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잡아 달라는 뜻인 것 같다 손이 있으니 손을 잡고 어깨가 있으니 그것을 끌어안고 너는 나의 뺨을 만지다 나의 뺨에 흐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겠지 이 거리는 추워 추워서 자꾸 입에서 흰 김이 나와 우리는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느낌을 한없이 소중한 것으로 간직할 것이고, 그럼에도 여전히 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의 소박한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는 추위와 빈곤에 맞서는 숭고한 순례자가 되어 사랑을 할 거야
여름의 아침은 이르게 찾아온다지만 새벽 네 시라면 어떠려나. 밤이라고도 아침이라고도 부르지 못할 모호한 시간대였음에도 벽시계의 바늘은 지금을 규정하려는 듯이 네 번째 눈금을 겨냥했었다. 잠결에 가슴이 답답해 깨어난 때는 이로부터 조금 전이었다. 어딘지 익숙한 무게감에 눈을 떠 보면 좋은 이부자리를 두고 굳이 주인의 몸 위를 골라앉은 대롱이의 형체가 흐릿하게 보였다. 안 자고 여기서 뭐 해. 목으로부터 비어져나온 잠이 덜 깬 소리가 고요한 방을 울렸고 결을 따라 대롱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너로부터 온 메시지를 발견한 건 단지 우연이었지만 이런 우연이라 치면 스리슬쩍 운명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화면에 드러내놓고 떠 있는 네 이름을 보고서 황급히 상체를 일으키자 그 바람에 자리를 빼앗긴 대롱이가 불만스러운 소리를 냈다.
>>112 정말 고마워! >>110 잘 설득한다면 싸우지 않을 것도 같은데 희인이 상황이 너무 안좋을 때라면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깨 가리는 넓은 챙 좋다. 확실히 짧은 챙보다는 넓은 챙이 세아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왠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얼굴이 강조되겠죠. /u 피를 빨라고 요구한다구요... 반할 것 같다. 세아의 그런 주체적인 면 좋아해.
방금 깼다는 너의 발언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느릿하게 꿈뻑였다. 언제고 가본적 있는 너의 집과 방의 구조가 떠오른다. 침대에 곤히 누워있다가, 가벼운 진동이나 착신음에 바작바작 핸드폰에 손을 얹고 암순응이 되어버린 눈에는 너무 밝은 밝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이 차례로 상상이 되는 걸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많은 비밀을 내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도, 또 갈피를 못 잡을 만큼 빠르게 전개되는 것이었다. 머리가 아프다는 작은 감상을 뒤로 한 체, 나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방의 불을 켜면 편할텐데 참 미련한 일이야. 하지만 나는 지금 침대 밖으로 나갈 힘도, 그럴 마음도 전혀 들지 않았으니 너는 나의 응석을 숙연하게 받아들이리라 짐작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이 안 와] [집까지 와줄래?] [아무도 없으니까 우리 부모님 걱정은 하지 말고], [기왕이면 내 기분이 풀릴만한 것도 이것저것 들고]
당연하다는 듯이 너의 호의를 요구하고, 나는 네가 그것을 거부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은 체 다시 휴대폰의 화면을 꺼버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 손으로 짓누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봐야 두통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독한 수면제나, 그에 상응하는 감각적인 자극이었고, 너는 그것을 충분히 제공해줄 수 있을것이다. 잠자코 생각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니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한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그것이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의존적인게 아닌가? 과거의 나는 조금 더 독립적인 주체로서 의연하게 내게 닥쳐오는 감정들을 대처할 수 있지 않았는가? 너와 내가 함께하여 내가 더 약해진다면 우리의 관계가 나에게서 무언가를 주는만큼 무언가를 앗아가는가? 명과 실의 불일치에 나는 서글펐다. 사실 내가 생각해온 모든게 내 감정과능 별 관련 없은 일일지도 몰라. 그저, 내가 내 감정에 대한 이해를 지니고 있다는 통제감을 갖기 위해서 억지로 쥐어짜낸 가짜 논리일 가능성도 있지. 무엇이 확실한가? 나는 왜 우울하고 서글프고 너를 보고싶어 하는가? 알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더 우울하고, 더 서글프고, 더 너를 보고싶었다.
>>125 🤔 때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1. 거의 무조건 세아가 잠드는 거 확인하고 자는 특정한 상황이 있고, 2. 세아 지켜보고 있다가 서로 나른나른해졌을 때 피곤하면 먼저 잠드는 상황이 있어. 둘다 같은 잠자리에서 잠들 때의 전제고 희인이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고 세아가 밤샘해야 하는 상황이면 먼저 잠들기도 할 거야.
>>131 맞아.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잠들 때까지 자기가 깨어있어주면 세아가 좋아하겠다고 희인이가 자기 머릿속에서 판단하는 경우. 그러네 둘이 새근새근 잠드는 거 귀엽겠다. 힐링될 것 같아... /u
저 경우에 세아가 쪽잠자고 일어나지 못했을 때에 희인이가 깨어있어야 하는데.......... ಠ_ಠ 일어나줄까? ... ㅋㅋㅋ 일단 본인이 깨어있는 경우 가벼운 츄로 깨워줄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ㅋㅋ(왠지 민망!) 아니면 옆에 앉아서 세아 상체 안아가지고 자기 품에서 깨워줄거 같아. https://ibb.co/qpP5TLJ 를 침대에 앉아서 하는 느낌 비슷하게. 깨워주긴 해야 하는데 세아 안쓰럽고 그래서 제일 기분 좋은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생각할 듯해. 저 경우에 견과류 같은 간단한 간식거리 같은 것도 꺼내왔을지도 모르겠다. 세아라면 반대 상황에서 어떻게 해?
할로윈이고 뭔가 이벤트성 짧은 독백이나 글 같은 거 올려보고 싶은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 오늘 열심히 해서 일 빨리 마치면 독백이랑 답레 둘다 가져올 수 있도록... 힘내고 올게 🙏
>>133 츄 으흐흐흐흐흐.... 느릿느릿하개 눈 꿈뻑이다가 피식 웃고 일어날것 같네. 팔 뻗고 일으켜달라고 앙탈부리기도 할 것 같고. 끌어안아서 일으켜주는 경우에는 어깨에 충분히 기대서 침착하게 숨 들이쉬고 내쉬다가 눈 꾹 감고 떠서 부스스하게 일어날것 같고... 견과류 같은거 주면 한알 두알 먹다가 커피 타러 가거나 우유 데우러 갈 것 같애.
반대의 경우라면 1. 곤히 자고 있는 서희인을 잠시 관찰하다가 위에 누워버리기 2. 사진 찍고 나서 귓가에 이름 불러서 깨우기 3. 조금 얄미우면 여기저기 깨물거나 해서 깨우기 정도
할로윈이라는 서양 명절, 부러 챙겨본 적은 거의 없지만 너와 함께하는 날이라면 어떤 구실이든 만들어서 축하하고 싶어진다. 네 앞에 놓인 탁자에 갖가지 도구와 눈에 띄는 늙은 호박을 올려놓고 일회용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채 목소리를 띄워가며 일일 선생 노릇을 하는 이유도, 굳이 묻는다면 그래서라고 해둘까.
"자, 그래서 오늘은 잭 오 랜턴을 만들기로 했어요~."
국제 쇼핑몰 사이트에서 구입한 도구들에는 속을 긁어내는 큼지막한 스푼과 조각용 칼, 펜, 조각 도안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힘을 합해 네게 근사한 호박등을 선물해주길 바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네 옆에 붙어 앞치마를 둘러준 뒤 고운 손에 조각칼을 슬쩍 쥐여주는 것이다. 호박을 가리키고서 속닥속닥 너의 시작점을 알려주었다.
"처음엔 호박 꼭지 부근부터 오려내면 된대. "
하지만 네가 조각칼을 힘차게 호박에 꽂아넣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스스로의 행동이 가식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설마 호박 꼭지를 미리 떼어내고 가짜 피를 가득 채운 뒤에 겉으로는 멀쩡한 것처럼 원상복구하는 번거로운 장난질을 칠 거라고 과연 네가 예상했을까.
네게 처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던 때보다 누워서 핸드폰을 매만지는 너의 모습을 더욱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새삼스레 스스로에게 일깨웠더라면 난 머릿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네게 편지를 처음 보내던 날, 손이 떨리던 기억으로 이어지게 될 테고, 지금의 한없이 잘 맞물려 돌아가는 유기적인 너에 대한 모든 상상과 그 상상속에서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아름다운 형상을 한껏 피워내고 있는 너에 대해서,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행운이라 감탄할 것이 분명했었다. 생각이 많아 잠이 오지 않았다는 네 말이 화면에 뜬 뒤에 무척 피곤하겠다는 공감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를 전하려 걱정을 담은 손가락을 놀리다가, 네 다음 메시지에 말도 없이 눈을 키웠다. 이제껏 써왔던 글이 의미도 없이 지워지고 새로운 단어가 쓰여지는데 그것이 겨우 두 단어다.
[지금 당장?]
눈이 절로 시계를 향했다. 4시를 조금 넘은 시각, 늦었다기보다는 이르다고 말하는 편이 객관적으로는 옳겠으나 잠이 안 왔다던 네게는 분명히 늦은 시간일 것이었다. 으음-, 목소리를 질질 끌며 주름잡힌 미간을 꾹 눌렀다. 잠은 핸드폰 화면에 나타난 네 이름을 보았을 때부터 진작에 날아갔고, 그보다 앞서 너에 대한 걱정이 송글송글 뭉쳤다. "많이 안 좋은가."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시간에 갑작스러운 요구를 해올 리가 없다. 혼잣말을 뇌고서 마저 키패드를 두드렸었다.
[잠깐만, 세아야.] [너 지금 설마... 한숨도 못 잔 거야?]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기에? 기분이 풀릴 것을 요구하는 네게 특별히 원하는 게 있냐는 질문을 했지만 머지않아 더이상 1자가 사라지지 않는 화면을 마주해야만 했다. 바로 직전까지도 잠이 안 왔다고 했으니, 벌써 잠들었을 리는 없겠고. 결국 너는 했던 말 그대로 내가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침대 옆의 러그에 발을 내딛으며 피식 웃고는 생각하는 것이다. 제멋대로 구는 너는 정말이지 잊을만하면 내 앞에 나타나곤 한다고.
집앞의 편의점에 들렀다가 힘껏 자전거의 바퀴를 굴렸다. 새벽이라 길이 비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지금이 나중이라서일까. 집에 있을 네게 기분을 나아지게 해줄 것을 배달해왔다고 알려줄 수 있었을 즈음에는 옷의 앞섶을 펄럭이며 과열된 몸의 온도를 낮춰야 했다.
밖에 나가지 않음에도 남들에게 보여야지만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나의 변화를 알아차릴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다. 챙이 큰 검은색 꼬깔모자에 바닥까지 끌리는 로브. 목깃은 팽팽하게 세워져서 종종 귓볼을 찌를 정도지만 나름 귀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는 간단하게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바지니까, 모처럼 할로윈이라고 조금 더 과감한 복장을 기대한 너에게는 실망이였으려나. 단호박을 앞에 둔체로 나는 다른 한 손에 칼을 쥐었다. 네가 쥐어준 칼에, 목표는 단호박이여야 하겠지만 종종 그론 생각이 든다. 너는 나를 골리기를 좋아하고, 저번 기념일에도 나를 골린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무언가 함정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애인의 도리로서 네가 열심히 준비한 함정을 밟아줘야 하는걸까? 미심쩍은 눈초리로 너와 단호박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가 호박을 자르다니.
" 참, 혹시 세자매 농법이라고 알아? 호박하니까 생각난건데. "
알아? 하고 너의 대답을 기다렸다. 혹시나 알면 내가 구태어 설명할 필요는 없으니까. 너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에 나는 호박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호박의 꼬투리를 파내기 위해 칼을 들었다. 천천히 들어가다가, 갑자기 쑥 하고 들어가는걸 보면 살이 그렇게 많지는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 어. "
호박에서 피가 흐르는걸 발견하기 전 까지는. 툭 하고 칼날을 놓아버렸고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도마 위에서 가볍게 울렸다.
"............."
눈을 크게 뜨며 반걸음 정도 자리에서 멀어졌다. 호박? 피? 붉은 액체를 흘리는 호박과 피가 묻은 칼날에서 시선을 뗄 수가............
" ...... 아. "
호박과 너를 번갈아보고 나서야 안심이 됐는지 표정을 누그러트리고는 후 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세아 마녀 복장 너무너무 좋아요 👍👍👍👍👍 굳은 세아... 비명 지르는 거랑은 다른 의미로 좋다 ^-^ 세 자매 농법 뒷사람은 처음 들어봐서 검색해봤는데 신기하네. 이런 것도 있었구나... 희인이는 한번쯤 들어본 적은 있지 않을까 싶다. 세자매 작물이 정확히 뭐였는지는 기억을 못해도...
적당한 시간에 울리는 초인종의 소리. 아 그래, 분명 와본적이 있으니 길을 헤메거나 나에게 물어보는 일 없이 바로 찾아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무거운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켜서 침대에서 몸을 떨어트렸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 마다 몸을 육중하게 차지한 고민의 부피감에 속이 울렁거린다. 시야의 테두리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는 것 만으로도 현기증이 나길 시작해서 금방 나가려다가 침대에 다시 풀썩 앉아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몸을 일으키고 정문까지 나가서 문을 열어줄 수가 있었다. 너를 보았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나는 여러 감정이 일순간에 푸드득 거리며 머리속을 꽉 체웠고 너에게로 조금 더 다가가 네 옷자락을 꽉 쥘 수 밖에는 없었다.
" ....늦었어. "
어떠한 의도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말을 한 장본인조차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으니 이제 해석의 여지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