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곤충의 형태를 했다지만 기껏 눈 앞에 다가온 먹이를 놓칠 만큼 멍청할까 . 한 때 우박이었던 거대 지네는 자신의 육식 성향을 감추려는 시도조차 않고 도망치는 당신을 향해 몸을 뻗었다 . 당신이 먼저 행동해 움직임에 가속이 붙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 언덕을 구르다시피 내려온 당신이 뒤를 돌아본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위협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다소 거리가 벌어진 정도로는 식욕에 행동을 부추김 당하고 있는 저 놈을 떼어낼 수 없다
"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 뭐 이걸로 자네의 호기심에 붙은 급한 불은 껐다고 봐도 될테지 ? 그럼 이제 저기 쓰러진 척하며 도망칠 기회만 엿보는 녀석에게 한 마디 듣고 싶은데 ... "
바스티유의 말에 미드 나잇이 벌떡 일어났다 . 진작에 정신을 차렸으면서 기절한 척하던 건가 . 영악한 녀석 같으니 . 미드 나잇에게 있어 바스티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사람은 분명 구면으로 보였다 . 소년이 바스티유를 일방적으로 겁내는 모습에서 두 사람 사이의 상하 관계가 대충이나마 짐작이 됐다
" 겨 , 겨겨겨겨 격조했습니다 바스티유 씨 . 잘 지내셨슺니까 ! "
혀까지 깨물면서 말했다 . 저런 미드 나잇의 과장된 반응에도 바스티유는 무심했다 . 벌벌 떠는 미드 나잇에게 그는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 얼굴로 무덤덤하게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 오랜만이군 소년 . 덕분에 잘 지냈다네 . 자네들이 이 영역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었을 테지만 ... "
손을 치켜든 것도 아니다 . 대뜸 욕을 퍼부은 것도 아니다 . 말꼬리를 흐린 정도로 저런 반응이었다 . 지금 미드 나잇에게 파리 머리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던 때가 그립지 않냐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까 . 바스티유가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당신이 대화의 흐름을 관찰하면 미드 나잇이 마른 입술을 힘겹게 떼기 시작했다
" 바 바바ㅏㅂ스티유 씨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어요 .. 정맣이에요 ! 저희 어르신께서 단지 뭔가를 찾아오라고 하셔서 ... 그래서 피치 못하게 다시 발을 들인 거예요 ! 용건을 마치면 금방 사라질 생각이었어요 ! 정말로요 ! "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이 애처로우면서도 우습다 . 미드 나잇이 바스티유를 저렇게 겁을 내는 이유가 있을 텐데 바스티유의 신사적인 면모만 봐서는 그럴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836 "외톨이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법이에요. 하지만, 혼자 사는 것은 결국 힘들고 사람을 갈망하게 된다... 라고 저는 생각해요." 인간관계란 마치 선악과와 같은 거다. 한번 맛을 들이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아마 강 건이라는 그 사장님은, 그 계기를 깨닳지 못한 게 아닐까, 론멕은 생각했다. "수많은 신도를 거느린 맹주가 그 누구도 가까워하지 않는다니... 참 기묘하군요." 이내 오필리아를 바라본다. "뭐, 그래도 언니가 걱정할 거 같기도 하니, 그 분 앞에서 함부로 이런 말을 꺼내진 않을 거지만요!"
삼키면 어떻게 될까? 답은 모른다. 추측만 할 수 있을 뿐. 그리고 그 외의 어떤 부작용이나 변화가 있을지도 샤를로테로서는 알 수 없다. 검은 바다에 외롭게 뜬 섬처럼 샤를로테는 누에가 만들어낸 늪의 중심에서 괴물 무리의 동향을 살폈다. 그것들이 늪에 순순히 빠져들지 수상한 늪 앞에서 전진하기를 거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혹여 높이 뛰어 늪으로 둘러싸인 샤를로테를 향해 몸을 날린다면? 샤를로테는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잊고 괴물 무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려라, 달려! 발을 멈춘 순간 어떻게 될 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언젠가 지네가 다른 곤충을 포식하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영상을 통해 보았던 것 같은데, 조금 징그럽긴 했지만 그 땐 별 감흥이 없었건만 거대한 지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지금의 그는 불쾌감에 몸을 떨었다. 붙잡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독을 주입당하나? 아니면 산 채로? 공포스러운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지만 발을 놀리는 것 역시 멈추지 않았다. 어쨌거나 멈추면 끝이다. 문제는 그가 모래 위를 사뿐사뿐 내딛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과, 반대로 저 지네는 이 모래에 매우 익숙할 확률이 높다는 것. 더군다나 움직임을 보인 이상 쫓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수순이고 자신이 조금이라도 속도가 더 늦는다면 언젠가 붙잡히고 말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발을 놀리며 달리다가 문득 인간과 비슷한 형체를 하고 있던 존재를 떠올렸다. 분명 자신의 주변에 있었는데. 혹시 잡아먹히거나 한 건 아닐까? 그는 시선을 빠르게 이리저리 돌려 자신의 유일한 동반자가 될지도 모를 존재를 찾았다.
미드 나잇은 바스티유가 시야에서 사라져서도 한참 동안이나 바스티유가 남기고 간 존재감의 잔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벌벌 떨리는 눈꺼풀은 잊은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역류를 감당하느라 바빠보였다 . 당신의 질문에 미드 나잇이 대답을 꺼내든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공포의 형태를 뚜렷하게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 살에 흉터가 남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니 . 미드 나잇은 바스티유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켜 지난 날의 공포를 되풀이하지 않고자 했다
" ... 위험한 사람이에요 ... 저 남자 . 선생님은 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구요 .. 저 남자가 말했잖아요 . 이드의 추함은 자신의 추함이라고 . 선생님도 저 남자의 이드를 직접 보면 제가 한 말을 이해하시게 될 거예요 .. "
끔찍한 비극이었다 . 머리는 파리처럼 생겨서 왜 저렇게 냉철한지 . 이드와의 싸움에 이력이 난 듯 놈들은 누에의 늪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도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다 . 안 그래도 샤를로테들보다 머리가 하나 더 많은데 신중하기까지 하니 이런 작전으로는 시간 벌이 밖에 되지 않으리라 . 녀석들은 급할 것이 없다는 듯이 샤를로테를 덮치지 않고 누에의 주변에 각기 자리를 잡아갔다 . 한 놈은 아예 모래 위에 배를 깔고 눕기까지 했다
당신의 생각대로 모래 밭은 당신의 편이 아니였다 . 전차의 무한궤도처럼 매끄럽게 모래를 짓이기는 저 놈의 등갑에 비하면 당신의 두 다리는 두 자루의 나무 작대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 푹푹 빠지는 발은 뽑기도 딛기도 힘들어 이대로 있다가는 모처럼 벌린 거리도 수 초 내에 따라 잡힐 것이 분명했다 . 당신의 끔찍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상식을 부수는 조력이 필요했다
이미 상황은 당신의 손 밖에 났으니까 !
이 때 당신의 생각이 먼저 만났던 괴상한 인물에게 미치면 녀석은 당신을 떠나보낸 자리에서 해를 바라보며 스스로 현대 예술의 일종이라도 되는 듯 말로 설명하기 기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오른 다리를 뒤로 높여 정수리에서 왼손과 맞닿게 하다니 . 발레에서나 보일 법한 동작인데 지금 저걸 당신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대체 뭔가 . 자신의 여유를 당신에게 과시하려는 걸까 ?
이미 미드 나잇은 당신에게 모든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고 각오를 굳힌 상태였다 . 일부의 진실이라도 당신에게 말할 맘이 든 것은 상황의 특수성 때문이라도 소년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 소년은 스스로 입이 무겁다 자신하는 편이었으니까 . 때문에 소년은 이렇게 바라기도 했다 . 부분 부분 피스가 부족한 이야기라도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기를 . 집요한 질문으로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를
소년은 당신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간절히 소망했다
" ... 어르신은 인재를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세요 . 대업은 혼자 이루는 게 아니라면서요 . 어르신의 부하들이 이런 변방의 외곽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죠 . 일반적으로는요 . 바스티유 씨의 일은 ... 저희가 지나치기는 했어요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았으니까요
하나라도 더 공을 많이 세워 어르신의 눈에 들고 싶었던 거죠
조바심 때문이랄까요 . 머릿수도 우리가 더 많았으니까 힘으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 그도 그럴 게 우리는 어르신의 선택을 받은 < 사원 > 인 걸요 ... 하지만 현실은 ... 정말 상대조차 되지 않을 거라곤 ... "
>>902 "돈도 제도도 없는 곳에서 세력의 정점이 될 정도라면..." 아마 대단한 인간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러면 그 강건이라는 분은... 어떻게 그리 강해진 건가요? 결국 두 팔 달리고 두 다리 달린 존재일 텐데 뭔가 비결이 있을 거 아니에요! 오필리아 언니도 그렇고 뭔가 대단한 분들도 많던데!" "그리고 회사라는 곳에는 언니처럼 특별한 힘이 있는 분들이 많아요? 언니가 특별한 건가요?" "또ㅡ 강건이라는 분은 그리고 저를 어떻게 대할 거 같나요? 일단... 조용히 있는다는 가정 하에요!" 호기심 왕성한 론멕이었다. 뭔가 때를 잡았다는 듯 처음 오필리아의 힘을 보았을 때의 그 눈빛으로 여려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