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타인을 몰아가는 것만큼 멍청한 것은 없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다. 나는 옳은 일을 했다. 그 사람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일은 괜찮다. 결국 그런 대답들은 비열한 자기 만족일 뿐이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은 때때로 평소라면 못할 용기를 주지만, 그 용기가 비방받는 순간 사람은 간단히 도망갈 마음을 가져버리곤 한다. 용기가 꺼지고 나면, 비난을 감당할 마음따윈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런 용기조차 가지지 않는다. 단지 우리들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행동할 뿐.
"아아 벤티사이즈 하나와 소금우유 다쿠아즈 둘로요." 카페에서 지한은 커피를 시켰습니다. 아무리 아직 1월이라고는 하지만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쓴 맛이 좀 올라오는 느낌이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는 거기에 더불어 소금우유 맛 필링이 들어간 다쿠아즈를 두 개 시키고는 적당히 널찍한 자리에서 노트에 뭔가 적고 있었습니다. 신변잡기용은 아니고. 수업이 진행될 때 알게 된 것들이나. 스스로의 자세를 고치는 것일까요?
"이건... 이거네요." 카페인과 함께 분위기 좋은 카페의 음악이 어우러졌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리가 남지 않은 건 안타까운 일이었을까요? 누군가가 합석제안을 한다면 사람을 보고 이야기할텐데..
한손에 카페에서 맛볼수 있는, 사실 흔하디 흔한 복숭아맛 아이스티를 든 그가 주변을 둘러봅니다. 정수는 분위기 좋아하는 카페를 선호하는 타입도 아니고, 카페인을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지만, 이렇게 꼭 테이크 아웃을 안하고 굳이 컵을 들고 안에 들어온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진찍어서 단톡방에 자랑하려구요. 물론 다들 무시하겠지만요
결국 오늘도 헛탕치고 돌아가는구나 싶은 순간, 구원의 빛이 내려왔습니다. 마도 일본에는 거미줄을 타고 지옥에서 빠져나온 이야기가 있다죠? 아마 그런 느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머리카락은 굳이 따지자면 검은색이 훨씬 많은걸요." 그냥 지한이라고 이름만 부르면 될 걸 왜 별명을 부르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가을 품기는 했지만 평이한 어조로 말하다가 윈드밀 그랜절에 응? 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오만한 표정도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에 영향을 줬지만..
"여기서 하면 저 엄청 유명세 타버릴지도 모르는데요?" 애초에 카페 내에서 하면 쫓겨날 거에요. 라고 생각합니다. 윈드밀은 알고 그랜절도 아는데 윈드밀 그랜절은 또 뭔가 싶은 듯 바라보다가 앉아버린 것에
"아. 치사하네요." 라고 하지만 바로 일어나라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생각보다는 관대하게 할 생각이었던 걸지도. 그러면 25gp짜리 휘낭시에 하나 사주시면 앉게 해드리죠. 라는 농담을 건넵니다. 윈드밀 그랜절은 필요없고요. 라고 단호하게 말하면서요.
"그거 하다가 목뼈 나가도 전 병원비 안 드릴 테니까요?" 오롯이 자기 책임이라고 말하는 지한입니다. 그리고 25gp짜리 휘낭시에면 너무 더럽게 먹거나 음료를 쏟아서 노트를 망치지 않는 이상 관대하게 보아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일단 25gp의 휘낭시에는 윈드밀그랜절의 목뼈부상의 위험의 병원비지출을 대비해 제 지갑의 돈을 지켜주고요." 제가 동영상에 나와서 인터넷에 일파만파 퍼지며 '카페 진상갑질녀'라고 퍼지지 않게되니까요. 라는 농담같은 말을 하고는 기본 버터 휘낭시에 하나를 사오라고 하네요.
"입학이요?" 특별반에 관한 걸 묻는 정수에게. 그럭저럭이네요. 라고 말하는 지한은 당신은 어떤가요? 라고 물어봅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아니면 잘 지내지 못할 일이라도 있었는지.
화엔의 말에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다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걱정스러운 목소리에서 그녀의 지금 반응이 연기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까. 순진한 내 친구는, 아무래도 놀리는 것에 별로 경험이 많지 않았으니까.
" 큰일날 걸. 화엔을 두고 치정싸움을 하다 화엔이 칼에 맞을지도 몰라. "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재미있어 키득키득 웃을 뿐 잠시동안 침묵하며 화엔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나이스보트 엔딩이겠지만... 그걸 실제로 믿게 해도 곤란하니까. 살짝 화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려고 시도하며, "농담이야." 하고 짓궂게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 볼 빨개졌네. "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경우에서, 그리고 화엔의 경우에서 얻은 경험에 따르면, 저 목소리는 아마... 기쁜 것이겠지. 라고 추측할 수 있었을까. 또한 잘 보이지 않지만 뺨이 살짝 불그스름해진 것을 보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생각이었지.
단언인지 약속인지, 어쩌면 그 둘 다인지. 덤덤한 말투에 에이론은 잠시 무표정하게 화엔을 바라볼 뿐이었을까.
"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넌 지금보다 더 달라지고, 좋은 쪽으로 바뀌겠지. 그 때도 내가 네게 좋은 친구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
자신은 현재에 고정되어 있다. 그의 생각에, 그는 이미 성장을 끝마쳤으니까. 하지만 화엔은 아니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많이 바뀌겠지. 그리고 그런 때가 오면...
" 만약 그런 때가 오면 그땐,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네게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하면 좋겠다. "
꽤나 덤덤한 말투에, 건조한 표정이었을까. 그것이 그의 소망이었다. 친구가, 가족이 하면 좋겠다 생각하는 작은 소망.
그는 그녀처럼 눈을 감고 기억에 집중한다. 그녀는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주로 좋은 쪽으로. 이러한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나길, 그리고 그녀가 행복하길 바랬다. 비록 그는 가족이었지만 언젠간 서로를 더이상 이끌어주지 못 할지도 몰랐으니까. 신앙에 얽매인 그와 이제 막 변화를 시작한 화엔의 사이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리고 그런 때는 최대한 늦게 오면 좋겠군. "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고, 바위가 되어주고, 의지하는 그 관계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되길 바라며, 그는 작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화엔에게 고맙다. 하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 근거가 없다는 말에 매우 신뢰가 떨어진 듯한 표정으로 정수를 바라보다가 얌전히 사온 것에 하나 남은 다쿠아즈 대신 그걸 먹으며 아아와 어울리는 듯 눈을 감고 음미합니다.
"입학한 것은 그냥 다른 학교랑 비슷하겠죠." 하지만 특별반에 대한 인식이 좋아보이지는 않더군요. 라고 덤덤히 훈령장을 경험하며 본 것들을 말해봅니다. 특별반에 대한 질시는 그들이 연약해서인가. 아니면 향상심의 실종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것일까 생각해보지만..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 없다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정수의 오라버니라는 말에.
"오라버니요? 나이가 몇이길래요." 오라비가 더 어울리겠다는 말을 하며 저는 19살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나이쪽은 허물없이 어울리는 편이라 이제와서 누나취급을 원할 리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누나라는 그런 건 좀 생각할 만한가..?
"그것 떄문에 당혹스러워, 난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말이야. 오레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해피 스쿨라이프라는 원대한 꿈이 박살나기 일보직전인 이상 정수의 마음은 급했다. 일반반 친구들과 어떻게 하면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인가..곤란하다 곤란해
"응? 아, 난 17"
담배를 물고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지한이의 나이와, 츄파춥스를 물어도 너 담배피냐? 하고 오해로 혼이 날 수 있는 정수의 나이의 격차는 2년, 하지만 그 2년의 시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숨기지 않고 쿨하게 연하임을 밝힌 정수는 '무요' 라는 표정으로 지한이를 꿈뻑꿈뻑 바라보았다.
"모두랑 친하게 지내는 건 불가능해요." 단호합니다. 특별반이라고 해도 별 문제없어하는 이들도 지금 분위기에서는 말을 함부로 꺼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라는 말을 천천히 하는 지한입니다.
"보여 주고, 기대에 걸맞는(이 부분에서 지한은 잠깐 인상을 찌푸렸지만 금방 사라졌다) 모습을 보여준다면 좋은 방향일 경우 학교의 아이돌.." 같은 게 될 수도 있겠죠. 라는 말을 덤덤히 하지만 정수가 우너하는 것을 듣는다면 헤. 하는 표정으로 그런 걸 원하시다니. 너무하시네요. 라는 뜻의 잔소리를 좀 할지도?
"19살 혹은 20살 이상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든 적 없나요?" 17살이라는 말에 오라비네요 오라비. 라고 말합니다. 동생이라니. 누님이라고 불러볼래요. 라는 말을 하지만 진지하지 않습니다. 진짜 누님이라고 부르면 그게 더 기겁할 만한 스타일 아녜요?
"차라리 그냥 지한이라고 불리는 게 낫겠네요." 오레오 누님이라니. 과자를 누님으로 두는 취미는 없을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고 중얼거립니까? 막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 아니. 특별반에 예나가 있어서 부적절한가. 근데 그 짤이야말로 딱 어울릴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있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고요.. 아니. 너무 아깝다의 대답은 아니에요." 우연히도 말이 겹쳤고.아니라고 부인한 뒤. 3년이 아깝다는 이야기에. 살짝 숨을 들이쉬고는 단단한 목소리로
"맞아요. 아깝지요." 하지만 가끔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있지요.라고 말하며 그런 성질의 것들은 성급하게 접근하는 건 곤란할 거에요. 라고 하고는 특별반 이들 중에 토끼나 어른도 있다는 말에는 흥미롭다는 반응이네요.
"게이트 너머에서 온 분이거나. 게이트 너머 분과의 다차원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요." 정수식 작명들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귤토끼뿐입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보긴 했겠죠. 하지만 그것과 별명을 연결짓는 건 별개의 이야기라고요. 에이롱이 나오면 그건 알아보겠다. 그러다가 비범한 출생이란 말에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어깨를 으쓱합니다.
"별 건 없어요." 그렇죠.. 라고 중얼거리면서 너무 일찍 파고드려는이라는 말에는 그렇죠? 그럼 정수 씨의 과거를 말해주시면 저도 몇 가지 알려줄 순 있는데요. 라고 말하다가....
"농담이에요. 과거사는 이런 카페에서 수다떨기로 쓰기엔 좀 무겁잖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머지 다쿠아즈를 한 입 뭅니다. 단짠한 맛이 일품입니다.
신기하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지한의 말에 공감을 표한 정수는 곧 으쓱이며 별거 없다는 지한의 말에 웃습니다. 그렇죠, 모두가 별거 없죠. 하지만 파고들만한 부분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게 사람입니다. 문제는, 파고드는건 좋아하지만 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이겠죠
"그렇지 무겁지, 어지간하면, 안꺼내는게 좋기도 하고~"
오레오는 똑똑하구나~ 따위의 반응을 보이던 정수는 디저트를 지한이 전부 먹자,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어쩌면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