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폐하께서 변함 없으시다면 제가 틀린 게지요. 사람 보는 눈은 조금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나봅니다.”
건조한 목소리에 아예 몸을 돌리고 섰다. 자조하듯 터지는 웃음에 양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지그시 감았다가 뜨는 눈. 하늘은 어둠에 잠기고 유리창에 비친 불빛만이 일렁인다. 어린 시절부터 욕심이 많았다. 양손에 인형과 새 옷을 쥐고도 저쪽의 풀꽃 하나를 더 갖지 못하면 그게 못내 억울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지금보다 더 좋은 것, 더 귀한 것, 더 많은 것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누구에게도 몸을 낮출 필요 없는 곳까지.
당신과의 단란한 한때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으나———. 찰나의 호시절(好時節)이었다. 당신에게서 발견했던 빛이 사라졌다 여기지는 않았다. 그게 제가 찾는 것이 아니었을 뿐. 그러나 그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 것도 사실이었다. 사랑의이유가 끝내 저버리고 마는 이유와 같다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렇게 된 게 제 탓이라 책망하실 일은 없을 테니.”
혼잣말 중얼거리듯 내뱉고선 일순간 당신을 향해 선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비틀대는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서 당신이 쥔 잔으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얄팍한 유리잔이 손가락에 닿으면, 그대로 감싸쥐고 남은 것을 들이켰다. 교양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행동이었다.
“…내게 남은 사랑도, 원망도 없다고 말해요.”
빈 잔을 다시 당신 손에 쥐여주며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약하게 굴게 되는 건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 그냥 편하게 이어주면 돼~~! 잘 부탁해 ㅎㅎ