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초여명이라는 인간은 외출을 즐겨 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반나절을 내리 친구와 화상통화 앱을 켜놓고 음악과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면 외출을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적이도 여명은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처럼 오버사이즈 후드를 하나 걸치고 나온 밤거리는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그렇게 딱히 목적도 없이 밤거리를 걸은지 얼마나 되었을까, 멍하니 걷던 중 여명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사진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놀랄 정도로 공손한 자세로, 인상적인 머리색깔의 청년이 본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하는 건 여명의 길지 않은 인생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리가 예쁘다고는 생각했지만 사진까지 찍을 정도인가? 라며 순간적으로 자문했던 여명이지만, 또 막상 생각해보면 자기야 나갈 때마다 보는 거리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그 느낌이 다를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도 그의 손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받아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한다. 사진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놀랄 정도로 친절한 나기토의 설명 덕분에 사진 찍기의 초보인 여명일지라도 멋진 구조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진을 찍는 중 의욕이 생긴 여명이 자기 손의 감각을 잠시 마비시켜 손떨림을 막을 정도로 진심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말이다, 여명이라는 인간이 셀카 몇번을 빼고는 사진을 제대로 찍어본 경험이 없었다. 애초에 여명의 인생사에서 이런 머리색을 처음 본 것과 더불어 그 사람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하는 것은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질문했다. "혹시... 사진 찍는거 좋아하세요?" 그리고 질문하고 나서야 자책했다. '초여명 이 바보야, 이름도 안물어보고 뭐 하는거니? 그리고 애초에 이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는 분이 사진 찍는걸 싫어하겠니?' 라고.
"원래 위험한 이들 상대하는데는 수가 많아야 편하잖아요? 히어로 영화를 봐도 엄청 강한 이들이 적으로 나오면 히어로들이 모두 한 편이 되어서 싸우는걸요."
어벤저스를 떠올리며 소라는 괜히 신이 나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물론 경찰이 히어로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느낌의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괜히 기분이 좋은지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렸다. 물론 그렇다고 위험한 범죄자가 나타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히어로로서의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만 할 뿐이었다.
"따분한 일상이 어쩌면 좋을지도 몰라요. 따분한다는 것은 곧 평화롭다는 거고, 우리 경찰은 치안 유지를 위해서 존재하는 거잖아요?"
경찰이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지향해야하는 분위기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며 소라는 자신의 의견을 내비쳤다. 이어 샌드위치를 괜히 한 입 더 먹은 후에, 반대편 손을 주머니에 집어넎고 분홍색 손수건을 꺼낸 후에, 그녀는 몸을 살며시 옆을 돌린 후에 입가에 묻은 빵가루를 닦아냈다.
"아무튼 해서웨이 씨는 빵 좋아해요? 이 샌드위치를 파는 빵집이 되게 청해시에서 유명하거든요. 이래보여도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서 좋은 식당은 많이 알아요. 빵 좋아하면 이 샌드위치를 파는 빵집 알려드릴까요? 나중에 일할 때 간식으로 미리 사둔 후에 먹으면 되게 좋지 않겠어요?"
얼마든지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듯이 그녀는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물론 거절한다면 더 권할 생각은 그녀에겐 없었다.
사실 착해보인다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인사를 먼저 건넨 케이시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가미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어, 음... 머리에 혹난 사람이 희소하다고 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없...나..?"
점차 그녀의 말에 휘둘리는 것 같았다. 아니, 원래 말하려던건 이게 아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이제는 아무래도 좋고 그녀의 말이 틀렸다는 것만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또 그럴싸해서 제대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을까, 이런 것은. 이번에도 휘둘리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했지만- 아쉽게도....
"존댓말이라... 크게 신경 안 썼는데, 주의해야겠네."
적당히 초면과 연상에게 쓰면 되겠지. 라고 생각한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살짝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술내기를 할 때는 어느정도 자신감이 가미되어 있는 것이 정상이지만... 저렇게까지 자신만만 하던가 보통?
그리고 그는, 이내 그녀가 왜 자신만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항...복...."
맥주에 소주에, 양주도 마셨건만 어째서 저 여성은 취하기는 커녕 취기도 안 오른 것처럼 보일까. 아니, 내가 취해서 안 보이는 건가? 어느 쪽이건 그는 기진맥진 하다는 듯이 카운터 위에 엎드리고는 두 손을 위로 올려보였다. 더 마셨다간... 정말 큰일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놀이터 그네에 앉아 샌드위치를 물며 사색에 잠긴 사람을 보는 시선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가득찼다. 마치 단순한 질문에 약간의 의심과 호기심이 별도로 첨가된 스프링클처럼, 그네 근처에 자리를 틀어 털퍽 주저않고선 깨끗한 장난감 양동이에 담긴 모래처럼 보이는 것들을 깨끗한 장난감 삽으로 몇번 휘적이다가 연신 입으로 가져가 우물거리고 있었다.
"근데 어른이 뭐요?"
입의 규격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두껍고 커다란 장난감 삽으론 먹는 것보다 흘리는게 더 많아 가슴께에 또다른 모래성을 만들고 있었지만 전혀 신경쓰지도 않는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보랏빛으로 물들어버린 머리카락의 주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입으로 퍼다 나르는 것도 어느샌가 느릿해졌고, 대략 5분쯤 뒤에는 가만히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있을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모습이 있었다.
"지금 그 모습이 놀이터가 아니라 카페 테라스에 있고, 앉아있는게 그네가 아닌 스툴이었으면 좀 분위기 있었을지도 모를텐데,"
굳이 트집을 잡아 이것저것 떠벌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당신을 향해있는걸 보면 이젠 호기심으로 그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정적인 분위기를 흩날리면서 그네에 앉아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는 사람을 보는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냥 처량한 샐러리맨일 수도 있고, 잠깐의 휴가를 나온 경찰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 그건 저도 어느 정도 동감이에요. 저도 가끔은 긴장감을 느끼고 싶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커다란 사건이 터지는 것은 좀 싫지만, 그래도 뭔가 활약하고 싶을 때도 있고... 물론 이러면 경찰로서는 실격이지만요."
그러니까 이건 우리들끼리의 비밀. 쉿. 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소라는 괜히 웃으면서 오른손 검지를 자신의 입술에 살며시 갖다댄 후에 떨어뜨렸다. 서로 스릴이나 긴장감을 원한다는 것은 서로만 아는 비밀이라는 것을 괜히 강조하면서 그녀는 뒷짐을 진 후에 살며시 한 걸음 떨어졌다.
"저기로 쭉 가다보면 사거리가 나오거든요. 거기서 왼쪽으로 가면..."
그렇게 소라는 빵집의 위치를 설명했다. 그렇게 복잡한 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두 번만 갈림길에서 틀면 바로 나오는 곳이었으니까.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는 것을 설명하며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혹시 조금 복잡하다면 핸드폰으로 위치 찍어드릴까요? 핸드폰 번호는 알고 있죠? 스카웃 할 때 우선 만날 수 있는지를 전화로 물었으니까요."
적어도 그녀의 폰에는 그에게 연락을 취할 때의 연락처가 저장되어있었다. 물론 상대방이 어떨진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혹시 까먹었다면 번호 알려드릴까요? 어차피 같은 동료니까 서로의 번호 정도는 알고 있는게 좋을테니까요."
어떤 일인지는 비밀이다. 나중에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지 않을까 하는 점은 후일으로 미룬다. 그는 살갑게 웃다가 손사래를 친다. "너도 참. 어딜 봐서 미인이라고." 하고 짧게 부정한다. 간만에 듣는 제법 귀여운 부류의 칭찬이다. 사모님, 미인이세요. 이 말을 몇번이고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은 날은 오늘처럼 손에 꼽는다.
"형도 좋지. 젊어진 기분이라 좋네."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길래 형이라는 단어가 젊어진 기분을 들게 하는지. 여기에서만 서술하는 비밀이지만 그는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전 직장에서 '사모님'이라고 불렸다. 오죽하면 강력반 팀장마저 그가 사건현장에 도착하면 우리 사모님 오셨군! 하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으니, 형은 새로운 느낌을 들게 했다. 그는 에이드를 젓던 손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젊다는 건 좋구나 싶다.
"고맙기도 해라. 조금씩만 가져가도록 할게. 아직 매운 음식을 도전하기엔 겁이 너무 많지 뭐니.."
한쪽 뺨에 장갑낀 손을 가져다대고 눈을 내리깔더니 한숨을 폭 쉰다.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전한 그가 호선 그은 눈으로 동환을 쳐다본다. "잘 먹을게." 하고 포크로 간장 양념에 한번 볶아낸 웨지감자를 콕 집어 입가로 가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