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기보다, 그녀가 그렇지 않을 때가 언제 있었겠냐만은. 알데바란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 조금 한참이 지나서야 그를 향해 뒤돌아보고서는 아는 체를 한다. 헌데 말투가 꼭 어떠한 잘못을 추궁하려는 듯한 말투다. 그에게 어떤 미안한 행동을... 했었을까? 현장에선 체포에 열심히 가담한 유우카로서는 알 수 없다.
"응..."
그렇기에 그를 따라 휴게실로 쪼르르 따라가본다. 설마 또 머핀을 숨겨놓은 것은 아니겠지...?
그는 올해 23살의 젊은 청년이다. 꿈도 많고 혈기가 왕성해 이것저것 도전해도 좋을 나이지만 그의 목표는 단 하나다. 바로 살인 사건을 도맡는 살인 전담팀, 강력반에서 일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칼부림에 휘말렸던 날 다짐했던 것으로, 경찰이 되겠다 했을 때 가족들은 네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는 이제 막 경찰대를 졸업하고 신참으로 발령이 났으며, 첫 사건부터 연쇄 살인을 떠맡게 됐던지라 잔뜩 긴장한 상태다. 단지 그것 뿐이면 좋았을 것이다. 그는 오늘 사건 때문에 불안한 이 시국에, 한 노인이 실종 됐다는 소식에 주변 숲을 둘러봤을 뿐이다! 그는 숲길이 시작하는 곳에서 조금 벗어나 외진 곳으로 향했을 뿐이고, 나무에 등을 기댄 모습으로 상체가 기울고 무릎을 꿇은 채 총알이 얼굴을 박살낸 시체를 마주했다. 주변 나무로 사정없이 튄 피와 뇌수는 물론이고 이미 부패가 시작되어 개미떼가 앉은 머리는 처참했다. "하느님, 맙소사!"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그는 저 멀리 뛰쳐나갔다. 누군가 비명소리에 총을 장전하고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시체를 보고 탄식했다. "맙소사!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다! 여름날의 시체는 아주 끔찍했다. 그는 대답 대신 나무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여 오늘 먹었던 것을 전부 토했다. 아침부터 내키지 않았던 바나나가 흐물텅하게 바닥에 쏟아졌다. 동료는 그의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숨 깊게 들이 마시고 내쉬어!" 그와 함께하는 동료는 올해 6년차의 베테랑으로, 지금 패닉상태에 빠진 그를 쉽게 달랠 수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를 몇번이고 토닥이며 달래며 합류한 경찰에게 감식반을 불러달라 했다. 동료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감식반 오고나면 돌아가서 심리 상담이라도 받아. 처음인데 무서웠지?" 그는 눈물 가득 고인 얼굴로 동료를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그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고, 동료는 굳어 눈을 빤히 마주봤다. 먼저 동료 쪽에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첫 단추가 잘못 꿰인 것 같네. 이런 시체는 드문데……."
그는 동요했다. 이렇게 친절한 상사가 있을 수 있을까? 직장 운은 정말 좋은 것 같다. 그는 오늘 첫 파견이니 절대 이상한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시체는 강렬했다. 우는 모습은 추한데! 그렇지만 정신적 충격은 그에게 이성적인 사고를 주지 않았고, 그는 펑펑 울었다. 그는 감식반이 도착할 때까지 시체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한참동안 멍한 눈으로 허공만 쳐다봤다.
뭔가 잘못 됐다. 첫 단추를 잘못 꿴 수준이 아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윤리적으로 옳은 걸까? 잘못 됐어도 한참 잘못 됐다는 걸 깨닫기에는 사건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이성적인 판단도 결국 두 손과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그는 감식반이 도착하자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의 시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이 있다. 그는 이 사건에 휘말렸고,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 번개같던 순간의 기억은 평생토록 함께 할 것이다.
그는 한참이고 베개의 모서리를 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어젯밤 느꼈던 감정이 떠올라 눈을 감았다.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경멸 섞인 눈빛으로 한참이고 베개를 내려다봤다. 정말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믿을 수 없다! 무릎을 꿇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손을 뻗었고, 결국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스릴과 쾌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들어올리고 얼굴을 덮어 가렸다.
이제 저질러버렸으니 세상은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천 년이 지나도 이 죄를 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분명 지옥 구렁텅이에 빠져 따가운 시선과 경멸을 견뎌야겠지. 윤리 의식이 깊게 뿌리박힌 이 세상이 그를 괴롭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렇고 저런 핑계를 대 빠져나갈 수도 있지만 소용없다.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와 당당히 얘기해봤자 사람들은 이미 그를 죄인으로 낙인 찍을 것이고, 경멸할 것이다. 그때를 위한 장황한 이유를 꾸며낼 생각도 없다. 세상은 자극적인 걸 원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이유보다 더 잔인하고,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유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사회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라도 주어질 면죄부는 없다!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해도 이건 궤가 다른 문제다. 손가락질 받고 사느니 평생이고 숨어 살고 싶다! 그는 소리 없이 울었다. 한참을 울면서 침대 밖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그는 숨을 가다듬었다. 이렇게 울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마냥 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언젠가는 모두 들킬 것이다. 수면 밖으로 나올 문제고, 그는 당당히 마주해야 한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그 기회를 주저없이 잡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두번, 앞으로 영원히!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다. 그렇기에 앞날을 위해 주저없이 행동할 용기가 필요했고, 신은 그에게 약간의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출중한 능력도. 그는 자극적인 세상을 마주하고 계획한 것을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바뀌지 않는다면 그가 바꿀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을 데려온 그가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자 유우카는 이윽고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한다. 그의 표정은 진중했지만 읽기는 어려웠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어쩌면 동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데바란이 자신을 가리켰을때 말이다. 손으로 직접 짚어 만져보니 그곳은 방금 전 스스로 찔렀던 복부다. 죽어야 사는 여자는 그제야 알데바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지금같은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근무했을 때도, 자신의 죽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걱정하는 사람부터 신기해 하는 사람. 그리고 또 경멸하는 사람까지. 유우카는 그들을 이해했다. 자신에게 어떤 핍박이나 대우가 떨어지더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이듯 말이다. 태연하고, 초연하게. 그저 삶을 이어나가듯이.
"왜...?"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게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시료우 유우카에겐 죽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때로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있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깨달음을 '산 자'는 알지 못한다. 당연한 것이다. 죽은 적이 없으니까. '죽은 자'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까.
"내가 떠날까 봐?"
그렇다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살아오면 유우카 역시도 조금은 지치는 것이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쩌면 자신에게 남아있던 실낱같이 남아있던 인간성이 사라져버린 것인지. 이럴때면 자꾸 의심하게 되어서.
유우카가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준다. 여전히 냉랭하고 차가운 손이다. 그럼에도 그 밑에서 아직은 느껴지는 작은 온기가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붙잡고 있는 것처럼만 느껴진다. 알데바란이 이러는 이유를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아니, 지금 순간이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된 듯이 지나온 날들에 대한 이유가 자연스럽게 짜맞춰졌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런 순간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 죽음을 목도하고, 충격받고... 단지 그 다음이 제각각 다를 뿐이었다. 유우카는 그걸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버젓이 여기에 있는데도. 그저 잠시 다녀 올 뿐인데도. 어차피 일어날 죽음을 좀 더 쓸모있게 바꾸려는 것일 뿐인데도.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와 이렇게 간청하는 것이었다. 알고 있을까? 자신 스스로 정하지 못한 죽음이 훨씬 무섭다는 것을? 그렇게 일어난 죽음이 전염병처럼 또다른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을 알고싶다.
"그건"
알데바란이 지금 가지고 있는 마음. 일찍이 내가 잃어버린 마음. 삶과 죽음에 걸쳐져 있지 않은 사람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