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 "처음 봤을 때부터 느끼지만, 생각보다 배려심 넘치는 언니네요!" 뭐랄까, 오필리아와의 여행 과정을 생각한다면 절대 나오지 못할 말이지만, 론멕은 나름 진심이었다. 원래 사람이 진짜 매정하면 약간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가끔이라도 정을 주는 사람이라면, 분명 내면은 따듯할 것이다-라는 론멕의 믿음이었다. 물론 사실일지 아닐지는 오필리아 본인이 알겠지만. 구릉 위로 올라와서, 오필리아의 곁에 서서 주변을 바라본다. "그 사람에 대해서도, 애초에 언니에 대해서도 모르는 저지만, 확실한 건 언니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테니까요. 정말 고마워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래 오필리아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뭐, 그리고 목숨의 은인인 츤데레 언니가 제가 귀찮다고 하면 이제는 말을 좀 줄이도록 하면 될까요오?" 악동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강 건 씨..." 황무지의 수완가이자 사막의 패왕을 자칭하는, 그리고 오필리아가 괴짜라고 소개할 정도의 인물인 동시에 사장님. 론멕에게는 여러모로 새로운 인간상이었다. 이 정도 되는 인물에게 자신을 소개시켜 주는 이유는 뭘까. 론멕은 상상을 시작했다. 적어도 론멕 데이드림이라는 인간이 사막에서의 항쟁에 도움이 될 거라고는 본인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원래 오필리아의 일 중 하나가 사장에게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주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전에 강 건이라는 인물이 론멕같은 인간상을 필요로 하는 거거나. 혹시 론멕의 긍정적인 낭만론을 강 건 씨에게 설파하라는 의도는 아닐까? -라고는 말했지만 막상 론멕 본인도 마지막은 농담 삼아 떠올린 것이었다. "언니가 다닌다는 회사의 사장님인가 보네요. 그건 그렇고 사장님 관심사가 스케일이 큰데 회사나 언니도 그런 쪽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가요?" "그리고 언니가 보기에 제가 그 사장님이랑 잘 어울릴 것 같나요? ...언니가 봤을때에 그분은 어떤 분이고요?" 궁금한 것이 한가득이다. 뭐랄까 불안한 부분도 존재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고 후회하지 말자는 마인드로 여전한 페이스로 오필리아에게 질문해본다.
샤를로테의 용기는 가상했으나 다소 지나치게 서두른 감이 없잖아 있었다 .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어쩌면 그녀는 누에를 이용해 저들의 눈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게 유감이라면 유감이겠지 . 때마침 근처에 있던 한 경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은 불신이 지나쳤다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누가 샤를로테를 탓할 수 있을까 . 같은 입장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 오직 샤를로테만이 본인의 선택을 후회할 자격을 갖고 있었다 . 그녀가 괜찮다고 한다면 괜찮은 것이다 . 그것을 알기에 누에는 맹목적인 충성을 보였다 . 샤를로테의 도구로써 주인이 바라는 대로 쓰였다
샤를로테는 괴물 무리가 그들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며 바퀴를 굴렸다. 그러나 만용은 최선이 아닌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샤를로테가 괴물 무리의 동향을 확인하기 위해 한 것이라곤 바퀴를 굴리다 그쪽을 향해 시선을 던진 것뿐이었다.
누에의 길이 향하는 곳에 오아시스라도 있기를 바라는지 손길은 점점 간절해지고 빨라졌다. 샤를로테는 한 경희와 우티스의 입장에서 완전히 역전된 누에와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이 했던 바와 같이 한 경희의 도움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샤를로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타자에 의한 도움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샤를로테의 입으로 말했듯이 소녀가 한 경희에게 기대한 역할은 경호인이 아니라 그저 제멋대로 뒤를 따라오는 인물일 뿐이었으니.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누가 말했더라 . 죽어서도 그것은 별반 다르지 않던 모양이다 . 무리를 이루지 못한 샤를로테와 무리를 이뤄 덤벼드는 파리 머리들
누가 열세인지는 명확하다
전에도 마주쳤지만 그들은 늑대의 몸이 파리의 머리가 붙은 끔찍한 혼종이었다 . 그야말로 악몽 속에서나 나올 법한 생김새는 사람을 공포에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 저것들이 악몽으로부터 뛰쳐나온 간수라면 샤를로테는 삼엄한 경비를 부수고 뛰쳐나온 탈옥수겠지 . 아니고서야 이렇게 필사적으로 샤를로테를 쫓을 이유가 있겠나
앞서 한 경희가 그랬던 것처럼 파리 머리들은 일정한 간격을 지키면서 샤를로테를 따라왔다 . 저들을 떼어낼 방법이 있을까
샤를로테가 사뭇 진지하게 웅얼였다. 파리는 썩은 음식은 좋아한다. 파리에게 쫓기고 있다. 내게서 썩은 냄새가 난다. 대강 이런 경로를 통해 엉뚱한 결론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녀가 도달한 결론이 진실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있든지 간에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누에. 가고자 하는 곳까지 얼마나 남았니?"
헐떡이며 물었다. 부모님에게 의존하던 연약한 어린아이의 마음의 발로였을까. 지평선 멀리에서 엄마, 아빠가 나타나 괴물들을 물리쳐주는 장면이 소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기정사실화되어있는지 모른다.
저건 우박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의 머릿속에 있는 우박과는 달랐으니 그가 아는 한에서 저것은 우박이 아니었다. 우박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거나, 일어섰을 때 자신보다 훨씬 크거나, 보기만 해도 소름이 온 몸에서 돋게끔 꾸물대는, 족히 수백은 될 듯한 다리나, 세로로 갈라지듯 벌어지는 입...이라거나 우박에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빠르게, 하지만 자세히 그 모습을 어쩔 수 없이 살펴보던 그는 결국 눈으로 보이는 것에 시선을 두었다. 그건 곤충의 눈, 아니 그렇게 보였다. 말로만 듣던 데스웜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상상이 피어오른다, 여긴 혹시 자신이 살던 세계가 맞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은 운 좋게도 실제로 데스웜이라는 크리쳐를 실제로 마주한 행운(?)을 얻은 게 아닌가?
"그럴 리가 없지."
실처럼 가는 본능이 그를 자극한다, 가만히 있는 게 좋은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할까? 곤충은 움직임에 보다 민감하던가? 그러면 섣부르게 움직이는 건 그들을 자극하는 게 되지는 않을까? 오랜 시간처럼 느껴지는 찰나를 고민하던 그는 다음 순간 땅을 박차고 언덕 아래로 구르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긴 모래 위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그게 쉽게 될 리 없지, 그렇다면 발버둥이라도 쳐 볼 수밖에.
샤를로테는 대개 사람들과 같이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그 믿음은 누에에게 맹목적으로 향하고 있었다. 샤를로테를 향한 누에의 충성만큼이나 소녀의 믿음도 갸날프기 그지없었다. 답해주지 않는 누에의 태도를 무엇으로 해석했는지 어떤 표정도 짓지 않는 소녀를 겉으로 보아서는 알아낼 수 없었다.
샤를로테는 사막을 둘러보았지만 궁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맞서는 것만이 유일한 길인가? 오아시스를 찾듯이 바쁘게 주변을 살피던 샤를로테는 누에에게 물었다.
"누에는 구멍이 될 수 있어? 저 아이들이 쑥하고 빠질만큼 크고 깊은 구멍."
검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상상력은 엉뚱한 곳으로 소녀의 사고를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