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0일은 놀라울 정도로 더웠다. 지금껏 기후문제는 여러 매체에서 다뤄졌다. 현대문명에 익숙한 강력반 사람들은 당연히 읽어보긴 했지만, 남이 해결해줄 일이라 생각해서 관심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쯤되면 관심을 한번쯤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살인적인 더위에 몇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땀에 흥건하게 젖어 옷가지에 쩍쩍 살이 붙었다 떨어졌다. 애쉬의 후임인 아이리스 킴은 강력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켰고, 안드레아스는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2달러 10센트 짜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샘은 도넛 한 상자를 사왔다. 문을 열자마자 당장이라도 천장의 에어컨에 매달릴 것 같은 아이리스가 보이자 샘은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킴, 한국인은 여름에 이열치열로 맞선다며?" 아이리스는 질색하며 반문했다."이 레이시스트! 40도가 넘어갈 것 같은데 누가 맞서요!"
"너라면 맞설 줄 알았지. 지난주에도 한식당에서 닭 한마리를 혼자 해치우던데." "아! 삼계탕 얘기 꺼내지 마요. 또 먹고 싶잖아."
아이리스가 냉큼 상자에서 초콜릿을 묻히고 오레오를 부숴 올린 도넛을 집었다. "오늘 저녁에 또 갈까봐요." "야, 내 도넛!" 샘은 남은 초콜릿 도넛을 사수하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봤다. "내가 레이시스트가 아니라 네 자신을 되돌아보지 그래?"
두 막내 사원의 다툼으로 소란스러운 와중 애쉬의 자리는 비어있다. 안드레아스는 비어있는 애쉬의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애쉬는 지금까지 한번도 늦은 적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애쉬에게 큰 사건이 터졌고, 오늘은 그가 나오지 않은 지 이틀이 됐다. 그의 곁에 끝까지 남았던 아이리스에게 듣자하니 애쉬가 범인을 제압할 때 써야할 총을 꺼냈고, 동생인 헤이즈가 뺨을 쳐서 겨우 말렸다고 들었다. 헤이즈도 정말 멍청하다! 만약 애쉬가 그때 진정하지 않았다면 그의 머리는 반쪽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잘한 행동이기도 했다. 하마터면 애쉬는 죽을 뻔 했다. 그는 과연 역경을 딛고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살인적인 더위에 벌써 아이스크림이 녹아 하드를 쥔 손가락에 질질 흘렀다. 눈치가 빠른 아이리스가 주의를 돌렸다. "손가락도 드시게요?" "오겠지. 티슈 있어?" 안드레아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물티슈 드릴게요. 제 책상에 있어요." 아이리스는 자리로 향했다. "선배 올 걸." 샘은 도넛을 크게 베어물고 말했다. "그 성격에 안오면 그게 더 이상한거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말이 심해요, 샘!" 아이리스가 꾸짖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수사 권한까지 역임 받았는데 안 나올 사람도 아니고. 평소엔 착해도 일할 때는 딱딱해져선 못을 씨리얼 대신 드실 분이잖아." "샘!" "조심해라, 조만간 철분 부족하면 너도 씹어먹을 걸."
아이리스가 언성을 높이려는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자 시선이 몰린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애쉬다. 그는 검은 옷을 깔끔하게 빼입고 머리를 한갈래로 땋았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샘은 헛기침을 했고, 아이리스는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왜 오셨어요?" 애쉬는 아주 말끔하다. 총기 자살에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하러. 안드레아스, 사건 진행은 어떻게 됐지?" 애쉬는 책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안드레아스는 초콜릿 하드를 입에 물어들고 손을 닦고 있었다. "즈흐으으?" 손을 닦고 막대부분도 물티슈로 쓱 닦고는 안드레아스가 하드를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 "진척이 없어요. 언론사에 제보할까봐요."
샘은 대놓고 보라는 듯 아이리스를 보며 표정을 얄밉게 이죽였다. "거 봐. 내 말 맞지?" "시끄러워요." 아이리스는 샘을 쿡 찔렀다. 물론 그런 샘의 표정도 좋지 않다. 농담으로 건넸던 말이 진짜가 됐다. 그렇게 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나의 오차도 없을 수 있을까? 그가 같은 사건에 마주했다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다. 그래서 애쉬가 무서웠다. 일의 인격과 일상의 인격이 따로 있는게 분명하다. 샘은 말을 돌렸다. "안드레아스가 아이스크림 다 못 먹는다에 한표 걸었거든요."
애쉬는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사실 모두 들었다. 들어오는 것도 한참을 망설였다. 별 일이 아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가 생활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뜻 같기도 해서 더 가슴이 묵직했다.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였던 걸까?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는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됐다. 큰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게 됐다. 일은 일이고, 고민은 나중에 하면 된다. 늘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배웠다. 곯아버린 감정을 열어보는 건 나중의 일이다.
"뭘 그렇게 변명까지 해. 다 들었어." "샘이 나쁜 의미로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아이리스가 상황을 수습하듯 던진 말이지만 분위기만 더 차가워졌다. 애쉬는 아이리스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손을 한번 저었다. 변명은 필요 없다는 뜻이다.
"틀린 말은 아니니 부정하진 않지만 상사를 너무 우습게 보진 말았으면 하군. 국가에 소속 된 이상 하루종일 사건과 마주해야 할 경찰에게 필요한게 개인의 감정인가? 너희들은 시체를 보고 동정심을 느끼고 용의자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껴 개인의 감정을 개입해서 수사를 망쳤으면 하는 바가 있나?" "죄송합니다." 샘이 진심으로 사과했다. "..유감입니다.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미안하면 결과를 가져와, 결과를!!"
사건은 순조롭게 끝났다. 애쉬는 귀신같이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물을 찾았고, 범행 시각을 예측했으며, 범행 과정, 동기와 확실한 알리바이까지 찾아냈다. 그리고 그는 7월 26일, 사건이 끝나자마자 안식년에 들어갔다. 이 바닥에서 감정을 내려두는 걸로 여러 사건을 해결해 철혈이니 마녀니 정평이 났지만, 이젠 그것조차 지긋지긋 하다는 게 이유였다.
40도가 넘는데 이열치열 못하지요. 절대로. (시선회피) 아무튼 오늘도 분위기 있는 독백이로군요! 이전의 팀과 함께 수사할때의 활동 독백인걸까요? 뭔가 철저한 느낌인 것이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물론 마냥 철저한 것은 아닐테고.. 귀신같이라는 부분에서 괜히 쓴 표정이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1층의 카페에서 블랙커피와 비스킷을 산 예성은 2층에 있는 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간 그는 자리에 앉은 후, 비스킷을 횃대에 앉아있는 셀린에게 내밀었다. 셀린은 기분 좋게 비스킷을 앞발로 받아든 후에 예성의 책상으로 착지했고, 부리로 쪼개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던 예성은 다시 시선을 돌려 모니터를 바라봤다. 최근 뉴스로 여러가지 시끄러운 싱크홀 사태에 대한 보도나 사진 등이 듀얼 모니터에 가득 띄워져있었다. 이어 키보드를 이리저리 조작하면서 다른 정보가 없는지 찾아보기도 하는 와중 조금 피곤한지 예성은 약하게 하품을 내쉬었고 바로 블랙커피를 입에 담았다.
"일해야지. 일."
조용히 중얼거리며 예성은 집중하려는 듯이 자신의 뺨을 톡톡 쳤다. 아마 지나가다가 그의 자리를 봤다면 꽤 이런저런 자료가 띄워져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싱크홀이 생기는 원인이라던가, 관련 논문이라던가 기타 등등. 꽤 복잡한 느낌임에는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