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집무실 책상에 앉는다. 오늘은 가문의 예산을 관리한다는 핑계로 집무실에 들어왔다. 마시다 만 양주병을 보며 그가 어머니 일이 고된게 분명하거니 생각한다.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는 몰상식한 짓을 해도 어차피 이곳에선 아무도 없으니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그는 편한 자세로 책을 펼친다. 첫장부터 잉크가 흩뿌려져 있다. 책장을 넘긴다. 홍씨 집안이라면 마노의 가문일 것이다.
내용을 천천히 읽는다. 혹시 몰라 손가락을 튕겨 서류틈에 눌려 누군가 꺼내주길 간절히 바라던 양피지와 깃펜을 불러온다. 기껏 편하던 자세를 바르게 하며 그가 요점을 또 적어내린다. 그러다 증오라는 말에 한참을 머뭇거린다.
마노는 추종자이지 않나. 어째서?
이렇게 알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미 펼쳐버린 책이다. 발설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아기가 태어났다는 말을 보며 그는 다음장을 넘긴다.
안에 들어있는 것, 이라는 제목에서부터 그녀는 어떤 예감, 혹은 직감이 들었다.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혹시 모른다는 의심을 하고 있는 지금, 이 때에 이렇게 의미심장한 책이 손에 쥐어진 것부터가 그녀의 감을 예리하게 만든다. 그녀는 자신과 패밀리어 뿐인 개인실 안을 새삼스레 둘러보고 책을 펼쳤다. 첫 장은 그녀도 어릴 적에 종종 들었던 마더구스의 가사였다.
...여자아이는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설탕과 향신료. 그 밖의 모든 멋진 것들...
앞의 두 구간은 그녀도 아는 것이었지만 그 다음에 이어진 부분은 모르는 가사다. 특히, 작은 여우가 들어가는 가사는.
마더구스 식 가사는 붉은빛 액체로 인해 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단어를 모아 문장을 만들어봤지만, 어쩐지 등골을 쎄하게 만드는 문장 밖에 없었다. 그녀는 순간 책을 털면 액체가 떨어져 내용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진짜로 액체가 떨어져 피범벅이 되는 건 사양이었다.
"흐음..?"
얌전히 다음장의 내용을 읽다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가 변하게 된 계기에, 집안의 문제가 따로 있었던 걸까? 순혈주의나 주변의 문제 외에? 이전에 보았던 가문의 책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책이라면 좀 더 다른 내용을 보여줄 것만 같았다.
좀 더, 그의 근본에 가까운 무언가를. 그것만 안다면-
그녀는 근처에 놓아두었던 쿠키캔을 끌어와 열고 하나 꺼내 입에 물고서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마노석을 쥔 아기. 삽화 속의 아이는 사랑스럽고, 그는 갓 태어난 생명을 묘사한 삽화를 한참이고 쳐다봤다. 살면서 살아있는 아기를 단 한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본 아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으며, 숨을 쉬지도 않았다. 숨쉬던 어린날의 마노는 어땠을까.
사랑과 희망. 아름다운 얘기다. 그는 희망과 사랑이 가득하길 바랐다는 지문에 쓴 웃음을 짓는다. 누구나 태어나는 것은 아름답다. 그 이후의 일은 아름답지 않다. 이 가문의 이야기처럼. 그는 다음 장을 넘긴다.
[매구의 부모는 순혈주의의 정당성을 몇 번이고 외쳤다. 혈통의 중요성도 그러했다. '머글과 잡종은 이런 당연한 마법사 사회의 정보가 아예 없어. 그들은 피를 흐리게 만들 뿐이야' 어긋난 정보 습득은 빠르고 혼혈과 머글의 주문이 몸에 튀는 날에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가 일기도 했다. 그는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120
서 있는 청소년 정도의 마노 주변에 어른들이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는 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가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모습이 반복됩니다.
[마노는 어떠한 마법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쓰는 지팡이는, 어둠의 마법에 친숙하게 발동이 되는 지팡이 뿐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쓴 추종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은 그는 단 한 마디, 내뱉었다. 결과적으로 운이 나빴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마법 연습 중이었고 그 주문을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부모와 다른 홍씨 가문 사람들이 쓰러져서 숨을 쉬지 못하는 걸 본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울고 있었다.]
더 읽으시겠습니까?
>>121
그림자가 여우 형태를 띄는 젊은 마법사가 몇몇 사람들을 귀곡탑으로 안내하고 피가 튀는 모습이 반복되는 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머글들의 편이라며, 매구는 몇몇 머글을 그 집안으로 불러들였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것 같은가? 들어간 머글들은 다시 멀쩡히 걸어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매구의 훌륭한 겉모습이 되었다.]
삽화를 보고도 설마 했을 뿐이다. 불운한 사고가 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지문을 천천히 읽는다. 어떠한 마법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어둠의 마법에 친숙하게 발동이 되는 지팡이었다. 이 두 문장에서 다음 단락이 그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는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뱉었을 것이다. 마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문이 있나 되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내용에 하마터면 책을 덮을 뻔했다.
누군가의 죽음은 우발적이고, 그는 지금껏 숱한 죽음을 보며 비극을 한발자국 멀리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걸까? 머리를 차분하게 한다. 죽음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비극의 첫걸음은 누구나 같다. 그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누구나 같아야 한다면, 적어도 한명분의 비극을 대신 받고 싶다. 안 봐도 다음은 매구가 그를 영입할 것이다. 누가 모를까. 사랑 받고 자라야 할 아이가.
그는 어머니가 마시고 3분의 1정도 남은 양주병을 향해 손을 뻗으며 책장을 넘긴다. 단내가 진동한다. 어머니는 괴식도 잘 먹는지라 양주 속에 초콜릿을 녹인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