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당신의 말이 께름칙한지 떫은 감이라도 한 입 베어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차장이라는 직함에 걸맞지 못한 것은 아무래도 체격만이 아닌 듯 했다 .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 속내를 있는 그대로 투영하는 낯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비스직에 적합한 게 아니다 . 소년은 당신에게 들리지 않게 궁시렁거리며 당신으로부터 받은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찾아 작디작은 입 안을 뒤졌다
" ... 그러면 선생님은 .. 아무것도 모르고 저 벨을 ... ??? "
저스티스의 충격에 상황 판단이 늦었던 소년이 한 발 늦게 당신의 뒤로 펼쳐진 배경을 확인했다 . 가뜩이나 동그란 눈을 한층 더 동그랗게 만들며 동공에 떨림을 만드는 소년 . 눈에 두드러지게 횡경막을 들썩이며 이를 맞부딪히는 모양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론멕의 인생이 소설이었다면 1부, 그러니까 생전의 이야기는 분명 인기가 없었을 것이다. 고구마 전개, 비극적 배경, 꿈도 희망도 마법도 없는 미래. 독자들을 끌어들일 요소인 캐릭터성은 비참하고 연애상대는 전무한데 그나마 존재하는 후보도 동성에 고백한번 제대로 못하는 답답함. 어지간한 특이취향이 아니라면 하차해도 할 말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소설 론멕 데이드림의 제 2부, 혹은 외전. 성장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 된 것이다. 새로운 힘, 성장한 마음가짐, 당당한 발걸음, 귀여워진 캐릭터성, 그리고 본격적인 백합연가... 뭐, 마지막은 좀 그렇다고? 확실히 그럴만도 하군. 어쨌든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본질은, 새로운 론멕의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필리아와 함께 걷던 중 론멕이 입을 열었다. "오필리아, 제가 앞으로 무엇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어떤 걸 보게 될까요?"
그는 정적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안심이 된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는 혼자 있으며 사색할 때가 사람들이 잔뜩 있는 광장 한가운데 있을 때보다 훨씬 나았다. 사실 덩그러니 모르는 이들 사이에 툭 떨어지면 누구든 불편해하지 않을까. 어쨌든, 시선을 돌려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막은 고집스럽게도 처음의 모습을 고수했다. 고래가 튀어오르고 우박이 쏟아져 내린 일은 마치 없었다는 느낌의 사막, 그는 불합리함을 느꼈다.
다시금 그는 상대방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그 행동을 되짚었다. 자신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는 듯한 모습, 꼭 생소하다는 듯이...거기에 생각이 미치니 말을 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신에게 익숙한 모습을 면밀히 살피는 일은 흔하지 않지,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가 생각하기에는 적어도 그러했다.
"이름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대방이 말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더 상황이 막막해졌다. 저 심상찮은 모습을 보면 마치 외계인 같기도 하고, 혹시 지능이 높지만 말하는 걸 딱히 배우지는 못한 게 아닐까. 그럼 자신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갑자기 말을 해오진 않을까? 점점 생각이 이상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이미 입을 열고 있었다.
"당신의 이름을 묻기 전에 제 이름을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유감이에요, 저 스스로도 아는 게 없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넘어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어쩐지 피로감이 몰려와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걸터앉을 만한 자리가 있는지 살폈다.
오필리아와의 동행은 빈말로도 편한 것은 아니었다 . 솔로 플레이어를 자칭한 데서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 저 여자는 때때로 - 빈번하게 론멕의 존재를 잊은 듯이 행동했다 . 론멕을 머릿 수로 세지 않았다
어쩌면 론멕을 스스로 걸어다니는 짐 정도로 생각하는지도 모르지 . 척 보기에도 야외 활동에 익숙지 않은 론멕을 배려하기는 커녕 - 제가 필요하지 않으면 한 번 뒤돌아 보지도 않구서 앞장서 나아가는 탓에 론멕은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 씩이나 오필리아를 시야에서 놓칠 뻔했다
이런 데도 저 여자는 무겁게 입을 다문 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으니 - 최악의 동행인에게 주어지는 상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백이면 백 오필리아의 것이었다
" 론멕 데이드림 . 무얼 기대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았으면 해 . 우리는 죽어서도 사람이야
여전히 우리의 능력은 전능과는 거리가 멀지 . 살아서 불가능했던 것은 - 대부분 죽어서도 마찬가지야 . 물이 아래서 위로 흐르게 됐다해서 맛까지 달라질까 . 갖는 성질까지 달라질까
변모한 것은 세상이지 우리가 아니야
너무 부정적으로 말하기는 싫지만 - 네가 지나치게 들떠보여서 나는 솔직히 걱정이 돼 "
때때로 오필리아가 제자리에 서서 멀리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론멕은 정말로 저 여자를 놓치게 됐을 거다 . 가까스로 론멕이 오필리아를 따라잡아 화두를 정하면 - 오필리아는 냉소적으로 대답해왔다 .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무심하게 입 밖으로 나르는 자태 . 세상 물정 모르는 론멕을 무시하려는 오만함인가 생각하려 해도 목소리에 기력이 스미지 않아 달리 생각하게 된다 . 저 여자는 세상에 기대를 거는 법을 잊은 건지도 모른다 . 희망의 존재를 모른 채 판도라의 함을 바다로 던져버린 사람처럼 오필리아는 차가웠다
이미 소년의 귀에 당신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했다 . 휘청거리며 열차에서 내린 소년이 당신에게로 걸어왔다 . 당신의 간격 안으로 너무나도 가볍게 다가왔다 . 가장 친한 사람에게도 가볍게 허락하기 힘든 당신의 원 안으로 . 하지만 당신이 불쾌하더라도 소년의 목적은 당신이 아니었기에 소년은 금세 당신을 지나쳤다 . 지나쳐서 - 한 때 가림막이 있던 의자 앞에 무릎을 떨어뜨렸다
" ... 어떻게 만든 건데 ... 이게 ... "
소년은 좌절하여 주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당신이 이대로 열차에 다가가더라도 소년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관찰력은 정답에 밀접한 추리를 내놓았다 . 하여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면 저것은 저것대로 알아서 당신의 주위를 따라다니겠지 . 생각의 절약을 위해 당신이 쉴 만한 자리를 찾으면 - 역시나 모래만이 당신을 기다렸다 . 어디를 어떻게 앉아도 옷에 모래가 달라붙는 일은 피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상식적으로 경사가 있어 다리를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자리가 편할 게 뻔하니 당신은 당신이 우박을 피해 내려온 언덕을 찾게 되었다 . 거기에는 여전히 사막의 살을 무참하게 후벼판 우박이 존재했다 . 위에서 떨어지기에 우박이라 명했지만 - 우박을 한 번이라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라면 저게 무슨 우박이냐며 말할 생김새였다
저것과 우박 사이의 공통점이라 해봐야 하늘에서 쏟아진다는 것을 빼면 원형이라는 게 전부였다 . 저마저도 저것이 말려져 있던 신체를 펴면서 유명무실한 것이 되었다
당신의 양심을 아프게 찌르던 소년이 당신의 말에 울상이 된 낯을 들어보였다 . 원통함과 분함으로 범벅이 되어 뭐라 형언하기가 어렵지만 -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표정이었다
당장에라도 책임지지 않을 셈이었냐며 따지려 들 것처럼도 보였다 . 당신은 또 한 번 - 이상한 데서 코가 꿰였다 . 당신은 쉽게 말했지만 저스티스가 멀리 던져버린 종을 다시 찾기가 쉬울 리 만무했다 . 거기다 종을 무사히 회수하더라도 무너져버린 태양 우산은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
이 때 엎친 데 덮친 격이라구 -
근처에서 들려서는 안 될 굉음이 났다
" 어 ? "
소년이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것도 백분 이해가 됐다
사실 저스티스가 열차를 전복시키려 했던 일을 생각하면 - 만약 저스티스의 시도가 성사되었을 때의 미래를 생각하면 무너진 태양 우산과 사라진 황동 종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신과 소년은 저스티스의 파렴치한 시도가 열차의 용력에 밀려 사전에 좌절되었다는 것에 우선 감사해야만 했다
뒤이어 저스티스가 비슷한 만행을 또 한 번 시도하지 않도록 감시해야만 했다
소년의 경우 - 재빨리 현장을 이탈해야만 했다
애초에 당신은 잘못 이해하지 않았나 . 저스티스를 자신의 안에서 꺼낼 수 있다하여 - 저스티스를 원할 때 자신의 안에 다시 삼킬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나
당신은 저스티스를 지나치게 존중했다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나 - 당신에게도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 싫어도 당신은 저스티스를 책임지는 자였으니까
저스티스의 실수는 당신의 실수가 된다는 소리다
" ... 악 ... 아아아악 !!! "
소년의 비명성이 사태를 짐작하게 했다 . 소년은 당신의 뒤를 바라보며 허망하게 - 허탈하게 - 허파에서 비명을 짜냈다
그럴 수 밖에
열차가 옆으로 무너지는 모습 따위 흔한 게 아니니 처음 본다면 저런 소리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암석도 없는 너른 사막에 제대로 된 쉴 자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이 이 쪽을 확인하기 위해 올랐고, 우박을 피하느라 내려온 언덕만이 다리를 보다 편하게 놀릴 수 있을 만해 보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사막은 여전히 조용했다, 우박이 곳곳에 떨어져 있는 것만 빼면. 그보다 우박이라곤 생각했지만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보니 우박은 아닌 것 같은 물체, 그가 아는 한 저렇게 생긴 우박은 없었다. 그것뿐이라면 그저 조금 기분이 꺼림칙한 채로 끝났겠지만, 다음 순간 그는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물체가 말려 있던 몸을 펼쳤다. 잠시나마 앉아 쉬려고 했건만, 그는 그 생각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조심스레 우박?을 바라보았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현실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당신이 여느 때처럼 침착하게 사태를 관망 - 관찰하면 한 때 우박이었던 그것은 당신이 달아날 생각을 못하는 동안에 등허리를 모두 펴구서 기지개를 켰다 . 모두 펼친 신체는 당신보다 머리 두 개 정도 높았으려나 . 흉악하다 밖에 설명하지 못할 덩치는 일반 규격의 당신을 왜소하게 보이게 했다 . 암석질의 외피 아래 바글거리는 수백의 다리와 세로로 벌어지는 가는 입 . 검정으로 빛나는 두 개의 겹눈은 모두가 하나같이 당신을 비추고 있었다 . 당신을 완벽하게 덮어 가리는 그림자는 가공할 인력이 느껴져 자칫 실수하면 저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