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운 계산따윌 할 줄 몰랐다. 단지 날 건드렸기 때문에 싸웠고, 나를 비웃기에 까내렸으며, 나를 나락에 빠트리려 했기에 똑같이 해주었을 뿐이다. 머리 아픈 일 대신 그에 두배로 상대에게 돌려주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잔혹하다 했다. 웃긴 것은 그들이 날 건드렸단 사실은 간단히 묵살되었고, 내가 본 피해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되었다. 단지 저들이 본 차이는 두가지였다. 나는 헌터였고, 저들은 아니었다.
>>694 파필리오는 천천히 눈을 감습니다. 말 그대로, 정령을 본다는 것은 새로운 눈을 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세계에나. 그 자연의 힘을 머금고 정령은 태어나지만 누구나 그것을 볼 수는 없으니까요.
눈을 뜹니다. 환한 빛처럼, 처음에는 섬망에 의해 제대로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게 되었을 때. 원래의 눈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열매 위로 햇빛 조각을 움직이고 있는 열매의 요정들, 나무의 덩쿨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있는 풀의 정령, 하늘 높은 곳에서 제 맘대로 춤을 추는 빛과 불의 정령들, 땅속에서 소곤거리는 물의 정령. 그리고,
" 너... 는... 특별한... 아이구나...... "
이 거대한 나무 역시, 한 명의 정령입니다!
" 신.. 기.. 해.. "
나무는 열매를 하나 똑 떼어 파필리오의 머리에 올려줍니다.
" 먹.. 어.. 맛있.. 어.. "
어쩐지 흐뭇한 미소를 지는 나무와, 수많은 정령들이 곧 다가와 파필리오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차별대우하고있는 나무와, 차별대우 대상자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꽃..? 보라.. 꽃.. "
나무는 라임의 말에 고민하는 듯, 잎을 천천히 흔듭니다.
" 저기.. 그렌트 나무.. 할아버지가.. 자기.. 몸에.. 그런 꽃이.. 났다고 했어.. 근데.. 할아버지.. 거래.. 좋아해.. 거래 안하면.. 꽃 안줘.. "
정신을 차리니, 몸은 이미 수련장을 나와있었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걸까 여긴... 의문을 품으면서 하품하는 도기를 발견한다. 그런 모습을 예나는 귀엽다는듯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네요. 평소보다 집중이 잘되었어요."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만, 그때까지 이...도기 코인..?이라는 것을 착실하게 모아둬야하겠지. 어떻게 모으는지는...알지못하지만, 그럼에도 어째선지, 자연스레 모여질꺼란 확신만이 생각을 맴돌았다. 허리를 숙여, 머리를 쓰다듬으려했지만...예나는 아차하는 생각과 함께, 도기의 털에 닿기직전이 자신의 손을 다시 뒤로 뺀다.
후기 : 뒤라님 멋져요... 사랑해요, 뒤라님. 하르트만 교관님은 뭔가 있는 걸까요? 분위기라던가 즐거워 하는 쪽이라는 게 심상치 않네요. 여러가지 사건이 많이 일어나서 보는 맛이 있었어요. 빈센트와 베로니카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낭만적인 고백과 더불어 히로인이 되어버린 빈센트가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어요.
>>788 진행 후기! 되새겨보는데 이거 사건만 4~5개 터진 거 같아요. 저번에 추측한대로 미래의 다윈주의자 새싹이 잔뜩 있는 헌터 학교가 맛있어보이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신한국 전체가 이 꼴이 난 걸까요.. 임팩트가 컸던 건 베로니카 얀데레 포스랑 정령안이네요! 후자는 사실 제 캐릭이라서 그래요.. 사랑받는다는 게 생각보다 동화같아서 좋았다.. ..잔혹 동화는 싫어요... 아니 근데 다윈주의자 진짜 깽판 잘 치네요. 덕분에 우리는 즐겁지만 세계관에서 구르는 가디언&헌터분들 파이팅..
오늘의 진행 후기:또 새로운 파티와 의뢰, 그리고 게이트가 등장했네요! 게다가 본격적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캐릭터들... 신한국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니...마침 수련이 끝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시나리오에는 꼭 참가하지않아도 된다고 하긴 하셨지만 다윈주의자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생각하면 억지로 개입하지않는다 해도 '휘말리는 것'은 피하기 어려워보이네요..!
세계를 남들보다 조금 더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건 늘 어색하면서 두근거리며, 따뜻하며 어딘가 그립다. 시야가 넓어지며 보이는 귀엽고 밝은 정령들은 항상 심상에 여러 마음이 들게 만든다. 정령들을 본다는 건 그랬다. 적어도 내게는 내가 가진 모든 것들 중 가장 특출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의 두 배 정도의 수로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손을 들어 올려 양옆으로 흔들흔들, 살랑살랑 거렸다. 열매의 요정, 풀의 정령, 빛의 정령, 불의 정령, 물의 정령. 지금 자신의 시계에서 노니는 모든 아이들에게 소년은 인사를 건넸다. 눈앞의 커다란 나무씨도 정령이라는 건 조금 놀랐지만, 생각해보면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닌 듯 했다. 머리에 올라간 열매를 두 손으로 잡아 내리고 살살 그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잠깐 말이 안 나왔다. 나는 말을 고르다가, 겨우 내뱉었다.
"아. 감사해요."
내뱉고 생각하니 너무 단촐했다. 아마 지금 내 얼굴은 조금 붉을 듯 했다. 베시시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나무씨를 올려다보았다.
"..다음에 다시 와야겠네요. 영양제는 좋아하시나요?"
개인적으로 게이트에 들어오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며, 아마 허락이 내려올 가능성도 적으니 나중에 이 곳으로 오는 의뢰 하나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주변에 다가와 빙글빙글 장난치는 정령들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괜찮으면 누구 한 아이는 쓰다듬어주고 싶네-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렌트 할아버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 나무씨네요.”
거래를 좋아하시는 그렌트 할아버지.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없지만 거래란 물물교환만 뜻하는 것이 아니며,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의뢰 역시 거래의 일종이었으니.. ..어찌 되지 않을까? 막연한 긍정이 솟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열매를 만지작거렸다. 뭔가 선물로 받은 것이다보니 먹기가 아까웠다. 화분을 사서 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