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마중 정도는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원래라면 최소라 경위님이 나왔겠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전에 뉴스로도 나온 적이 있지만, 싱크홀 사건 관련으로 조금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보니. ...본의 아니게 놀라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 것도 그렇고, 뒷걸음질을 친 것도 그렇고 아마 자신의 인상, 혹은 다른 이유로 놀란 것이 아닐까 추측하며 그는 나름대로 사과를 표했다. 뒤이어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카페를 바라봤으나 당장 커피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중에 쉴 때 내려오자고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천천히 향했다.
"여기가 앞으로 일하게 될 곳입니다. 다른 분들도 일을 하고 있긴 한데, 최소라 경위님이 생각보다 상당히 프리한 스타일이라서. 해야 할 일만 잘하면 딱히 뭐라고 하진 않을 겁니다. ...저도 일만 잘하면 크게 말을 하거나 할 생각은 없고요. 일단 이름이 달린 책상이 있을텐데, 거기에 개인짐을 놔두고 제 자리로 와주셨으면 합니다. 간단한 전달사항과 전해줘야 할 것들이 있다보니."
사무실 안은 그야말로 예산을 엄청 쏟아부은 듯한 느낌의 신식 그 자체였다. 책상은 물론이고 의자, 거기다가 컴퓨터까지 확실히 고급이었고, 정수기가 있는 곳을 바라보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간식들, 그리고 커피를 타서 마실 수 있는 믹스커피까지. 확실하게 놓여있었다.
이어 예성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모니터가 여러개 놓여있는 자리였으니, 아마 찾기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옷장 쪽으로 간 후에, 한 쪽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네모난 큐브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자리로 향해 의자에 앉았다.
이걸로 된 것일지. 물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의 약속과 부탁은 그저 반창고같은 것에 불과하다.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고, 응급처치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상처를 돌이킬 수 없는 흉터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선, 그러한 처치는 꼭 필요한 것. 그래, 중요한 것은 마음. 서로에 대한 신뢰와 관계가 깨지기 전에 다시 봉합하는 것. 실제로 자신이 죽는지 안 죽는지같은 사망여부따위 보다도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반복된 똑같은 경험으로 이미 진즉에 알고있던 유우카는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그럴테지만...
"나는, 편해지지 않았어..."
유우카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그렇게 말했다. 말하고는,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손을 가져가 슥슥 빗어주며 도로 진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무방비스러운 태도와는 정반대로 이대로 마무리하게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한 마디가 대비된다.
"알데바란도 물러졌구나... 따라와..."
물론 그것으로 됐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순간들이 자신을 얼마나 귀찮게하는지, 얼마나 신경을 자극하는지. 물론 알데바란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알아서도 안 되는 것이고. 딱히 그의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순간이 매번 있을때마다 가만히 참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설마싶지만 화까지 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우카는 분풀이를 할 생각이었다. 자신의 포근한 목욕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달콤한 간식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편안한 수면 시간을 빼앗은 것에 대한... 분풀이. 먼저 걸음을 옮겨 문가로 다가간 유우카가 알데바란을 돌아보며 말한다.
─ 2XXX년, 5월 7일. W씨와의 기록을 글로 옮겨낸 사본, 해당 녹화는 W씨의 동의를 받음.
(W씨는 내게 진하게 우린 자스민차를 내줬다. 나는 캠코더를 꺼내 동의를 얻었다. W씨는 당연히 수락했다.)
W씨: 그런데 왜 굳이 영상을 찍는담? E: 키르스텐씨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요.
(이후 내가 찾던 사람이 어느쪽인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키르스텐 가족에 대해 전부 알고 싶다고 했다.)
W씨: 키르스텐 가족 말하는 거지? 별거 없어. 모건은 한의사고, 디르크씨는 군인이야. 아무리 군인이라도 그놈의 한의학이 미국에서 인기를 얻기 전까진 차이나타운에서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몰라! 손 벌리는 건 유학으로 좋다고 했거든. E: 유학이요? W씨: 그래! 유학. 디르크 씨가 파병갔다 돌아왔는데 칼부림에 휘말렸거든. 그때부터 아롄이 경찰이 되겠다고 했나봐. 조국을 밖에서 지키는 아버지가 계시니 자기는 안에서 지키겠다고 그랬지. 그때 아롄이 고작 6살이었어. E: 마음가짐이 참 멋있네요. 아롄은 누구인가요? W씨: 아롄? 디르크의 첫째 아들. 독일로 유학을 가서 경찰이 됐지. E: 그렇군요. 그러면 둘째 아들도 있어요? W씨: 응. 아즈. 지금은 월스트리트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 E: 키르스텐 가족은 성공했네요! W씨: 그건 또 아닐 걸.
(W씨는 주변 눈치를 보더니 창문을 닫았다.)
W씨: 이건 기사에 넣지 않겠다 맹세했으면 좋겠네. E: 음. 맹세할게요. W씨: ……아롄이 집을 나가버렸거든. E: 왜요? W씨: 아롄이 경찰대를 졸업하고 돌아왔더니, 입사 1년만에 대뜸 짐을 챙겨서 집을 나가버렸어. 모건의 얼굴이 사과보다 빨개졌다니까? 그 이후로 그 가족도 여기를 떠나버렸어. E: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들어도 될까요? W씨: 자세히는 잘 모르겠어. 그냥 큰 소란이 일고 같이 온 남자 차 트렁크에 짐을 싣지 뭐니. E: 인상착의가 어떻게 됐나요? W씨: 아롄도 키가 큰 편이지만 머리 하나보다 더 큰 남자가 옆에 있었는데, 엄청 무서웠지. 흉터 투성이에, 근육도 제법 있었고. 머리카락도 말끔하게 넘겨서 호감인 인상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어. 눈이 사람을 꿰뚫는 것 같았거든. 디르크 씨가 쫓아 나오니까 아롄이 그 사람한테 딱 붙더라니까. 이후에 재밌는 일이 있었지! 디르크 씨가 노발대발 하면서 당장 꺼지라고 하고, 그건 차이나타운 사람들이 다 알아. 내 예상으로는 아마 아롄이 집안에서 허락하지 않은 사람이랑 결혼 한 것 같아. 그래서 집을 나갔고. E: 결혼이요? W씨: 이후에 아롄의 성이 바뀌었거든. 나도 그걸 페이스북을 하다 알았다니까? 키르스텐에서 ─가 됐더라고. 그런데 그마저도 며칠 안 가서 다 사라졌지 뭐야. 아롄이 계정 탈퇴를 해버렸거든. E: 그렇구나.
(이후 W씨는 자유에 대한 일장연설을 펼쳤다.) (그 이후로 쓸만한 정보는 건지지 못했다.)
E: 그러면 그, 아롄과 아즈는 어디에 살고 있어요? W씨: 아즈는 월스트리트 근처에. 아롄은 경찰 일을 계속 하고 있으니 경찰서 주변이라도 돌아보지 그래? E: 그거 범죄예요! W씨: 얘도 참, 자유주의잖니. 들키지만 않으면 돼. E: 맙소사..
알데바란은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강한 의지가 담긴 그 한마디는, 알데바란에게는 꽤나, 공포스러운 것이었겠지.
"안 가면 안 될까..."
안 그래도 화가 나 있을 -설령 화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우카를 자극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따라오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별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겠지. 주로 신체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피곤한 상태에서 꽤나 시간을 뺏었으니 잠시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일을 어쩐다. 그는 굉장히 꺼려하는 기색을 내비치다, 유우카가 자신을 돌아보자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살살 부탁해..?"
괜한 걱정을 했다- 원래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 거다. 그는 친구를, 유우카를 소중히 여기는 이였으니까. 하지만 약 10분 뒤에는 진심으로 괜한 걱정을 했다며 후회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