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는 날이지만, 눈에 삽입한 마이크로 칩에 어제 설정해둔 알림이 울려 비몽사몽하게 일어난 정수는 마른 세수를 하며 억지로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은 늦잠 좀 자볼걸 그랬나? 라고 후회하는 것도 잠시. 대충 머리를 빨고, 세수를 한 뒤, 입에 칫솔을 물고 헌팅 네트워크에 나오는 뉴스를 보며 적당히 양치를 했다. 곧 잠옷에서 제대로 된 옷을 대충 입은 그가 향한 곳은 미리내고의 훈련장이었다. 아무리 나태하고 적당주의인 그라도 하루마다 하는 체력단련은 빠짐없이 하기에, 오늘도 어김없이 주머니에 손을 우겨 넣고, 이른 아침이라 춥다를 연신 입에서 내뱉으며 터덜 터덜 걷다가 우연찮게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오, 귤토끼!"
이상한 별명이지만, 정수식 작명법에 의하여 라임은 귤 +토끼 그래서 귤토끼다. 아무튼 정수는 라임을 향해 손을 흔들며 그녀에게 아는척 하였다.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산뜻하게 느껴지는 이른 아침의 훈련장엔 토끼 한 마리가 이리저리 뛰다니고 있었더래요. 우다다 달려가선 허수아비를 짚고, 또 방향을 홱 틀어서 달려가 어느 벽을 짚고. 아무렇게나 정신없이 훈련장을 들쑤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신체를 단련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오, 귤토끼!"
정수가 반갑게 부르는 소리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라임이었습니다. 일단 지금 달려가던 표적부터 찍고, 그다음엔 정수의 정수리를 찍어버릴까요? 라임이 표적을 마저 짚고 느리게 몸을 돌리자, 정수는 흉흉한 노란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 우다다다다!
부지런하네!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섭게 달려와 정수에게 바짝 다가선 라임은 그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차주려고 했습니다. 신체에 의념을 싣고 있지 않는데다 맨발이라서 제대로 걷어차이더라도 그렇게 아프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내가 토끼라고 부르지 말랬지!"
그러고는 정수의 시선보다 한참이나 아래쪽에서, 노란 눈으로 매섭게 쏘아보며 그의 가슴팍을 제 이마로 툭툭 치려는 라임이었습니다. 마치 안무서운 건달 양아치가 시비를 걸듯이요?
이런. 정수는 앞으로도 계속 라임을 토끼라고 부를 생각인가 보네요. 라임은 제 이마를 살살 밀어내는 그의 손가락을 물어버리고 싶었습니다. 하지 말란다고 들을 녀석도 아닌 것 같고. 일찌감치 포기한 듯이 한숨을 폭 내쉰 라임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섭니다.
"글쎄. 다들 저마다의 목표가 있으니까. 그걸 이루려면 부단히 노력해야지."
자기소개에서 들었던 바로, 정수는 10레벨 중반이라고 했었던가요. 다들 20레벨인데 혼자만 레벨이 낮다는 것은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있거나,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라임은 자신을 숨기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 말 못 할 사정이 있거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겠죠.
"그래. 네 말대로 슬슬 마무리할 생각이었어."
같이 뛰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라임은, 다리를 쭉쭉 펴서 가볍게 풀어주며 시작을 기다리듯이 정수를 올려봅니다.
겨우겨우 골인한 그였지만, 다 죽어가는 그에 비해 라임은 너무나도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이겨도 이긴것 같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논듯한 느낌에 정수는 그저 웃으며 던져주는 야채주스를 받아봅니다. 쓴것 더하기 쓴것. 매우 쓴것. 야채들을 정성껏 갈아서 만든 이 주스는 무슨 맛일까요.
"달달한거 마시고 싶어어, 이게 뭐야 풀떼기 잖아"
손에 들린 야채 주스를 흔들며 불평하던 정수는 곧, 쓰러져있던 몸을 일으키며 단숨에 야채주스를 마셔버렸다.
지금껏 남을 놀리기만 했던 정수에게 처음으로 반격을 가한 토끼에게 박수를! 정수는 딸기 우유를 마시는 라임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굽니다. 자긴 저거 먹고 남은 풀떼기 주고 라고 살짝 중얼거렸을까요. 아무튼 그는 뻔뻔하게 자기도 딸기 우유를 주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부활해서 일어난 정수는 라임이 내민 우유를 받아들며 단숨에 비워버립니다. 이 모습을 보니 혹시 풀이 죽은건 거짓말이나 연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네요.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그는 적당히 땀도 흘렸겠다. 운동도 하기 귀찮은데 라는 티를 팍팍 내더니 라임을 슬쩍 보며 권유합니다
"아침 먹었어? 여기 근처에 엄청 맛있는 분식집이 있는데 말이야"
자신의 농땡이에 죄의식을 덜어내기 위해 라임을 이용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토끼가 분식을 먹던가요? 뭐 상관없겠죠 자긴 토끼가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조금 기준이 다른데.. 레벨을 속인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 의념을 통한 범죄가 발생하는 세계를 기준으로 하는데다, 그게 특별반의 같은 이들을 상대로 한 거짓말이라면 무슨 상황이 발생할진 생각해야해. 김태식씨같은 긴 기간 헌터로 활동한 사람이면 속였다는거 알자마자 칼들어도 이상하지 않거든.
게이트에서 사망하면 시체를 챙기지 않는 이상 돌아올 수 없어. 그래서 으레 협박 중 게이트에 끌고가서 죽여버린다. 가 있지. 그런데 내가 저번에 말했듯 이 세계에는 의념범죄자들도 존재해. 이런 협박이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란 얘기기도 하고. 그래서 헌터건 가디언이건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 자신의 기술은 숨기더라도 자신의 레벨은 속이지 않는거야. 레벨을 속이고 의념범죄자가 게이트 안에서 모두 죽이고, 안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면 끝이잖아? 그래서 레벨을 속이는 행위는 난 언제라도 네 통수를 칠 수 있다고 말하는거랑 다르지 않아. 지금은 일상이니까, 또 진행도 몇번 없었으니까 내가 이렇게 설명하는거지 진행중에 하려고 했으면 몇번이고 내가 정말로 그렇게 할거냐고 물었을거야. 즉 적당히 적당히 쉬엄쉬엄 하려고 속이다가 일이 미친듯한 연쇄를 일으킬 수 있거든. 나는 이런 세계관적인 문제가 있으면 가능하면 말을 해주는 편이야. 안 그러면 일이 터졌을 때 왜 말해주지 않았는지. 억울하고 화도 날테니까. 참치끼린 괜찮지만 진행에선 그러면 안된단 의미에서 알려주는거니까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