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교에서의 생활은 지루하도록 따분했지만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동양풍 본교보다 집을 닮은 서양식 고성이라 더 그랬던 것도 있지만. 아무튼 그 속에서도 나름대로 재미를 찾으며 지내던 그녀는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복귀의 때에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해서 좋았는데-"
설녀라면서 남자의 모습을 한 분교 교장의 말에 작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지 않겠다 고집 부릴 생각은 없었다. 언제 떠나도 괜찮도록 매일 짐을 챙겨두고 있기도 했으니까. 리치만 이동장에 잘 넣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돌아갈 채비를 하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손을 들고 질문을 해본다.
로아나 저택은 멀리서 한 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컸고 또 보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어보이게 어두운 색으로 장식되어있었다. 정원을 지나 있는 정문은 멋들어진 흑표범의 얼굴이 새겨진 벨이 있었고 커다란 쇠창살에 혼두라스 마호가니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저택은 조용했다. 정원사도 없는 시간대였고 레오는 방에서 잠들어있었으며 아버지는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딸이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사용인들은 저택 내부를 다듬고 있었기에 조용했다.
" Sir, Sie sollten nicht hier sein! " " 저기요, 여기 계시면 안됩니다! "
처음으로 그 목소리에 반응한것은 저택의 메이드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꽤나 곤란하다는 얼굴로 나와서 손사래를 쳤다. 사감과 안면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테니까. 소노루스라는 큰 목소리에 저택의 모든 사람이 반응했는지 군데군데 창문이 열렸고 그 중 하나에는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의 레오도 보였다.
" Denn du solltest nicht hier sein!!" " 여기 계시면 안된다니까요!! "
메이드는 한 번 더 이야기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저택의 문이 열렸고 거기서 나온 것은 레오였다. 하얀색 잠옷을 입고 조금은 부스스한 머리로, 자다깨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해 눈물이 맺힌 눈으로 짜증이 잔뜩 난 표정을 지은 레오는 양 옆에 레오를 말리는 메이드를 둘이나 끼고 발을 끌며 앞으로 나왔다.
" Wer ist das!!!! Ich werde vor Lärm sterben.... Wer ist das!!! " " 누구야!!!! 시끄러워 죽겠네... 누구야 너!! " " Komm runter Mädchen! Wir werden reden! " " 진정하세요 아가씨! 저희가 잘 얘기할게요! " " Kleines Mädchen, komm rein und schlaf wieder ein " " 작은 아가씨, 들어가셔서 다시 주무세요. "
말리는게 말리는게 아니었지만, 레오는 씩씩거리며 정문까지 나와 흐아아암- 하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 Wer zum Teufel schreit in der Villa eines anderen? " " 대체 누가 남의 저택에서 소리를 질러? "
박살을 내주겠다. 라고 생각한 다음 눈에 들어온 것은 교수님의 얼굴이었다. 레오는 헙, 하고 숨을 들이마시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학교의 교수님이니 자기가 얘기하겠다며 밖으로 나온 모든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언더테이커 가문은 바람 잘 날 없다.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건 좋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삶의 문화이자 즐길 거리다. 누군가 죽는다면 좋아할 사람만 모인 이 가문은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오면 손님으로 간주했는데, 이번 손님은 특별하다. 양산을 쓴 동양인 여성? 누굴까?
"오, 오! 샬럿을 만나러 왔군요!"
가주의 이름을 묻고 학생이란 단어를 붙이자 눈치 빠른 검은 머리와 흉터를 가진 여성은 신나게 답했다. "흐음, 아마 지금쯤 재활을 하고있을 건데, 안내해드릴까요?" 하다가도 당신의 낭랑한 목소리에 휙 고개를 돌렸다. 여성이 복도를 지나치고, 인간이라며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지나치며, 마지막으로 그가 있을 방의 문을 열기 직전이었다.
"맙소사..인간이 귀엽다고 하는 인간이라니.. 너무 귀여워요!!!" "흐아아악 캐서린 더는 안 찢어져.." "우리 아들은 오늘도 낡고 지쳤기도 하지! 들어가실 건가요?"
레오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정신이 없었으니까. 레오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눈을 지긋이 뜨고 문을 열지 않은채로 노려보던 레오는 어떻게 할까하고 잠깐 고민하다가도, 설마 자신의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문을 열었다. 기름칠을 잘 해두었는지 별다른 소리없이 부드럽게 열린 커다란 정문. 그리고 레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했다.
그녀는 설녀의 친절한 대답에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꽁꽁 닫고 막아도 안에서 열어준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테니까. 그 부분도 묻고 싶었지만 그 역시 의미 없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아 관둔다. 그녀는 몸을 돌려 윤의 곁으로 쪼르르 다가가 생글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돌아가네요."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었지만 그걸 아는 건 그녀와 윤 뿐이겠지. 웃으며 말한 그녀는 플루가루를 쓰기 위해 벽난로 쪽으로 돌아서며 말을 잇는다.
"전 플루가루 쓸 건데, 선배는요?"
같은 걸 하겠다면 같이 가자고 하고, 아니면 아닌대로 각자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갈 곳은 같은 곳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