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타인을 몰아가는 것만큼 멍청한 것은 없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 그 사람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은 괜찮다. 결국 그런 대답들은 비열한 자기 만족일 뿐이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은 때때로 평소라면 못할 용기를 주지만, 그 용기가 비방받는 순간 사람은 간단히 도망갈 마음을 가져버리곤 한다. 용기가 꺼지고 나면, 비난을 감당할 마음따윈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런 용기조차 가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들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행동할 뿐.
어느새 지한이 도착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나봅니다. 지한이 톡, 건드리자, 파드득, 자신이 한 마리의 붕어가 된듯이 어깨가 펄쩍 뛰었으니까요. 그녀를 돌아보는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볼수 있을텝니다.
"............아, 지한."
아는 사람, 그것도 동거인이자 친구임을 확인하자 눈에 작은 안심이 스쳐나갑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몸이 허물어지듯 지한을 향해 돌려지는 데, 충격이 가시지는 않은 지 붕어 아이스크림을 잡은 한 손은 여전히 포장지를 꽉 쥐고 있습니다.
"............"
키 차이에 내려다 보는 입장인 화엔. 자신을 의문스럽게 바라보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새까만 어둠같은 두눈은 그 뒤에 있는 감정도 감쪽같이 숨깁니다. 그렇게 지한이를 깊이 쳐다보다, 손에 들린 봉어X만코를 바라보다, 다시 지한이에게 시선을 돌리기를 반복합니다.
"......................."
그러다가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리는 화엔. 그 시선의 끝은 그저 다른 아이스크림일뿐이지만, 초점없이 흐린 눈은 그 보다 더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합니다. 한 참 아무말 없이 서 있는 모습은 지한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만, 함께 사는 그녀로선 그저 화엔이 말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화엔의 두 입술이 떨어집니다. 미약한 떨림을 담고 있는 목소리.
"................원래....아이스크림이라는 것은, 얼린 붕어도 포함입니까...?"
"네." 가볍게 대답하고는 지한이 말을 하기까지 기다립니다. 그동안 아이스크림 할인도 보네요. 생각해보면 아이스크림 제조사들도 한 번 멸망 직전이었을 텐데 용케도 살려냈겠네요. 꽉 쥔 것과. 미약하지만 떨리는 눈. 어째서인지.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봅니다. 하지만 나온 말은..
"얼린...붕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붕어싸x코의 포장지를 바라봅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빤히 바라보다가 잠깐 기다려요. 라고 말하며 붕어싸x코를 들고는 잠깐 어딘가를 다녀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붐비기는 하지만 계산대에서 하나 계산하는 거가 오래 걸리지도 않고요
"먹어보면 알 거 아닐까요." 계산을 하고 온 거네요. 포장지를 뜯어서 붕어 모양의 아이스크림이 나오고 화엔에게 들이밉니다. 별 의미는 없었을 겁니다. 얼린 붕어라고 생각했다면 계산 후 먹어보면 되는 거 아닐까...는 너무 독단적인 게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든 화엔 앞에 놓인 이 붕어싸x코는 겉의 모나카 피에서 약한 고소함과 팥과 아이스크림의 달달한 향이 날 겁니다.
지한이 자신의 말을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따라하자, 화엔은 심각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런 혼란스러운 목소리라니, 분명 지한도 자신과 같은 이유로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러면서도 그 아이스크림을 집고 사라질때는 두번째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짧은 말과 함께 인파로 사라져가지는 지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녀가 다시 돌아올때는 그 눈을 깜박입니다.
"지한, 지금 무슨..."
바로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뜯는 모습에 당황함이 목소리에 묻어나옵니다. 이 박력! 이 행동력...! 왠지는 모르지만, 예전에 자신의 상황설명을 주의깊게 듣고선, 몇칠후 당당히 과징금을 쟁취하고 돌아온 지한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를 상기하던 때에, 어느때 뜯겨진 포장지를 보며 어버버 하는 것도 그때의 화엔과 꽤 비슷할 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저녁 먹을 때는 아닌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얌전히 고개를 숙입니다. 지한이 내미는 아이스크림에 닿기 위해서는 등을 꽤 굽혀야 했습니다. 한 입 조심스레 베어물며 사락, 짧은 앞머리가 지한의 손을 스치겠지요.
그리고....
".......? .......!"
댕글.
악덕고용주에게 한달치 급료를 모조리 뺏길 뻔해도 미동도 않던 화엔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오물오물, 그에 따라 양볼이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꿀꺽, 목뒤로 넘어가고, 그제서야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이스크림...? 생선이.... 아니야......?"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베어문 부분도 꼼꼼히 살펴봅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아이스크림에, 아래는, 음, 짙은 색의 콩? 차가움에 혀가 마비되어서 그런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인상 깊은 지 신기한 마음으로 다시 중얼거리는 군요.
성현이 회귀했다는 점에서 꿈에서 본 듯한 인상이 남은 사람을(=지한) 길가다 만나서 어? 하며 무의식적으로 아는 듯한 표현을 했다..도 나쁘지 않아보입니다. 아니면 별 의미 없이 카페에서 마지막 남은 한정수량 케이크를 지한(성현)이 사서 성현(지한)이 못 사서 빤히 쳐다봤는데 특별반에서 만났네. 수준의 가벼운 선관도 좋습니다.
심각한 고개끄덕거림에 굉장히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린 붕어의 아이스크림을 듣고는 심각한 게 맞구나. 라고 다시 조정합니다. 지한은 아이스크림이 유통기한이 지났다. 정도를 생각했다고요(tmi. 아이스크림은 제조일자만 있다고 한다)
"얼린 붕어는 아닙니다." 무슨.. 이라는 당혹스러운 말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쭉 내밉니다. 아무리 30센치정도 차이난다고 하지만 팔을 쭉 뻗으면 좀 차이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손에 살짝 앞머리가 스치자 간지러운 듯 약간 움찔하자. 화엔의 입가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살짝 묻을지도.
화엔의 동그래진 눈에 묘하게 뿌듯해보이는 지한이 비칩니다. 오물오물거리는 양 볼을 바라보는 게 분명합니다.
"모양만 붕어죠." 붕어빵이나 잉어빵도 대부분은 그런 것이라는 말을 천천히 합니다. 사실 붕어의 모양이 아니라 토끼나 조개 모양이라도 관용적으로 붕어빵이라고 부르는 타입이던가.. 대부분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어딘가에서 붕어의 살을 발라내 양념하고 붕어빵 속에 넣어 파는 이가 없을 거란 확답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요?
"인기있는 아이스크림이라.." 안에 들어있는 달콤하면서 약한 고소함이 나는 팥과 바삭한 붕어 모양 모나카와 바닐라아이스크림이 어우러집니다.
그 한 입의 맛을 음미하듯이, 한 참을 우물거리면서도 지한의 말에 끄덕끄덕, 고개를 움직입니다. 입가에 묻은 아이스크림은 전혀 눈치채지 못해, 지한의 미소에 집중하면서도 새하얀 덩어리를 그대로 묻히고 있는 점이 워낙 우스운 모습이네요.
".........?!!?!?!"
말없이 그렇게 듣다가, 한박자 늦게 듣는 사실. 그리고 한박자 늦게 반응하는 화엔. 처음의 상태는 은은한 충격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누구가 보더라도 알 정도로 명백하게 충격먹은 모습입니다. 입은 살짝 벌어지고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손에 들고 있었다면 스스륵, 떨어트렸을테니,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지 않았던게 다행입니다. 이 녀석 대체 왜 이런 반응인지 생각할지도 모르는 무렵, 드디어 입술이 달싹입니다.
"붕어빵안에는..... 붕어가 없었습니까....?"
인생의 진실이 뒤집히는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요. 두 눈에 온갖 감정이 들락날락하는 게 보이는 거 같기도 합니다. 이내 해탈한것지, 받아들이기에 너무 큰 충격인지, 다시 한번 먼 곳을 바라보듯 초점을 잃습니다. 붕어가... 없었다니... 하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이 와중에도 이따금씩 쩝쩝 입맛을 다시기도는 합니다만.... 한 입 더 베어물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일까요.
저기를 보면 포악한 특별반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끔직한 일이군요. 새로운 환경에 두리번거리는 눈에 숙련된 잔혹성이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 사악한 눈! 살벌한 걸음걸이!
.....의 주인인 화엔은 어두워지는 하늘에 개의치 않고도 돌아다닙니다. 감흥없는 눈으로 어둡게 물들여지는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하나하나 학교를 떠나 가족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정말 처음으로 보는 학교 안의 내부는, 사람이 빠져나가니 두배로 새롭습니다. 활기가 있던 자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며, 목적없이 고요해진 학교를 돌아다닙니다. 모두 처음보고, 모두 새롭습니다. 그럼에도 마음속은 텅 빈듯 고요하고, 그럼에도 발걸음은 계속 움직입니다.
그래. 너무 급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당장 해야될 것도 아니니까. ...되도록이면, 빨리 '액'을 볼 수 있으면...좋겠지만, 서둘러서 나아지는게 없으면, 천천히, 느긋하게, 방법을 찾아나가면 되는거겠지. 그러면...무엇을 할까. 훈련도 마쳤으니, 지금으로선 무얼 하든 자유이다.
"...아, 그러고보니.."
아직 무언가 수업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쪽으로 참고하면 어떤 과목들이 있는지는 알 수 있지않을까?
>>986 이 곳은 수많은 감정과, 소리들로 가득합니다. 청각이 예민한 수인으로썬, 피하고 싶을 만큼 위협적인 공간에서 라임은 화살을 손끝에서 굴리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다분히 분주하게, 정신없이, 혼란스럽게. 냉병기와 온병기가 뒤섞이고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이 혼란스럽게 섞이고 있습니다. 만약 이 곳에서 피를 흘린다면, 라임의 피는.. 인간의 피와 뒤섞이게 될까요? 아니면, 몬스터의 피와 섞이게 될까요.
쓸모없는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히기 위해 피어오릅니다.
" 정신 차려!!! "
그 잡념들을 깨고, 라임이 화살을 쏘게 만든 목소리는 행동대장의 목소리입니다. 뛰어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블린의 팔을 쥔 채. 늑대의 머리통을 쥐고, 자신의 의념을 피워올립니다.
천근추
의념의 힘이 모여들어 거대한 무게를 완성하고 그대로 힘으로 찍어냅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늑대와 고블린이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몇몇 헌터들은 제압된 늑대와 고블린에게 접근하여 목숨을 끊어냅니다.
" 이깟 공간에서 애들 죽으면, 내가 길드장 볼 면목이 살겠냐 없겠냐!! "
열기가 자욱히 올라와, 알 수 없는 안개들이 피어오른 공간 속에서. 하나둘. 정신을 차려가기 시작합니다. 이성을 유지하는 것과, 전투의 광기에 휩쓸리는 것. 어느 것이 전투에 도움이 될지는. 당연한 결과일겁니다.
" 밀어... 내....!!! "
붕괴되기 직전이었던 전열이 진형을 유지하기 시작합니다. 한참이나 달려나오는 늑대들을 향해, 라임은 초점을 맞춰가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고, 한 마리 늑대의 머리가 꿰뚫립니다. 뛰어오르던 늑대의 숨이 끊어진 채. 바닥에 처박힙니다. 하나, 둘, 셋, 넷. 수많은 화살들이 라임의 손을 떠날 때마다 고블린 라이더들의 기동력이 무너져갑니다. 그러나, 라임의 실력과는 별개로.. 문은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습니다.
" 전부 경계해라!! "
- 크르륵? 케륵, 캬 - 키캬엑. 타튤라, 캬! - 케륵, 케륵, 케륵!!!
문의 크기가 조금 더 크게 확장됨과 동시에. 세계는 새로운 첨병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 네임 개체다!!! "
은빛 갈기의 늑대를 타고, 고블린 라이더 몇 마리가 종횡무진 진형을 휩쓸기 시작합니다. 그나마 상대가 될 법한 이들은 피하고 있지만 아직 수준이 떨어져보이는 헌터들에게서 속속 피해자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