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하가 얹어 주는 옷을 가만히 받아 걸치면서, 언젠가 또 이런 일이 있었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날. 그 날 헤어지기 전에는 너에게서 도망치듯 조용히 밀어냈었는데. 어쩐지 초조한 기분을 숨길 수가 없어서, 남은 손으로 어깨에 힘 없이 걸린 옷깃을 가만히 끌어당겨 여미기만 했다. 새벽 공기가 추운 탓이야.
"....아."
그러고 보니 핸드폰, 떨어트리고 왔었지. 파각, 하고 꽤 강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휴대폰의 액정이 멀쩡한지 어떤지 따위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새슬이었기에, 그냥 또 커다란 금이 하나 늘었겠구나 싶기만 하다. 응.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문하가 별 일 없이 핸드폰을 주워 왔다면, 새슬은 현관 앞에 서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출발할까. 아무 일 없는 듯 부드러웠지만, 묘하게 힘이 없는 것 같은 미소를 띄우면서.
경아는 늘 그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저를 괴롭히는 외로움도,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페로몬도 지긋지긋했다. 제가 양이라는 사실에 기쁘다 느낀 적 단 한 번도 존재치 않았다. 그러나 경아는 지금 처음으로 그 사실을 다행이라 여긴다. 적어도 당신에게 작은 안식을 선물해줄 수 있을 것임에.
“너무 어릴 때 가서 기억하실런지도 모르겠네.”
즐거이 떠든다. 나중에 그 골목길들도, 뒷산과 공터도 모두 가보자. 그곳에서 노을과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 분명 아름답겠지. 추억 위에 아름다운 것을 새로이 덧칠해보지 않을래, 우리 함께? 과거와 같이 찬란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분명 그런대로 눈부시게 예쁠 거야. 미래를 이야기하며 당신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는다. 환히 웃는 모습에서 예전의 모습이 슬며시 보이는 것도 같다.
들려오는 말에 경아는 당신과 매한가지로 놀란 듯 하였다가 소리 내어 웃는다. 제가 있어 다행이라는 말도, 함께라는 말도 달갑다. 어쩌면 그마저도 외로움에 취약한 제 성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당신이라 그럴 뿐이라 속으로 되뇌며 덮어버린다.
“저번에도 이 말, 하지 않았었어?”
가벼운 농조다. “날 너무 과보호하는 건 아니야?”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인다.
“알았어. 대신, 너도 네가 필요하면 불러줘. 도와줄 수 있는 일도 별로 없겠지만…”
말 끝을 흐린다. 조금 머쓱한 얼굴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당신에 비해 경아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평범한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경아는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하고는 이야기한다.
그가 다시금 그 지하실의 어둠 속으로 빠져버리는 모습이 조금 아찔하기도 했으나, 문하는 주머니를 뒤적여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불을 켜고 들어갔다. 지하실 한켠에 일렁이는 빛이 이제 이 정도 어둠을 가지고는 그를 잃어버릴 일이 없으리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는 정말 너무도 우스울 정도로 간단하게, 애초부터 그 정도 어둠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어둠에서 빠져나와 다시 지하실 문을 열고 나왔다. 별 것 아닌 새까만 트랙탑이, 어떤 어둠을 헤치고 나온 짐승의 털가죽처럼 윤이 나는 것도 같았다.
하는 새슬의 핸드폰을 쥔 채로 현관으로 다가와서는, 운동화에 발을 대충 찔러넣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손을 내밀어서는 꼭 맞잡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그 어디에 도착하게 되더라도 자신은 함께 있겠다고.
달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몇 시간 전 소년의 집에 소녀가 홀로 비틀거리며 들어갔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두 사람이 손을 단단히 맞잡고 집 밖으로 나섰다. 아직 여름인데도 제법 싸늘한 새벽 공기가 폐 깊숙히 들어왔다가 빠져나간다. 새슬이 잠시 못 박힌 듯 서 있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마당을 지나 여전히 소리도 없이 움직이는 대문을 빠져 나와서, 걸어왔던 길을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어느새 도착한 곳에는 커다란 건물이 한 채, 그러나 눈에 보이는 외견은 일반 가정집은 아닌 것만 같다. 녹슬어 있는 커다란 철문 앞에서, 몇 걸음 앞서가던 새슬이 걸음을 멈추고 빙글 돌아 문하를 돌아보았다.
"...다 왔어."
여기야. 철문 옆에 있는 명패에 적혀 있는 글씨는 이미 흐릿해질 대로 흐릿해져 어떤 글씨인지 명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자국들로 유심히 유추해 본다면, 대강이나마 본래 무슨 글씨가 적혀 있는지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육원] 이라는 글자를.
"가 볼게."
오늘은 이만 여기서 안녕이야. 비어 있던 남은 한 손마저 너의 손을 마주잡으며. 희미한 웃음으로 소년을 올려다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녀의 생각이 절대 그녀 혼자서만 품고 있는게 아니었단 것일까? 당신 역시 똑같았고, 그렇기에 자신에 대한 것을 잘 이해할 뿐더러 꺼내는 말 하나하나도, 움직이는 손길마저도 조심스러움과 동시에 과감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혼자만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닐까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괜한 고민이었나봐요~"
힘이 풀어진듯한 목소리도, 열기가 담긴 숨도 모두 낮개 퍼지는 것들이었지만 그곳엔 어떤 부정적인 감정도 없는 그저 차분함 그 자체였다. 그걸 알게 된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어쩌면 이번 생애의 운을 전부 이쪽에 쓴 것은 아닌지 같은 여러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떠난줄로만 알았던 사람과 다시 맺어진다는 그 자체가 이미 운 가지고는 어찌하지 못할 정도로 상당한 행운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신의 머리를 감싸안고서 차분하게 펼쳐내는 말들 역시 자신의 생각 그대로였다. 어쩌면 좋아하고, 사랑하고, 관심이 가는 대상에게 품게되는 가장 기본적인 호기심일까.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볼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런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궁금해하는 것은 딱히 이상한게 아닐 것이다.
"후후후... 뭐,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를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래도 그렇긴 하네요. 설령 다를게 없대도, 그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조금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는 있겠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은 때로는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지만 그 고통을 느끼는만큼이 그 사람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알려주는 척도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에게 더 큰 관심을 가지는 이유 역시, 그런 자신에게 여지껏 변함없이 대해주는 것을 넘어 자신과 같이 서로의 애정에 대해 서로 맞부딪힌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소한 복수 아닌 복수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반대로 돌아누워진 그녀에게 똑같이 잇자국을 남기는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실제로는 아무렇지 않은데, 그저 얼굴만 빨갛게 달아오를 뿐인데도 마치 형체를 잃고 녹아내리는것 같아서 자신을 제대로 붙들고 있다가도 다시 반대쪽을 물기 시작한 당신의 공격에 저도모르게 몸이 떨리는걸 느낄 수 있었다.
"얼마든지요. 전부 다 알게 되어도 좋아요... 서로 궁금한만큼, 이번 기회에 조금씩 더 알아가도록 해요. 서로 눈을 뜨고 일어나는 모습도, 일어나기 전의 사소한 버릇까지도... ...이렇게 보니까 이제야 좀 알겠네요. 왜 좋아하는 사람의 자는모습마저 두근거리며 바라볼 수 있을만큼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지..."
정작 모두 다 풀어보이면 궁금한 부분도 흥미로운 부분도 없어지진 않을까 고민했지만, 따지고보면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때로는 악수가 강수가 될수 있듯, 제가 가진 패를 전부 내보이는 경우에도 분명 예외적인 일들은 항상 생겨날 것이다.
가령 '원래는 이랬으니까 이렇게 해보자,' 라는 소소한 장난처럼...
"알려줄게요... 원하는만큼 원하는대로... 그대야가 원한다면 잠든 모습 역시 구경할수 있을지도 모르죠. 후후후후... 이거 절대 흔한게 아니라구요~?"
/#/ 후하후하. 어쨌든 하나라도 더 썼다! 난 이걸로도 만족할수 있다! (?) 시간상 잇는건 좀 거시기하겠지만 최대한 수습해보려 햇서오... 뭔가 색다른 두근두근 좋아! 지옥텀인데도 같이 놀아줘서 꼬마어오! 꼬막따냥!
>>886 예쁜 재킷.... >:3 그리고 예쁜 가디건과 니트를 입을 수 있죠! 그리고... 애들 가을소풍 가려나요...? <:3
>>888 https://picrew.me/image_maker/197705/complete?cd=Kr2mGJrppu 이 픽크루를 >>867 레스와 함께 올렸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3 8ㅁ8... 이미 충분히 힘내주셨습니다.... (꼭그랑) 그럼요! 연호 너무너무 예쁘죠 X3 !!! ㅋㅋ큐ㅠㅠㅠㅠㅠ... 기절잠... 오늘은 중간에 깨지 말고 푹, 꿀잠 주무셨으면 좋겠어요! (스담스담)
>>894 좀 더 이어나가고 싶은데 시간이....!! 🤣 근데 저기서 더 나가면 어차피 타임스킵을 해야할 것 같은 상황이 생길 것 같아서.. 저대로 꽁냥거리고 둘이 잠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때, 슬혜주? 시아는 슬혜가 자신에게는 숨기는거 없이 다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이번 일상에선 그걸 말해주고 시펐다!
놀라지 않았다. 겁먹지도 않았다. 하라고 해서 자신의 그림자에 아예 눈이 가리워진 것은 아니었다. 새슬의 모습에서 이따금 보이던 그림자를 하 역시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무언가 새슬보다 더 거대한 어떤 것이 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자신과 다름없이, 어쩌면 자신의 것보다도 더 깊은 그림자가 새슬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하는 보통의 가정집과는 많이 다른 점이 있는 그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것과는 다른, 그러나 어쩌면 더 끔찍할지도 모를 그녀의 감옥이었다.
다 왔어, 하는 새슬의 말에, 하는 새슬을 돌아보았다. 꼭 쥔 손을 내려다보고, 하는 새슬과 눈을 맞췄다. 입을 열려다 그는 조금 주저했다. 어쩌면 이 말을 너무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 하고, 자신이 아무리 그것을 쉽게 생각했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겐 정말로 쉬운 일이라고 해도, 상대가 그것을 쉽게 받아들여주는지는 별개의 여부다.
"···여기서 떠나고 싶거나,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날 불러줘."
그의 머리 뒤로 보이는 지평선으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우리 집 말야, 남는 방이 많아. 아버지는 원양어선 기관사셔서 일 년에 일이 주 정도만 집에 계시고. 너무 많은 말이 쏟아져나올까 봐, 문하는 입을 다물었다. 먼동을 등진 채로 새슬의 손을 꼭 맞잡을 뿐이었다.
"···언제든지 널 찾아올 테니까."
가볼게, 하는 새슬의 작별인사에, 하는 새슬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다시 만나. 널 기다릴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도, 다시 만나자고 인사해줘."
>>897 하긴, 어차피 똑딱똑 하고 밥먹는 건가! 그것도 좋다~~~~~~~!!!!!!!! 흑흑... 그걸 말해주기 위해 밀어붙인 것이라니 매우 놀라운 거시야... 무서운 지지배... 그래도 얭얼취가 확실히 새겨뒀을거 같긴 하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엔 기세등등했지만 오늘은 떡발린 것이어씀다~~~~~ 항상 제 뒷통수를 얼얼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뒷머리 맨들해짐)
예전의 기억을 떠올릴때면 너도 나도 분명 현실의 고통에서 시선을 돌려서 조금 더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터이다. 그래 네 말대로 다 가보자. 어릴때의 우리가 갔던 곳을 지금 다시 간다면 분명 다르면서도 같을테니까. 바라보는건 달라졌더라도 느끼는 것은 같을테니까. 네가 기뻐하는 것을 보는게 나도 좋으니까.
" 그렇게 말했지만 날 안찾았으니까. "
역시나 장난 섞어 답한다. 그녀가 날 찾을 일이 없는게 더 좋지만, 그걸 빌미 삼아서 놀아도 괜찮을텐데 그럴 일은 내 예상대로 없었다. 아마 학생회 일로 바쁜 나를 배려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나도 호출을 받으면 그걸 빌미 삼아서 조금 놀고 싶었다. 그러니까 지금 다시 얘기해주는거야. 너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 내가 보고싶거나, 심심하면 불러도 된단 소리야. 나도 놀고싶으니까. "
어릴때의 그 장난끼 가득한 표정이 아마도 너에겐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웃어본적이 얼마만인지. 그리고선 이어진 너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그런 말은 좋지 않다.
"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걸.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
작게 웃다가 시간을 본다. 이 정도면 나도 너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싶다. 그렇기에 네 손을 여전히 잡은채로 말했다.
" 이제 갈까? 집가지 바래다 줄 수도 있어. "
아직 만월의 밤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널 데려다주고 나도 집으로 갈 생각이다.
//집에 같이 가셨다고해도 좋고, 따로 갔다고 해도 좋아요! 이걸 막레로 하면 될 것 같슴다!
>>910 기절잠 하신 줄 알았어요.... 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 (스담) 아앗... 8ㅁ8 (왈칵) 그럼, 품에서 울게 해주고... 연호가 고개 들어서 부은 눈 하고 있으면, 옆에 있는 음료수 수건으로 얇게 감아서 눈가에 대줄 거예요 >:3 그렇게 연호 눈을 식혀줬다가... 연호가 이제 괜찮다고 하면, 공원 화장실 쪽으로 가서 세수하고 난 다음에 이제 집에 갈까? 하고 물어볼 거예요 >:3 그리고 가방 뒤져서 사탕이나 워터젤리 있으면 그거 연호한테 쥐여줬을 거에요 >:3 음, 그리고 공원입구까지 같이 손 잡고 가다가 연호가 이대로 헤어지기 싫은 표정하고 있으면, 아랑이가 집까지 바래다 줄래? 하고 물어봤겠죠 >:3
저 부분까진 일상으로 쓰고 싶었는데... (아련) 시간과 기력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88.... ㅇ<-< (널부렁)
>>907 크흐흑 그리 빨리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 ㅇ(-(... 남은 여유시간이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다 끝나고 돌아와서도 괜찮다면 답레를 써 오도록 하겠습니다 ㅇ(-(...!!! 제가 돌아오기 전에 끝이 난다면 둘이 잘 헤어진 걸로...... 생각해주세욧...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