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스레는 에반게리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스레입니다. ◉ 설정 및 스토리는 완전 창작이 아니며, 스토리 분기에 따라 TVA+EoE / 신극장판 기반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스토리는 총 4개의 페이즈로 나뉘어있으며, 페이즈4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나면 엔딩입니다. ◉ 진행은 평일과 주말 모두 밤 10시~11시부터 12시~01시까지 진행되며, 진행이 없는 날이 될경우 미리 스레에 공지드릴 예정입니다. ◉ 당신의 캐릭터가 사망 및 부상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본 스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 규정(17금)을 준수합니다. 기준 등급은 2-2-3-2 입니다.
걱정을 품은 물음에 나는 그저 고개를 살며시 돌려 호수를 보았다. 그야 처음 왔으니까 100% 길을 잃어버리겠지. 아니면 엄청나게 늦게 도착하거나. 알고 있다. 지금 밖에서 본 그 이상한 검은 생물체라던가, 탱크라던가 그런 걸 보면 엄청나게 비상사태라는 걸. 뭘 시키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날 부른 거라는 짐작도 조금은 할 수 있고. 아무튼 머리로는 대충 파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전의 통화로 욱한 마음은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가긴 가주는데, 순순히 가주지는 않을 건데? 좀 늦더라도 중간에 길을 잃더라도 어쨌든 4번 게이트에 도착만 하면 되는 거지? 당신이 급하든 아니든 그건 나랑은 전혀 상관없고 말이야.
그런 속내를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그저 삼키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앞의 어른은 웃으며 길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초면인 사람을 상대로 여기서 더 고집을 부릴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나. 두 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진짜 복잡하네요.“
아니 뭐야 이 구조. 코너가 나올 때마다 꺾는 건 물론이고 중간중간 레일도 타고... 대체 뭔... 고집대로 혼자 갔다간 늙어 죽을 때까지 탈출 못할 것 같은 복잡한 길인데... 원하는대로 하지 못한 분함과 그렇게 안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섞여 복잡한 심정으로 툭 내뱉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보이기 시작했다. GATE 4. ...아버지는, 나와 있는 걸까. 이번엔 별 기대 없이 심드렁한 얼굴로 둘러봤다.
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서로 이야기하거나 일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시간을 끌수록 사상자만 더 나올 것이 아닌가.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일 터였다.
2번 게이트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엘리베이터와 흰 건물. 하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이 보인다.
플러그 슈트. 파일럿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에바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특수 의복. 맨몸으로 입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제쳐두더라도, 디자인 역시 완벽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상상황에서 세부적인 걸 따지는 녀석은-
'파일럿으로서 실격이겠지.'
그 문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빈혈이 올 것만 같았다. 괜찮아졌다 생각했는데. 어째서일까. 그럼에도 환복하고 싱크로율을 확인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환복을 끝내고 벽의 빨간 버튼을 누릅니다.
801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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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거의 끝나감) 22:49:32
>>797 명령문을 입력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루미의 헤드셋에서 폭음이 눈에 띄게 덜 들리게 되었고, 이내 나루미는 사도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거인에게서 들려오는 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닙니다. 짐승의 소리와 비슷하였는데, 공격을 받을 때마다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 같기도 합니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데 어째서 그런 소리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루미가 거인이 내는 소리와 음파 그래프에 집중하고 있는 그 순간, 나아가면서도 계속 주위에 파장을 띄우고 있는 거인의 위로 익숙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구 도쿄를 한 순간에 끝장냈던 바로 그 무기. N2 폭탄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만, 지금 보이는 참상은 수 년전의 전시 상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때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무기를 겨눴지만, 지금은 인류가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무기를 겨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 됐어! 됐다! 이제 저 놈도 끝이야!
나루미의 건너편 자리에서 영어로 된 안도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N2 폭탄은 사도의 머리 위에서 파장을 퍼트리며 멈출 뿐, 그 역시 사도를 공격하는 데는 실패하였습니다. 요란스런 폭음과 함께 N2 폭탄은 주변에 여파를 퍼트리고, 일순간이었지만 초점이 흐려져 화면을 제대로 확인하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나루미는 사도가 멀쩡히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802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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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거의 끝나감) 23:05:12
>>798 4번 게이트에 도착한 나츠키는, 다른 게이트와 다를 바 없는 녹빛 철로 된 벽과 거대한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 위로 모니터링실로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창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나츠키는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컴퓨터 여러대, 의자가 있지만 앉아있는 사람은 없고, 중앙에 서 있는 한 남자.... 아니, 아버지라고 불러야 옳을까요.
"이제 왔나. "
검은 네르프 정복을 입은 남자, '카시와자키 나오키' 는 무정한 눈으로 나츠키를 내려다 보며 말하였습니다. 수 년만에 만난 딸아이를 대하는 태도 치고는, 상당히 냉랭한 태도입니다.
"여기까지 안내하느라 수고 많았다, 유즈키 대령. 그리고 나츠키....저길 보도록. "
나오키는 무심하게 여인과 나츠키를 번갈아 보고는 나츠키의 뒤를 가리키며 말하였습니다. 보랏빛과 초록색이 섞여있는, 눈이 정확히 두 개 달려있는 기체. 어깨에 달려 있는 구속구에, 유난히 섬뜩해 보이는 얼굴.
"다른 말 할 것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츠키, 저 것에 타라. "
나오키는 안경을 올리며 무심하게 나츠키에게 말합니다. 권유가 아닌, 명백한 통보로 들리는 소리입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어차피 눈으로 보는 건 다른 사람들도 쉽게 한다. 나는 내가 더 잘하는 일을 하려 한다. 헤드폰의 양 쿠션을 귀에 꼭 누르고 울부짖는 괴물의 소리에 집중했다. 낮선 소리의 바다에 빠져들던 와중 익숙한 소리가 그 안을 갈랐다.
백만의 천둥이 터지는 듯한, 하지만 핵병기는 아닌...
"N2탄?"
눈을 뜨니 역시 N2탄이다. 하지만 그게 막혀버린 건 결코 역시라고 할만한 게 아니었다.
"이거 싸워서 이길 수는 있는겁니까? 지금이라도 피난을 가야..."
믿는 구석이 통하지 않았을때 사람이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는가. 1차대전에서 전차를 처음 본 독일군들처럼 말이다.
@
806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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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7 (거의 끝나감) 23:20:07
>>799 타카기는 화이트 카드를 찍고 하얀 건물로 들어섭니다.... 내부는 여타 탈의실이라 할만한 곳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생전 처음 보는 기계들이 구석마다 서 있었고, 중앙 벽에 또다른 게이트로 보이는 문이 있었으며, 왼쪽 벽에 빨간 버튼이 정확히 세 개가 자리잡아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전에 중년의 남성이 말했던 그 버튼인 것 같습니다. 오른쪽 벽에 하얀색 바탕에 주황색, 그리고 초록색이 섞인 전신슈트가 걸려있었는데, 목 부분에 붉은 테두리로 장식된 것이 눈에 띕니다. 옷걸이는 정확히 세 개였는데, 걸려있는 것은 두 벌입니다. 이미 먼저 도착한 옅은 갈색머리의 소년이 갈아입었기 때문입니다.
환복이 끝나면 붉은 버튼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800 미츠루는 능숙하게 하얀 건물로 들어서선 슈츠로 환복합니다... 꼭, 이전에도 이미 이 옷을 입어본 듯한 솜씨입니다.
굉장히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숨이 가빠질 것 같았습니다만, 그렇지요.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별 일 없을 겁니다. 없어야만 합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붉은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의 게이트가 열렸고, 웬 노란 기둥으로 향하는 길이 펼쳐졌습니다. 노랗다기보단 주황색에 가까운 원통형 기둥입니다. 세간에서는 [ 엔트리 플러그 ] 라고도 부르던가요? 양쪽으로 하얀 가운을 입은 기술부 직원들이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이들 직원들이 미츠루가 탑승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녹빛 철로 된 벽과 머리 위로 보이는 통유리창 너머의 모니터가 빼곡한 곳. 이 건물이라는 곳엔 어울리지만, 이런 곳에 내가 와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거리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 그 장소 중앙에는 아버지가 서 있었다. 하지만 직감했다. 그냥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에게 주는 눈빛이 더 다정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차갑고 무정한 시선에, 아주 조금, 정말로 조금이지만 하고 있었던 기대는 산산조각 나버릴 것을.
오랫동안, 아주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한 딸을 앞에 두면 보통은 뭐라고 할까. 다른 평범한 가정에서는 먼저 뭐라고 말을 걸까.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건강하니? 아주 조금은 그런 말을 기대했다. 아니. 그런 다정한 말이 아니라도, '그 머리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냐'라는 핀잔이라도 좋았다. 차라리 그건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바라던 그 어떤 말도 아버지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다른 말 할 것도 없다는 냉랭한 말과, 저 것에 타라는 통보 밖에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었어.
"......그게 다야? 대체 뭐야. 다른 말 할 것도 없다니 그게 대체 뭐냐고! 갑자기 불러놓고서 맨 처음 보자마자 하는 말이 다른 말 할 것도 없다니. 잘 지냈냐던가, 어떻게 지냈냐던가. 아, 그래! 뭐 이상한 거대 물체가 등장했으니까 뭔가 비상사태 같으니까, 그런 대화 할 틈이 없을 수도 있겠네. 그래도, 그래도 하다못해 '오는 길에 다치지는 않았니'라던가, 그런 것 쯤은 물어봐줄 수 있잖아? 난... 난 당신 딸이라고!! 당신은 내 아버지고!! 그런 것 쯤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런데, 다짜고짜 하는 말이라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절규하다시피 내뱉었다. 스스로가 들어도 처절할 정도의 목소리가 건물 내부에 공허하게 울렸다. 아버지를 쏘아보는 눈가는 점점 흐릿해져서, 어쩐지 분했다. 울기보다 화를 내고 싶었는데. 그래도 울고 싶은 것은 사실이라. 손등으로 대충 눈가를 훔쳐내고,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817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IIfPTkcWU)
2021-10-07 (거의 끝나감) 23:46:46
>>805 폭발로 인한 불기둥이 주변으로 치솟고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사도는 멀쩡한 모습으로 두 발을 듣고 서 있었습니다. 나루미의 흐릿한 화면으로도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은, 잔상처 하나 없는 모습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이를 확인하였는지, 이내 제1지령실 전체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등 각국의 언어로 탄식하는 소리가 퍼져나갔습니다.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가진 최고의 무기도 통하지 않는데, 무엇으로 적을 막는단 말입니까?
-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저걸 막으란 말이야?! - 공군은 뭐하고 있는겐가! 한 발만 터트려서 될 일인가 이게?! - 더 터트리게, 더 터트리란 말이야! 제기랄, 대체 뭐하는 놈이야 저건?!
오른쪽 모니터링자리에서 UN군으로 보이는 장성 여럿이 영어로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이 들려옵니다... 제복의 형태로 미루어 봤을 때 해군으로 추측되는데, 모두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 나루미에게는 시선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인데 일개 오퍼레이터일 뿐인 나루미에게 관심을 보일리가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면 시작도 하지 않습니다. "
이오리는 덤덤하게 벽면 모니터를 응시하며 말을 이어나갑니다...
"슬슬 저희 쪽에서 움직일 때가 되었지요. 파일럿들이 출격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모든 기대를 걸어야 합니다. "
무슨 파일럿이 출격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쪽이란 것은 추측컨대 네르프 조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인 대피는 대부분 이루어 졌을 것이니, 걱정하실 부분은 없습니다. 적이 이곳 지오프론트까지 내려오지 않는 한 저희는 안전할 것입니다. "
별 일 아니라는 듯 이오리는 나루미를 보고 단언하였습니다. 왜 저 거인이 여기까지 침입할 것이란 가능성을 두고 있는진 모르겠습니다. 적의 목표가 이곳 제3신도쿄시 지상이 아니라는 걸까요?
818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IIfPTkcWU)
2021-10-07 (거의 끝나감) 23:57:56
>>808 나오키는 딸아이의 말에도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다가, 싫다고 하면 어쩔거냐는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꺼냅니다.
"싫다라...... 싫다고 할 수있는 상황인가? "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눈썹이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정말로 어이가 없는 듯한 얼굴입니다.
"네가 저 기체에 타지 않으면, 세계는 멸망한다. 너를 그동안 보살펴 주었던 자들 역시, 죽게 될 것이다. 네가 그동안 연을 맺었던 자들도, 전부 목숨을 잃게 되겠지. "
822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QOSdSNjulo)
2021-10-08 (불탄다..!) 00:09:53
>>809 타카기는 플러그 슈츠를 착용하고 나서 붉은 버튼을 누르고 게이트 밖으로 나옵니다.... 역시 타카기에게도 똑같은 풍경이 보이고 있습니다만, 기술부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기둥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바로 테스트를 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이미 탑승이 이루어 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테스트가 진행중인 것 같습니다. 테스트가 끝나고 기둥이 다시 올라오면 탑승하도록 합시다.
>>815 미츠루는 엔트리 플러그의 조종석에 탑승해, 테스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이내 기둥 바닥에서, 천장에서 익숙한 핏빛에 가까운 주홍빛 액체가 치솟고 내려오더니, 액체가 발을, 다리를, 머리를 감싸고, 이내 몸 전체가 액체에 빠져듭니다. 물속으로 들어왔음에도 이상하리만큼 호흡엔 지장이 없이 멀쩡하였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조종석의 손잡이를 잡는다면 곧, 화면에 갖가지 수치가 뜨면서, 매우 빠르게 테스트가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결과는... .dice 10 100. = 13
결과가 뜨는 즉시 플러그가 위로 치솟고, 나가기 좋게 출구가 열리게 될것입니다.
823Episode One : Invasion ◆5J9oyXR7Y.
(QOSdSNjulo)
아, 표정이 변했다. 표정이라고 하기엔 눈썹만 올라갔을 뿐이지만 그래도 뭔가 바뀌긴 했네. 얼굴 근육이 아예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니었구만. 무심코 드는 그런 생각을 한 쪽으로 흘려보냈다. 세계가 멸망한다니. 아니, 솔직히 하루 아침에 불려와서 그런 말을 들어도 말이지. 오히려 현실감이 없다고 이거? 그 새까만 다리만 안 봤어도 '아앙? 머리 돌아버린거 아니야? 이 미친 아저씨가.'라고 쏘아붙였을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애초에 이상하잖아. 어른을 냅두고 나같은 아이한테 싸우라고 시키는게, 그런 괴물같은 거랑... 그 생각을 단칼에 자르듯이 권유가 아니라는 말이 날아왔다. 짜증나 진짜. 잔뜩 인상을 쓴채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전부 목숨을 잃게 된다는 말에, 사실 속으로는 움찔했다. ...세계가 멸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지금껏 돌봐준 친척들도, 전의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도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니까. ...짜증나.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저 사람도 짜증나고, 그냥 거절하지 못하는 나 자신도 싫다.
"...아 진짜, 짜증나... 마음같아선 다 뒤져버렸으면 좋겠어. 특히 당신. ...그래서, 어떻게 타면 되는데. 저 이상한 보라색 초록색 대가리 위에 올라타라는 건 아닐 거 아냐."
"파일럿이라니요! 무슨 얼어죽을 파일럿이요! 지금 저기서 산화하는 이들은 파일럿 아닙니까!"
실례지만 다른 세상에서 살다오셨습니까 부장님? 이 세계가 망해도 고향 이세계로 넘어가면 되니까 그리 평온하신 것입니까? 제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주세요.
"부장님 말이 맞다면 저들은 왜 저기서 죽고 있는 것입니까! 예?!?! 당장 철수시켜야 합니다!"
"저건 시간끌기도 못 되니 민간인이라도 한명 더 태워서 피난을 가던지...A fxxk!!"
민간인! 빌어먹을 민간인들! 군인 잡아먹는 귀신들!! 나는 히스테릭한 반응을 내비치며 헤드셋을 벗어던졌다. 호흡이 가빠진다. 옆자리에서는 유엔 해군 장성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인다. 차라리 저기에 끼어있으면 지금이 공포스럽더라도, 사람은 믿을 수 있을 텐데.
"...이,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여기 오지 말걸. 믿을 수 있는 이들, 함께 최후를 맞이하기에 마땅한 이들과 함께 있을걸. 이게 뭐야. 뭐하는 짓이야.
보통 딸이 아빠한테 뒤져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면 좀 혼내는게 정상 아니야? 그냥 저렇게 보고 있을게 아니라? 진짜로 어이가 없네. 담담한 반응이 별로 맘에 안 들어서 한층 더 인상을 쓰고 아버지라는 사람을 마주본다. ...작게 뭐라고 한 것 같지만 잘 들리진 않았다. 뭐야. 말을 할거면 확실하게 하던가. 혼자 뭐라고 그러는거야. 유념토록 하기는 또 뭘 하냐고. 괜히 속으로 투덜거리며 뒤쪽을 돌아봤다.
"아으 깜짝이야. 뭐야 대체. 다들 어디 숨어있던거야...요, 정말...“
플러그 슈츠인지 초호기인지 뭔지 아무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느새 뒤에 사람들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다. 초면인 어른들(그것도 아주 수가 많음)이니 일단 천천히 말끝에 존대를 붙였다. 아까 그 사람... 유즈키라는 사람은 같이 안 가는 건가. 어쨌든, 이 사람들을 따라가면 되는 모양이다. 몸을 돌려서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따라가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