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구간도 있었지만 어림 짐작이 잘 들어맞은 덕분에 당신은 철도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저번의 빌딩에서도 당신의 직감은 잘 들어맞는 편이었지
빌딩이라 하니 하는 말인데 이 세계도 반드시 사막 일변도인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 명백히 인간의 솜씨로 보이는 문명의 잔해가 드물게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 전신주와 같은 ─ 송전 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이 세계에서는 쓸 길이 없는 인공물들을 당신은 이제까지 방황하며 몇 번인가 보아왔다 . 하지만 그것들은 버려진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어서 ─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의미도 느껴지지 않아 당신은 그것들을 뒤로 해온 것이다
하지만 철도는 다르지 . 철도는 달랐다 . 짧게 이어지다 끊어진다면 더이상 기대할 바가 있겠냐 싶지만 이 녀석은 이어진다 . 어디까지고 이 세상의 넓음을 가늠하겠다는 듯이 뻗어나가고 있었다
고뇌를 먹고 고민은 자란다 . 질리도록 해온 혼자만의 가설 세우기 . 사상누각 .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짓이었지만 그조차도 긴 시간 거듭하다보면 제법 일리가 있어졌다 . 현실미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 빌딩에서 낭패를 봤던 당신이지만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당신의 가설도 여기까지 발전하지 못했겠지 . 잠시 뿐이라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 그런 희망이 있기에 당신은 철도를 따라 걷는다
이 세계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알게 됐으니까 . 앞으로 만날 누군가가 ─ 여러 사람이 모인 집단이 당신에게 호의적일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당신은 이를 의식적으로 무시했을 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동안에도 두 다리는 분주히 움직여 어느덧 천 걸음이 넘는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많다면 많지만 적다면 적은 걸음
언덕을 가로지나는 철도를 쫓으면 저 편에 그늘막 붙은 나무 의자와 엉성하게 이어 붙인 표지판이 보였다
당신이 아는 종래의 교통 표지판과는 생김새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 판자에 판자를 이어 붙인 만듦새는 돈 주고 시킨 일이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졌다 . 대체 누가 손을 댔기에 저렇게 대충 만든 것을 세워놓은 걸까 . 뭐라 그림을 그려놨지만 거리가 거리라 뚜렷하게 이거라 말하기는 어렵다
빌딩 ─ 메어리가 에스라 부르던 < 적 > 에게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제압됐던 일이 아직도 후유증으로 남았는지 저스티스는 전에 비하면 기력이 없었다 . 덩치는 거대했지만 말이다
하면 저번에는 어째서 작았느냐
빌딩에서 저스티스가 작게 나타났던 것은 상황에 맞게 자신의 크기를 조절했기 때문 아닐까 . 그렇다면 저스티스의 강함에 기복 따위 없다는 소리가 된다 . 저스티스에게도 이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 행동 하나하나가 투박하며 언제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한 저스티스에게도 생각할 머리가 있다는 건가
「 G rrrrrr 」
도무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어쨌거나 ─ 저스티스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당신의 뒤를 따라왔다 . 당신이 세 번 걸으면 제 놈은 한 번 걸어 당신과의 일정한 간격을 지켰다 . 아주 칼같이 말이다 . 저렇게 잘 따라올 거면서 저번에는 왜 심통을 부렸는지
한 사람과 한 마리는 오래지 않아 표지판이 세워진 장소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드디어 분명해진 표지판의 그림은 아무래도 열차를 그린 듯 했다 . 썩 잘 그린 그림은 아니었다
오필리아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론멕은 정신을 집중했다. 다른 것보다 소정의 목적이라. 같이 있고, 관계를 가지는것만으로도 달성이 될 수 있는 목적이라는 걸까?
오필리아가 다른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바라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고 잠시라도 같이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예상을 보기좋게 뒤집은 것이었다. 물론 좋냐 나쁘냐를 따지면 대환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론멕 데이드림에게 바라는 거 없는 호의는 부담이었다.
...사실, 마법과 오필리아에 대한 호의와 조금은 욕망에 솔직해진 마음이 부담감을 딸쳐줬다. 그 반대편에서는, 아직 오필리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긴 동행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제동을 걸었다. 뭐, 양쪽 작용 모두 잠시의 동행에 대해서는 환영이었으니, 론멕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건 그림자였다. 아니, 그림자였던 것이라고 해야 옳을까. 하늘로부터 내리쬐는 빛을 받아들인 자신의 반대편에 드리운 그림자가 자라난 것과 같은 존재. 그것은 가면을 쓰고 있었으며 색채가 가득한 세상-그렇다기엔 온통 사막 뿐이었지만-에서 이질적으로 색채를 잃은, 혹은 애초부터 색채가 존재하지 않았던 존재가 있었다.
그 형체는 인간과 유사했으나 온 몸에 돋아난 비늘과 풍겨오는 느낌이 보통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묘하게 섬뜩한 그 느낌에 몸을 살짝 떨며 심호흡했다. 갑자기 달려들지는 않을까? 미지의 생물을 본 그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혼란스러워지려 하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은 우박으로부터 자신이 멀쩡한 이유를 저 존재로부터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대화를 시도해 볼 법 하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만 할까. 그는 할 말을 고르듯 머뭇거리며 자신과 마주 선 존재를 바라보았다.
가면 쓴 누군가는 당신의 질문에도 대답 한 번 하지 않고 ─ 물끄러미 당신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 당신이 어려운 질문을 한 것도 아니다 . 당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는지 적의를 갖고 있는지 . 그것만 분명히 해주면 되는데 놈은 그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 가면에 나 있는 두 개의 홈으로 당신을 바라보지만 선뜻 먼저 다가오려고는 하지 않았다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 놈이 먼저 자신의 팔을 당신과 겹치지 않았던가 . 이제와서 내성적인 흉내를 내다니 . 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 그래 그래서 ... 아직 네 이름을 듣지 못했어 . 이 세계에 대해 자잘하게 설명해주는 건 서로 통성명을 마친 다음으로 하자 "
팔 떨어지겠다며 오필리아는 내민 손을 과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오필리아의 손을 붙잡는 것은 분명 앞으로의 모험에 첫 단추를 꿰는 일이 되겠지 . 죽은 다음의 미래를 몽상가들은 꿈꾸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모르리라 . 모험에 들떠 찬란하게 빛나는 론멕 역시 이 앞에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까지 명료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 . 오필리아가 론멕을 신참 취급하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겠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등골은 오싹해지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자신에게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적대적이었다면 진즉에 뭔가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 저 태도는 어쩐지 소극적인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조금 동질감이 느껴졌다. 물론 외형적인 면에서 비슷한 점은 단 한 가지도 찾을 수 없었지만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고 상대방을 탐색하는 듯한... 아니 어쩌면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일지도 몰랐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면서 추측만을 해야 한다니, 답답한 상황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여자도 제법 높은 힐을 신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그녀는 결코 곡예와 같은 기예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 저런 비상식적인 ─ 사람의 발목을 부수기 위해 탄생한 듯한 고문 도구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피폐하게 삶에 찌든 얼굴은 눈가에 시퍼런 그늘이 잔뜩 드리워 있었고 살집이 적은 팔다리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해왔다는 증거로 누가 봐도 부실해 보였다
따라서 괴수의 애처로운 삶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그녀가 아니라 ─ 그녀와 함께 도망치던 소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나이는 샤를로테와 비교하더라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 검은 머리카락에 검갈색 눈동자 . 여자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작지만 힐의 높이가 높이인 지라 여자와 나란히 옆에 늘어놓고 보더라도 신장의 차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런 시각적 정보를 ─ 샤를로테는 누에로 인해 미처 다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 가면이 되라는 당신의 명령에 누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발상력을 보여주었다 . 천의 모양으로 자신을 가공하여 샤를로테의 머리를 휘감은 누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