각이었다.
그것은 일순이었다. 어쩌면 서로의 마지막 공격이 교차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분명하게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의 마지막 공격은 신의 섬광을 시작으로 그대로 먹혀들어갔다. 다만 알데바란이 뒤에서 잡아줬기에 크게 부상을 입는 일은 없었으나 둘의 피로도는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큐브웨폰, 익스파. 그 모든 것이 경미에게 명중했고, 그녀는 정말 힘없이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허나 그 전에 애쉬는 분명하게 기억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그것은 불분명한 영상이었다. 무언가가 비치는듯 했으나, 영상은 곧 검은 화면처럼 꺼져버렸다. 뭔가가 깨지는 듯한 이미지가 느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그래도 경미의 목소리만은 분명하게 들려왔다.
-...정말로 축복이잖아? -신이 정말로 저를? -알겠어요. 반드시 해낼게요! 신의 축복을 받은 이 힘으로! -감사해요. 신 님.
'신'.
그것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것은 절대로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흔들림 없는 강한 믿음.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 익스퍼를 창조한 존재' 라는 이미지로 애쉬에게 전해졌다. 허나 그것은 정말일까?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말도 안되는 이야기처럼 전해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경미의 소매를 걷어보였다면 팔찌가 보였을 것이고 뭔지 알 수 없는 붉은색 파편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지하철은 천천히 속도를 줄여갔고 조금 떨어진 역, 푸른물역 근처에서 멈춰섰다. 뒤이어 소라의 통신이 모두의 귓가에 들려왔을 것이다.
"이제야 연락이 되네! 모두들 무사해요? 별 일 없어요? 혹시 거기 지금 쓰러져있거나 크게 부상을 입은 대원은 없어요?!"
소라의 목소리는 꽤 다급한 느낌이었다. 마치, 무언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제압전은 클리어! 다들 수고했어요!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으로 필요한 반응레스에요! 11시 15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