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근처의 카페는 북적거리는 편에 속했다. 예전에도 대치동이었으니 당연한 것이었고(*미리내고는 대치동에 위치해있다) 지금도 미리내고의 학생들이 즐겨찾는 것이었지. 태운 씨앗을 갈아 달여낸 물을 마시는 사람들을 지한을 흘깃흘깃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커피는 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지한의 앞에는 차가 놓여있었습니다. 루비같은 수색을 보니. 히비스커스로 보이네요. 꿀이나 다른 과일을 첨가한 듯 따뜻한 찻잔에 슬쩍 보입니다. 카페가 만석이다 보니 몇 사람이 합석을 요청할까 싶었지만 지한의 단호해보이는 표정과 동시에 지한이 특별반이기 때문에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피하지 않아도 신경쓰지는 않는데' 느리게 따뜻하게 나온 차를 홀짝입니다. 하지만 저알로 다가온 존재가 있었겠지요.
북적거리는 카페 안에서 홀로 고독해보이는 소녀의 근처는 비어있었다. 몇 명 다가가는 사람은 있었어도 끝내 등을 보였다. 어쩌면 소녀가 보석같은 빛의 차를 다 마실 때 까지 앉는 사람은 없을 지도 몰랐다.
"혹시, 앞 자리에 올 사람이 없다면 제가 앉아도 괜찮을까요?"
그런 그녀에게 한 소년이 말을 걸었다. 부드럽고, 또 상당히 정중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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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학교란 장소는 어색했지만 사람이 몰리는 장소는 적당히 익숙했다. 어딜가나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있는 마련이었고, 소년은 종종 그 사이에 낑겨 이득이나 손해를 보기도 했다. 오늘은 손해를 보게 될까? 2분 정도 고민하다 블루베리 스무디를 주문한 소년은 빈 자리가 영 보이지 않는 카페 내부에서 곤란한 듯 웃었다. 혼잡함 속에서 무척 바른 자세로 걷던 소년은 한 소녀와 빈자리를 발견했다. 망설임은 없었고, 곧 말을 걸었다.
"혹시, 앞 자리에 올 사람이 없다면 제가 앉아도 괜찮을까요?"
조금 외로워보인다거나, 아무튼 그런 생각은 다가가면서 들었다. 그랬기에 남들보다 오지랖이 아주 조금 더 넓은 소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참고하자면 이 생각이 맞는지는 소년도 모른다. 소년의 직감이 맞은 적은 길 찾을 때 말고는 없었다.
사람이 몰리는 카페에서 자신에게 말을 스스럼없이 건네는 파필리오는 알기 힘든 느낌입니다. 조금 독특하다고 느꼈을까요.
"...앉아도 상관없습니다." 차를 홀짝이던 지한의 앞에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네자 그를 올려다보는 지한은 무언가 애매한 것처럼 고개를 갸웃합니다. 뱀눈? 아닌데.. 같은 뜻을 알기 어려운 말의 중얼거림이 흩어집니다. 그거랑은 별개로. 앉아도 상관없다는 말은 쉽게 나왔습니다.
"...." 앉게 해준다고 해도 딱히 말을 걸거나. 그러지는 않고 차를 홀짝입니다. 옆에 놓여있는 책은 도서관에서 쉽게 빌릴 수 있는 소설책 류겠지요. 관심을 가질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힐끔 쳐다보는 건 약간이지만 호기심을 가진 모양입니다.
그는 다소 과장스레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비가 내려앉듯 소리 없이 사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쳐져 있었고 시선이 맞닿으면 부드러이 웃겠지만, 분위기나 느낌은 경박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상냥함과 적절한 배려, 예절. 소년을 꾸미는 건 그런 것이었다. 잠시간 있던 소년은 슬쩍 책을 보고서는 말을 걸었다.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시나요?"
턱을 괴고, 소설책을 바라보았다. 읽은 적은 없었다. 소년의 독서 취향은 상당히 편중되어 있어 졸업할 때라 해도 도서관에서 읽은 책을 목록으로 만들면 그리 길진 않을 것이었다.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독서는 즐거워요. 저는 취향이 다소 치우쳐져 있지만요."
소녀를 바라보던 소년이 잠시 말을 골랐다. 이름 모를 소녀를 뭐라고 불러야할지 고민하다가 무난한 선택지를 골랐다.
이름 모를 소녀는 뻣뻣하지만 대화를 싫어하진 않는...것 같았다. 아직 확신까진 못한 소년은 약간의 웃음소리로 그녀의 대답에 반응했다. 예전에 저런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혹은 들은 적)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이야기더라?
"음..."
미지수라는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잠깐 고민하던 소년은 "아직 취향을 모르겠다고 이해하는 게 맞을까요?" 하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다르게 이해했다가 나중에 곤란해지는 것 보단 지금 바로 묻는 게 나았다. 혹시 모르지 않나. 저 미지수라는 게 정말 미지수인, 미래의 수학자일수도. 또 덧붙이자면 소년은 수학이란 과목을 좋아해본 적은 없었다. 그럼 그 쪽 대화는 피해야지.
"네. 확고한 취향은 적습니다." 사실 지한의 취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지한주의 탓이지만. 지한의 취향은 꽤 애매합니다. 어제 좋아했던 것이랑 동일한 맛인데도 별로라고 할 때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본인 말로는 영 아니게 들린다. 혹은 영 아니게 보인다.라고 하던데. 무슨 기준일지.
"네. 파필리오 씨." 그래서 뱀눈이었던 걸까. 라고 생각하는 지한입니다. 미리내고라는 것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미리내고 학생이 많습니다." 일반반이 아니라면 좀 더 가깝겠군요. 라는 말은 하지 않으며 슬쩍 보면. 일반반을 흘깃 봤을 때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좀 늦은 특별반일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입니다. 공통점이라는 건 좋아보이지만...?
"중간으로 유지하는 것이지요." 너무 넓으면 찾기 어렵고. 너무 좁으면 편협하다는 생각을 하며 파필리오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말하며 웃은 소년은 이해를 돕기 위해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 좋아하는 게 많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그 후에 소년은 살짝 소리내어 웃었다. 이는 어느 정도 경험담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서 점차 나아간다는 기분이 들었던 적을, 소년은 선명히 떠올랐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걸 찾아가는 건 나름, 즐거웠다.
자신을 부르는 소녀에게 소년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살짝, 나비(파필리오)같이 살랑이는 웃음이었다. 흔들리며 나는 듯한 그런, 살짝 자유로운 웃음이었다.
"그건, 그렇죠. 하지만 세계 인구가 훨씬 많은 만큼, 완전한 타인부터 시작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건 무척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통의 화제가 최소 한 개는 명확히 확보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이유가 하나 정도 더 늘어나는 건 정말로 멋진 일이다. 적어도 소년에게는 그렇게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었나요..?"
늘상 좋아하는 걸 늘려나가자 해도 소년의 취향은 영 움직이는 걸 싫어했다. 저번에도 시계태엽오렌지를 읽다가 포기했고, 공포나 추리계열도 영 꺼려졌다. 소년의 취향은 각도를 명확히 정해두고 움직이는 느낌이 강했다. 그랬기에 취향을 중간으로 유지한다는, 즉 조절하고 있다는 말은 소년에게 꽤 놀라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