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저런 양상을 가진 범죄자는 본 적도 없다. 하도 머리가 아파서 안경을 벗고 눈두덩이 주변을 꾹꾹 누르고 싶을 정도였지만 전시였으니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참았다. 대체 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번 범죄자도 취조 중에 신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나? 지금 상황으로는 익스파를 이용한 사이비 종교를 세우고 테러 행위를 저지르는 것 같다. 위에 뭔가 더 있단 소리인데..
신.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경찰의 마음으로 행해야 하는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죽였으니 죽어야 한다, 경찰에게 잡히면 구원 받지 못한다. Isis인가? 미쳤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 신은 대체 뭐길래 죽음을 종용하는 건지. 사람의 마음을 저렇게 재간질 해서 뭘 하겠다는 거지? 신이 있을 리도 없다. 있었으면..
"봐주지 마, 범죄자에게 마음 갖지 마, 어차피 이미 범죄를 저질렀는데 뭘 봐줘, 사연이 있다고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사라져? X발.. 제압하라고!!"
그는 큐브웨폰을 전개해 침을 던졌다. 맞는다면 그가 본 끔찍한 기억을 '보여줬을' 것이고, 잠깐 멈추게 해 제압할 심산이었다.
알데바란이 자신의 인력으로 경미를 끌어당기려고 했을지도 모르나 그녀는 조금도 끌여당겨지지 않았다. 뭔가 더 강한 힘이 그녀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는 것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틈을 타서 경미는 손으로 땅을 짚으려고 했으나 키라의 폭발체가 그것을 방해했고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위로 올리면서 표정을 찡그렸을 것이다. 뒤이어 연우가 달려들어 그녀의 두 손을 막아서는데 성공했다. 이어 화연이 그녀를 잡고 벽으로 밀치려고 했으나 그녀의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본드로 고정이라도 한거마냥 그녀의 다리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타격을 주는 것은 가능했으나 벽까지 밀리진 않았다. 그리고 유우카의 공격이 먹혀들어갔다. 실제로 베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의 고통이 경미에게 전달되었을 것이고 아파하는 비명소리가 열차를 채웠을 것이다. 익스파에 조금 타격이 들어갔는지 열차의 속도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어 애쉬가 큐브웨폰을 전개해 침을 던졌고 그것은 경미에게 명중했다. 순간적으로 경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가까운 이라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주세요. 주세요. 축복을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저의 행복을 바라는 신을 믿을게요. 저의 소원을 들어줄 힘을 주는 신을 믿을게요."
완벽한 패닉 상태에 들어서는 듯 했으나 폭주 상태는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이내 경미는 자신을 붙잡은 이들을 단번에 자기장을 이용해서 떨어뜨리려고 하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해도 이미 늦었어!! 나는 살인자니까!!!! 내 능력으로, 내 능력으로 사람이 죽었으니까! 이상한 것은 없어! 실제로 죽었잖아!!!"
정말로 이 상태에서 대화는 먹히는 것일까. 이어 그녀는 다시 뒤를 향해 달려갔고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다시 땅을 짚었다. 스파크가 땅을 향해 튀기 시작했고 그 스파크는 모두를 향해 땅을 타고 빠르게 달려들듯이 흘렀다. 그대로 땅을 밟고 있어도 좋은 것일까. 아니면...
"이제 됐어. 너희들의 말 따위 안 들어. 아무도, 아무도 날 막지 못해! 속죄? 싫어. 내가 왜? 내가 왜 감옥에 들어가서 속죄해야하는건데? 나쁜건 사장인데?! 해결? 알게 뭐야! 너희들이 멋대로 끼어든 거잖아!! 구원! 부탁한 적 없어!"
" 당신은 사장보다 더 나쁜 사람이야. 살인자, 범죄자. 그래놓고 속죄를 운운할 필요도 없어. 누구한테나 너의 속죄는 모독에 불과할테니까 말이야. 죽고싶으면 말해, 친절하게 63빌딩 높이에서 떨어뜨려 줄테니까. "
거참 시끄럽게 쫑알쫑알 떠드는 것도 더이상 듣고싶지 않다. 범죄자도 갱생할 여지가 있고 말을 들을 껀덕지라도 있어야지 귀를 막고 에베베거리는 사람이랑 더이상 대화할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 경고라고 생각하고, 여자의 뒤로 돌아가 대검으로 뒷목을 찌르려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거라 반응할 시간은 ... 글쎄?
베었다. 하지만 베이지 않았다. 그것이 큐브웨폰의 특징이었다. 특징이라고 하면, 장점이라곤 할 수 없지만 단점도 아닌 것이다. 일섬으로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다. 하지만 도를 다루는 감각을 살려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장점이다. 이미 태도가 손에 익어버린 유우카는, 베어올린 칼날 그대로 무게감을 실어 추격해나아간다. 발 밑으로 스파크가 튀어도, 혹시 모를 목전의 죽음에도 눈 하나 흔들리지 않고. 용의자를 범위에 넣고 이어지는 동작으로 횡으로 크게 휘두른다. 이 칸의 일대를 쓸어버릴 기세로 기나긴 칼날이 바람을 가른다.
보기보다도 더 어이없는 사람이었다. 마치 그녀가 어릴적 보았던 기생충에 감염되어 알록달록한 색을 내뿜으며 새들을 유혹하는 달팽이처럼,
패닉, 그럼에도 아직까지 쉽게 꺾이지 않는듯했다. 마치 그걸 대변이라도 하듯이 그 자리에 발이 묶인것마냥 조금의 주춤거림도 없었으니까,
"누군가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은 있으면서, 그걸 자각하고 있으면서 속죄 같은건 바란적 없다구요? 구원도 필요 없다구요? 당신이 무슨 바로크의 여인이라도 되는줄 아나봐요? 이런 멍청한 사람은 하나면 충분한데 그 사이에 연고도 없는 곳에서 또 생기다니..."
포박을 위해 붙잡고 있던 동료들을 떨쳐내려하고선 다시금 거리를 두려 하자 그녀 역시 더 가깝게 달려들어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앞뒤 안맞는 말만 하는 사람에겐 예로부터 매가 약이라고 했어요."
이젠 땅을 짚어 그 주변부터 이쪽까지 스파크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까짓거 감전된들 어떠랴, 정신차리게 하는 것까진 바라지 않지만 아무쪼록 유효타만 먹일수 있다면 되는 일이었다. 한껏 잡아당긴 시위를 풀자 쇠구슬같이 생긴 구체가 상대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쨌든 급소는 피해서, 직접적으로 닿기 전에 터뜨려 충격을 줄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설득조가 열심히 경미를 설득시키고 있다. 화연은 그들의 말이 효과를 더욱 볼 수 있도록 약간(?)의 무력을 더할 뿐이다. 제압조는 열심히 경미와 싸우고 있지만 화연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다리가 땅에 고정한 것만 같다. 유우카와 애쉬의 공격 덕에 애쉬에게 특이한 반응이 보였다.
신께 기도하는 연약한 여인. 화연의 눈에는 그저 힘만 가진 불쌍한 여인이 한명 보였다.
화연은 경미의 공격에 나가떨어지며 외쳤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죠. 하지만 신은 지니가 아니예요. 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당신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보내 당신이 죗값을 치르게 했어요!"
화연은 다시 어깨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경미에게 날아갔다. 땅을 타고 빠르게 흘러가는 스파크는 그에게 먹히지 않았다.
"우리가 당신을 막을꺼야! 당신이 살인의 죗값을 치르게 할꺼야! 우리는 멋대로 끼어드는 참견이 일인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