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이 때에 에반스 교수가 나선 걸까. 그녀는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저번 수업 때는 분명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거라더니. 이번은 할 수 있는 때다 뭐 그런건가. 알 수가 없다. 교수들의 움직임도, 학원의 의도도.
알 수 없는 건 그대로 둘 뿐이지만.
"이딴 번거로운 짓을...!"
마법을 날린 뒤 그녀는 지팡이를 스스로에게 겨두고 디핀도를 썼다. 팔과 팔 사이를 스쳐가는 마법으로 밧줄을 끊어내고 비로소 몸이 자유가 된다. 묶인 부분이 살짝 욱신거리는 걸 보니 살갗이 쓸렸나 보다. 귀찮게 약 바를 일이 늘었다고 생각하며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손으론 목덜미를 주무르며 가짜 매구에게 다가간다.
"그 동안의 빚은 이자를 톡톡히 쳐서 돌려드려야겠네요."
에반스 교수가 붙잡고 있는 가짜 매구의 목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다가 힐끔 에반스 교수를 본다. 그 전 실습 때가 떠오른 탓이다. 쳇. 혀를 차고 지팡이를 내려 발목을 겨냥한다.
"성가시게..."
짧은 중얼거림 후 지팡이를 휙 그으며 주문을 왼다. 섹튬셈프라. 가짜의 발목을 베어 운신을 온전치 못하게 만들도록.
그는 백정을 흘끔 바라보곤 빗자루로 높게 떠오른다. 빗자루를 잘 타지 않는 이유는 많다. 그가 언제 정신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좀 또렷해서 하늘을 좀 배회하니, 당신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저깄군."
양반탈과 홀로 대치한 당신을 보며 그는 품에서 지팡이를 꺼낸다. 심호흡을 한다. 급강하는 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 해야할 것 같다. 각도가 기울자 순간 휘청한다. 황급히 정신을 집중한다. 이 망할 빗자루. 3년동안 안 쓰다 이제 쓰냐며 항의하는 게 분명하니 불태우고 새걸로 하나 사야겠다. 그는 그대로 급강하 하며 양반탈에게 지팡이를 겨눴다.
분노 때문에 머리가 뜨거워서인지. 몰려온 두통에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굳은 표정으로 허무하게 뒷덜미를 잡힌 매구를 보고서는 힘껏 주먹을 쥔 채, 내지르려다 오히려 제 손만 아플까 그만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제압된 채. 첼의 지팡이에 겨눠진 모습을 보고는 혀를 쯧 차며 고개를 젓는다.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진짜 매구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서. 상대가 쓴 탈을 잡고서는 그대로 벗겨내려 한다.
처음으로 저 정신나간 자식과 생각이 일치했다.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이 녀석이 지원군으로 온걸까? 하지만 투덜거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한사람이라도 아쉽다. 드디어 입이 열리고 주문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하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녀석은 당당히 내 눈 앞에 서있으니까.
"어이쿠! 한방 제대로 맞으셨네? 하긴 그런 이상한 탈 쓰고 진작 뒤져버린 영감한테 줴인님 줴인님거리는 중2병 놈들 수준이야 뻔하지 안그래?"
호랑이는 그렇다쳐도 왜 하필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이 녀석이 지원군으로 온걸까? 실력 하나는 믿음직하지만 다른 동료들 실력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사감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이 왔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왜 하필...
너무나 쉽게 베어지는 발목을 보며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언뜻 보기에 못 볼 걸 봤다는 듯한 행동이었지만, 가려진 손 뒤의 입은 웃고 있었다. 가는 웃음소리라도 새어나갈까봐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소리를 죽이고 시선을 슬쩍 돌리는 걸로 그럴 듯한 반응을 내보였다.
"......"
그녀가 그러는 사이 비슷하게 다가온 스베타가 탈을 벗겨내는 모습을 시선으로만 응시했다. 툭 하니 떨어진 탈 뒤로 나타난 얼굴은, 그녀가 아는 그의 얼굴이다. 같은 얼굴이지만 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짜를 보고 입가의 손을 내린 그녀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짧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서 발악하긴. 이젠 정말 좀 조용해져 주셔야겠네요."
그리고 늘어뜨렸던 지팡이를 들어올려 조금 전 피했던 목에 겨눈다. 비스듬히, 노리는 지점이 있듯이, 한 곳에 지팡이 끝을 쿡 찌르고 말한다.
"인간의 목은 말이죠. 잘 그으면 죽지 않고 목소리 정도는 잃게 만들 수 있어요. 마법은 금방 풀릴 테니까, 조금 강경수단을 쓸게요?"
감출 수 없는 웃음기를 희미하게 지으며 지팡이를 기울여 겨눈 채 주문을 읊는다. 섹튬셈프라.
하강하는 동안 빗자루는 별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주문은 명중했고, 양반탈은 밧줄에 묶였다. 그는 내심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자신을 칭찬했다. 그는 인카서러스 마법을 쓸 때 습관적으로 손목을 비틀어 상대방을 예술적으로 묶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그가 절애하는 사람에게만 쓸 것이다. 묶인 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는 흘끔 백정을 쳐다보다, 왜 왔냐는 단말마에 공중에서 양반탈을 내려다봤다.
"그건 이쪽이 할 말이지. 초대도 받지 못한 손님 주제에 왜 학교에 기어 들어오나. 자네는 양심이라곤 단 한톨도 없나?"
무사히 땅에 착지한 그는 아성을 돌아보며 모노클을 정돈한다. 중지 손가락이 곧게 뻗어났고, 자연스럽게 아성에게 소리 없는 욕을 할 수 있었다.
"꼬우면 다시 돌아가지. 본론은 청궁 기숙사 5점 감점이라 그 말입세. 저번에 대표니 뭐니 잘도 사기를 쳤더군. 자네도 양심이라곤 단 한톨도 없나?"
탈이든 저 새..아니, 저 학생이든 지금 당장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판단하건대, 피로 등급을 나누고 숭고하지 못한 죽음을 양산하는 저 탈쪽이 미세하게 더 마음에 들지 않으니 당연하게도 지팡이는 양반탈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