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기가 슬슬 찾아오는 거다. 그래서 아랑은 고민에 잠겼다. 미래에 대한 꿈이 없어도 좋은 건, 고2의 여름방학까지가 아니었을까? 지금 이대로 장래희망이 없는 상태로 3학년이 되어도 좋은 건가?
호텔의 후계자가 될 오빠의 비서가 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러면 모든 생활이 오빠의 일상에 맞춰지겠지. 나는 그걸로 괜찮지만, 오빠는, 다른 가족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은 외로운 존재고, 본인에게 가족에 대한 애착이라고 할까.. 의존하는 성향이 좀 지나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양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접하게 될 수록 더, 깨닫게 되는.
하지만 깨달았다고 해서 고칠 수 있는 건 아니지.
모든 고민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미래에 대한 상담은 하고 싶다. 라고 할까, 다른 사람들의 장래희망을 알고 싶어. 다들 무슨 계기로 미래를 결정하는 거지...? 그래서 아랑은... 해인에게 찾아가볼까 생각했다. 해인은 아랑보다 한 살 연상이고 3학년 가을인 지금쯤 진로상담은 받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니까... 조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랑은 평소보다 조심스럽게 학생회의 문을 노크했다. 허락이 떨어졌다면, 조금은 눈치 보는듯한 태도로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을 것이다. 학생회실에 해인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있었어도- 조심스럽게 " 쪼꼼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데에, 시간 되시나요 선배애? " 라고 소곤거렸을 것이다.
>>780 >:D 오늘은 괜찮지만 내일부터는 텀이 쪼까 많이 느려질 거예요...!! 하지만... 곧 리부트하면 경아를 만날 수 없게 되는걸요...ㅇ<-< 경아랑 경아주의 문장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전 제 텀이 느려도 경아주가 괜찮으시다면 덥썩 일상을 돌리고 싶은 거예요!
카페 앞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카페에 먼저 들어간 아랑이(or경아)를 발견한 다른 쪽이 카페에 들어가서 상대에게 말거는 게 좋을까요?
>>783 텀이 느린 건 저도 매한가지라서...괜찮아요. 그리고 저도 끝나기 전에 아랑이와 꼭 만나고 싶었어요. 그나저나 제 문장이 좋다는 건 처음 듣는 말이네요.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아랑주. 둘 다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좀 더 끌리는 쪽은 상대방을 발견해서 말을 거는 쪽이려나요?
>>785 아랑이랑 만나고 싶었다는 말이 기쁘네요 <:D 앗... 여름 밤바다에서 춤추는데, 플러팅 대사 하나 없는데도 플러팅 들은 것처럼 설레이는 문장들이 좋아서 (...) 책상을 팡팡 쳤었어요 <:3 제가 최대한 자제한(...) 주접을 쪼금 떨었던 거 같은데 (희미한 기억) 경아주의 문장을 좋아한단 말은 안 했었나봐요...? :Q....?? 그당시 주접을 많이 자제해야 한단 생각에 안 했었나봐요 (와하하)
>>788 대신 콘칩은 어때 (한봉쥐어줌) 굳이 돌려주려고 하지 않아도 좋아! 아랑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과도 일상을 더 못 돌려봐서 아쉽지만(특히 해인이랑 경아는 한 번도 못 돌려봤네) 이 스레에서 하지 못한 일들을 아쉬워하기보단 이 스레에서 있었던 일들에 고마워하기로 했어.
>>786 조금 바쁘긴 하지만 나쁘진 않은 밤 보내고 있답니다. 오랜만이에요, 문하주. 그러고보니 문하와 한 번도 일상을 못 돌려서 끝나기 전에 문하와도 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말이에요...
>>787 앗, 그 부분이었군요. 경아의 설레는 감정이 아랑주에게까지 전해졌다는 말 같아서 기쁘네요. 음, 제가 기억하기로는 처음 듣는 말 같아요... 요즘에 잊고 사는 것들이 많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이번에도 아랑주의 마음에 들도록 열심히 글을 써봐야겠네요. 그리고 선레는 여유롭게 써주세요. 천천히 기다릴게요.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의 학생회는 무척이나 바쁘다. 2학기는 1학기보다 비교적 짧은데다가 학생들이 좋아하는 큰 이벤트가 두개씩이나 있는 계절이다. 학교 축제와 수학 여행. 수학 여행은 중간고사 이후가 될테니까 조금 나중에 고려해도 되지만 축제 같은 경우에는 당장 2주뒤에 있을 예정이다. 각 동아리와 반에서 진행하는 것들의 목록을 받아서 가부를 정해주고 그에 맞춰서 예산을 신청해야한다.
" 이건 안돼. 너무 위험하잖아. "
딱봐도 안되는걸 올리는 이유는 학생회가 상당히 바빠서 미처 못보고 넘어가기를 바라고서 올리는 것이겠지. 그렇게 넘어간게 작년에도 한두개 있었으니까. 안전사고가 일어날만한건 정말 만전을 기해도 불허할 예정이다. 학교 축제에서 할만한 것들이 있고 아닌 것이 있는 거니까. 제안서 하나를 반려하고서 다른 것들을 받아서 검토하면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 아, 먼저 들어가봐. 나는 좀 남아서 처리할게 있어서. "
아직 제안서는 많이 남았지만 다들 하교 시간이 다가와서 그런가 집중력이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이 정도 양이라면 나 혼자서도 두시간 정도면 해결할 수 있으니까 남아있던 학생회 인원들을 보낸다. 마침 오늘 아르바이트도 조금 늦게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모두가 나가고 나 혼자 남아있는 학생회실엔 종이를 넘기는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러다 노크 소리에 문쪽을 바라본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아랑이 어서와! 학생회실까지 어쩐 일로 왔어? "
학생회실에 자주 오는 멤버는 아닌데 말이야. 주로 만나는 곳은 내가 일하는 편의점이라던가 학교 복도라던가 하교하는 길이라던가하는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 여기까지 온걸 보면 무언가 원하는게 있는걸까.
" 편한데 앉아. 마실거라도 줄까? "
학생회실엔 냉장고가 없어서 미적지근한 음료수 밖에는 없지만. 다행히 포트는 있어서 간단한 녹차 같은 것도 있었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을이니까 슬슬 밤이나 고구마 디저트가 신작 메뉴로 나왔을 테다. 아, 요새는 단호박이 들어간 디저트도 유행한다고 했지. 그럼 단호박 디저트가 나왔을수도 있겠다. 아랑은 조금 들뜨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동네 카페 신작 메뉴 탐색을 하러 가기로 했다. 편한 후드티에, 검은색 경량 패딩 조끼, 체크무늬 치마, 검은 스타킹, 그리고 검은 운동화. 이정도면 돌아다닐 때 춥지도 덥지도 않겠지! 그 위에 크로스백을 매고 아랑은 집을 나섰다.
어느 카페를 갈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좀 한적한 곳에 있는 카페에 들르기로 했다. 인테리어가 우드풍이라, 가을이랑 잘 어울리는 그런 소담한 개인 카페. 개인 카페는 체인점 카페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이. 체인점 카페는 홈페이지로 미리 확인할 수 있지만... 개인 카페는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맛있었던 메뉴를 시키면 되고.
어, 근데, 저 사람 경아 선배 아닐까? 교복이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느낌이 딱 경아 선배인데에.
아랑은 가게의 문을 열었다. 차임벨 소리에 경아가 뒤를 돌아보았다면, 아랑이 걸어 들어오다 반가운 얼굴로 방긋 웃었을 테고. 그렇지 않았다면 발걸음 소리가 경아에게 가까워지는 게 들렸겠지. 옆자리까지 다가와선 경아라는 확인을 마쳤다면 반가운 목소리로 " 경아 선배애, 오랜만이에요~ " 하고 말을 걸었을 것이다.
//이 픽크루에 신발이 검은 운동화로 바뀌고, 경량 패딩조끼를 걸쳐 입은 걸 상상해주세요 >:D https://picrew.me/image_maker/698116/complete?cd=lMdRaVZHrq
그리고 12시가 가까워요... 답레는 내일 가져오겠습니다 해인주 경아주.... >:3....
>>789 콘칩 좋죠! (덥썩) 앗... 너무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데요...? <:3 저도 있었던 일들에 고마워할래요! >>791 문하가 컬러풀한 옷을 입으면 왠지 가슴이 벅차요... 병아리가 독수리로 성장한 걸 보는 것처럼 벅차... 8ㅁ8... 카키색 스웨터랑 베이지색 바지 어울리네요! <:D 카키색이 선명한 색...oO 집에 있는 다른 스웨터들은 다 무채색 계통이려나요...?
>>790 ㅎㅁㅎ... 아마 제가 자제를 해서 (...) 그때 말을 안 한 게 아니지 않을까 싶어요! <:3 경아주 편한대로 써주세요. 어떻게 쓰시든 제 마음에는 들 거고, 경아주가 부담 안 가지고 편하게 써주시는 게 제일 좋아요!
>>793 아랑이한테 마실 거 권하는 해인이가 괜히 귀엽네요.... <:3 (스담) 학생회 바쁠 때 아랑이가 찾아간 거 같아섴ㅋㅋㅋㅋㅋㅋㅋㅋ 아랑이 등짝을 때려줘야하나 싶기도 하네요 <:3 >>796 읽을 것도 쓸 것도 많겠군요! (와하하)
무작정 거리로 나와 걸은지도 얼마였더라, 경아는 문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본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거리다.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자주 오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 모양이다. 경아는 옅은 한숨을 내쉰다. 도착지를 생각하고 걸은 것도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천천히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하자 잊고 있던 감각도 스멀스멀 돌아오기 시작한다. 목도리라도 가져올 걸, 경아는 뒤늦게 후회한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인지라 이 즈음에는 늘 목도리로든 무엇으로든 꽁꽁 싸매고 다녔다. 경아는 자신의 차림을 가볍게 훑어 본다. 흰 목폴라티, 검은 청바지, 검은 캔버스화. 그리고 옷장 가장 앞쪽에 걸려 있던 베이지색 코트.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아무리 급하더라도 조금 더 두터운 겉옷을 챙겨 나왔을 테다. 후회는 늘 늦은 법이지만.
경아는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잠시 있을 만한 곳이...없지는 않다. 조금만 더 간다면 자주 가던 카페가 근처에 있었다. 경아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목적지를 지니고.
다행히 카페는 문을 열고 있었다. 가볍게 힘을 주어 문을 열자 차임벨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경아는 메뉴판을 가볍게 본다.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에는 또 늘 시키던 음료 중 하나다. 카드를 내밀어 결제를 마치곤 창가의 자리 하나에 앉는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생각을 비우고 싶어, 창 밖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또다른 차임벨 소리다. 경아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러니까, 익숙한 얼굴이다. 당신이 방긋 웃자 경아 또한 푸스스 웃으며 손을 흔든다.
>>799 네, 그럴게요! 배려 감사드려요. 개인적으로는 후자로 해두고 싶어요. 경아라면 왠만한 아이들과는 안면을 터놓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문하와 인사라도 하는 사이였으면 하는 제 사심도... (?) 도움이라면 아무래도 도서관 일 관련해서일까요? 아니면 다른 일이 있었을까요?
>>803 불량배로부터 구해줬다거나 하는 거한 이벤트는 부담스러울 것 같으니 문하가 책 정리라거나 도서관 업무(이런 일에 힘센 캐릭터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문하주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같은 걸 몇 차례 도와주고,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경아가 두어 번인가 찾아준 정도로 하자!
경아는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창 밖을 바라본다. 요새는 조금만 시간이 늦어도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저에게는 고등학교 생활 전체의...끝이 다가오는 것이기도 했다. 경아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이제는 도서관을 정리할 시간이다.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경아는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외려 무언가를 피하고 싶은 사람 마냥 미적거린다. 다른 학생들이 반납해달라며 두고 간 책들 사이에서 엎드려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읽어 내린다. 다시 한 번 시계를 바라본다. 이제는 정말로 정리할 시간이다. 경아는 몸을 일으키곤 느릿느릿하게 바코드를 찍는다. 텅 빈 도서관에서 삑- 삑- 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이내, 수많은 책들의 행렬에도 끝이 보인다. 경아는 숨이라도 고를 요량으로 고개를 든다. 그러다 문득 하이얀 머리카락이 시선 끝에 걸린다. 오다가며 가끔 본 후배다. 잠시 고민하던 경아는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조금 더 자도록 두고 싶지만,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다. 마지막 책의 바코드를 찍고, 경아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일단 다가오기는 했지만...어떡하지. 경아는 잠시 고민한다. 친한 사이였다면 망설임 없이 토닥이며 일어나라 했겠다마는, 당신과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 대신 경아는 당신의 반대편에 앉는다. 그리곤 책상을 가볍게 똑똑 두드리며 말을 건넨다.
시선을 들어보면 시선 끝에 닿는 하얀 뭔가가 있다. 새하얀 머리카락에 새하얀 피부에 새하얀 트랙탑까지 유령으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색소가 옅기 그지없는 소년이 앉아, 팔꿈치를 괴어 턱을 받친 채로 잠들어 있었다. 도서관에 이따금 얼굴을 비추는 2학년의 후배였다. 운동특기생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초가을쯤에 엄청난 대회에서 기록적인 수상을 했다고 한동안 매스컴에서 왁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대외적으로 폐쇄적인 생활습성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그와 그 주변은 빠르게 원래대로의 차갑고 고요히 가라앉은 삶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니면 시간이 그만큼 빠르게 흘러간 것이던가.
규칙적으로 움직이던 흉곽이, 경아가 다가오자 딱 멈춘다. 이윽고 경아가 책상을 가볍게 똑똑 두드리면 감겨있던 눈이 떠진다. 창백한 눈꺼풀 아래에서 온 몸의 색소가 다 그리로 쏠렸나 싶을 정도로 새까만, 너무 까매서 홍채와 동공이 분간되지 않는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내고 경아를 바라본다. 문하는 턱을 괴었던 손을 풀고 가볍게 까닥 목례했다.
"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하는 오른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꽤 길게 잠들었던 모양이다. 어느덧 도서관 폐장시간이 가까워 온다. 반쯤 읽다 만 「폭풍의 언덕」은 문하가 잠든 사이에 그만 덮여버리고 말았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못 찾겠는데. 끝까지 봐야 할까, 지금 떠나야 할까. 반전이 있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