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키온을 만나서 그 파편에 대해서 조금 더 들을 수 있는게 있으면 듣고 올게. 오늘 새로 스카웃한 이가 온다고 했으니까 안내는 부탁할게!
라는 지시를 받은 예성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하필 나지? 라는 표정으로 바로 옆 횃대에서 꺅꺅거리는 그가 기르는 녹색 뉴기니아 앵무인 셀린을 말 없이 바라봤다. 셀린은 고개를 살쨕 갸웃하더니 조금 얄미운 어투로 이야기했다.
"표정 어둡다! 표정 어둡다! 주인님 표정 어두워서 다 도망간다!"
"그 정도는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작게 혀를 차며 비스킷을 두 개 내밀자 셀린은 그것을 냉큼 앞발로 가로채며 날아오른 후, 창가에 착지하며 비스킷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예성은 이어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도착 예정 시간이었다. 깍지를 낀 후에, 크게 기지개를 켜며 예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하고 있는 다른 대원들에게 새로 스카웃된 이를 맞이하고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예성은 서가 있는 2층에서 내려와 1층 입구에서 대기했다.
일단 사진은 받았기에 얼굴은 알고 있었으나, 밖에서 직접 보면 의외로 못 알아보는 일도 흔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우선 예성은 입구 부근에 서서 사진과 유사한 누군가가 오는 것이 아닐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부모님의 닥달만 아니었다면 더도말고 덜도 말고 출근 시간을 딱 맞춰서 올 생각이었다. 나는 성실한 경찰로 일하는데 1분도 허투루 쓰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눈치 빠르고 계산이 밝다. 건물에 들어서며 다시 한 번 상태를 체크한다. 복장 완벽, 5분 일찍 출근하는 성실함 완벽(부모님의 닥달때문인 건 잊자), 표정 관리도 완벽, 내 인생 안 완벽.... 입꼬리를 끌어올리는 와중에도 속내로는 근심이 가득이다. 이제 겨우 익숙해진 근무지의 팀장은 조금 과하게 대충이긴 했어도 참으로 편한 상사였다. 탕비실에서 30분 뻐팅겨도 신경 안쓸 상사는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쯤은 사회생활력이 짧은 나도 잘 안다. 과연 이 곳은 어떨련지 걱정이다. 제발 부하직원에 관심없고 설렁설렁한 상사면 참으로 좋을텐데.
"아자아자 화이팅!"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서 기 죽는 소인배가 아니다. 유리에 비친 나에게 심심한 응원을 건네고는 문을 열었다. 웬 걸. 인상 사나운 사람이 떡하니 입구 앞을 버티고 있지 뭔가. 왜 아침부터 입구에서 난리람. 투덜거리지만 여기서 뒷문으로 돌아가는 건 스스로가 하수임을 자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목에 힘을 주고 앞만을 보며 걷는 모습, 과연 거북목으로 고통받는 현대인의 가상한 노력을 표현했다 할 수 있다. 이대로 잘만 넘어가면 된다. 모르는 사람이다. 나랑은 관계 없는... 제발요...
"........제, 제게 볼일이 있으신가요."
따라붙는 시선이 따갑다. 순간 머리를 굴려 나의 행적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문제없음이다. 정말 당당해져도 되는데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이 기분은 어째서일까?
입구로 들어서는 여성의 모습에 예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과 그녀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봤다. 꽤 꼼꼼하게 확인하려는지, 눈동자가 잠시 반짝이는 듯 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애초에 그렇게 꼼꼼하게 하지 않아도 동일인물임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천사민 씨 되십니까?"
그다지 의미는 없는 물음이었다. 서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고, 얼굴도 사진과 동일한데 무엇을 더 따질 필요가 있을까? 허나 일단 자신이 그녀를 알고 있음을, 그리고 관계자임을 밝히려고 하면서 예성은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어 괜히 입고 있는 제복의 옷깃을 손으로 정리하면서 경계자세를 취한 후에 오른손을 절도 있게 아래로 내렸다.
"익스레이버 위그드라실 팀 차예성 경위라고 합니다. 본 팀의 지휘자인 최소라 경위님은 얼마 전에 있었단 사건 관련으로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보좌인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차후 잘 부탁하겠습니다."
분명하게 자신의 소개를 하며 예성은 1층에 있는 유리문 너머의 카페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올라가기 전에 혹시 커피나 다른 음료가 필요하시다면 저 카페에서 구입해서 올라가도 됩니다. 경찰인 것을 증명하면 20% 할인이 되니 크게 부담도 되지 않을 겁니다."
제길... 내가 들어도 형편없는 대답이다. 지나가다 엄마가 봤으면 절도가 없다며 호통쳤을 거고 아빠가 봤으면 사람이 경우 없어보인다며 핀잔줬을거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불린 것은 다행이지만, 탕비실에서 하루에 2번 30분동안 시간 끄는 일은 물 건나갔다. 순간 얼굴을 찌푸릴뻔했다. 앞니로 혀를 꽉 물지 않았다면 분명 울상을 지었을 것이다. 그럼 뭐해. 경계자세에 놀라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건 어쩔 수 없다. 무표정한 얼굴로 뒷걸음질을 쳤으니 제법 우스운 꼴이었을 터였다. 나는 얼른 자세를 바로하고 허리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경위님의 손을 따라 카페를 힐끗거리고 말았다. 커피는 입맛이 맞지 않는터라 평소에도 잘 입에 대지 않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왔기 때문에 다른 음료 역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덧붙이며 경위님의 뒤를 따랐다.
"이렇게 마중나와주실 줄 몰랐어요. 저는 사실 길을 잃을까 약간 걱정했거든요. 제가 생각보다 길눈이 어두워서... 다행이네요. 원래도 이렇게 마중나와주시나요?"
항상 명랑하고 사교성 좋은 게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말이 너무 많아 사소한 물의를 일으키고는 했지만 입을 다무는 건 그보다 힘들었다. 힐끗 경위를 살폈다. 조금 인상이 사납게 생겼지만 오히려 괜찮다. 원래 경찰이 인상이 무서워야 범인들도 고분고분 손 내밀고 잡아가슈 하는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폭력사태도 줄어들게된다. 음! 내가 이렇게 긍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