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웨이는 물론 들은체도 하지 않고 멋대로 따른 잔에, 멋대로 잔을 부딪힐 뿐. 유우카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눈을 느릿히 깜빡일 뿐이었다. '미국인들은 굉장히 개성적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아... 그런 일, 자주 있죠... 저희도 비슷한 일이... 많았어요."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의 간섭. 유우카가 일하던 곳도 마냥 평화롭지는 않은 곳이었다. 때로는 과감해야 했지만 때로는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자신은 굉장히 운이 좋은편이라고, 계속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경찰청장이 제대로 된 경찰의 마음을 가진 분이라, 좋지 않은 생각을 품게 되는 일이 없어서. 끝까지 경찰일을 할 수 있게 돼서.
"LA도... 고생이 많네요..."
분명 해서웨이도 그런 일을 겪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유우카는 해서웨이의 허리케인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것처럼, 오히려 화제를 돌리기는 커녕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자기 잔을 쳐다보다가, 무언가 생각난듯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험한 삶을 당연하게 느낀다... 어쩌면 자신도 그랬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가족을 잃고, 죽음과 삶의 경계에 걸쳐지고... 그러면서 어느새인가 경찰이 되어서 그 범인을 잡자고 마음을 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냥하지만은 않은 삶이었다. 그러나 유우카는 어느새인가 그것을 당연하다고, 그렇게 여기면서. 끝에는 자신이 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저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동환은 내면이 따스한 사람이었다.
"다음에, 봬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보며, 자신도 진정 그런 따스함을 가지고 있는지. 유우카는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떠들썩한 자리에 끼어서 저 역시 왁자한 술판의 일원이 되었더니, 어느새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만 같다. 모르는 사이 저마다 가까이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니 과연 친목 다지기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과 음식이 최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그는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 중 둘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 소집 안내를 했을 때 서류를 봐야 한다 말했었던가, 같은 소속이라지만 각각 지휘와 그 보좌를 맡았다면 일반 대원들보단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은 건 맞다. 밥은 드셔야 하는데,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늦는 듯하니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순간 그는 수저를 내려두고 따라둔 술을 홀짝였다. 예전이었더라면 이렇게 찔끔거리는 게 사내답지 못하다느니 하는 구시대적 발언을 몇 번이나 듣고도 남았을 텐데 이곳은 다들 자유분방한 듯하니 그게 참 좋다. 어디서는 허심탄회하게 이전 근무지 이야기―아마도 LA?―를 하는 듯하고, 또 어디서는 사이좋게 술을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는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예감이 좋다. 저 혼자 딴 데를 보며 희망찬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곁에 누가 앉는 것도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그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아, 보이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었던 사람이 드디어 왔다. "아!" 반가운 마음에 탄성부터 내고 나서 뒤늦게 인사를 했다.
"어서요세요~ 네, 고기도 맛있고 잘 마시고 있어요. 저 별로 취한 것 같진 않죠?"
그는 마주 웃으며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슬쩍 가리킨다. 그 말대로 은근한 열도 전혀 돌지 않는지 얼굴은 땀방울 없이 처음처럼 보송보송했다. 그보단 이게 아니지. 그는 소라가 젓가락을 들자 근처에 있는 빈 접시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물티슈를 가져와 옆에 두는 등 주변정리를 했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행동이 영 부산스럽다. 한창 세팅에 열중하는가 싶더니 소라의 물음에 잠시 손을 놓는다. 그는 습관처럼 익숙하게 한 차례 손을 마주치며 말했다.
"네. 아직 대화는 다 못 나눠봤지만 좋은 사람들 같아요. 마음도 잘 통할 것 같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인원이 많아서 조금 놀라기도 했네요! 스카우트 하시느라 꽤 고생하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