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을 보았을까. 그곳에는 자고있는 사람은 없고, 칼-큐브 웨폰-을 뽑아들기 직전인 여자만이 있었다. 이미 칼집에서 살짝 나와 드러난 칼날이 휴게실의 전등에 반사되어 비치운다. 유진이 설마 깰까 싶어 유우카쪽을 돌아봤다면 목격한 장면은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아..."
그녀는 인영을 확인하고 멈칫, 반쯤 몽롱하게 감겨있던 눈이 그제야 떠지면서 두어번 깜빡거려 눈 앞에 있는 것이 직장동료인 유진임을 확인한다. 지금것은 순전히 반사적인 행동이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해요... 또, 장난인줄 알고..."
그렇지만, 대체 누가 어떤 장난을 치길래 깨어나자마자 칼부터 뽑으려 하는 것일까. 무기를 도로 큐브의 형태로 되돌린 유우카는 본격적으로 아는체를 하기 시작했다.
"제유진씨, 였죠... 다치지는 않으셨나요?"
물론 알고있다. 출동당시에는 항상 여우가면을 착용하고 있던 사람. 어떤 연우인진 몰라도 그에게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의 일환으로 보여졌다. 위그드라실은 나름의 진지한 목표를 가지고 결성된 팀이기에, 그 일원도 괜스러운 행동을 하지는 않을거라고, 유우카는 생각하고 있었다. 소파에서 기대어 잠들어있었던 그녀가 내려와 떨궈진 컵을 주워올렸다.
아무래도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깰 수 밖에 없을 것 같은지라, 나는 혹여 그녀가 깼을까 뒤를 돌아보았고 그곳에는 자는 사람이 아닌 본인의 큐브웨폰인 검을 살짝 뽑아들고 있는 유우카가 보였다. 음, 혹시 이 컵이 최애 컵이었다던가 그런걸까요? 살짝 드러난 검신에 나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 아 ... 음 ... 그거 살짝만 치워주시 .. 네 ... "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세가 풀린다. 아무래도 소리에 놀라서 깼고, 반사적인 행동이었나보다. 하지만 아무리 반사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칼을 뽑으려드는건 좀 그렇지 않나 ... 일단 사과했으니 됐다. 장난 함부로 쳤다간 정말 어디 하나 날아가는거 아닌가 몰라~ 큐브웨폰이라 정말로 다치진 않겠지만 아프긴 할테니까 ..
" 그냥 컵이 떨어진 것뿐이니까요. "
능력을 사용해서 내 손으로 다시 가져올껄 싶었지만 그 순식간의 상황을 캐치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컵이었다면 캐치했겠지만. 어쨌든 컵을 원래의 위치인 찬장에 넣어둔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다른 컵을 꺼내면서 말했다.
" 차를 마시려고 했는데, 한 잔 하시겠어요? "
그래도 휴게실에 둘이 있는데 혼자 마시면 정이 없잖아. 마침 티백도 넉넉하고, 냉수에 우릴 생각이라서 조금 오래 걸리기도 할테니까.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표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지만, 유우카는 걱정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자신이야 상처도 남지않고, 피도 흐르지 않고. 한 번 죽는 것 뿐이라지만 유릿조각에 베이거나 찔린 상처가 얼마나 성가시게 느껴지는지 정도는 알고있었다. 무엇보다 그다지 위생적이지도 않고... 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은 위그드라실 팀이라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다. 여차할때에는 치유계열 익스파를 가지고 있는 팀원이 치료를 도울 것이었다. 가령, 케이시라던가.
"맞아요... 유우카... 시료우 유우카, 에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유진씨도 알아봐주시는구나... 위그드라실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인 만큼 눈에 나질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자신의 경우, 물리적으로도 눈에 들지 않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존재감도 옅어지기 마련이기에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분명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국이라고 해야할지. 속으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유우카가 차 얘기에 '부탁드려요'라며 응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깨지면 그 컵은 원래부터 깨져있던게 아닐까. 하지만 괜히 걱정할까 일부러 컵을 넣어놓은 것이다. 넣기전에 잠깐 살펴보았을땐 외관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능력으로 티백을 하나 더 가져온 나는 이번엔 떨어지지 않게 컵을 찬장에서 곧바로 테이블로 이동 시킨다.
" 차게 드실껀가요 따뜻하게 드실껀가요? "
일단 내 몫은 차게 먹을꺼라서 미리 냉수를 부어두고 티백을 넣어두었다. 우러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하므로 내껄 미리 만들어두고 유우카씨 것을 만들 생각이었다.
" 이름은 알고 있어요. 한번 보면 잘 안잊어버리니까요. "
동생들이 워낙 많아서 한명한명 외우다보니 사람 얼굴 외우는데에는 도가 텄다. 그래서 이젠 한번 통성명하면 웬만해선 이름을 까먹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으니. 대학 시절에도 순식간에 학과 친구들 이름을 다 외워서 과대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 그럼 제 이름도 편하게 부르세요. 성까지 붙여서 부르면 불편하니까요. "
그리고 개인적으로 내 성씨를 별로 좋아하진 않아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냥 이름만 불러주기를 원했다. 하도 제비라고 애들이 놀려댄 것도 있고, 이름이랑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나저나 키가 상당히 작네. 동생들 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유우카의 입에서 느릿하게 말이 흘러나온다. 그렇잖아도 몸이 찬 편이라 음료는 계절불문 열이 있는 편을 좋아했다. 마치 다 식은 재가 불을 원하듯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간혹, 모르시는 분들도 계셔서요... 그치만, 이해해요..."
상기했듯, 위그드라실은 다국적 팀. 그 중에서도 자신은 일본인. 한국인은 단 세 글자면 되는 것을, 자신은 여섯이나 되는 글자로 된 이름이었으니. 또, 한자로 풀어쓰면 네 글자가 된다. 그렇다고 영미권처럼 세계 공용어도 아니라 세 글자의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은, 아마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머나먼 이방의 것으로 느껴질거라고 막연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비단 언어적인 문제 뿐아니라, 위그드라실에 오고나서 일이 없을때에는 매번 이곳저곳에 가서 잠들고 있기도 하고... 경찰치고는 목소리가 큰 편도 아니었다. 그것을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그런 유우카는 그가 미소를 걸치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럼 유진씨라고..."하면서, 홀로 되새기듯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뜻하게 부탁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사용해도 괜찮지만 뭔가 직접 끓이는게 따뜻한 기운이 더 오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티백을 미리 까서 컵에 넣어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팀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아마 모두들 확실하게 알고 있을거라구요? "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 팀에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보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우수한 인재들이고 소라가 선별해서 스카웃한 사람들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 그거면 충분해요. 혹여 존댓말이 불편하면 말을 편하게 해도 좋아요. "
물론 그때는 나도 말을 놓겠지만요? 웃으면서 얘기한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흠칫하며 손을 거둔다. 애들한테 하던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대로 할뻔했다. 상대방은 다 큰 성인인데다 직장동료이므로 실수하면 큰일이었다. 안그래도 합을 맞춰야하는데 어색해지면 그건 그것대로 큰일이다.
" 유우카씨 보고 있으면, 약간 동생들을 보는 느낌이네요. "
물이 끓어오르자 티백이 들어있는 컵에 물을 붇는다. 뜨거운 물에 들어간 차는 금방 우러나 물의 색이 조금씩 변하도 있었다. 나와 그녀의 컵을 둘 다 능력으로 이동시킨 나는 테이블로 돌아가 소파에 걸터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