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거절하지 않는 듯하니 방금까지만 해도 침울해져가던 얼굴이 환하게 편다. 살피려 하지 않아도 감정 상태가 가감 없이 투과되는 수준으로 투명했다. 감사합니다~를 몇 번쯤 연발하고 난 뒤 포즈를 취하니 얼마 가지 않아―"정말 곤란했지 뭐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셀카봉이라도 가져오는 건데!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아, 그리고 전체샷 나올 정도로만 해주셔도 괜찮으니 적당히만 찍어주셔도 괜찮아요~ 그리고 또… 어, 네? 아참, 제가 그만 또 수다를……."(중략) '사소한' 잡담이 중간에 꽤 많이 끼었지만 말이다.―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완성해낼 수 있었다. 촬영자의 만반을 다한 진심과 찍히는 사람의 간정(懇情)이 서로 맞물려, 지극한 마음은 때로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나니……. 인생샷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사진이 나온 것이다. 그가 제 은인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음~ 좋아하느냐 아니냐로 따지자면 좋아하는 쪽이겠죠? 되도록이면 며칠 안에 멋진 사진을 많이 찍어두고 싶어서 말이에요. 사실 제가 외국 사람인데 해외, 그러니까 한국에 취직하게 돼서 한동안은 가족들 보기가 힘들 것 같아졌거든요. 일 시작하면 바빠질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사진으로라도 미리 잘 지내고 있다 근황을 알리려고요."
때마침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가 한 번 진동한다. 그는 잠시 양해를 구한 뒤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빠르게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느라 밝기설정을 높여놓은 액정 위로 메신저 어플로 보이는 화면이 얼핏 스쳐 지나갔다. 화면을 보았다면 그가 방금 찍은 사진을 전송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을 테지만, 보지 않았다면 모르는 일이다. 그는 곧 폰을 집어넣고 다시금 상대와 눈을 맞춘다. 앞에 사람을 세워두고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한 모양인지, 다시금 처음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살며시 기울이며 생글생글 미소짓는다.
"아무튼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추억도 남기고 여기를 더 좋아하게 될 것 같네요. 그러니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당신? 사진도 한 번 찍어드려도 될까요? 아, 사진 찍는 게 싫으시다면 필요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거절하셔도 좋아요."
"와. 경찰 누나. 여기서 다 본다. 전에는 아주 신세 졌었는데. 그치?" "오늘은 혼자인가봐?" "정말 내가 말이야. 경찰 누나 한번 꼭 이렇게 보고 싶었는데."
어둠이 깔려있는 골목길을 가로막으며 질 나빠보이는 사내 세 명은 소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자신을 가로막는 사내 세 명이 모두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았기에 소라는 가만히 사내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그들이 누군지 그녀는 기억해냈다. 전에 술을 먹고 가게에서 난동을 부리던 집단이었다. 다른 경찰들과 함께 출동해서 제압하고 체포한 기억을 떠올리며 소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볼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무슨 일이신가요? 절 만나고자 한 이유가."
"와. 경찰 누나. 모르는 척 하는 거 봐. 정말로 기억 안 나?" "기억이 안 나면 날때까지 우리랑 좀 놀면서 기억하면 돼. 알았어?"
한 사내가 주먹을 푸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명백한 위협이었으나 소라는 한숨을 내쉴 뿐,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전혀 겁먹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에 조금 열이 났는지, 사내 중 하나가 근처에 있는 돌담벽을 손으로 있는 힘껏 쳤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담벽에 금이 갔고 소라는 어라? 하는 표정으로 담벽과 사내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방금 주먹으로 벽을 친 사내는 키득거렸다.
"놀랐어? 사실 내가 말이야. 엄청난 초능력자야! 이렇게 단단한 벽도 박살낼 수 있을 정도로 엄청 강하다 이 말이야!" "아. 초능력자라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 난 이런 것도 가능한데."
이어 다른 사내가 손가락을 앞으로 뻗었고 레이저가 소라의 얼굴을 살며시 스쳐지나갔다. 다행히 얼굴에 명중하진 않았으나 그녀의 머리카락 몇가닥이 열기에 타면서 재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사내 세 명은 키득거렸다.
"이제 초능력자라는거 믿겠어? 경찰이면 다야? 어? 아주 죽었어. 오늘."
"어머. 그런 거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아. 물론 저도 초능력자니까 딱히 정부 요원들이 와서 이놈하진 않겠네요."
"어. 뭐야? 이 경찰 누나도 익스퍼야?" "아 뭘 놀라고 그래! 야. 이 형이 A랭크야. A랭크! 그 얼마 안되는 A랭크!"
"...A."
작게 웃어보이면서 소라는 고개를 가만히 저었다. 이어 정말로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대로 사내중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확실히 A랭크는 강한 익스파이긴 한데, 그걸로 한다는게 사람을 위협하는 거예요?"
"오. 쫄았어. 쫄았어. 하기사 A랭크인 이 몸에게 네가 뭘 어쩔건데? 어?!"
"그거 알아요? 경찰은 이 시대의 히어로! 그리고 히어로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거. 왜 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강한 바람이 살며시 불었다. 그러거나 발거나 사내 세 명은 떠들면서 소라를 감싸려고 했다. 거 되게 센척 하네. 경찰 누나. 그렇게 말해도 안 무섭거든? 싹싹 빌어보던지.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를 감싸려고 했다. 허나 그들의 움직임은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서 보이는 것은 소라가 오른손을 들고 탁, 손가락으로 신호를 주는 소리를 내면서 뭔가를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단순히 그것 뿐이었으나 사내 셋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아주 빠르게 뭔가가 보이는 듯 했으나, 그 무언가는 일제히 동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소라는 웃으면서 손을 탁탁 털면서 이야기했다.
"누군가를 지키는 히어로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아. 기절해서 못 들으려나. 하긴, 상관없지!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가까운 지구대가 어디였더라."
아무렴 어때. 하는 결론을 내리며 소라는 핸드폰을 꺼냈다. 경찰에게 신고하기 위함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자신은 휴가 중이었으니 다른 경찰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
'어른이 뭐요?' 대뜸 훈수를 두는 듯한 그 말에 유우카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퍽 생각에 잠겨있었나보다. 누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유우카는 언제나 남들보다 한 박자면 빠르고, 두 세박자는 밀려나 세상을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대체 어떻게 경찰이 되었냐고 말을 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목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좋게 말해도 절대 말 잘 들을것 같지 않은 아이가 바로 이 근처에 앉아서 모래를 퍼먹고 있었다.
"그, 저기..."
모래를 퍼먹고 있었..다...? 유우카의 흐릿한 눈동자가 순간 핑글 돌았다. 잘 못 본 걸까? 최근에는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으니까 그럴 수 있었다. 영양부족으로 헛것을 본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방금의 신기루를 떨쳐내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는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 다시 아이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아이는 보란듯이 가슴 위에 흘리기까지 하며 여전히 모래를 퍼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으, 그, 모래를 먹으면 안 돼..."
유우카도 일단은 경찰이었다. 차이는 있지만 경찰에게는 경찰 나름대로의 정의감이 있다.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 그네에서 풀짝 뛰어 내려온 유우카는 아이에게 다가가 삽을 들고 있는 팔을 붙잡아 제지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나머지 샌드위치가 엎어져 버렸다.
"그리고, 아이가 이런 시간에 밖에 나와있으면 위험하니까..."
어불성설이나 유우카의 눈에는 틀림 없는 아이로 비춰지는 것이었다.
"어... 주소나 부모님 연락처 알고있니...? 언니가 집, 찾아 줄 수 있어... 아니면, 이름 알려 줘..."
유우카는 습관처럼 들고다니는 자신의 근무수첩을 꺼내어 미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적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1.결국엔 직접적으로 강력한 2번 조치를 취하면서 보호차원으로 들어가게 될 것 같네요. 2.안됩니다. 이것만은 정말로 위험한 것이고 정말로 강력한 그런 것이 필요한 수준이니까요. 3.그런 현상이 나오면 그런 것도 안되고 약물 등으로 강제로 익스파가 안 나오도록 봉하는 조치를 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익스파가 발산이 되지 않도록 수술적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겠네요. 사실 이것도 되게 위험하지만요. 성공확률도 낮고요. 허나 목숨이 걸렸다는 것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네요. 사실 물어보신 요소 자체가 정말로 엄청 위험해요. 그런 성공률이 낮은 수술까지 고려될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